[출처] 금문의 비밀(金文의 秘密)1.
1. 서론
역사에 기록된 사실을 우리는 이루어진 사실로 믿는다. 그래서 우리가 알 수 없는 세계는 흔히 신화하고 하여 꾸며진 옛이야기로 알고 있지만 단군신화에서 보듯이 곰이 어찌 사람이 되어 사람과 결혼하여 사람을 낳을 수 있다 는 말인가 라고 허황한 것으로 알았지만 신화에서 표현되는 상징성을 안다.
면 단군 왕검이 범족과 웅족의 처녀를 선택함에 있어서 성급한 성격보다는 인내심이 강한 착한 여자를 취하여 왕비로 삼은 사실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걱이다. 이러한 단군이 지배했던 고조선을 밝혀주는 책이 바로 금문의 비밀 (金文의 秘密)이다
책에 기록된 역사를 역사시대라고 하고 그 이전시대를 선사시대라고 부르지만 기록된 역사책에서는 신화로 알려져 왔으나 그들이 생활하면서 사용한 유물에 기록된 나무류(대나무 등), 돌, 각종 뼈다귀, 동물(거북)의 껍질, 금속 (쇠-철) 등에 새겨진 원시 상형문자를 일컫는 말인 금문은 본격적인 역사 시대(문자) 이전의 각종 기록(그림)들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문자이전의 문자 가 금문이다.
그러니까 상형문자의 전(前) 단계문자 그림문자(금문)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토기나 제기 등을 통하여 4,500년 전의 시대 즉, 중국이 신화 와 전설의 시대로 규정하는 삼황오제시대를 '금문(金文)'으로 풀어놓은 책이다.
낙빈기가 중국의 신화와 전설 시대인 삼황오제 시대를 실제의 역사 시대로 풀어냈고 김재섭씨는 다시 삼황오제 시대가 '조선'과 '한'의 시대라고 재 조명하여 삼황오제 시대가 고조선의 역사와 맞물려 있음을 말한다 그것도 구체적으로 삼황오제시대가 다름 아닌 고조선의 219년간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이다.
2. 중국신화에 숨은 잊혀진 고대사
(1) 고대신화와의 진지한 만남
최근 그리스 로마신화에 대한 인기에 비하면 우리의 단순신화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신화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민족의 정체성과 무의식에 대한 해답이며 나아가 인간의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에 대한 해답이다. 우리의 고대사는 사마천의 사기에 의해 여러 부분이 위조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고, 김부식의 삼국사기도 고의적인 누락이나 위조가 되었 다는 사실이 역사학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지 않는가. 지금 중국에서는 전 설적인 왕조인 은(殷)왕조의 유적이 19세기말부터 드러남으로서 실존했던 왕 조임이 증명되었다.
이처럼 신화에는 결코 신화일 수만은 없는 진실이 담겨 있다.
중국학계는 문자의 시작을 은나라 갑골문자부터 보기 때문에 '상고금문'은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상고금문'을 기초로 하여 전설의 시대를 해석하고 풀어놓은 [금문신고]에 눈길도 주지 않았고 내용 또한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불순한 내용이라서 중국은 이 문제의 책을 '금서'로 취급했으며 출판하고 유통된 책을 회수하였다한다.
800권이라는 소량이 출판되고 유통된 책을 회수했으니 세상에 유포된 책은 극히 드문 희귀종이다. 그 중 4-5권이 국내 에 들어 왔다고 한다.
이 책을 연구한 사람이 소남자 김재섭씨이고 김재섭씨 한테 금문을 배운 사람이 책의 저자인 김대성이다.
낙빈기는 고대인들이 각종 청동기에 새긴 그림 같은 글자 '금문'을 연구하여 4,500년 전의 삼황오제(三皇五帝 : 기원전 2517-2298년. 9대 219년간) 시대를 논리 정연하게 역사의 시대로 증명하고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신화와 전설 을 역사로 주장하며 기존의 통박을 부정하는 것이다.
'금문의 비밀'은 중국의 금서인 [금문신고-金文新攷]의 내용을 재해석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금문신고는 무엇일까? 금문신고는 중국사학자 낙빈기(1917-1994)가 평생동안 상고금문을 연구하고 풀이한 결과를 1987년 책으로출판한 것이라고 한다.
금문신고는 크게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금까지 전해오는 각종 전적을 정리한 (1)전적집(典籍集) 출토된 각종화폐에 새겨진 글자를 풀이한 (2)화폐집(貨幣集) 병장기에 새겨진 글자를 푼 (3)병명집(兵銘集) 오제시대 인물을 집중 연구한 (4)인물집(人物集)으로 되어있다.
※ [금문신고]에 인용된 금문 관련 서적(금문 탁본을 엮은 책들)은 아래와같다.
1. 오대징 편(吳大徵 編) -『가齋集古錄, 상.하』
2. 엄일평 편(嚴一萍 編) -『金文總集, 총10권』
3. 왕의영 편(王懿榮 編) -『 古錄, 3권』
4. 설상공 편저(薛尙功 編著) -『歷代鐘鼎 器款識』
5. 문연각 (文淵閣) -『四庫全書』
6. 우성오 편저(于省吾 編著) -『商周金文錄遺』
7. 용경 편저(容庚 編著) -『金文編』
8. 허신 편저(許愼 編著) -『說文解字』
9. 나진옥 편(羅振玉 編) -『三代吉金文存』
(2) 역사적 인물로 되살아난 위대한 신들
문자는 살아있는 유물이다 그것은 살아 꿈틀거리는 고대 유물인 동시에 그 변천과정이 바로 역사이다. 문자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써온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어떤 연유에서 그 같은 모양의 글자가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다.
문자는 사람과 사람의 약속 부호이다. 도형적 기호를 빌려 언어를 재현하는 수단으로 문자의 탄생과 함께 역사시대는 시작된다.
금문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사용한 유물에 기록된 나무류(대나무 등), 돌, 각종 뼈다귀, 동물(거북)의 껍질, 금속(쇠-철) 등에 새겨진 원시 상형문자를 일컫는 문형으로 본격적인 역사 시대(문자) 이전의 각종 기록(그림)들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문자이전의 문자인 것이다.
낙빈기가 금문 해석을 통해 밝혀낸 4500년 전의 역사 계보도를 따라가다 보면 아주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농과 황제, 요임금과 순임금이 실제 역사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라는 것을 금문을 통해 시원하게 밝히고 있다.
또 중국인들이 우리를 낮추어 부르는 동쪽 오랑캐인 ‘동이(東夷)’의 오랑캐 ‘이(夷)’자가 한족들이 중간 시조로 받들고 있는 하나라를 세운 시조, 즉 우(禹)임금의 이름이었음을 밝히고, 이렇다 보니 삼황오제시대의 제왕들
이 동이족의 직계이거나 외가가 되고 있으며, 고조선의 주인공들이 되고 있다.
또한 우선 역사 시대의 첫 장을 연 인물이 중국인들이 시조로 받들고 있는 ‘황제’가 아니라 그들이 동이족의 수장이라 부르는 ‘신농’이라는 점, 또 황제와 신농의 관계에 대한 중국 내의 끊임없는 논란에 대해 “아들
‘자’가 당시에는 ‘사위아들’의 뜻이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소치”라며, 신농과 황제는 장인과 사위 사이임을 밝히고 있으며 황제는 제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음을 해독하는 대목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또 문자의 기원도 이 시점에서 찾고 있다.
충격의 정점은 뭐니뭐니해도 문자의 시작이 동이족의 시조이자 삼황오제시대의 첫 장을 연 신농이 만들었다
는 대목인데, 이는 황제의 명을 받고 창힐이 문자를 만들었다는 기존 역사가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엎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중국의 삼황오제시대가 다름아닌 고조선 219년의 역사시대와 동일하다는 추론은 우리 상고사를 다시 재구성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우리 민족(동이족)이 한족과 함께 삼황오제시대의 주인공이며 문자 역시 우리
민족이 처음 만들었다는 것이 금문이 밝히는 메시지이다.
이것은 은나라의 땅이었던 은허(은허)에서 출토된 갑골문자가 중국문자 창조의 시초라고 단정하고 있는 1940년대 신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허무맹랑한 학설이라고 뒤집어버리고 있다. 이러한 은허에서 출토된 갑골문자는 삼황오제의 금문보다 1000년이상 뒤늦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더욱 주목할 만한 사실은 낙빈기가 밝혀낸 삼황오제시대의 주역들이 「문무대왕릉비문」 속에 고스란히 등장하고 있어 「문무대왕릉비문」이 고조선과 우리 역사를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유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는 점이다.
三. 삼황오제시대의 인물들
1. 동이족의 시조 신농(神農)
중국인들이 동이족의 수장이라고 부르는 신농은 삼황오제시대를 연 역사의첫 번째 인물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가 최초의 역사적 인물이 된 것이다.
신농은 웅족(熊族)출신의 소전(少典)이 아버지이고 어머니는 치우씨(蚩尤氏) 집안의 여자 강씨(姜氏)였다.
신농은 어머니의 성을 따라 강이라 했다.
신농씨는 성년이 되어 곰족의 유웅씨(有熊氏) 집안의 딸 임사씨(姙巳氏)에게 장가들어 서방님(西方任)이 된다.
서쪽에서 장가 온 남편이니 서방님이라 부른 것인데 그 당시는 사람 인(人)을 사람 임(任) 또는 사람 님(壬)으로 읽었다.
그러나 신농이 임금이 된 지 43년째 되던 해(기원전 2473년)에 사위 황제와 전쟁을 벌이다가 패해 임금자리를 내놓게 되는데 이에 신농의 어머니계의 치우가 지금의 탁록( 鹿)에서 황제와 수년간에 걸쳐 전쟁을 벌인다. 그래서 인지 황제는 임금 자리에 앉지 못하고 아들인 소호 김천이 신농의 뒤를 이어 제위를 잇고 있다.
제위를 빼앗긴 신농은 대파산으로 들어가 산사람(山人)이 되었는데 신선(神仙)이란 말은 신농이 산사람이 되었다는 말에서 시작된 용어이다. 따라서 단군신화에서 단군이 아사달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신농씨 이야기로 풀이하면 그럴듯한 말로 들린다.
'ㅣ'자는 기원전 2517년 신농이 지금 중국 산동성 곡부 태산(泰山)아래에서 나라를 열고 임금을 할 당시 시장터에서 유통되었던 청동으로 만든 돈(화폐)에 새겨져 있다. 소남자는 'ㅣ'을 하나님 신(神)으로 풀이하여 신패(神貝)로 불러야 한다고 했고 님(壬)이라 읽고 임금님(壬金任)으로도 새김질 했다.
'ㅣ'의 다양한 해석을 살펴본다.
(1) 'ㅣ'자를 가마 신으로 읽는 것은 우두머리 가운데 가마가 되는 사람 곧 왕 중의 왕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ㅣ'의 머리 쪽을 정수리, 우두머리 신( )으로 읽는다는 점이다.갓 태어난 아기의 가말르 보면 할머니가 하느님이 숨을 불어넣은 하늘의 숨구멍이라고도 할 수 있다.
(2) 'ㅣ'를 아래로 그어 물러갈 퇴(退라)는 풀이이다. 이것은 하야했다는 뜻으로 보아야한다.
(3) 'ㅣ'을 곤이라 읽는 것인데 이는 옛날부터 근본이란 뜻이고 보면 곤은 당연히 꽂는다는 뜻이다
'ㅣ'의 위쪽을 하늘 위라 했을 때 천신(天神)이 되고 밑둥치쪽을 땅 아래라고 했을 때 곤(坤)은 지신(地神)이 된다. 곤이란 소리값은 꽂는다의 꼰에서 온 것이라면 'ㅣ'을 양(陽)을 상징하는 양물(陽物)이 꽂혀야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이치에 합당한 말이 될 것이다.
(4) 기둥 주라고 보는 것은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짓고 살 곳을 정해야 산다는 의미이다. 기둥 주라고 읽을 때 기둥을 꽂는다 세운다는 솟터가 그 근본 내용이다.
(5) 금문에서 십(十)은 'ㅣ'의 허리가 볼록하게 튀어나와 알을 밴 형상을 하고 있는데 십을 어원으로 하고 있는 우리말의 씹은 씨(種ㆍ卵)의 입이라는 뜻으로 입이 열려 삼라만상이 태어난다는 의미이다.
(6) 셈대를 세우는 모양이라는 뜻의 숫자로 다연히 하나 이다.
이 글자를 통하여 우리말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데 한이라는 말의 뿌리는 하라 또는 하나에서 나왔다. 여기서 하나의 하는 태양, 나는 땅의 터라는 뜻 으로 하나나 하라는 태양의 터,땅, 태양의 나라라는 우리의 고어였다.
(7) 밝음ㆍ하늘ㆍ해ㆍ임금ㆍ아버지ㆍ수컷이라는 뜻의 양(陽)으로 또 신농의; 족휘(族徽)인 양(羊)으로도 읽는다.
(8) 사람 인(人) 또는 하나님 신(神)으로 읽는다. 'ㅣ'은 하나밖에 님 한 분밖 에 없는 하나님 님으로 읽을 수 있는 글자나 말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신의 최초의 글자가 'ㅣ'이다.
(9) 남자의 양물을 뜻하는 좆인데 'ㅣ'자에서 자지 또는 좆의 ㅈ을 뿌리로 하는 음이 나온다.
'ㅣ'자는 바로 자지이며 성인 남자의 좆이다. 고조선의 문자인 남자의 생식기처럼 생긴 조(且)자가 보여주는 것과 같이 자지 조(自持 )의 조(祖)가 그 소릿값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의 씨, 불의 알, 남자의 양물이 바로 조상이라는 금문적인 해석을 모르고는 절대 설명이 불가능한 것 이 도조(陶祖)이다.
우리가 무심코 말하는 부랄ㆍ불알도 사실은 불의 알, 불의 씨 즉 염제 신농의 씨알, 신농의 후손으로 해석할 수 있는 글자이다
불(炎)은 남주작(南朱雀)이라고 하는데 주작의 의미는 붉은 새이다. 새는 해로 새김을 햇기 때문에 붉은 새는 붉은 해를 의미한다. 우리를 동이족이라하고 동이족 중에서도 새족(鳥族)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지날 쑤어먹는 동그란 새알 그리고 설날 떢국에 들어가는 가래떡을 둥글게 썰어 넣는것도 같은 맥락이다.
. 뽕할메가 된 뉘조
뉘조는 신농의 딸이자 중국인의 시조 황제 헌원의 부인이다. 태산이 있는 산동성 곡부는 신농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 곳으로 이곳에서 신농의 딸 뉘조가 누에를 치고 양잠을 가르친 곳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유물이 6천 내지 7천년 전의 것으로 판명된 산동성 대문구(大汶口)에서 출토돤 물레가락(紡錘)이다.
조선시대만 해도 해마다 봄이면 임금이 제주가 되어 동대문 선농단(先農壇)에서 농사신인 선농을 위해 선농제(先農祭)를 지냈고, 성북동 선잠단(先蠶壇)에서는 누에신인 뉘조를 위해 선잠제를 지냈다.
이처럼 오랜 세월 이 땅에서 누에신(蠶神)에게 제사를 지내왔지만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를 아는 사림이 드물다. 중국의 시조 황제 헌원의 정비 서릉(西陵)이라 해야 안다.
신농의 딸아리면 더 더욱 모른다. 우리 민속에서는 뽕할머니, 영동할메(바람할메), 삼신할머니 등으로 불리는 친근한 할머니가 남의 할머니가 돼버린 것이다.
신농을 의미하는 하느님 신, 기둥 주('ㅣ')자가 옆으로 누운 'ㅡ'가 뉘조를 뜻하는 글자이다.
누님이라는 뜻은 누워서 씨를 받는 님, 누워서 씨를 만드는님이 누운님, 누님님 것이다. 따라서 잠을 자려면 누워야 한다.
누에가 뽕잎을 먹거나 움직일 때는 한 일(ㅡ)자 모양이다. 붓글씨를 배운 사람이면 알겠지만 처음 한 일자를 쓸 때 잠두마제(蠶頭馬蹄)의 형태로 써야 한다는 운필법을 배우게 된다. 일(一)자를 쓰기 위해 가로로 획을 긋는데 왼쪽 끝은 누에 머리 모양으로 오른쪽 끝은 말발굽 모양으로 써야 제대로 된 한 일자라는 것이다.
누에는 또 몇 날 며칠이고 잠을 자니 잠자는 벌레라는 의미에서 잠(蠶)이라는 글자도 만들어졌다.
머리와 가슴을 세우고 잠을 자는 모양에서 을(乙)자가 생기고 넉 잠을 자고 나면 고치 속으로 들어가 나방이 되어 날아가는 것을 보고 새를 생각했는지모를 일이다.
새을자가 된 누에는 다시 몸 기(己)자로, 또 활 궁(弓), 뱀 사 (巳), 누에 곡( )으로 변해진다.
지금 농사라는 농(農)자도 누에를 치는데 쓰는 기구인 잠박 곡(曲)과 누에신(辰)자가 모여서 이루어진 글자로 잠박은 처음에는 누에가 구부러진 모양의 입 벌린 감( )의 모양이었다가 지금 쓰고 있는 곡(曲)으로 변했다.
결과적으로는 신농이란 이름이 신농 자신과 그의 딸 뉘조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는 글자라는 것을 유추해낼 수 있다.
누에를 의미하는 글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본다 글자는 신(辰)이다. 동이계열에서 쓰던 누에 신, 진자는 황제계열에 가면 용(龍), 융(戎), 용(庠) 등으로 변한다.
이는 신농을 신융(神戎), 신용(神龍)으로 발음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뉘조를 삼신할머니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삼신(三辰)이 해와 달 그리고 별(북두칠성)을 뜻하기도 한다.
누에할머니 뉘조의 부호문자인 'ㅡ'자가 바로 우리가 찾고 있는 칠성각(七星閣), 삼성각(三聖閣), 삼신각(三神閣)에 있는 삼신할머니로 봐야할 것이다.
하늘에서 가장 중심의 하늘을 자미원이라고 하는데 그 자미라는 글자의 어원이 잠이다. 잠이라는 것은 누에가 사는 울타리, 뉘조할머니가 살고있는 궁전이라는 뜻을 우리말로 쉽게 풀어낼 수 있다. 누에가 될 알을 낳고 죽는 나방(蛾)이라는 글자는 뱌로 뉘조의 딸 상아 또는 항아가 된다.
이처럼 'ㅡ'자 누에는 변화를 일으켜 하늘로 날아 올라가서 별(辰)이 되었다가 용(龍)이 되는 등 풍운조화를 마음대로 하게된다. 그래서 누에 잠(蠶)을 하늘벌레 천충( )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황제계가 누에 잠을 용으로 부르면 서 족칭으로 쓰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제일 먼저 누에의 머리에 모계인 신농계를 보호한다는 뜻으로 양의 뿔을 달았다.
후세의 족표에는 뿔이 잇는 용의 모양에 다리가 붙여지고 무섭게 생긴 발가락까지 그려진다. 누에가 변하여
번데기 용(庠)이 되고 상상의 동물인 용(龍)이 되어 황제계열의 대표적인 표시, 휘장의 그림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또 바람(風), 붕(鵬), 봉(鳳)으로 변해 간다.
3. 해의 신, 희화 주(羲和 柱)
신농의 아들 희화 주(羲和 柱)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다만 신농의 아들이며, 그의 누님인 뉘조와 황제 사이에서 태어난 상아와 결혼해 장차 3대임금이 될 전욱 고양을 낳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낙빈기가 신농의 아들 희화 중라고 풀이한 데 대해 소남자는 기둥 주(柱)를 주인 주(主)로 풀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리고 주인 주로 읽어야 신농의 신(神)과 그 아들 주(主)가 합쳐 우리가 제사를 모시는 신주(神主)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되면 신주는 바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뜻하는 가장 친근한 단어가 된다. 소남자는 또한 이 신주를 삼신(三神)으로 읽어야 한다 고 했다.
낙빈기에 따르면 문자는 신농 염제 계통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신농 때 처음 만들어 쓴 문자는 세월이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를 시조로 삼은 한족(漢族)에 의해 황제 헌원이 문자를 만든 것으로 그 공적이 넘어가 버린다.
이른바 황제의 명을 받아 창힐이최초의 문자를 만들엇다고 그럴싸하게 포장된다.
희화의 또 다른 이름으로 술잔을 양쪽에서 받들고 이쓴 모양의 술잔 주(舟)가 있다.
또 다른 희화의 이름은 날 일(日)이다. 그의 이름은 조선 조(朝)의 왼쪽 글자를 이룬다.
그것은 신농의 다른 이름 염(炎)과 같은 뜻으로 태양족임을 나타내는 신농계의 족표다.
신 다음의 글자가 바로 인이다. 희화 주를 뜻하는 인(人)자가 황제가 산는지역으로 가면 이(夷)가 되고, 후대에는 동이의 이(夷)가 되고, 다시 주나라 공자 때 와서는 오랑캐 이(夷)로 그 뜻이 변하고 만다.
따라서 이(夷)가 황제계열에 의하여 자기 조상을 욕하는 글자로 변해버린 것이다
4. 중국인의 시조 황제
낙빈기는 염제의 덕이 쇠해져 여러 제후들이 서로 침범하였으나 능히 그것을 제거할 수 없어황제가 대신했다는 기록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사마천은 사기에서 어째서 염제를 역사 인식 체계에서 제외했는가하고 묻고 있다.
그리고 청동기 명문을 통해, 염제 신농이 최초로 문자를 만든 인물이자 겨레의 시조이며 역사의 단초여야 옳다고 논증하고 있다. 공자 또한 전승되어오던 문헌을 모조리 없애고 요순시대의 말만으로 정교훈령을 꾸민 서경(書經)식 수법과 같은 것으로서 하족(夏族)을 하토(夏土)의 역사의 주인으로 설정해 여기에다 맞추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황제는 제위에 오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황제를 뜻하는 글자는 상고금문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단고기의 삼성기전(三聖記全) 하편에는 치우 천왕께서 염제 신농의 나라가 쇠함을 보고 마침네 큰 뜻을 세워 여러 차례 천병(天兵)을 처음 서쪽으로 일으켰다. (중략) 황제 헌원이 일어나자 즉시 탁록의 벌판으로 나가서 황제 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고, 뒤에 오장군을 보내 서쪽으로 제곡 고신을 쳐공을 세우게 하더라고 하였다.
또한 사기에는 황제가 소전의 아들(子)로 나와있지만 낙빈기는 사마천이 자(子)가 자기가 낳은 아들이 아니라 사위아들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역사의 단추를 잘못끼웠다고 지적하며, 소전의 아들은 신농이고 황제는 아들이되 사위아들이라고 했다
5. 왕위에 오른 아들, 소호 김천(少 金天)
소호 김천은 뉘조와 황제에서 태어나 2대 임금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또한 신농의 둘째 부인 이 낳은 딸 소진에게 장가를 들었으니 또 신농의 작은 사위이다.
소호 김천은 임금이 되자 새로써 관직의 이름을 정했다. 그래서 새족인 조족(鳥族)의 시조가 된다.우리민족을 동이 새족(동이 조족)이라고 부르는 것을 좌구명이 쓴 좌씨춘추(左氏春秋)를 보면 알 수 있다.
신라 계림왕(鷄林王)이 계관(鷄冠)을 쓴 것은 소호 김천의 후손이란 설과 일치하며 그들의 왕을 거서간(居西干)이라고 한 것 또한 진(秦)나라가 서천에서 일어나 백제 금방신임 소호를 서치(西 )에 모셨던 것과도 일치한다.
김씨는 곧 양족인 신농의 직계 후손이자 황제 헌원의 외손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최근에 와서야 중국은 염황자손(炎黃子孫)이라며 신농 염제를 황제 헌원보다 앞자리에 올려놓고 있다
6. 달의 신 상아
항아로도 불리는 상아는 황제와 뉘조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소호 김천의 여동생이다.
상아는 달의 신(月神)으로 모계제 사회의 주인이었다. 고조선의 조(朝) 오른쪽 변에 있는 월이 왼쪽의 날 일보다 크게 부각되어 있는 것은 이때 월시(月氏)가 주인이었음을 상징하는 글자이다.
월신(月神) 상아는 일신(日神) 희화 주의 짝이다. 그래서 일신과 월신이 대(對)가 되고 음양이란 말도 생겨나게 되었는데 음이 말머리에 붙은 것은 당시 사회제도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조(朝)라는 글자를 풀어보면 왼쪽의 남자의 해(日)와 오른쪽의 여자의 달(月)이 합쳐져 사당에 남자인 할아버지와 여자인 할머니를 함께 모신 글자라는 풀이가 가능해 진다.
四. 고조선을 밝히는 징검다리 「문무대왕비문」
1796년(정조 20년) 경북 경주에서 밭 갈던 농부가 비석 하나를 발견했다. ‘문무대왕비’였다.
발견 당시 이미 마모가 심해 상당 부분 알아볼 수 없었으나 추사 김정희의 탁본으로 드러난 비문의 내용은 참으로 기이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화관지후’(火官之后), 진백(秦伯), 투후( 侯) 등 문무왕 김법민 의 먼 조상6명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이들은 누구일까? “화관지후는 신농씨의 직계 후손인 순임금의 관직명이다.”
재야 금문학자 김대성(60)씨가 쓴 ‘금문의 비밀’(컬처라인 발행, 1만 8,000 원)은 “신라 김해 김씨의 조상이 순이며 멸망한 진(秦)나라 지배층의 후예가 신라로 건너왔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내놓는다.
오늘날 중국의 요서와 요동, 한반도의 서북과 남쪽 김해 및 제주도, 바다를 건너 일본 규슈와 오키나와에 이르기까지 왕망때 만든 화폐 오수전(五銖錢)이 출토되는 것은 왕망과 정치일선에 같이 참여했던 세력이 목숨을 건지기 위해 대륙 밖으로 이동한 흔적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따라서 문무왕 비문과 왕망의 시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보건대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바로 성한왕, 즉 일제의 5대손인 성과 같은 인물이라는 것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김일제의 자손 중 또다른 김씨들이 가락으로 대거 이동해 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 핵심으로 꼽히는 사람이 김일제와 같이 포로로 잡혀온 동생 윤(倫)이다. 윤은 일찍 죽고 그의 아들 안상(安上)이 투후 벼슬과 동격인 도성후(都城侯)가 됨으로써 자손이 번창하게 된다.
그리고 윤의 4대손이자 안상의 3대손 탕(湯) 역시 왕망의 실패 이후 이 땅으로 망명해 오는데, 바로 그가 김수로라는 주장이다. 말하자면 투후 일제의 5대 자손이 신라 김씨계이고 윤의 5대 자손이 가락김씨계가 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이 진위 여부를 떠나 관심을 끄는 것은 고대 중국의 청동 제기, 무기, 농기구, 화폐 등에 새긴 글자(금문 金文)의 해석을 토대로 했기 때문이다.
금문의 내용은 후대의 역사서에는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씨는 갑골문과 함께 한자의 원형으로 평가받는 금문 가운데서도 기원전 2,500년경, 하나라와 그 이전 삼황오제 시대의 것을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글자 낱낱에 대한 치밀한 분석의 결과는 한중 고대사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금문 기록을 종합해 보면 삼황오제 시대 고대 중국은 신농씨와 순임금, 치우를 비롯한 동이족과 황제 등 화하족(華夏族)의 결전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五. 결론
지금까지 금문을 살펴 본 내용으로 보면 신화로만 알아왔던 삼황오제의 시대가 동이족의 고대사를 반영한 사실이란 것이 확인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하여 한 가지 얻은 것이 있다면 우리는 영어를 배울 때는 미국식이나 영국식의 발음을 낼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영어를 말하는 것이될 것이다.
그런데 한자는 중국식 발음을 고집하지 않고 우리 식으로 읽었다는 점에서 강한 의문이 드는 것이다.
중국은 항상 우리를 자신의 속국처럼 생각해 왔으며 모화사상에 빠져있는 우리 선비들이 언제나 중국의 영향권 내에서 행동을 한다면 오히려 그들처럼 발음하려고 노력을 할 수도 있었건만 역관(譯官)만이 그렇게 했을 뿐 우리는 우리의 말로 표현해 왔다는 점이다.
한자는 이 책 내용과 같이 동이족이 만들었으며 한자의 상고문(上古文)을 보면 놀랍게도 지금 우리가 발음하고 있는 음과 같은 사실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게된다. 그리고 산동지방의 곡부에서도 고조선이 도읍한 지역이라서 그런 지 우리와 한자를 읽는 방법이 같다는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어쩌면 한자를 읽는 우리말이 원음이고 중국식 발음이 오히려 변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한자(漢字)는 엄밀히 말하면 한자(韓字)로 원래가 우리의 글이라고 본다. 다시 말하면 한자는 우리 글이고 우리말이란 사실이 지금은 어리둥절 할 지 몰라도 앞으로 많은 출토된 유물과 금문의 연구성과에 의하여 이러한 사실이 밝혀졌으면 한다. 우리는 한글뿐만 아니라 우리가 만든 한자에도 애착을 갖고 앞으로 다가올 국제화시대에 한자가 영어처럼 한ㆍ중ㆍ일 등 동 북ㆍ동남아시아인의 의사소통을 나눌 공통언어로서 개발될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좀 더 많은 사실과 연구 성과가 이루어져 『한자(韓字)는 우리 글이고 우리말이니 한자도 널리 씁시다』하는 사회운동이 국민전체에서 일어났으면 하는 바램을 가진다.
끝으로 중간 부분이 재미가 없어 지루하고 읽기에 힘들었지만 금문의 비밀이란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신 김성기 교수님께 감사함을 드립니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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