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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국가

영원오늘 2011. 1. 12. 12:41

대한제국 애국가는 대한제국의 국가였다.
독일 제 2제국의 해군소속 음악가였던 프란츠 에케르트가 고종황제의 명을 받고 작곡했으며 본래 군가로 지어진 것이다.
그 경위에 대해서는 민영환이 대한제국애국가발문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1902년 정식 국가로 지정되며 프란츠 에케르트는 국가를 작곡한 공로로 훈장을 수여받고 대한제국 황립 군악대장을 겸임하게 된다.

그러나 1910년 한일병합으로 일본의 국가 기미가요가 공식국가가 되면서 이 곡은 금지곡이 되었다.
그 후 1945년 해방과 6.25 전쟁을 동시에 겪으며 1948년 38선을 기준으로 대한민국과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분단된 상황에서 결국  대한제국의 국가는 또다시 버림을 받게 된다.
대한제국 애국가가 채택이 안된 이유는 프란츠 에케르트가 일본국가인 "기미가요"도 작곡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대한제국 애국가>


한일 합방 100주년을 맞이한 2010년, 대한제국 애국가가 다시금 주목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단지 버림받았던 역사의 자취를 발굴하여 기록하고자 하는 것 만은 아니다. 신기하게도 대한제국 애국가의 가사를 면밀히 살펴보면 현재 우리가 부르는 안익태씨의 애국가와의 밀접한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대한제국 애국가는 몇 차레의 가사 변화가 있었다. 1904년 황성신문에 실린 애국가 가사인 " 상제는 우리나라를 도으소셔. 영원 무궁토록 나라 태평고." 는 이전의 "상제는 우리나라를 도으소서. 성수무강샤"와 비교했을때  다소 달라졌음을 알수 있다. 아마도 1905년 을사조약 이후 백성들 사이에서 애국가가 불려지며 가사가 조금씩 변이된 것으로 보인다. 그후 1910년 부터 해방전까지는 스코틀랜드 민요 곡조에 " 동해물과 백두산..." 부터 " 이 긔(기)상과 이 맘으로...까지" 의 가사를 붙인 윤치호 작사의 애국가가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널리 불려졌다.

그리고 현행 안익태씨의 애국가까지 전해 내려오는데, 현재의 가사를 보면 " 하느님의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상제란 하늘에 계신 가장 높으신 분, 곧 하나님을 뜻하는 말로서 우리의 옛말임을 간주할때  대한제국 애국가는 안익태씨의 애국가로 이어지며 그 정신은 변하지 않았음을 알수 있다.

구한말 1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민중들 사이에서 상제라는 단어가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이는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신교의 전통속에서 상제님을 받들며 신앙해온 민족임을 알려주는 문서자료가 된다.  제사문화가 가장 발달한 곳이 우리나라라는 사실, 우리가 시조로 받드는 단군이 곧 제사장이였다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근래에 우리 민족문화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상제님이 생소하게 된데에는 해방 이후 서양문물의 갑작스런 유입과 그에 대한 문화사대주의가 뿌리박히면서 상제님이 하느님이라는 단어로 불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1897년부터 1910년까지 불과 십년동안 단명했던 대한제국. 그러나 대한제국의 유물과 흔적을 살필때 우리는 어쩌면 잃어버린 민족문화의 뿌리와 혼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든다.  
대한 제국 국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