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의 한자로 보는 세상>
득세한 사람 밑에 오래 머물지 말라.
(大名之下 難而久居)
功을 이루면 떠나야 한다.
그것이 하늘의 도리
大名의 마음을 사로잡기 어려운 까닭
大名之下 難而久居(대명지하 난이구거)는 큰 이름 아래 오랫동안 머물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시기와 모함이 집중되니 좋은 자리, 주목받는 직위에 큰 이름을 걸고 오래 있기는 어렵다. 임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大名(대명)에게도, 그 大名밑에게도 적용 가능한 말이다.
大名은 大名 자체가, 大名 추종자는 大名의 變質(변질)이 부담스럽다. 權力(권력)이든 財力(재력)이든 득세한 파워 밑에서 너무 오래 지내서는 안 된다. 영원한 성공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숨 가쁘고 어질어질한 情報化(정보화)세상이라 더욱 그렇다.
「秘密(비밀)」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지워야 할 정도로 모든 것이 낱낱이 까발려지는 大明天地(대명천지)다. 大名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벼락이 내리꽂히는 험한 날의 골프장에서 본능적으로 큰 나무 밑으로 몸을 피하는 골퍼들이 적지 않다.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과학상식을 순간적으로 잊는다. 벼락은 크고 높은 나무가 좋은 표적일 따름이다. 大木아래나, 大名 밑이나 難而久居는 매한가지다.
艱難辛苦(간난신고) 끝에 大名을 쟁취한 한동안은 날마다 잔치다. 大名을 얻을 수 있게끔 도운 측근들이 고맙기만 하다. 論功行賞(논공행상)이 잇따른다. 그러나 파티는 오래 가지 못한다. 大名이 더 멀리 보고, 더 많이 듣게 된 탓이다. 온갖 고급정보가 大名에게로 쏟아져 들어온다. 大名 앞에 무릎을 꿇겠다는 남녀가 줄을 선다. 싫어서 못 사귄 이들이 아니다. 몰라서 起用(기용)하지 못했을 뿐인 들이다.
익숙한 것은 소중하지 않다. 낯설기에 신선하고 참신한 느낌이다. 어느덧 大名의 功臣들은 舊派(구파)가 된다. 大名 마음을 사로잡은 新派(신파)의 시대가 열린다. 물론 新派도 언젠가는 舊派가 된다. 「橋脚(교각)의 역사」와 같다. 다리의 역사는 곧 崩壞(붕괴)의 역사다. 王朝의 역사, 企業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權不十年 花無十日紅(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다. 마냥 興史는 없다. 亡史없는 역사는 없다. 차면 기울고, 기울면 엎어진다.
大名에게는 세 가지 難題가 따른다.
우선, 大名 자체를 얻기가 매우 어렵다.
그 다음엔, 획득한 大名을 生前에 지키기란 아주 곤란하다.
이어 死後에 大名을 원상태로 두기도 몹시 어렵다.
남들이 자신들의 두 어깨로 떠받치고 다닐 때 까지만 그는 大名이다.
大名을 거머쥐지 못한 者일수록 大名에 집착한다. 그를 따르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大名까지는 못 갔지만, 大名의 진한 香氣(향기)를 가까이에서 잠깐이라도 맡아 봤다면 그에게 大名은 곧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名藥(명약)이다. 몇 번이고 엎어지고 깨지더라도 기를 쓰고 大名을 잡으려 아둥바둥하는 이유다.
進退가 분명해야
자신이 大名이든, 大名의 울타리 안에 寄居(기거)하는 인생이든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망할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 進退(진퇴)가 분명해야 한다. 박수를 받으며 떠날 수 있는 때, 날이 궂어지기 전에 下山할 때를 놓치면 城은 파도에 휩쓸리고 만다. 한 번 금이 간 大名이 뿜을 수 있는 威力(위력)에는 한계가 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을 다시 맡았더라도 2002년의 大名을 다시 이어 간다는 보장은 없다. 2002년 大名 「히딩크號」에서 難而久居했던 黃善洪(황선홍)과 洪明甫(홍명보)가 永生하고 있는 데는 隱退(은퇴)라는 세월의 藥이 일정부분 기여했다.
「참 大名」을 인정하는 데 인색한 사회는 「거짓 大名」에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다. 극심한 호칭 인플레이션이 이를 방증한다. 가르침을 받지도 않았건만 아무에게나 「선생님」,「사모님」, 밑에서 일한 적 없어도 「사장님」하더니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회장님」을 남발한다. 비싼 술집의 20代 여종업원이 「이사」명함을 내미는 등 自家 大名 인플레이션 또한 심각한 상황이다.
大名은 獻呈(헌정)받는 것이다. 大名을 自作하는 것은 난센스다. 가수 羅勳兒(나훈아)의 노래처럼 스스로를 「잡초」라 格下한다고 얕잡아 보는 사람은 없다. 大名보다는 自己卑下(자기비하)를 통한 카타르시스가 더 맛있을 수 있다. 자신감이 있어야 스스로를 낮출 수도 있다.
法力과 道力이 탁월한 高僧의 1인칭 語法은 언제나 「小僧」이다. 「큰 대(大)」字는 현실에서 거꾸로 작용하는 수가 많다. 그레이트, 즉 大를 나라 이름 앞에 붙여 「大英帝國」을 선포한 이래 英國의 국운은 쇠퇴일로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당시 日本의 이름 앞에도 大가 있었다. 이후 「大日本帝國」에서 大를 빼면서 일본은 급속도로 강대국 반열에 올라서기에 이르렀다.
「官大有險 樹大招風(관대유험 수대초풍)」이다. 大名之下 難而久居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관리는 높아질수록 무서워지고, 나무는 커질수록 바람과 잘 지낸다」는 풀이다. 大名에 다가설수록 官吏는 어깨와 목에 힘이 들어간다. 아울러 자신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채 국민들과 점점 멀어지고 만다. 그런데 나무는 크면 클수록 바람과 잘 共生(공생)한다. 공무원이 나무에서 배워야 하는 셈이다.
물론 관리에게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니다. 人間事(인간사)와 世上事(세상사)의 원리다. 높은 자리에 있는 이에게는 시기와 의심이 끊이지 않는다. 남들을 잘 속인 덕에 얻은 大名이 수두룩한 탓이다. 양파 껍질이 하나둘씩 벗겨지면서 이러한 大名은 퇴색하게 마련이다. 大名에 오르는 것보다 大名을 지키는게 더욱 어려운 법이다. 정치와 연예계 大名 가운데는 대중의 망각을 비난이나 스캔들보다 더욱 무서워하는 경우가 적잖은 게 사실이다.
자신의 大名이 서서히 퇴색해 가는 것을 事前에 감지할 수 있는 정치인과 美人은 극히 드물다. 아름답든 추하든 宮中(궁중)여인은 시샘의 대상이다. 어질든 어질지 못하든 朝廷(조정)에 들어간 선비는 의심을 받게 마련이다. 판검사나 대학교수, 총장 등으로 우러름을 받다가 정치인 혹은 고위관료로 변신했다는 이유로 일종의 「惡性 댓글」에 시달리다 잊혀진 인물이 한둘이 아니다.
적시에 은퇴한 범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