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의 한자로 보는 세상>
호랑이도 깜빡 졸 때가 있다.(老虎也 有打瞬時)
원님 덕에 나팔 부는 이들이 득세하는 사회는 곪는다.
狐假虎威
老虎也 有打瞬時(노호야 유타순시), 「호랑이도 깜빡 졸 때가 있다」는 말이다. 호랑이도 호랑이지만, 그보다는 호랑이가 방심한 틈을 타 까불고 다니는 여우를 탓할 때 많이 쓰는 표현이다. 막강한 호랑이의 위세를 빌린 여우의 비굴한 처세술이라고 할 수 있다. 老虎也 有打瞬時를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이 「狐假虎威(호가호위)」다.
老虎也 有打瞬時는 『戰國策(전국책)』 「楚策(초책)」에서 비롯됐다.
어느 날 朝會(조회)시간에 楚(초)나라의 宣王(선왕)이 魏(위)나라 출신의 辯士(변사)인 江乙(강을)에게 『북방 강대국들이 楚의 宰相(재상)인 昭奚恤(소해율)을 왜 그리도 두려워하느냐』고 물었다.
소해율은 당시 楚를 좌지우지하던 3大 집안 가운데 하나인 昭氏(소씨) 가문의 세도가다.
江乙은 일단 에둘러 답했다.『호랑이가 여우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꾀 많은 여우는 호랑이더러 「너는 나를 잡아먹을 수 없다. 天帝(천제)가 나를 짐승들의 우두머리로 삼았는데, 네가 나를 잡아먹으면 天帝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다. 못 믿겠으면 내 뒤를 쫓아와라」며 큰소리를 쳤습니다. 너무도 당당한 여우의 위세에 눌린 호랑이는 앞장선 여우를 따라갔습니다. 여우의 말은 과연 사실이었습니다. 짐승들은 여우를 보자마자 죄다 줄행랑을 쳤습니다. 짐승들은 여우 뒤의 호랑이를 보고 달아난 것이지만 호랑이는 이를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江乙의 본론이 이어졌다.『북방의 나라들은 소해율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방 5000리를 지키고 있는 대왕의 100만 大軍强兵(대군강병)을 무서워하고 있을 뿐입니다. 짐승들이 호랑이를 두려워하듯 말입니다』비로소 楚의 宣王은 소해율이라는 교활한 여우에게 자신이 속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생긴 대로 논다.
어느 분야에서든 우두머리는 자칫 老虎也 有打瞬時하기 쉽다. 권력의 안락한 노곤함을 즐기다 보면 아무래도 주변에 관대해지는 것이 人之常情(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먹을 만큼 살게 되면 지난날의 가난을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여우가 아첨꾼이요, 기회주의자인 줄 알면서도 당장은 내 입 속의 혀처럼 노니 구태여 내칠 필요가 없기도 하다.
그러나 老虎也 有打瞬時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잊을 만하면 불거져 나오는 이런저런 「게이트」급 요지경 사건들만 봐도 즉각 파악이 가능하다. 「저 여우는 절대 내 위로 올라설 수 없다」고 확신한 호랑이가 바로 그 보잘것없는 여우 탓에 무너지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저 者(자)가 여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나마 낫다. 알 수 없는 것이 한 길 사람 속이다. 觀相(관상)의 도움을 받아봄직하다. 사고방식과 행동거지는 대개 얼굴에 드러나는 법이다. 「생긴 대로 논다」는 말을 확인하고 무릎을 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相法(상법)을 따로 익히는 수고 없이 자신의 直觀(직관)에 기대어 보자. 상대방의 얼굴에서 동물의 이미지를 읽는 것이다. 먹이 사슬 상 상위 서열에 해당하는 동물을 닮은 자를 기용하는 게 이롭다. 朴正熙(박정희) 前 대통령은 龍(용),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호랑이, 崔圭夏(최규하) 前 대통령과 故 鄭周永(정주영) 現代그룹 명예회장은 기린,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玄武(현무)다. 아주 강한 相이면서 동시에 老虎也 有打瞬時하기 딱 좋은 相들이다.
이들의 파워에 빌붙어 사리사욕을 챙기려는 인간 가운데는 여우상이 유독 많다. 윗사람의 비위를 잘 맞추고 기분을 읽어 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브리핑과 프리젠테이션의 達人(달인)인 이들 여우상이 순발력을 발휘해 각종 아이디어를 제시하니 늙은 권력자는 그저 푹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 여우들이 호랑이를 이용해 詐欺(사기)를 벌이면 해당 호랑이는 여간해서 눈치 채기 어렵다. 뒤늦게 땅을 쳐보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政權(정권)이 바뀌면 老虎也 有打瞬時가 곳곳에서 드러난다.호랑이를 믿고 설친 여우 대부분이 구치소 혹은 교도소라는 우리에 갇힌다. 애초부터 잘못된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여우에게 틈을 허용한 호랑이의 최후는 언제나 비극적
보통사람이 權力(권력)이나 財力(재력)의 頂點(정점)에 접근하기란 쉽지 않다. 老虎也 有打瞬時가 성행하는 이유다. 해당 파워맨 밑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이가 일종의 背任(배임) 행위를 반복하면서 최측근 또는 실세로 불리며 떵떵거릴 수 있는 세상에 발전과 의욕이란 있을 수 없다. 血緣(혈연)·學緣(학연)·地緣(지연)의 줄을 타고 승승장구하는 세력이 태평가를 노래하는 순간이 곧 老虎也 有打瞬時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리는 탐나는데 정면 승부할 자신은 없으니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며 뒷구멍을 찾아 기어드는 여우가 많다.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고 자위한다. 失業(실업)시대의 위기의식과 흉흉한 세상 속 생존 욕구에서 비롯된 개인별 무장이라고 그럴싸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한시적이라도 좋으니 떵떵거리고 싶다는 욕심은 대부분 그렇게 귀결된다.
호랑이 밑으로 들어간 여우는 나름대로 애써 따낸 지위인 만큼 老虎也 有打瞬時할 기회만 엿본다.
정직한 삶에서 의욕을 강탈하는 이러한 惡순환을 성공전략, 인생설계라는 不正直(부정직)으로 미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고위공직자이면, 아내도 마찬가지라는 寬容(관용)은 대통령 부부와 私企業(사기업) 오너 부부 정도에서 차단해야 한다. 장군·도지사·시장 등의 배우자에게 老虎也 有打瞬時를 허용한다면 사회는 百年河淸(백년하청)이다.
老虎也 有打瞬時는 사라져야 한다.
원님 덕에 나팔 부는 이들이 득세하는 사회는 곪는다.
주인을 믿고 짖는 개는 시끄럽기만 하다. 여우는 호랑이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독약이다.
여우에게 틈을 허용한 호랑이의 최후는 언제나 비극적이었다.
<차길진(paanmiso@hanmail.net)/인터넷신문 후아이엠(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