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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仙小傳_윤희[尹喜]

영원오늘 2019. 12. 27. 13:23

 

ⓒ 삽화 박영철

태어날 때 마당에서 연꽃이 피어

무상진인(無上眞人) 윤희(尹喜)는 자(字)가 공문(公文)이다. 윤희가 태어나기 전 그의 모친은 푸른 공중에서 붉은 구름(紅雲)이 내려오더니 그녀의 온몸을 휘감는 꿈을 꾸었다.

윤희가 세상에 막 태어났을 때는 정원 가운데 맨땅에서 갑자기 연(蓮)이 솟아올랐으며 막 피어난 연꽃이 특별히 맑고 아름다웠다.

그는 자라면서 옛날 고전들을 특히 좋아하였으며 천문(天文)과 길흉화복에 대한 예언서인 참위학(讖緯學) 등에 능하였다. 천문을 보고 지리를 살펴서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설사 귀신이라도 그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성년이 되자 벼슬길로 나아갔다. 주 강왕(周 康王) 때 대부(大夫)벼슬을 맡았다. 공직 중에도 집안 한 곳에 화려하지 않고 아담한 누각을 지어 천상을 관찰하고 도학(道學)을 정심히 연마하는 장소로 삼았다. 스스로 이름하여 ‘누관’(樓觀)이라 하였다.

주나라 소왕(周 昭王) 때였다. 어느 날 그가여느 때처럼 천상(天象)을 관찰하고 있는데, 문득 동방의 자기(紫氣)가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것을 보고 성인(聖人)이 서쪽으로 함곡관(函谷關)을 넘어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궁궐로 들어가 주 소왕을 알현하고 함곡관 책임자로 자청했다.

주소왕이 이를 허락하여 바로 함곡관 책임자로 부임하였다. 함곡관에 부임하고부터 윤희는 천상과 별자리(天象星相)를 더욱 열심히 살피면서 성인이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하였다.

 

천문관측으로 기인 출현을 예상

주 소왕(周 昭王) 23년 5월 어느 날, 윤희가 부하 직원 손경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

“내가 간밤에 별자리를 살펴보니 지금으로부터 90일 이내 대성인(大聖人)께서 우리들이 지키는 이곳 함곡관을 반드시 지나간다.”

“너는 내 말을 잘 명심하고 있다가, 만약 수레나 복장이 특이한 사람이 지나는 것을 보면 즉시 나에게 보고하라. 그 사람을 만나야겠다.”

또 함곡관 앞 40리길을 청소하고, 향을 사르도록 분부했으며, 매일 목욕재계하여 몸과 마음을 정히 하였다. 만에 하나 갑자기 성인이 출현하였을 때를 대비하여 영접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기다렸다.
주 소왕 23년 7월 12일, 손경이 함곡관을 지키고 있는데 특이한 광경이 눈에 띄었다. 백발노인이 커다란 귀를 어깨까지 드리우고 푸른 소(靑牛)가 끄는 하얀색 수레에 앉아 가고 있었다.

그는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 나가 수레를 세우면서, 예를 올렸다. “관윤(關尹:함곡관 책임자)의 명령이 있어서 수레를 세웠으니 노인장께서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부하를 보내 윤희에게 이 사정을 보고하였다.

이 보고를 받은 윤희는 “오늘에야 비로소 성인을 보게 되었구나!” 뛸 듯이 기뻐하면서 소리쳤다. 즉시 깨끗한 관복(官服)으로 갈아입고 서둘러 함곡관으로 향했다. 그 백발노인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여 절한 후

“원컨대 대인께서는 신령스런 수레 행차를 잠시만 머물러 주십시오.”라고 간청했다.

 

ⓒ 삽화 박영철

 

大道人을 알아보다
청수한 백발노인은 윤희의 공손한 인사를 받자 푸른 소가 끄는 하얀 수레에서 내려오면서 말했다.

“나는 무슨 대인(大人)이랄 것도 없소! 단지 빈천한 시골 노인에 불과하오. 나는 이 함곡관 동쪽에 살고 있는데, 농사짓는 땅이 반대편에 있소. 오늘 마침 밭의 마른 풀을 거두어 오려고 하는데 하필이면 왜 나를 붙잡아 두려고 하시오?”

윤희는 이 말에 머리를 조아리면서 대답했다.“대인께서는 굳이 숨기시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대성인(大聖人)께서 동쪽에서 오실 것을 오래 전부터 알고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대인께서는 여행길에 피로하실 것 같사오니 이곳에서 잠시 머물러 쉬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백발노인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대로 얘기하자면 서방 천축국(天竺國)에 득도한 고선생(古先生)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세상 사람들을 잘 제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소. 그래서 함곡관을 넘어가 그가 설법한다는 ‘도’(道)를 들으려고 하오. 그런데 당신은 왜 나를 이곳에 붙잡아 두려 하오?”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서며 윤희가 간청했다. “저는 대인의 성스러운 자태와 신선의 풍모(聖姿仙貌)를 보았습니다. 바로 천상의 지존(至尊)이신데, 하필이면 다른 사람의 설법을 들으러 가시다니요? 대인께서는 일부러 구실을 만들어 거절하지 마십시오. 부디 저의 작은 간청을 받아 주시어 이 신령스러운 수레 행차를 잠시 머물러 주십시오.”라고 다시 간절히 요청했다.

 

세 번 시험하다

백발 노인이 다시 물었다. “당신은 내가 俗人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윤희가 곧바로 대답했다. “이 달 초하루 동쪽으로부터 진기(眞氣)가 솟구치면서 이쪽으로 오는데 마치 용틀임하는 형상이었습니다. 이것은 곧 대성인(大聖人)이 서쪽으로 오는 징조였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상고 경전과 천문, 참위(讖緯)의 학문을 연구하고 익혔사온데, 사물을 예측하는데 영험이 없지 않았습니다. 오늘에야 드디어 신선의 수레가 이곳에 왕림한 것을 보았습니다. 저의 선연(仙緣)이 얕지 않은가 봅니다. 부디 대인께서는 자비로써 저를 받아들여 가르침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백발노인이 세 번이나 윤희를 시험하였으나 주도면밀한 그의 대응에 노인도 더는 구실을 붙일 수 없었다.

백발노인은 수염이 흔들릴 정도로 크게 웃으면서 “너는 나를 확실히 알고 있구나. 이제 나 또한 너를 이해하게 되었다. 너를 보니 신과 통하는 것(通神) 같은데, 응당 너도 수련하여 득도(得道)하여야 한다.”라고 했다.

윤희는 뛸 듯이 기뻤다. 곧 머리를 조아려 절하면서 “대성인께서는 성명 삼자라도 저에게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물었다.

백발노인이 수염을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나는 성씨가 ‘이’(李)이고, 자(字)는 ‘백양’(伯陽)이며 호를 ‘노담’(老聃)이라고 한다네.”

 

ⓒ 삽화 박영철

백발의 노자, 미인으로 시험해

백발노인이 자기를 소개하면서 “나는 성이 이(李)이고 호가 노담(老聃)이다.”라고 하자 윤희는 깜짝 놀랐다. 원래 이 노인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태상노군(太上老君) 이담(李聃) 즉 노자였다.

이때부터 윤희는 자기가 거처하는 관아에 노자를 모시고 공양했다. 매일 아침 노자가 세수하고 머리 빗는 것을 몸소 시봉하면서 제자로서의 예를 다 했다.

한편, 노자가 함곡관에 머무는 동안 마부 서갑(徐甲)도 같이 있었다. 노자를 따라 수레를 몬지 이미 2백년이 넘었다. 처음 서갑을 고용할 때 매일 품삯을 일백전으로 계약했다.

노자가 함곡관으로 출발할 때까지 밀린 품삯이 모두 7백 30만전이나 되었다. 서갑은 노자가 함곡관을 넘어가고 나면 그 동안 밀린 노임을 못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밀린 품삯을 달라고 했다.

노자는 서갑에게 물었다. “나는 서쪽으로 나가 대진(大秦), 천축(天竺), 안식(安息) 등 여러 나라를 가고자 하는데, 너는 계속해서 내 수레를 몰아다오. 이번 여행에서 돌아온 후 그 동안 밀린 품삯을 전부 계산해서 황금으로 주겠다. 네 생각은 어떤가?”

서갑은 그 말에 안심이 되어 그러겠다고 약속을 했다. 노자가 함곡관에 머무는 동안 서갑은 매일 들판으로 나가 노자가 타고 다니는 푸른 소를 먹였다.

이때 노자는 서갑의 마음이 어떤지 한번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길상초(吉祥草) 한 그루를 예쁜 미녀로 둔갑시켰다. 이 미녀를 서갑이 소먹이는 곳으로 보내 서갑을 유혹하도록 했다.

미녀는 서갑에게 “서역으로 노자를 따라 가지 말고 나와 함께 이곳에서 살자”고 하며 온갖 교태를 다 부렸다. 그는 그만 이 미녀의 유혹에 빠져 그만 노자와의 약속을 저버렸다.

 

태현청진부, 서갑은 백골로

서갑은 함곡관 책임자인 윤희를 방문하여 “나는 함곡관을 넘어서 노자를 따라가고 싶지 않으니 당신이 노자에게 말씀드려 밀린 노임을 받아 주십시요?”라며 정식으로 관청에 고소했다.

공무를 처리하는 윤희로서는 서갑의 고소사건을 노자에게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노자는 탄식하면서 서갑에게 한마디 했다.

“너는 나를 따른 지 이미 200여년이 넘었다. 일찍이 수명이 다해 죽어야 하는데 나는 너를 불쌍히 여겨 ‘태현청진부’(太玄淸眞符)를 주었다. 이 부적을 삼킨 후 너는 지금까지 살수 있었다.”

“서갑아! 너는 어찌 이러한 사정을 돌이켜 보지 않고, 함곡관 책임자에게 나를 고소하였는가?”라고 타일렀다. 그러나 여자에 푹 빠진 서갑은 들은 척 하지도 않았다.

노자는 서갑의 마음이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보고는 손을 들어 한번 흔들었다. 그 순간 서갑의 뱃속에서 수명을 연장시켜온 '태현청진부'가 입안에서 툭 튀어 나왔다.

입속에서 빠져나온 부적이 공중을 날아 노자의 손바닥 위에 놓였다. 서갑은 '태현청진부'를 잃자마자 곧 한 무더기 백골로 변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윤희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지 노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서갑을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심지어 자신의 돈으로 서갑의 밀린 노임을 대신 갚아 주겠다고 했다.

 

ⓒ 삽화 박영철

엎질러진 물

윤희가 백골로 변한 마부 서갑을 살려달라고 간청하므로 노자는 이를 받아들였다. 노자는 손에 들고 있던 '태현청진부'(太玄淸眞符)를 백골위에 던졌다. 백골이 서서히 살아 움직이더니 서갑 원래의 모습으로 소생하였다. 윤희는 곧 자기 돈을 가져와 서갑에게 밀린 노임 7백 30만전을 지불하였다. 서갑은 자신의 잘못을 퍼뜩 깨닫고는 노자에게 “선생님 곁에 머물면서 계속 마부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하면서 애원한다. 노자는 묵묵부답이었다.

이에 서갑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스스로의 따귀를 치면서 “저는 이미 백골이 될 운명이었는데 은혜를 입어 이렇게 살아있게 되었습니다. 원컨대 남은 생애 동안 선생님을 위해 수레를 몰겠습니다. 진심으로 보수도 원치 않습니다.”한다.

그러나 노자는 더 이상 서갑의 간청에 대해 대답을 하지 않고 외면했다.

 

도(道)를 전수하다

노자는 함곡관 책임자 윤희의 요청에 따라 백여일 동안 함곡관에 머물면서 윤희에게 현묘하고도 심오한 많은 도의 이치(道理)와 각종 신선비법을 강의했다. 윤희는 어느 날 노자에게 '삼일지도'(三一之道)에 대해 가르침을 청했다. 노자는 눈을 지긋이 감으며 설법했다.

“인체에서 양 눈썹사이, 두개골로부터 일촌 들어간 곳이 '명당'(明堂)이며, 2촌 부위가 '동방'(洞房)이며, 3촌 부위가 '니환'(泥丸)이다. 이 '니환'이 곧 인체의 상단전(上丹田)이다.

또 심장이 있는 곳의 아랫부분이 곧 중단전(中丹田)이며, 배꼽아래 3촌 부위가 '명문'(命門)이며 바로 하단전(下丹田)이다.

상단전 가운데에는 '적자'(赤子)가 있고, 중단전에는 '진인'(眞人)이 있으며, 하단전에는 '영아'(嬰兒)가 있다. 이 세 가지는 형태가 모두 어린 아이와 같으며, 크기는 3촌이고 모두 붉은 모자, 붉은 옷, 붉은 신발을 신고 있으므로 이것을 소위 '삼일'(三一)이라고 한다.

인체 가운데서 기가 변하면 정이 되고(氣變爲精), 정이 변하면 신이 되고(精變爲神), 신이 화하여 영아가 되며(神化爲嬰兒), 영아가 위로 오르면 진인이 되고(嬰兒上昇爲眞人), 진인이 다시 위로 오르면 적자가 되는데(眞人再上昇爲赤子) 이것이 곧 '진일'(眞一)이다.

네가 만약 '진일'(眞一)을 굳게 지킬 수 있다면 '진일'(眞一) 또한 너를 확실하게 수호해 줄 것이다.”

노자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설법을 시작했다. “네가 몸을 닦고 성품을 잘 기르려고(修身養性)한다면 기를 모와 신을 이루어야(結氣成神) 하는데 우선 정신을 고요히 하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정신을 고요히 할 때 모든 소리를 되돌려 인체 내부를 주시해야하며(返聽內視), 마음이 망령되게 일어나게 해서는 안되며(心不妄念), 입으로는 망령되게 말해서도 안되며(口不妄言), 몸 또한 망령되게 움직여서도 안된다(形不妄動).”  

 

ⓒ 삽화 박영철

 

도덕경의 내력

노자는 윤희에게 정신을 고요히 하는 법에 대해 강의를 계속했다. “정신을 고요히 하기 전에 우선 25일간 목욕재계해야한다.

그러면 자신의 혼백(魂魄)이 순수하게 되어 평화와 안녕을 얻게 된다.”

“그런 연후에 비로소 조용한 방에 들어가 결가부좌할 수 있다. 결가부좌하여 깊은 경지에 들어갔을 때 살아있는 뱀(生蛇)이 와서 너의 속마음을 시험하기도 하고, 신선이 현신해서 나타날 수도 있다. 이것들은 모두 네 신체 속에서 너의 신(神)이 변화해서 너를 고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결코 당황할 필요가 없다. 단지 마음을 안정시키고 뜻을 지키기만 하면 이러한 환상(幻象)은 자동적으로 사라져 버린다.”

“고요히 앉아 가부좌한지 180일이 지나면 실내에 등(燈)이 없어도 스스로 훤히 밝아지며, 280일 후에는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모든 질병이 저절로 치유된다. 1년이 지나면 온 몸에 난 흉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1,000일 후에는 형체와 정신(形神), 모두가 ‘진인’(眞人)으로 바뀌게 된다.”

노자는 윤희에게 도를 몸소 전한 후, 또 다시 5,000여자의 ‘도덕경’(道德經)을 윤희에게 전수해주었다.

윤희는 크게 기뻐하며 절을 하고 도덕경을 받았다.

그는 '도덕경'을 항상 소지하고 암송하면서 잘 받들어 수행했다. 열심히 수련하여 득도한 후, 도를 배우는 후학들에게

'도덕경'을 전해주었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세상에 유전되어 오고 있다.

 

승천하는 노자

주 소왕(周 昭王) 24년 4월 28일, 함곡관 윤희의 처소에 머물었던 노자는 그곳의 '남산'(南山)에서 하늘로 승천하였다.

이때 윤희는 노자를 차마 떠나보내지 못하고 몹시 슬퍼하였다.

노자는 윤희에게 “지나치게 슬퍼하지 마라, 천(千)일이 지난 후 촉나라 ‘청양사’(靑羊肆)에 와서 나를 찾아라” 말을 마치자

몸을 훌쩍 솟구쳤다.

공중으로 날아올라 아름다운 오색구름 위에 앉았는데 몸에서 사방으로 눈부신 금광(金光)이 뿜어져 나왔으며 천천히 하늘 높이 올라 한 점으로 사라졌다. 노자가 승천한 후에도 한참동안 하늘에는 찬란한 오색 빛이 빛나더니 서서히 사라졌다.

윤희는 노자가 떠난 후 조용히 앉아 ‘노자’가 설파한 치국수신(治國修身)과 사치를 버리고 욕심을 없애는(去奢滅欲)법을 기술하여 36장으로 편철된 책을 만들었다. 이 책은 노자가 서천(西天)으로 승천하기 전에 설법한 것을 정리했으므로 ‘서승경’(西昇經)이라 한다.

 

윤희, 드디어 득도

윤희가 그의 수련장소인 ‘초루’(草樓)에서 일체 세상일을 멀리하고 오로지 수련에만 전념한지 삼년이 지났다. 수련하여 이미 몸과 마음이 자유자재하고 더 이상 굶주림과 목마름이 없었으며, 물, 불, 추위와 더위(水火寒暑)가 자신을 침범하지 못하는 경지까지 도달했다.

수련하며 자신이 깨달은 바를 9편으로 저술하였는데 이것이 ‘관윤자’(關尹子)이다.  

 

 

 ⓒ 삽화 박영철

노자가 환생하여

노자가 승천한지 어느덧 삼년이 지나고, 윤희도 그 동안 수련에 정진하여 득도했다. 그는 노자가 승천하면서 “3년 후에 촉나라 '청양사'(靑羊肆)에서 나를 찾아라”는 말씀에 따라 촉나라 ‘청양사’를 찾아 나섰다.

노자는 승천한 후 그 다음 해에 하늘의 ‘태미궁’(太微宮)에서 분신(分身)하여 촉나라 관리인 이씨(李氏) 가문에 태어났다.

그는 환생하기 전에 우선 하늘의 동쪽을 주관하는 ‘청제’(靑帝) 수하에 있는 ‘푸른 용’(靑龍)을 ‘푸른 양’(靑羊)으로 변신시켜 인간세상으로 내려가게 했다. 이 ‘푸른 양’ 청양은 노자가 환생하여 태어난 곳을 찾아와서 아이의 주변을 지켜주었다.

이 아이는 자라면서 청양을 각별히 좋아하여 쓰다듬으면서 같이 놀았다. 어느 하루 청양이 돌연 사라져 버렸는데 아이는 울고불고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부모는 하인들을 풀어서 사방으로 찾았다.

그 중 하인 하나가 저잣거리에서 백방으로 찾던 중 어느 점포 앞에 ‘청양’이 서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가 기뻐하며 막 다가가서 청양을 붙잡으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그의 팔을 꽉 붙잡았다.

그를 붙잡은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노자’를 찾아 나선 ‘윤희’였다.

 

‘청양사’(靑羊肆)는 바로 ‘푸른 양’

원래 윤희는 촉나라로 와서 노자와 약속한 장소인 ‘청양사’(靑羊肆)를 찾기 위해 도처에 물었다.

그러나 이곳의 어느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그날도 저잣거리에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면서 ‘청양사’을 찾고 있었는데, 홀연 털 색깔이 푸른 청동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푸른 양(靑羊)이 눈에 띄었다.

직감적으로 집히는 바가 있어 벅찬 가슴을 억누르면서 “한 마리 '푸른 양(靑羊)이 가게(店肆) 앞에 서 있으니, 사부님이 말씀하신 그 ‘청양사’(靑羊肆)가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공교롭게도 이때 그 하인이 청양을 붙잡아 끌고 가려고 하므로 윤희는 그 하인을 붙잡고 물어봤다. “이 양은 어느 집에서 기르는 양이오?

양을 어디로 데리고 가려고 하는 것이오?”

그 하인은 그의 풍채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며 “우리 집 안주인이 몇 해 전에 아이를 하나 낳으셨는데, 그 아기가 이 양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런데 어제 이 양이 돌연 없어져서 아이가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자,

주인께서 급히 찾아오라고 해서 샅샅이 온 거리를 찾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제 청양을 찾았으니 집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라고 공손히 말했다.

윤희는 그 말을 듣고 이제야 ‘청양사’를 찾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하인을 따라가면 노자를 만날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찼다. 드디어 그 집 대문에 도착했다. 윤희는 그 하인에게 부탁했다.

“수고스럽지만 그대는 먼저 집으로 들어가 어린 주인에게 ‘윤희가 왔다’고 아뢰도록 하라." 

 

 

 

울던 아기가 신이 나서 춤을

윤희가 하인을 앞세우고 노자가 환생한 집 앞에 도착했다. 대문 앞에 이르러 하인에게 윤희가 왔다고 어린 주인에게 아뢰라 하였다.

이 말에 하인이 어리둥절하여 혼자 중얼거렸다.

“우리 어린 주인은 이제 두 살에 불과한 애기인데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하인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린 주인에게 “윤희라는 분이 찾아 왔습니다.”라고 아뢰었다.

그러자 침상에 누워 울던 그 아기가 이 말을 듣자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늙은이처럼 점잔을 피우면서 그 하인에게 “윤희를 빨리 들게 하라.”고 분부했다.
집에 들어온 윤희가 그 아기 앞에 무릎 꿇고 절을 하자 신기한 변화가 연이어서 일어났다.

집 전체가 홀연 크고 넓은 궁전처럼 변하고 아이가 있던 침상에는 오색영롱한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더니 연꽃 보좌가 생겨났다.

 

아기가 태상노군으로 변해

그때 그 아기는 신장이 몇 길로 커지더니 몸 전체에서 금광(金光)이 찬란히 빛나는 태상노군(太上老君)의 법신(法身)으로 변했다.

법신 뒤에는 빛이 수레바퀴 빗살처럼 퍼져나가고, 머리에는 칠보로 빛나는 칠요관(七曜冠)을 쓰고 있었다. 몸에는 아홉 가지 색깔 비단으로 된 소매 없는 배자피(九色離羅?)를 걸치고 연꽃으로 된 보좌(蓮花寶座) 위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그 집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거대한 변화를 보자 그저 망연히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윤희는 곧 땅에 엎드려 절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높으신 얼굴(天顔) 오랜만에 뵙습니다. 3년이 지나고 이제서야 받들어 뵈옵니다. 성스러운 스승님(聖師)께서 승천하시고 이곳으로 다시 환생하셨는지 몰랐습니다. 승천과 환생 과정에서 어려움 없이 평안하셨는지 궁금합니다.”라며 머리를 조아렸다.

태상노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는 너와 이별한 후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근래 삼년 동안 수도한 경과는 어떠하였는가?”

 

윤희가 신선(神仙)임을 인가해 주어

윤희가 다시 머리를 조아리면서 “제자, 스승님께 선도의 오묘한 비법요지를 전수받은 후 감히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이미 능히 ‘도’의 미묘한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태상노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너도 알겠지만, 네가 곧 수도하여 성공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너는 몸을 닦고 연마(修身煉氣)한 지 삼년이다. 이미 진실로 미묘한 경지(眞妙之境)에 도달하였다.

그 증표로 네 얼굴에서 신광(神光)이 나오고 있다. 내가 보건대 너는 이미 범속을 넘어 성인의 경지(超凡入聖)에 들어 신선을 이루었다.”

그가 말을 마치고 잠시 눈썹을 드리우고 있는데, 여러 하늘의 임금들(諸天帝王), 시방신왕(十方神王)과 기타 수많은 신선들이 분분히 수레를 타고 공중에서 내려왔다. 각자 향기로운 꽃을 들고, 태상노군이 앉아 있는 곳으로 와서 절을 하고 명령을 기다렸다.

태상노군은 많은 신선들 앞에서 “윤희의 호를 ‘문시’(文始) 선생이라 하고, ‘무상진인’(無上眞人)이라고 부른다.”고 선포했다. 

 

 

ⓒ 삽화/박영철

 

살던 집과 함께 모두 하늘로 솟아
태상노군 노자로부터 윤희는 '문시'(文始)선생, '무상진인'(無上眞人)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리고 윤희에게 '자주색 부용관'(紫芙蓉冠)과 잠자리 날개 같은 푸른 깃의 옷(飛靑羽衫),

황금색 비단으로 된 허리 묵는 끈과 아홉 가지 색깔의 부절을 내리고, 옥동(玉童), 옥녀(玉女) 각각 5,000명씩을 내린다.

이십사천왕 위에 위치하여 팔만명의 선인들을 거느리도록 하였다.
이때부터 윤희는 바야흐로 허공을 맘대로 비행할 수 있었으며, 태상노군이 타고 다니는 용이 끄는 수레(龍駕)를 뒤따라

위아래 시방세계어디든 자유자재로 다닐 수 있었다.
그런 연후에 태상노군이 자기가 잠시 환생했던 '이씨 부부'에게 '원양경'(元陽經)을 설파하고 나자,

이 집안 노인 젊은이 할 것 없이 모두 200여명이 집과 함께 공중으로 솟아오르더니 하늘로 날아올라 서서히 사라졌다.
지금도 사천성 성도(成都)에는 '청양궁'(靑羊宮)과 노자가 잠시 환생했던 유적지가 남아있다.

노자를 따라 시방세계를 유람
태상노군은 윤희에게 '너는 옛날 나를 따라 멀리 여행하고 싶어 했는데,

이제 수련하여 공을 이루었으므로 나와 함께 팔방으로 두루 유람이나 하자"고 했다.
태상노군은 오색신룡(五色神龍)이 끄는 수레를 타고, 윤희에게도 '팔경운여'(八景雲輿)라는 수레를 하사했다.

태상노군의 수레 앞에는 신병천장 12지대가 각종 기치를 들고 앞장서고, 뒤편에는 구만명의 비선(飛仙)이 수행했다.

그 뒤를 이어서 윤희와 사천왕(四天王)이 따랐다.
그들은 먼저 동쪽 태양이 떠오르는 곳인 '양곡'(暘谷)으로 가서 동해의 푸른 파도를 보았다.

이어 남쪽 풍산(風山)을 거쳐 청구(靑丘)에 올라 자부(紫府)를 방문하였다.
서쪽으로 귀대(龜臺)에 올라 놀다가 칠보국(七寶國)으로 갔다. 북쪽의 공동산을 거쳐 현구(玄丘)에 올랐다.

또 곤륜산에 올라 '현포'(玄圃), '요대'(瑤臺)에서 놀았다.
사방을 두루 둘러보고 이윽고 구천(九天)으로 올랐다. 구천에서 제천제군(諸天帝君)의 융숭한 영접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태상노군이 윤희를 데리고 '상청경'의 '예주궁'(蘂珠宮)으로 올라가 '옥신태상대도군'(玉宸太上大道君)을 만난 것으로

여정이 끝났다고 한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그곳을 주재하는 신선들이 보배롭고 진기한 수 많은 예물을 그들에게 주었다.

다섯 노인의 유적
윤희가 머물면서 수도했다는 '초루'(草樓)는 종남산(終南山) 북쪽 기슭에 있다. 주 목왕(周 穆王) 때 목왕은 윤희의 기이한 자취가 남겨진 초루를 직접 와서 보았다. 이곳에 도관과 사당을 세우고 무상진인(無上眞人) 윤희를 기념하여 제사를 지냈다.
한편, 주나라 말기 낙양 근처에 있는 낙중(洛中) 경실산(景室山)에 황색 머리털의 다섯 노인이 은거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잠자리 날개처럼 가벼운 옷을 입고 푸른 죽장을 들고 다녔다.
이 노인들은 경서(經書)를 늘 썼기 때문에 이들 곁에는 항상 두 사람의 신인(神人)이 먹물을 담은 황금 호로병을 들고 서 있어야 했다.
세월이 제법 지나고서야 이 노인들의 정체가 알려졌는데,

이들은 태상노군 노자, 서악(西岳)의 윤희, 북악(北岳)의 황인(皇人), 동악(東岳)의 전금(展禽), 남악(南岳)의 광속(匡續)이었다.
주(周) 난왕 9년(前306년)에 다섯 노인들이 서쪽으로 산관(散關)을 나가 사막을 거쳐 곤륜산에 올랐다가

다시 하늘나라 '자미궁'(紫微宮)으로 올랐다.

진 소왕(秦 昭王)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나서 그 다섯 신선들을 만나지 못한 것을 몹시 유감스럽게 여겼다.
그래서 그들 다섯 노인들이 지나간 곳에다 기념으로 성읍과 역참 등을 건립하였다.

지금도 그곳에는 '노인들이 멈추었던' 노정역(老停驛), 윤희를 기념하기위해 '윤희성'(尹喜城) 등 옛날 고적들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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