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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버멕틴. 기적의 약인가?

영원오늘 2020. 2. 10. 17:20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윌리엄 C. 켐벨(William Cecil Campbell) / 아일랜드

오무라 사토시(大村智) / 일본

투유유(屠呦呦) / 중국

 

 

 

The Nobel Assembly at Karolinska Institutet has today decided to award the 2015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 with one half jointly to William C. Campbell and Satoshi Ōmura for their discoveries concerning a novel therapy against infections caused by roundworm parasites and the other half to Youyou Tu for her discoveries concerning a novel therapy against Malaria.

 

카롤린스카 의과대학의 노벨 총회는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로 회충 감염 치료법 발견에 대한 공로를 인정하여 윌리엄 켐벨과 사토시 오무라의 공동 수상을, 그리고 말라리아 치료법 발견에 대한 공로를 인정하여 투유유의 수상을 오늘 결정하였습니다.  

 

-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발표문 -

 

 

 

스위스의 화학자 파울 헤르만 뮐러(Paul Hermann Muller)가 강력한 살충제인 DDT를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이후 60여년의 시간이 지난 2015년. 정확히는 67년만에 다시 기생충 관련 연구에 노벨 생리의학상이 수여되었습니다. 윌리엄 켐벨과 오무라 사토시는 회충 감염증 치료에 대한 공로를, 투유유는 말라리아 치료에 대한 공로로 인해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것입니다. 오늘 포스팅의 주제는 바로 윌리엄 켐벨과 오무라 사토시 두 분께 노벨상의 영광을 안긴 기적의 약물 이버멕틴(Ivermectin)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기적의 약"이라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약품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흔히 알려진 기적의 약이라면 진통제부터 심혈관계 질환 예방에까지 쓰이는 아스피린이나, 의료의 판도를 바꿔 놓은 첫 번째 항생제인 페니실린 정도가 있겠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기적의 약이 하나 있다. 바로 이버멕틴(Ivermectin)이다. 범용성이나 안전성, 기여도 면에서 다른 약품과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다. 성분명으로 이야기 하면 다소 낯설게 들리겠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심장사상충 예방약의 대부분이 이 약품으로 만들어져있다. 

그리고 이 약품은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윌리엄 캠벨과 오무라 사토시가 발견하고 개발한 약품이다. 노벨상을 수상할 정도라니, 이버멕틴은 얼마나 대단한 약일까?

이버멕틴은 1970년대 국제적인 협력 프로그램의 일환인 미국 제약 회사 머크와 일본의 기타사토 연구소가 새로운 항생 물질을 찾는 연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기타사토 연구소는 토양에서 미생물들을 분리해 약으로 사용 가능한 물질이 있는지 일차 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토양 샘플을 추출했는데, 한 골프장에서 추출한 딱 하나의 토양 샘플에서 이버멕틴의 기반 물질인 아버멕틴(Avermectin)을 생산하는 균류(Streptomyces avermitilis)가 발견되었다. 이후 다년간의 탐색에도 불구하고 일본 골프장에서 발견된 샘플이 유일한 사례로 남아 있다. 즉,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발견된 물질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에서 구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 아버멕틴 발견과 효과성 확인을 주도한 것이 바로 오무라였다.

일본의 이 샘플은 미국 머크에 넘겨져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이버멕틴으로 정제되었다. 이 정제 과정을 주도한 것이 캠벨이었다. 1981년에는 동물용으로 상용화되었는데,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한 효과를 보인다는 것이 알려졌다. 초기 기대했던 회충, 편충, 구충 등의 장내 기생충 뿐 아니라 사상충 등 다양한 체내 기생충, 그리고 무엇보다 진드기나 이, 구더기 같은 체외 기생충에까지 강력한 효과를 보였다. 기존의 약품 중 이렇게 광범위한 효과를 보이는 것은, 동시에 이렇게 안전한 약품은 없었다. 

 

이버멕틴이 기적의 약으로 손꼽히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약품 저항성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버멕틴이 더 광범위하게, 혹은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축산업계에서는 종종 이버멕틴 저항성 기생충이 등장하곤 했지만 인간에게는 사상충 치료제로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독으로 쓰여 왔음에도 아무런 저항성이 발견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항생제나 감염성 질환 치료제가 출시 후 몇 년 안에 저항성이 등장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만큼 아직 우리가 이버멕틴이 우리 체내에서, 그리고 기생충에게 어떻게 작용하며, 어떤 방식으로 저항성을 획득할 수 있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도 된다.

 

- "골프장에서 발견된 기적의 약, 인류를 구하다" 중에서 -
 
 
 
오무라 사토시 교수가 골프장 토양 샘플에서 채취한 어떤 방선균이 아버멕틴(Avermectin)이라는 강력한 항기생충성 항생물질을 생성한다는 것을 발견했고, 캠벨 연구원이 이 샘플을 가공해 아버멕틴의 이중결합 하나를 단일결합으로 환원시켜 독성을 완화한 이버멕틴(Ivermectin)을 합성했습니다. 그리고 동물용 의약품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이버멕틴은 수십억마리의 가축과 반려동물들의 생명을 구해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도 강력하고 확실한 효과로 동물의약품 업계에서 20여년 동안 수퍼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은 이버멕틴은 축산업계에서만 연간 10억 달러가 넘는 판매고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버멕틴의 구조식
Systematic (IUPAC) name : 22,23 - dihydroavermectin B1a + 22,23 - dihydroavermectin B1b
 
하지만 이버멕틴의 진짜 위력은 사람에게 적용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전세계에서 약 1,800만명이 회선사상충이란 기생충에 감염되어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회선사상충은 지독한 가려움과 심각한 시력 손상을 야기하는 기생충으로 사람의 몸에 침투한 회선사상충 성충은 체내에서 10년이상 생존하며 매일 1,000마리가 넘는 자충을 추가로 만들어 냅니다. 이 자충들은 혈관을 통해 신체를 돌며 지독한 괴로움을 안겨주고 끝내는 각막을 손상시켜 시력을 잃게 만듭니다. 특히 회선사상충이 극심하게 유행한 서아프리카 지역은 전체 인구의 40%가 실명을 하고 미칠듯한 가려움에 몸부림치는 생지옥이었다고 합니다. 
 
1987년, 드디어 이버멕틴을 사람에게 사용해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버멕틴 특허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제약회사 머크(Merck Sharp & Dohme, MSD)에서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이버멕틴을 전량 무상으로 공급하기로 결정했고 지금까지 약 92억 달러에 해당하는 이버멕틴이 무상으로 공급되었습니다. 그렇게 이 약을 받아든 20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바로 다음날 그 지옥과도 같은 가려움이 싹 사라지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서아프리카의 회선사상충 치료 프로그램은 2002년 종료 되었습니다. 이버멕틴의 위력 앞에 회선사상충이 완전 박멸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The Gift of Sight
 
The Gift of Sight, 시력이라는 선물. 
미국 MSD 본사에 있는 동상입니다. 이버멕틴 무상 기부를 통해 수십억명의 사람들에게 시력을 되찾아준 머크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이버멕틴의 효과는 단지 사상충 박멸에만 그치지 않았고 기대하지 않았던 다른 효과까지 가져왔습니다. 원래 목표였던 사상충 뿐만 아니라 장내 기생충인 회충, 편충 등등과 체외 기생충인 이, 벼룩, 옴 등등에게도 강력한 효과를 보였습니다. 덕분에 사상충 치료 때문에 투약을 받았던 사람들이 다른 기생충에서도 자유로워져 더 건강한 생활을 보장 받게 되었고, 이러한 장내 기생충과 체외 기생충의 감소는 아동들의 성장 발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사상충뿐 아니라 다양한 기생충 감염증들이 너무도 흔했지만 단 하나의 치료제로 다양한 기생충들을 한꺼번에 완치할 수 있게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버멕틴의 도움을 받은 나라 중의 하나입니다. 바로 코끼리다리병이란 질병을 일으키며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세계에서 1억명이 넘는 사람을 괴롭히던 림프사상충이 이버멕틴의 위력 앞에서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세계보건기구는 2007년 한국에서 림프사상충이 완전히 박멸되었음을 공식으로 인정했습니다.
 
림프사상충증 환자들
 
그리고 저도 이 이버멕틴에게 감사를 해야하는 입장입니다. 외부기생충 감염으로 지독한 피부병에 걸려 반쯤 죽어가던 천둥이를 살려준 것이 바로 이 이버멕틴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시절 피부병으로 몰골이 말이 아니던 천둥이
 
사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많은 사람들이 "하트가드"로 대표되는 심장사상충 예방약으로 인해 많은 딜레마를 겪고 있습니다. 심장사상충은 걱정되는데.. 하트가드가 엄청나게 독한 약이라고 하니.. 간이 박살난다부터 해서 개가 오줌을 싸니 거기 있는 풀들이 다 말라 죽었다는 도시전설까지.. 과연 이걸 먹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놓고 고민하는 분들을 주변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하트가드의 주 성분이 이버멕틴입니다. 사실 수의학쪽에 아무런 지식도 없는 제가 가타부타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만 잉여력으로 공부한 제 잡지식에 의하면 하트가드의 위험성은 크게 걱정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버멕틴의 작용기전은 기생충의 신경신호전달에 관여하는 말초신경계의 글루탐산 개폐 염소채널에, 그리고 중추신경계의 GABA 수용체에 각각 작용하여 기생충의 마비를 일으킴으로써 체내 기생충을 억제하는 효과를 보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쉬운말로 하면 기생충의 신경을 마비시켜 죽여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기생충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고등생물인 포유동물의 경우에는, 말초신경계의 전달 물질이 글루탐산이 아닌 아세틸콜린으로 이버멕틴의 영향을 받지 않고, 중추신경계에서는 뇌-혈관 장벽에 막혀 GABA 수용체에게 영향을 줄 수 없다고 합니다. 일부 주둥이가 긴 품종(대표적으로 콜리)은 MDR1이란 유전자에 결손이 있어서 이버멕틴이 중추신경계를 자극하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할 수 있어서 이버멕틴 대신 밀베마이신 옥심(Milbemycin Oxime)이란 약을 써야 한다고 합니다. 근데 문제는 이게 상당히 비쌉니다. 그러니까 콜리나 그레이하운드를 안 키우면 됩니다.
 
이론상 그렇다고는 해도 실제로는 좀 위험하지 않겠느냐라고 생각을 하는데 좀더 이해하기 쉽게 용량을 가지고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일반적으로 개에게 이버멕틴을 투여하는 최대 허용한계치는 600mcg/kg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트가드를 기준으로 보면 몸무게 22kg용으로 나온 하트가드 그린에 포함된 이버멕틴 용량은 136mcg. 환산하면 약 6.2mcg/kg 입니다. 즉, 하트가드를 한번에 96개 정도를 먹었을때 위험수치에 이른다는 계산입니다. (참고로 mcg는 마이크로그램, 그러니까 백만분의 일 그램을 뜻합니다)
 
하트가드나 그 부류의 유사 카피약들은 심장사상충 예방을 위해서 쓰이는 약이고, 실제로 각종 외부기생충 치료 용도로 주로 사용하는 이버멕틴 제제는 메리얼제약에서 이보멕(IVOMEC®)이란 이름으로 상품 등록한 이버멕틴 1% 용액 주사제 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돼지 옴이나 소 벼룩 같은 기생충을 구제하기 위해서 축산 농가에서 주로 쓰이는데 바로 이 녀석이 천둥이를 살려준 은인입니다. 
※ 사람에게 사용되는 이버멕틴 제제는 멕티잔(MECTIZAN®)과 스트로멕톨(STROMECTOL®)이라는 이름으로 상표 등록되어 있습니다.
 
(한때 피부병으로 고생해본 견주로서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분들께 정보가 될까 싶어 참고 삼아 말씀드립니다. 이보멕 주사제 1ml에는 10mg의 이버멕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로 사용하는 mcg단위로 환산하면 이보멕 0.01ml 당 이버멕틴 100mcg 입니다.)     
 
이보멕 주사 세방 맞고 깨끗해진 천둥이
 
이버멕틴 이야기를 하다가 또 개 이야기로 빠져버렸습니다. 이야기가 이상한 데로 빠져버려서 마무리가 짓기가 좀 이상한데 뭐 오늘 포스팅은 여기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