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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풍 양성자가 역압전 효과 일으켜
지진은 단층면을 따라 순간적인 지층의 움직임으로 발생하며, 이때 지층에 쌓여 있던 응력 에너지가 방출되어 땅이 흔들리는 자연 현상이다. 이러한 지진은 주로 판의 경계에서 무작위로 발생한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일부 대규모 지진에서 유사한 발생 패턴이 발견되기도 했다. 무작위가 아닌, 그룹으로 발생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것은 전 세계적인 지진을 유발하는 특별한 원인이 있음을 시사한다. 많은 과학자가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연구했지만, 아직 설득력 있는 이론은 나오지 않았다.
지난 13일 네이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된 연구 결과는 지진을 유발하는 원인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이 논문은 오랜 기간 가설로 제기되었던 태양 활동과 대규모 지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것이다.
1995년 발사된 SOHO 탐사선은 지금까지 태양 활동을 관찰하고 있다. ⓒ NASA / ESA
이탈리아 ‘국립 지구물리학 및 화산학 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Geophysics and Volcanology)’의 연구 책임자인 주세페 드 나탈레(Giuseppe De Natale)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지난 20년간 지진과 태양 활동에 관한 데이터를 비교해서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확인했다.
이번 연구에 대해 드 나탈레 박사는 “전 세계의 대규모 지진은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태양 활동이 지진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설을 테스트했다”라고 밝혔다.
지진과 태양풍의 연관 가능성 제시
연구팀은 미항공우주국과 유럽우주국이 공동 개발한 SOHO(Solar and Heliospheric Observatory) 탐사선의 데이터와 국제지진센터(ISC)가 발행하는 ‘ISC-GEM 지진 카탈로그’를 활용했다. 태양 플레어에서 나오는 양성자를 측정하여 태양풍이 지구를 강타할 시점에 지진이 얼마나 발생했는지를 확인한 것이다.
비교 분석에서는 태양풍이 거세지면 지구에 더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양에서 나온 양성자 흐름이 절정에 도달한 직후 24시간 동안 규모 5.6 이상의 지진 발생이 급증했다.
드 나탈레 박사는 “새로운 가설의 통계적 검증은 매우 중요하다. 연구진이 이것을 우연히 관찰했을 확률은 매우 낮아서 10만 분의 1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표시된 점들은 ISC-GEM 카탈로그에 나온 지진 진원지. ⓒ ISC
태양은 지속적으로 에너지와 입자를 방출하지만, 때때로 강력한 태양 플레어가 발생해서 엄청난 양의 하전 입자를 쏟아내기도 한다. 그런 입자가 지구에 도달하면 위성 통신을 방해하거나, 심할 때는 전력망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연구진은 태양 양성자 흐름과 지진 사이의 상관관계를 발견한 직후, ‘역압전 효과’라는 메커니즘에 의해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전 실험들은 지구 지각에 흔한 암석인 석영을 압축하면 ‘압전 효과(piezoelectric effect)’라고 알려진 과정을 통해 전기 펄스가 생성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반대로 전기 펄스가 이미 파열 직전인 단층 구조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지진을 유발하는 것도 가능하다.
2017년에 멕시코 대지진 당시에 발생한 지진광. ⓒ David Bressan
과거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면 지진광(Earthquake light)이라 불리는 신비한 현상이 관측되기도 했다.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거나 번개가 치고, 전자기파가 발생하기도 한다. 때론 전리층에 오로라처럼 발광 현상이 일어난다. 일부 과학자는 이런 현상이 지진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하지만, 증거가 부족해서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이번 연구는 기존 지진광 가설의 인과 관계를 뒤집어 버렸다. 태양풍이 지구 자기장에 부딪혀 전자기파와 지진광이 발생하고, 뒤이어 지구 전체에 지진을 유발한다는 시각이다. 이러한 전류에 의해 생성된 전기 펄스는 지각의 석영을 변형시켜 결국 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새로운 가설에 의견 엇갈려
오래전부터 태양 활동을 지진과 연관 지으려는 과학자들의 시도가 있었다. 1853년 루돌프 울프(Rudolf Wolf)라는 스위스 천문학자가 태양 흑점 활동과 지진의 상관관계를 밝히려고 했다. 최근에도 여러 실험이 있었지만, 모두 제대로 된 통계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새로운 가설에 대해 노스웨스트 연구소의 제레미 토머스(Jeremy Thomas) 박사는 “이번 논문에서 보여준 결과만으로 태양 활동과 지진 사이에 물리적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아직 완벽하게 증명하진 못한 것 같다”라고 천문학매체 ‘아스트로노미(Astronomy Magazine)’와의 인터뷰에서 비평했다.
태양 양성자가 지진을 유발한다는 주장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과학자도 의외로 많다. 일부에서는 데이터만으로 통계 분석이 수행되는 것을 경계하는 반면, 데이터가 어떻게 선택되었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태양이 지진을 유발할 수 있는지 확실히 알려면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심창섭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