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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불 칠지좌법

영원오늘 2021. 1. 1. 00:35

비로자나불 칠지좌법

 

1. 두 발을 올려 가부좌(跏趺坐: 속칭 쌍반雙盤이라 한다)를 취합니다. 

   이런 자세를 취하기 어려우면 금강좌(金剛坐: 오른발을 왼쪽 허벅지 위에 놓음)

   여의좌(如意坐: 왼발을 오른쪽 허벅지 위에 놓음)를 취합니다.

 

2. 두 손은 삼매인(三昧印)을 맺습니다

    (오른 손바닥이 위로 보도록 하여 왼쪽 손바닥 위에 놓고 두 엄지손가락을 가볍게 맞댑니다).

 

3. 척추를 마치 엽전을 한 줄에 꿰어 쌓아 놓은 듯 곧게 세웁니다

   (신체가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처음엔 곧게 세우려고 무리하지 말고 자연스러움에 맡깁니다. 

    수련을 오래 해나가다 보면 자연히 곧게 됩니다).

 

4. 두 어깨를 폅니다(구부러져서도 안 되고, 일부러 힘을 주어 바짝 당겨서도 안 됩니다).

 

5. 머리를 바로 하고 턱을 당깁니다

    (후뇌를 약간 뒤로 하고 턱을 안으로 당겨 목 좌우에 있는 두 동맥에 가볍게 압박이 가도록 합니다).

 

6. 혀끝을 위쪽 이 뒤 쪽  침샘에 가볍게 붙입니다.

 

7. 두 눈은 반쯤 감습니다

  (두 눈을 반은 뜨고 반은 감은 모습입니다. 

   만약 눈을 뜨는 것이 정()에 들기 쉽다면 눈을 뜨되 활짝 떠서는 안 되며 약간 거두어 모으는 듯해야 합니다. 

  눈을 감는 것이 쉽게 정에 든다면 눈을 감되  졸음-혼수상태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주의사항

 

1) 정좌 자세를 할 때는 허리띠나 넥타이 등 몸에 압박을 가하는 것은 모두 풀어

   신체를 이완시켜 완전한 휴식이 되도록 합니다.

 

2) 기후가 서늘하거나 차가울 때는 양 무릎과 목 뒤쪽을 덮어 따뜻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풍한(風寒)이 침입하여 약물로도 치료가 힘들게 됩니다. 이 점을 특히 주의해야 합니다.

 

3) 초보 수련자는 공기와 광선의 조절에 주의해야 합니다.

   광선이 너무 강하면 산란해지기 쉽고 너무 어두우면 혼침(昏沈)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앉은 자리 앞 1미터 정도에서 공기가 서로 통할 수 있도록 합니다.

 

4) 배가 너무 부를 때는 정좌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정신없이 잠이 쏟아질 때는 억지로 정좌를 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충분한 수면을 취한 뒤 다시 정좌해야 쉽게 정정(靜定)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5) 초보 수련자나 오랜 수련자나 반드시 방석을 깔고 앉되 엉덩이를 23(6.69.9cm) 정도 높여주어야 합니다. 

   초보 수련자는 두 다리가 유연하지 않고 딱딱하기 때문에 45(13.316.5cm) 정도까지 높였다가 점차 낮추도록 합니다. 만약 엉덩이 부분을 높이지 않으면 신체 중심이 뒤로 쏠려 기맥이 막히기 때문에 노력해도 소기의 성과를 얻기 어렵습니다.

 

6) 정좌를 그만 둘 때는 두 손으로 얼굴과 다리를 문질러 기혈(氣血)이 활동하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적당히 운동을 해 주어야 합니다.

 

7) 정좌할 때는 얼굴에 미소를 띠어 얼굴 부위 신경을 이완시키고 자애로운 얼굴 모습을 짓습니다. 

   그러면 마음도 자연히 느긋해집니다. 

   절대로 딱딱하고 메마른 표정을 지어서 엄격하고 차가운 모습으로 변해가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8) 정좌를 처음 익힐 때는 한 번의 정좌시간을 짧게 하여 여러 차례 합니다. 

    처음 익힐 때 억지로 오래 앉아 있으면 오히려 싫증이 날 수 있으니 매번의 시간을 짧게 하여

    하루 중 여러 번 하는 것만 못합니다.

 

정좌를 처음 익히기 시작할 때는 자세에 대단히 주의해야 합니다. 

 

만약 나쁜 자세가 점점 오래되어 습관이 되면 바르게 고치기 힘들며, 심리와 생리에도 영향을 미쳐 병을 이루기 쉽습니다. 이 칠지좌법을 반드시 이와 같이 규정하는 까닭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으며 심리와 생리의 자연법칙에도 대단히 부합하는 것이므로 규정을 착실히 지켜야 합니다.

 

인간의 생명은 정신의 왕성함에 의존합니다. 따라서 정신을 배양해야 건강한 생명을 이룰 수 있습니다. 정신을 배양하는 방법은 먼저 마음에 항상 망념(妄念: 미혹한 마음, 미망한 잡념, 근거도 없이 일어나는 진실하지 않는 생각, 범부가 색 ·  ·  ·  ·  ·  6경에 탐착하는 것을 말함-역주)이 없도록 비우고 몸이 편안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이 비어야 비로소 생리기능이 왕성하게 이어져갑니다. 생리기능이 왕성하게 이어지는 한편 그 소모는 줄어든다면 자연히 평소보다 정신이 충만한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은 기혈(氣血)의 왕성과 쇠약에 따라 넘쳐흐르거나 허약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만약 사려(思慮)를 과도하게 하여 피로해지면 기혈도 점차 쇠약해집니다. 그러므로 몸을 편안히 하면 수명을 다할 수 있고, 사려를 끊고 욕망을 버리면 정신을 배양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신체가 안정 상태를 유지하면 생명은 뿌리가 생겨나고 사려를 끊고 욕망을 버리면 정신이 배양되는 것입니다.

 

고대 의학은 인간의 생기가 기화(氣化)에 의해 충실해지고 기()의 운행은 맥()의 노선을 따라 돈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맥은 혈관이나 신경이 아니라 체내에서 기기(氣機: 기의 운동-역주)가 운행하는 하나의 규칙적인 샘 길[腺路]입니다. 기맥이론은 상당히 미묘한 것이라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기맥이론에 관하여는 남회근 선생 저 정좌수도강의를 참고하기바랍니다-역주).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 말하는 기경팔맥(奇經八脈)은 고대 도가의 설을 바탕으로 발전되어 나온 것입니다. 

도가는 인체 속에 있는 삼맥인 임맥(任脈) · 독맥(督脈) · 충맥(衝脈)이 양생을 하고 신선도를 닦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티베트의 밀교에서는 인체에 삼맥사륜(三脈四輪)이 있다고 보는데, 이것이 즉신성불(卽身成佛: 범부라 하더라도 현세에 깨달음을 열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 현재 이 육신 그대로 깨달음을 여는 것-역주)의 관건이라 봅니다.

 

밀교 교전에는 심심내의근본송(甚深內義根本頌)이란 것이 한 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기맥학설들은 황제내경이나 황정경(黃庭經) 등과 비교하면 저마다 독창적인 점이 있습니다.

 

티베트 밀교와 도가는 비록 모두 삼맥의 수련을 주장하지만 도가는 몸의 앞뒤에 위치한 임맥과 독맥을 위주로 합니다. 그런데 티베트 밀교는 좌맥과 우맥을 위주로 합니다. 수련법은 이처럼 다르지만 둘 다 중맥(中脈, 충맥衝脈이라고도 함)을 중심축으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선종의 좌선 자세는 비로자나불 칠지좌법을 채택한 것으로 비록 기맥을 중시한 명백한 표현은 없지만 좌선의 기능과 효과 면에서 사실상 기맥의 문제가 이미 내포되어 있습니다.

 

두 다리를 틀고 앉는 자세인 가부좌는 기()가 위로 뜨지 않도록 해 주며, 또 기()를 단전에 가라앉혀 기식(氣息)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이렇게 되면 마음이 고요해지며 기()도 흐트러지지 않아 점차 여러 기맥을 따라 움직여 중맥으로 되돌아갑니다. ()가 되돌아가 중맥에 이르고 심장맥이 풀리고 열리게[脈解心開] 되었을 때야 비로소 망념이 일어나지 않으며 몸과 마음을 모두 잊을 수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비로소 대정[大寂]의 경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기맥이 안정되어 편안하지 않으면서 정()에 들어갈 수 있는 일이란 절대 없습니다.

 

보통사람이라도 몸이 건강할 때는 마음이 유쾌하고 머리에서의 사려도 적어 병이 있을 때와는 전혀 다릅니다. ()을 닦는 사람이 처음으로 정()의 경계에 들어 마음이 공함[]을 보기 시작하면 반드시 몸이 가뿐하고[輕安] 유쾌한 감각을 느끼는데 그 맑고 상쾌한 맛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심리와 생리가 서로 영향을 주는, 일체양면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체의 신경맥락은 중추신경을 중심으로 좌우로 분포되어 있으며 서로 반대로 교차되어 있습니다. 정좌할 때 두 엄지손가락을 가볍게 대어 둥근 모양이 되게 하는 것도 체내 좌우의 기혈이 서로 교류 작용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인체 내부의 오장육부[臟腑]와 기관은 모두 척추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만약 정좌할 때 척추가 굽어 바르지 못한 상태라면 오장도 자연히 편안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어 질병이 생기기 쉽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척추를 곧게 세워 오장육부의 기맥을 편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갈비뼈가 압박을 받으면 폐가 수축될 수 있으므로 어깨가 평평하고 가슴이 펴지도록 하여 폐활량이 충분히 자유롭게 확장될 수 있게 합니다.

 

우리의 후뇌는 사려하고 기억하는 중추기관이며 목의 양쪽에는 동맥 노선이 있습니다. 동맥의 활동을 통해 피가 뇌에 공급됨으로써 뇌신경의 활동이 증가합니다. 정좌할 때 후뇌를 약간 뒤로 하고 아래턱을 약간 당겨 양쪽 동맥을 가볍게 압박해 기혈의 운행을 완화시켜 주면 사려가 감소되어 쉽게 정()의 상태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위아래 치근(齒根)의 침샘에서는 진액을 분비해 위장의 소화를 도우므로 혀끝을 입천장의 침샘에 붙여 자연스럽게 침이 흐르도록 합니다.

 

마음과 눈은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이게 하는 관건입니다. 

사람은 물질색상을 보면 마음이 움직이는데(물론 소리를 들어도 마음이 산란해집니다), 이것은 물질색상이 먼저 눈의 기능을 통해서 발생시키는 영향 때문입니다. 마음이 산란하면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교만하면서도 심사가 산란하면 두 눈을 항시 위로 치뜨게 됩니다. 음침하고 생각이 많은 사람은 눈을 아래로 깔며 사악하고 음험한 사람의 눈은 항시 좌우 양쪽을 향해 곁눈질을 합니다. 정좌할 때 시선을 거두어 눈을 반쯤 감는 상태를 취하면 산란한 마음을 집중시켜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정좌할 때는 옷을 느슨하게 하여 몸을 편안히 해야 하며 항시 미소를 지어 정신을 유쾌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정좌하여 정()을 닦는 데 중요한 요건들입니다.

그러므로 좌선의 자세는 기맥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비록 좌선에서는 기맥의 조화를 전문적으로 강조하지는 않지만 그 속에 이미 기맥의 조화에 관한 문제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만약 기맥을 닦는 데 매달린다면 신견(身見: 자기와 자기의 소유물이 있다고 생각하는 견해. 몸속에 실체로서의 아가 있다고 하는 잘못된 견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주체가 있다고 하는 생각. 아견我見과 같음-역주)을 발생시키기 쉽고 더욱이 개인의 아집(我執: 아견과 같음, 즉 아트만이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얽매임. 자기의 견해에 얽매여 떠나지 않는 것.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얽매임-역주)을 강하게 할 수 있습니다. 아집과 신견은 올바른 깨달음을 얻는 데 큰 장애가 됩니다.

 

정좌의 자세는 아주 중요합니다. 만약 자세를 바르게 않고 멋대로 앉아 등과 허리가 굽어진 상태로 오래하다 보면 반드시 질병이 생깁니다. ()을 닦고 정좌를 수련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가 막히거나 피를 토하는 등 소위 색신선병(色身禪病)에 시달리는 것도 모두 부정확한 자세에서 기인된 것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정좌 수련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세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만약 정확한 방법과 자세대로 수련한다면 신체 본래의 작용이 나타나 신체 내의 기기(氣機)가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신체의 기능도 활발해져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몸과 마음의 동과 정[動靜]이 서로 교차 마찰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일체 집착하거나 혹은 참된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현상은 어디까지나 현상일 뿐 오래지 않아 과거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현상에 집착하면 마구니 경계에 빠져들게 되어 바깥의 엉뚱한 것에 쏠려 악착같이 추구하게 됩니다.

 

()을 닦는 방법이 정확하면 몸과 마음에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예컨대 머리가 맑고 또렷하며 눈과 귀가 밝아지고 호흡이 단전에 이르도록 깊어져 온 몸이 유연하면서 통쾌해지고 아무리 거친 음식도 산해진미(山海珍味)처럼 느껴집니다. 병이 있는 사람은 약을 먹지 않아도 치유되고 몸속에는 힘이 넘침을 느낍니다. ()의 수습이 이 단계에 이르면 마땅히 소모를 줄여야 합니다. 음욕을 자제하지 못하면 기맥이 막혀 심신이 병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역자보충) 심장맥이 풀리고 열림[脈解心開], 기맥이 진정으로 통할 때의 현상, 그리고 입정 후의 변화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하여 남회근 선생의 참동계강의[我說參同契] 중에서 뽑아 보충합니다.

 

심장은 한 덩이 같지만 여덟 개의 판()이 한 데 합쳐져 있으며, 심장맥[心脈]은 지류(支流)가 여덟 개입니다. 

밀종에서는 이를 여덟 개의 잎을 가진 연꽃으로 묘사합니다. 

도가에서는 심장에 큰 길[通道]이 있다고 묘사하며 도()를 얻은 사람은 심규(心竅)가 열린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밀종에서는 심장맥이 풀려 열린다[脈解心開]’고 말합니다. 진정으로 도를 깨닫고 도를 얻으면 심장맥의 아홉 구멍[心脈九竅]도 열린다고 말합니다. 심장맥이 풀리고 그 구멍이 열리는 일이 실제로 있습니다. 열릴 때는  하고 폭발음이 한 번 나는데 당신은 놀라 까무러칠지도 모릅니다. 만약 잘못 했다가는 진짜로 자신이 심장병을 얻은 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수도(修道)를 이해하지 못하면 마구니가 되어 미칠 수 도 있습니다. 이해하고 난 뒤에는 마구니랄 것도 없으며 기껏해야 죽는 정도입니다.

 

불법을 배우든 도가를 배우든 현교나 밀종을 배우든 간에 우리는 사람의 생명을 연구하여 현실을 초월하고, 더 나아가 자기의 생명을 영원히 장악해야 합니다. 이 길 이외에 제2의 길은 없습니다. 아마 저의 관념이 꼭 옳은 것은 아니겠지만 여러분 주의하기 바랍니다. 표현 방식이 다를지라도 예컨대 불교에서 정()을 얻는 방법, 밀종에서의 각종의 성취는 분류해서 말하면 모두 저마다 나름의 도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형이상(形而上)을 말하는 ()’과 형이하(形而下)를 말하는 ()’, 이 두 가지가 진정으로 결합하여 하나가 되어 본원으로 돌아가는 길은 필연적이며 고정적인 것입니다. 이는 곧 심신이 결합하는 것으로 정신과 생리가 하나로 혼합하는 수련입니다. 다시 말해 진리는 오직 하나 밖에 없으며 차별이 없다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도가는 중국문화의 용어를 사용하여 이를 감괘와 리괘가 교차하여 만나서 금단을 맺는다[坎離交會結金丹].”고 합니다.

 

도가와 밀종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기맥에 대한 이야기들이 유행하고 있는데, 어떠한 현상이야말로 기맥이 진정으로 통한 것일까요? 삼가회합(三家會合: 정기신精氣神 세 가지가 만나 합하여짐을 말함-역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체상에서 감각상태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가 어느 곳으로 갔다면서, 마치 벌레가 기어가듯이 어떤 것이 움직이고 있다거나 열이 난다는 등등을 기맥이 통한 것으로 판단하지만, 모두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범기통(凡氣通)’이라고 부를 수 있을 뿐입니다. ‘범기통이라는 명사는 제가 창조한 것인데, 그 의미는 감각상태로서 보통 감각 보다 좀 더 강하여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기맥이 통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이 단락이 대단히 중요한데, 기맥이 진정으로 통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때에 밀종에서 말하는 이른 바 중맥(中脈)도 통한 것입니다. 주운양(朱雲陽)은 그 경계와 공부 단계를 모두 여기에서 우리들에게 일러줍니다.

 

초시신입기중(初時神入炁中)”, 진정으로 정()을 얻은 상황은 신()이 기()속으로 진입합니다. 마치 소시지처럼 그 창자 안에 고기를 집어넣는 것 같습니다. 이는 비유로서, 그리 타당하지는 않지만 두 가지가 혼합된다는 것을 표현할 뿐입니다. 여기서의 이란 불학에서 말하는 마음[]’입니다. , 생각 · 정신이 기()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란 무엇일까요? 호흡을 말하는 ()’가 아니므로 천태종(天台宗)에서 말하는 육묘문(六妙門)이라고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유가의 관념으로 말하면, 정좌하고 호흡을 헤아림[數息]과 호흡에 맡김[隨息]은 마음을 다스림[治心]에 해당합니다. 즉 불가에서의 조심(調心)에 해당합니다.

 

()이 기()속으로 진입할 때는 겉의 호흡이 완전히 정지하며 기맥이 완전히 통합니다. 이때의 현상은 신체감각이 사라져 버립니다. 신체상의 걸림이 사라져 버립니다. 우리는 지금 모두, 우리가 여기 앉아 있으면서 이 육체가 있다는 느낌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이 육체 감각이 없다면 호흡이 완전히 고요하고 일체의 생각이 고요히 사라져 정지해버립니다. 이 영명한[靈明] 지각(知覺)의 성품[]조차도 청정해집니다. 왜냐하면 ()’가 응결된 상태이며 ()’ ()’ 두 가지가 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신()이 기()속으로 진입한 것입니다.

 

적연부동(寂然不動)”, 이때에는 청정하며 고요합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공()으로, 모든 생각이 일체 청정해져서 안팎이 완전히 여여부동(如如不動)합니다. 이를 입정(入定)이라고 합니다. 불가의 입장에서 말하면 이는 바른 선정[正定]의 일종입니다.

 

사호고목사회(似乎枯木死灰)”, 이때 사람의 외형은 마치 마른 나무나 사그라진 재와 비슷합니다. 그러므로 수행공부가 이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면 모두 수행 얘기를 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런 얘기들은 다들 기만하며 놀고 있는 것입니다! 너는 나에게 아첨하고, 나는 너에게 아첨하며, 피차가 속이면서, 수도하는 사람은 바로 이 두 마디 말이라고 여깁니다. 속이고 지나가면 된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정()에는 얼마나 시간을 들여야 도달할 수 있을까요? 모릅니다! 

당신의 운이 좋다면, 아니 당신의 선행공덕이 넉넉하다면, 좌절을 당하지 않고 줄곧 나아갈 겁니다. 당신의 공부가 그 정도에 도달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선행공덕이 부족하다면 역시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갖가지 이른바 마구니 장애가 당신을 애로와 난관에 시달리게 할 겁니다. 그러므로 수도자는 이때에 이르러 이루었다 실패하기를 반복합니다. 보통 이 경계에 도달하기는 그래도 어렵다 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무너져버리면 또다시 해야 합니다. ‘또 다시란 바로 기초를 쌓고 새롭게 해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하면 비교적 빠르지만 당신에게 선행공덕이 없다면, 다시 마구니 장애를 만나 실패하여 다시 할 기회가 없어져 버립니다. 이 점을 특별히 주의하기 바랍니다. 이 부분은 공부의 실제 경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특별히 여러분을 일깨워 드리겠습니다. 진정으로 정()을 얻으면 마른 나무나 사그라진 재와 비슷한데, 이때에 주의해야합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이 사람은 몸이 몹시 수척해져 있습니다. 말랐습니다. 여러분은 장자(莊子)와 열자(列子)를 참고해보아도 좋습니다. 거기에 보면 열자가 어떤 사람을 하나 만나게 되는데, 재능이 대단해서 과거 · 현재 · 미래를 알 수 있는 사람입니다. 도를 얻은 사람입니다. 열자는 그 사람을 데리고 자기의 스승인 호자(壺子)를 만나보게 합니다. 그 사람이 보니 호자가 곧 죽게 생겼기에 열자에게 일러줍니다. “당신의 저 스승은 안 되겠소. 며칠 안가 죽을 거요.” 열자가 그 말을 호자에게 하자 호자가 웃으며 말합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한 경계를 보여주었다. 너는 내일 다시 그 사람을 데려 오거라.” 

 

그 사람은 그 다음날 보고 나서 말했습니다. “이제 당신의 스승은 나를 보았기에 생기가 있게 되었소. 살아날 수 있겠소.” 

세 번째 날 다시 그 사람을 데려와 보게 했습니다. 보고 나더니 그 사람은 도망가 버렸습니다. 결론을 내지 못하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통 장자나 열자를 읽으면 모두 그런 얘기들을 가탁한 비유적인 말로 여기지만, 사실 하고 있는 얘기들은 모두 진실한 말들이요 실제의 경계입니다. 하지만 그런 공부가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일반적인 지식인들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다들 비유로 보는 겁니다. 이 경계에 이르면 마른 나무나 죽은 재와 비슷합니다. 이 말에 주의해야 합니다. 문외한이 보면 마치 그 사람이 죽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구절에 주의해야 합니다!

 

구지생기복전(久之生機復轉),” 이 정()은 정()의 상태에서 얼마 동안 지나야 되는지 모르는데, ()의 상태가 오래 지속되고 난 뒤에 기맥이 통했다고 진짜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다시 한 층 더 나아간 일양(一陽)이 와서 회복된 것[一陽來復]’이요, 

다시 한 층 나아간 활자시(活子時)가 온 것인데, 이게 진정한 활자시(活子時)입니다. 

 

도가의 용어로 말하면,  일양이 와서 회복된 것은 새로운 생명이 하나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생기복전(生機復轉)”, 생기가 다시 돕니다. 

 

원래 입정(入定)은 마른 나무나 사그라진 재와 비슷했는데, 이제는 일점진기(一點眞炁)”로서, 주운양(朱雲陽: 참동계천유의 저자-역주)은 이를 희미은약(希微隱約)’이라고 묘사합니다. 이 네 글자가 가리키는 경계는, 어떤 현상이 있는 것이 아니요, 보거나 만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감각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있는 듯 없는 듯한 그 사이 어디입니다.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당신의 지혜에 의지해야 하며 그 때에 이르면 자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옹연상승(滃然上升)”, 어디로부터 상승할까요? 요즘 유행어로서, 인도의 요가나 밀종에서의 번역어인 이른바 해저(海底: 회음을 말함-역주)’로부터 상승하는 겁니다. 도가의 고서에는 한 점의 참된 양()이 허무(虛無) 속으로부터 온다[一點眞陽從虛無中來].”고 말합니다. ‘허무란 말은 그 까닭을 알 수 없는 텅 빈 사이인데, 텅 빔[]이 극치에 이르고 고요함[]이 극치에 이르면 아래로부터 위로 일어납니다. 

 

그러나 아래라고 일단 말했으니 배꼽이나 혹은 해저를 붙들어 쥘지도 모릅니다. 그럼 다 틀린 겁니다! 그런 부위를 붙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해저나 단전은 물론 영향이 있지만 그런 곳으로부터 오는 것은 아닙니다. 고요함의 극치에서 오는 겁니다. 노자(老子)가 말한 치허극, 수정독, 부물운운, 각복귀기근(致虛極, 守靜篤, 夫物芸芸, 各復歸其根).”이라는 말은, 바로 텅 빔이 극치에 도달하고 고요함이 극치에 도달해야 비로소 뿌리로 돌아가 생명을 회복한다[歸根復命].”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의 원래 있는 생명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노자는 아주 간단히 말했습니다. 몇 마디 말로 하나의 원칙을 말했을 뿐 자세한 공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노자의 그 단락의 공부에 대한  주해나 다름없습니다. 

 

이때에는 한 점의 참된 기가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 모락모락 위로 올라옵니다[一點眞炁, 希微隱約, 滃然上升].” 주의해야 합니다! 고문(古文)은 함부로 인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운양이 모락모락의 뜻인 ()’자를 쓰고 있음은, 현대인들이 글을 쓸 때 멋대로 단어를 쓰듯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고문을 쓸 때는 한 글자에도 대단히 신중했습니다. “옹연상승(滃然上升)”에는 수증기의 의미가 있습니다.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으로, 밀종에서 말하는 졸화(拙火)를 얻었을 경우처럼 서서히 줄곧 자연스럽게 솟아오릅니다.

마치 아지랑이[野馬]나 미세한 먼지 모습과 같다[有如野馬塵埃之狀].”, 주의하기 바랍니다! ‘야마(野馬)’는 한 필의 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야마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장자(莊子) 1편 소요유(逍遙遊)에서 제시하는 명사로, ‘야마야 진애야(野馬也 塵埃也)’라고 나옵니다. ‘야마란 불경에서 말하는 양염(陽燄)입니다. 햇빛 그림자[光影]입니다. 이때에 양기가 상승하는데, 만일 어떤 사람이 공부가 이 정도에 도달하여 빛 그림자가 상승하는 것을 보면 이게 바로 양기라고 여기지 말기 바랍니다! 이것은 양기의 투영으로, 그 자체는 여전히 양기가 아닙니다. 마치 당신의 눈이 편하지 않아 한 번 비비자마자 보이는 현상과 같은 것으로, 그것은 양기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치 아지랑이나 미세한 먼지 모습과 같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몸은 잿빛 흙으로 빚은 듯하고 용모는 마치 밝은 창에 먼지가 낀 듯하다.’고 말했다[故曰, 形體爲灰土, 狀若明窗塵].” 그래서 위백양(魏伯陽)은 말하기를, “겉모습은 이때에 정()의 상태로서 마른 나무나 사그라진 재와 같아서 무슨 광채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감괘(坎卦)와 리괘(離卦)가 교구하기 시작하여 큰 약이 장차 생겨날 현상이다[此爲坎離始媾, 大藥將産之法象].” 이에 주의해야 합니다! 이것을 감리교구(坎離交媾)’라고 합니다. 

 

동정남[童男]이나 동정녀[童女]가 음양이 교구(교접-역주)하는 것도 형용한 것으로, 큰 약[大藥]이 장차 생겨날 현상입니다. 

 

큰 약이란 바로 금단(金丹)인데, 자기 자신의 생명 가운데 있는 것으로, 스스로의 단련을 거쳐 회복하여 이 약을 얻을 경우 장생불사(長生不死)합니다.

 

(남회근 원환선 공저 불교수행입문강의 에서)

[출처] 비로자나불 칠지좌법|작성자 무극진일자

 

참고 

玄關秘訣打坐式 : blog.daum.net/brokenblock/3284249

 

玄關秘訣打坐式

蟠兩足十字 양 발은 뒤집어 (결)가부좌를 하고 兩足掌向天 양 발은 뒤집어 발바닥이 하늘을 향할 수 있도록 하고 頭正 머리는 기운이 뒤로 내려갈 수 있도록 바르게 두고 腰直 허리는 하단전의

blog.daum.net

仙佛家眞修語錄 : blog.daum.net/brokenblock/7297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