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불교에서는 불법승 삼보에 대한 귀의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이 삼보는 내 바깥에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이미 구족되어 있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자성삼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즉 나 자신이 이미 부처이며, 내 안에 이미 모든 가르침이 다 구족되어 있고, 나 자신이 바로 청정한 수행자라는 뜻입니다. 즉 내 안에 다 있지, 내 바깥으로 찾아가야 할 불법승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깥으로 부처를 찾아나서면 내 안에 있는 부처를 놓치게 됩니다. 바깥으로 스승을 찾아 나서고, 가르침을 찾아 나설 것도 없지요.
보통 우리는 불교를 공부해 가면서 수없이 많은 가르침과 접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인과법문이나 선행과 복덕을 닦는 가르침들이 와 닿을 것이고, 그러다가 기도 수행에 대한 수많은 법문도 듣게 될 것입니다. 스님들마다 가르치는 방편도 다르고, 내용도 천차만별로 다르다고 느끼겠지요. 그러면서 점차적으로 공부가 익어가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쉬운 법문만이 와 닿다가 점차 공부를 해 나가면서 보다 높은 수준의 법문들이 이해되고, 체험이 되게 되겠지요.
법문을 들을 때도 공부가 익어가면서 내 근기에 딱 맞는 스님들의 법문이 신기하게 나와 인연이 되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불서나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인데요, 신기하게도 나에게 딱 필요할 때 나에게 딱 맞는 근기와 수준의 불서와 인연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공부가 익어감에 따라 예전에는 전혀 이해되지 않았던 가르침들이 점점 더 와 닿게 되기도 하겠지요.
그러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더 높은 가르침, 더 높은 진리를 찾아 끊임없이 책이며 법문이며 경전 등을 찾게 됩니다. 그렇게 원력을 가지고, 발심을 하여 공부를 하게 된다면, 신기하게도 내 마음 속의 발원을 부처님께서 알기라도 한 듯 정확히 나를 이끌어 줄 만한 가르침을 곳곳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내가 그동안 찾아왔고, 만나왔고, 배워왔던 모든 가르침들이 사실은 내 바깥의 특정한 책이나,
스님이나, 경전이나 법문에서 만나온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모든 가르침의 출처는 오로지 한 곳 바로 나 자신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내 마음에서 간절히 바른 가르침을 원해왔기에 내 안에서 바른 가르침이 외부의 책이나 법문이라는 형식을 빌어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만약에 가르침과 나를 둘로 나누어 놓게 된다면, 내가 바른 가르침을 향해 달려가야만 하고,
가르침이란 언젠가 도달해야 할 목표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가르침과 내가 따로 떨어진 분별의 법이고, 이법입니다.
불이법의 중도와 멀어지게 됩니다.
사실 모든 가르침은 나의 간절한 발원이 있을 때 언제나 내면에서 드러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모든 바른 가르침은 내 안에 구족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내 가슴을 울리는 놀라운 법문을 만나게 되었다면 그것은 내가 가르침이나 스승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내가 비로소 내 안의 자성법보를 발견했음을 의미합니다.
가르침이 바깥에서 온다고 여기면 우리는 언제까지고 진리를 찾아 헤매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진리와 내가 둘이 아니어서 언제든 내 안에서 나온다고 바로 알 때 비로소 진리와 나 사이의 간격은 사라지게 됩니다.
당신은 놀라운 지혜의 보고입니다. 당장 내 안의 진리와 만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