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육체로 태어난 외계인의 두드러진 예로 75살 먹은 한 체로키 인디언을 들 수 있다. 그는 유럽 귀족의 혈통과 유명한 미국의 애국자 패트릭 헨리의 혈통도 물려받았다. 화가, 조각가, 교육자, 전통의상 디자이너, 철학자이기도 한 윌리엄 굳렛은 버지니아 살렘에 있는 빅토리아 풍의 자신의 대저택에서 유체이탈을 통해 십여 차례 다른 행성들을 방문했다.
나는 그가 낸 책 『미래로 향한 문턱』을 읽고 나서 보내준 카세트 테이프를 통해 그를 알게 되었다. 편지보다는 녹음테이프를 보내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아는 많은 독자들이 수많은 테이프를 보내오기 때문에 보통 나는 시간 관계상 그 테이프들을 다 듣지 않는다. 그런데 이 특별한 테이프가 도착한 날은 들어야겠다는 충동이 일어났다. 그 테이프에 실린 유체이탈 행성방문 이야기에 매혹된 나는 다음날 자동기술 시간에 지도령들에게 이에 관해 물어보았다.
"살렘의 그 남자는 놀랄 만한 외계인이다. 그는 많은 행성들을 방문했으며 그것을 완전히 기억하고 있고, 이번 생의 대부분을 보내기로 결정한 지구 행성에 아직 머물고 있다. 그는 약 23,000년 전 지축이동 후 지구가 재건되고 있을 때 다른 행성에서 지구로 온 재능있는 종족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그가 여행한 행성들은 한 때 자신이 살았던 곳일 때도 있고, 그 자신조차 마음 설레는 전혀 새로운 곳일 때도 있다."
다음 날 지도령들은 윌리엄 굳렛에 대해서 상세히 말했다.
"그는 지구의 삶을 이해하고 지구인들에게 우주가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도와주려고 다른 은하에서 일부러 지구를 선택해서 오는 외계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그는 일부러 체로키 인디언의 혈통을 지닌 육체로 태어났다. 체로키 종족은 그의 고향 행성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영적 형태로 고향 행성을 방문했었다. 그 곳은 바로 오리온 성좌이다."
흥미를 느낀 나는 굳렛에게 전화해서 지도령들이 했던 말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나중에 나는 남편과 함께 살렘으로 가서 그와 인터뷰를 했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제까지 만나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그에 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전세계를 두루 여행했으며 2차대전이 끝났을 때는 미군 의무대에 소속되어 남태평양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는 부상병들을 위한 수술 후 운동법에 관한 책을 썼으며, 전쟁 중에는 날씨 암호를 취급하는 암호해독병으로 복무했었다. 이때 체득한 전문지식 덕분에 발음대로 읽을 수 있도록 영어를 분류 정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성인과 아이들에게 이런 방법들을 가르치고 있다.
굳렛의 아버지 얼은 인디언 유산을 지키는데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아들 윌리엄은 체로키 인디언의 전통을 지키는데 발벗고 나섰으며, 그는 '버지니아의 주술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비를 불러오고 폭풍우를 멈추게 하는 그의 능력이 인정되었기 때문이었다. 35년 동안 그는 그 지역의 보이스카웃을 위한 인디언 정통의 카운셀러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그들에게 체로키의 노래를 가르쳤는데 어떤 신비로운 이유로 인해 그 노래가 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물건과 돈을 끌어다 주는 것 같았다.
절대절명의 위기의 순간이 두 번 있었는데, 한 번은 2차대전 중 샌프란시스코 상공에 떠있던 방공기구의 고장 때문이었고, 다른 한 번은 보이스카웃 대원들에게 캠핑훈련을 시킬 때였다. 굳렛은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순식간에 현장으로 공간이동했다. 그 자신도 그 현상을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두 사건의 경우에 수많은 목격자들이 있었다.
지도령들은 이 비범한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이번 생이 그가 지구에 태어난 첫 번째 생은 아니지만 지구시간으로 아주 오랫동안 오리온 은하에 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떠나온 은하에 대해 향수를 느끼고 있다. 그는 지구인의 진보를 돕기 위해 지구에 왔다. 체로키 인디언은 수천 년 동안 오리온 성좌에 있는 행성에서 살았는데, 그들 중 일부가 최후의 지축이동 뒤에 안정을 찾아가고 있던 지구에 이주하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아틀란티스에 정착했다. 그리고 약 12,000년 전 아틀란티스 대륙이 가라앉으리라는 것을 미리 안 그들은 서쪽으로 이주하여 현재의 미국 동부지역에 자리잡게 되었다. 그들은 비록 대부분의 기술적 노하우는 상실했지만 자신들이 아틀란티스에서 이룩했던 위대한 문명의 자취를 항상 잊지않고 간직하고 있었다.
그들은 보기 드문 기억력을 통해 자신들의 전통을 이어가는 위대한 종족이었다. 굳렛 역시 과거생에서 이 사람들과 함께 지구에 왔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생에서 인디언 지역에서 합당한 부모를 발견하고 체로키 인디언의 혈통을 잇는 것이 그로서는 아주 마음 편하고 당연한 일이었다."
윌리엄 굳렛은 심장마비를 일으킨지 2년 뒤, 육체적 활동을 억제하고 있던 1968년 2월 18일에 처음으로 다른 행성을 여행했다. 그는 순차적으로 행성여행을 했기 때문에 자신이 본 모든 것을 즉시 기록해 두었다. 그는 이 이상한 사건들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경험들은 꿈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꿈에서는 마치 내가 외부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지만, 이 경험에서는 모든 감각(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맡고, 맛보고)을 지닌 채 내 몸 속에 내가 존재합니다. 혹은 다른 존재의 몸 속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한 번은 내가 실제로 '전구'가 되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처음에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최근에야 나는 비슷한 여행을 한 사람이 쓴 책을 읽기 시작했고, 이제는 내가 유체이탈 경험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여행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짙은 색 바위로 이루어진 작은 언덕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 지역은 추웠습니다. 그러나 몸 속까지 스며오는 심한 추위가 아니라 바람 한 점 없는 그런 쌀쌀함이었습니다. 나는 해를 쳐다 보았습니다. 그것은 지구에서 본 태양의 절반 정도 크기였으며, 빛이 약했기 때문에 직접 육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내 앞에는 바위 투성이 평원의 수평선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나는 지구인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몸은 작았고, 키는 약 120cm 정도며, 몹시 여위어 있었습니다. 팔과 손가락은 지구인보다 더 길었습니다. 옷이라고는 단지 가죽끈 정도만 둘러메고 있었지만 넓은 채양이 달린 중절모를 쓰고 있었으며 무릎 중간까지 오는 반장화를 신고 있었습니다. 내 피부는 진한 황록색으로 두터웠으며 눈은 인간보다 더 큰 듯 했습니다.
지구는 내 우측 하늘에서 빛나고 있었으며 목성은 내 왼쪽에서 깜빡거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지구와 태양을 보았습니다. 그때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을 보여주면 지구인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났습니다. 그 순간 나는 초월 상태에서 깨어났습니다."
오 세상에! 이건 또 웬 화성의 녹색인간 망령인가! 아직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림이 있단 말인가! 나는 녹음기를 꺼버릴려 했으나 어쩐지 계속 들어야만 할 것 같은 강한 충동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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