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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타 / 제13장. 삶에 법칙은 없다(1/2)

영원오늘 2007. 6. 19. 15:28

제13장. 삶에 법칙은 없다(1/2)

 

인간이 법이나 계획, 규칙 등 구속하는 의식으로부터 벗어나게 될 때,
그는 자신과 전 인류를 사랑하도록 허용하는 존재의 기쁨과 평화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   ★   ★

마스터 :

람타, 당신은  하느님의 계획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람타 :

하느님의 계획? 도대체 무엇 때문에 당신은 하느님이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마스터 :

세상만사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 무엇인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람타 :

하느님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계획은...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들이 하느님이라는 생명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만약에 하느님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 자신의 내면에 있는 하느님을 나타낼 수 있는 자유를 앗아가 버리는 것이 된다. 당신만의 유일한 개성도 스스로 진화하는 능력도 하느님이라는 생명원리를 확장하는 능력도 모두 앗아가 버리는 것이 된다.

 

하느님의 유일한 계획은 그것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자신과 하나되어 진동하는 모든 것이다. 이 진동은 먼저 생각에 기초를 두고, 생각에서부터 물질로... 진동하고, 의식을 가감하기도 하며, 생명의 또 다른 순간을 표현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과 병행하여 영원의 다음 순간을 표현해 낸다. 그러나 하느님이 계획한다면, 다음에 일어날 모든 것들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 된다.

 

당신이 깔고 앉아 있는 이 방석을 보자. 이것이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지 그것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것도 있으므로, 그것은 하느님의 계획에 부합된다. 왜 사랑하는 마스터가 여기 앉아 있는 것인가? 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랑하는 이 마스터는 어떻게 하느님의 계획에 부합되는가? 당신이 존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저 있음으로써 그렇게 된다. 나는 어떻게 부합되는가? 나는 존재한다. 이 푹신푹신한 방석이 존재하는 것처럼, 나는 존재할 뿐이다.

 

내가 어떻게 부합이 될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나는 그렇게 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다른 누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더 사랑한다. 왜냐하면 내 사랑이나 표현이 환상적이고도 신성한 계획에 부합되는지 아닌지 나는 염려하지 않으니까?

 

내가 어떻게 전체 생명의 있음에 기여할까? 하느님이 진실로 존재하는 것과, 왜 그 하느님은 당신이 어떤 모습이더라도 상관하지 않고 사랑하는가를 당신이 이해하도록 도와줌으로써 기여한다. 모든 생명이 어떻게 서로 어울리게 되는지를 더 분명하게 살펴볼 수 있게 함으로써, 모든 것이 존재하는 이유는... 어떠한 계획에 따라서도 아니고 숨은 동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저 표현하는 것이라는 것을 당신은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왜 중요한가? 생명이 그저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할 때, 최상의 능력을 다하여 창조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당신에게 허용되기 때문이다. 다음 순간에 당신이 무엇을 하든, 모든 생명 가운데에서 당신은 진동할 것이며 또 다음 순간에도 그러하고 그 다음 순간에도 계속 그러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당신은 안식을 취할 것이다.

 

생명에 계획은 있지 않다. 마스터, 단지 있음만이 있다. 있음의 자리에 거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표현이다. 있음! 중요한 것은 당신 자체이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마스터 :

당신은, 사람이 살아가야 되는 바람직한 길이란 없다.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될 수 있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즉, ‘아무 것이라도 좋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람타 :

그러하다. 그것이 당신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다.

 

마스터 :

그렇다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람타 :

삶의 목적은, 마스터, 당신 존재 안에서 당신이 즐기는 어떤 생각이든지 삶의 무대 위에서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어떤 표현에 이끌리든지 간에, 그러한 표현은 항상 지속되는 생명의 있음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라.

 

생명의 목적은 생명의 일부가 되는 것, 생명의 창조자가 되는 것, 그것을 빛내는 것이다. 생명이 당신의 내면에서 전개되는 대로 순간 순간을 당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자신을 허용하며 살아가는 것 이외의 다른 운명이라는 것은 없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는 데 있어 당신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될 수 있고, 또 할 수 있는 무한한 자유를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마스터 :

그러나 만약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면, 성경에서 언급된 그런 하느님의 율법에 위배되는 일들이 생기지 않겠는가?

 

람타 :

아름다운 마스터여, 당신이 사랑하는 하느님은 단지 하나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법도 만들지 않았다. 그 하나의 법은 당신의 자주적 의지에 따라 삶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의 의지를 실현시켜 나갈 때만이 모든 생명의 의식을 확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의 의식, 그것은 하느님이다. 만약에 하느님 아버지가 법 따위를 만드는 그러한 실체라면 그 자신인 당신에게서 생명이 진화하고 영속하도록 허용하는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제한된 근원으로서 종말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마스터, 영원에게 종말은 없다.

 

당신이 말하는 ‘하느님의 율법’은 책 중의 책에 씌여 있는 율법으로 예언자마다 추가해 놓은 여러 계율을 말한다. 그것은 ‘하느님의 율법’이 이러이러하다 혹은 이러이러한 것을 금한다 또는 이러한 것을 해야 된다는 등을 언급함으로써 대단히 권위 있는 말이 되었다. ‘하느님의 율법’이라는 것을 따라서 사람들은 하느님 앞에 복종하는 것을 배웠고 두려움을 배워야 했다. 아이들은 부모를 두려워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그저 부모가 존재하는 것처럼 존재할 따름이다.

 

내가 가르치고자 하는 유일 법은 모든 생명의 근원인 하느님은 모든 것들이 그들의 자유와 열망에 따라 그들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느님의 존재를 통하여 표현하도록 허용한다는 것이다. 오직 자유에 의해서만 하느님을 알게 되고 다시 그와 함께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하느님에게로 돌아오고 하느님이 그 자신의 귀향을 숙고할 때, 위대한 날들이 시작되고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당신이 고향으로 돌아옴으로써, 당신은 하느님처럼 존재하게 되며, 하느님처럼 존재함으로써 무한한 사랑과 한없는 기쁨, 존재의 영원함이 항상 지속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법을 만들지 않았다! 인간이 법을 만들었지 그가 만들지 않았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어 인간이 그 자신의 왕국에 독자적인 법을 만드는 법제가가 될 수 있게 하였다. 생명에 대한 이해가 진화함에 따라 생각으로부터 그의 왕국에 적절한 믿음이나, 진실, 태도를 만들 수 있게 한 것이다. 인간은 그러한 자유를, 사회를 형성하여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으로 보이는 법을 만드는 데 사용하였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법은 무자비하게 인간을 협박하거나 노예화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 법들은 자유를 구속하기 위하여 만들어졌지 자유를 고양하기 위해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법이 없는 상태로 있는 것을 허용하지 못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다스리는 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자신이 무한하고 신성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스터 :

그러나 람타, 법이 없다면 사람이 자신 속에 있는 악을 드러내는 것, 나쁜 일을 저지르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람타 :

이것을 알라, 마스터.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 이 우주 속에 악이라는 것은 없다. 인간의 영혼이 악하다고 씌어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인간의 영혼은 신성하다. 인간의 영혼이나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느님일 따름이다. 영혼이 하느님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왔겠는가?

 

하느님의 영역, 존재의 관할 밖에 있는 것은 없다. 아무 것도! 누군가가 악하다거나 나쁘다 그르다고 하는 그러한 생각이나 행위는 모두 의식 속에 살아 있다. 그리고 의식 속에 존재한다면, 그것도 틀림없이 하느님 마음의 일부가 아니겠는가?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일부이기 때문에, 어떤 대상을 놓고 사악하다고 하는 것은 곧 하느님을 사악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는 사악하지 않다. 하느님은 선하지도 않다. 선의 경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나쁘다거나 악한 것이라고 하는 개념과 비교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결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악한 존재가 아니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한 존재도 아니다. 또한 하느님은 완전하지도 않다. 하느님은 단순히 존재한다... 자신을 알기 위해 단지 기쁨에 기쁨을 더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생명의 있음이요, 영원한 순간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명력이 자신의 일부분을 선과 악, 신성함과 사악함, 완전함과 불완전함으로 판정을 내림으로써 자신을 있음의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변형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느님이 내려다보고 ‘이것은 악이다’라고 말한다면 어떠한 일이 일어나겠는가? 모든 의식은 - 표현할 필요가 있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 생명력으로부터 단절되어 버릴 것이다.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생명과 그의 지속적 확장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창조를 허용하는 자유의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완전히 무한하고 있음의 나뉘지 않는 전체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그 자신을 한정된 눈으로 보는 일은 없다. 만약에 그랬다면, 당신은 이곳에서 당신 자신이나 이웃을 판단하는 선택권을 행사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마스터, 선이나 악은 없다. 오로지 있음만이 있을 따름이다. 있음에서는 모든 것이 오로지 충족이라는 견지, 즉 지혜로 자신을 충족하기 위해 영혼이 필요로 하는 감성적 경험의 견지에서 평가된다. 지금까지 당신들이 해 왔던 일들은, 아무리 아름답거나 비열하다 하더라도 당신이 그러하도록 정한 것으로서, 당신은 단지 지식을 얻기 위해 그렇게 했다. 당신의 영혼과 열정에 떠밀려 그 일을 했던 것이고, 배움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러한 행동의 가치를 깨닫게 되고 확신하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그것으로부터 배웠다. 사악한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니다. 오로지 하느님이 되기 위해서 행한 일일 따름이다.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심판한다. 인간은 그의 형제들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빼앗기 위하여 자신의 창조성으로 선과 악의 균형을 고안해 내었다. 종교의 교리나 정부의 법 테두리에서 벗어났을 때 받게 될 처벌에 대한 두려움은 국가를 오랜 세월 동안 다스리고 지탱해 준 무력이었다. 당신들이 쓰는 단어로 사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내면에 있는 하느님을 드러낼 수 있는 자유를 빼앗아 버리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할 때마다 동시에 자신에게도 꼭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셈이 된다 - 더 근본적으로 그러하다. 왜냐하면 당신이 남들에게 어떠한 판단이나 제한을 가하더라도, 그것은 당신 자신의 의식 속에서 법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 법에 의하여, 당신이 그렇게 제한을 받고, 당신이 자신을 그렇게 심판할 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결코 사악하지 않다. 비록 악의 그늘에서 산다 하더라도, 좀더 넓은 견지에서 보면 악이라는 것은 없다. 인간이 선택한 것은 무엇이든지 생각할 수 있고, 그 생각으로부터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생명의 무대만이 있을 따름이다. 이것이 유일한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하느님은 미신이나 신앙, 그리고 인류의 제한적이고 꽉 막힌 태도에 의하여 악의 환영이 생겨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악이라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관찰과 판단, 그리고 악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의하여 한 실체 안에 악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오직 그의 실체 안에서만 존재한다. 그가 그렇게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의 왕국이 생겨나는 것이다.

 

실재하는 유일한 법은 당신이 당신의 삶에서 유효하도록 창조해 낸 것들이다. 만약에 당신이 선과 악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당신의 진실이며, 또한 당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 그러나 기억하라. 그것은 내 진실도 아니고 다른 누구의 진실도 아닌 바로 당신만의 진실이다. 그것이 정말로 당신의 진실이라면, 그것은 모두 당신의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의 소신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러한 소신을 가지고 있는 한, 그것은 틀림없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당신이 그것을 더 이상 믿지 않을 때, 그것은 더 이상 현실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이다.

 

마스터, 이제 당신은 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말해 보라. 나쁘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마스터 :

글쎄, 선과 반대되는 것이 악이라고 말하겠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악은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이다.

 

람타 : 그런가? 그것이 왜 악인가?

 

마스터 : 글쎄, 예를 들자면 누군가가 내 딸을 해쳤다면, 그것은 악이다. 왜냐하면... 그 아이가 죽었다고 치자.

 

람타 : 그것은 당신의 악에 대한 판단이다. 죽는 일에 대해 악은 무엇인가?

 

마스터 : 그렇다면 당신은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이 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건가?

 

람타 :

그렇다. 나는 어떠한 것에도 종말이 있다고 믿음으로써 나 자신을 제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무 것도 소멸되지 않으니까. 영원히!

 

있음과 지속되는 생명의 영속성 안에서, 하느님은 모든 것들이 존속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는 것, 즉 하느님 자신보다 더 위대한 것은 창조하지 않았다.

 

마스터, 하느님이 창조한 것은 아무 것도 열등한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의 아이는 결코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아무 것도 하느님의 생명을 소멸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마스터 :

그렇다면 살인조차도 나쁘거나 사악한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

 

람타 :

그렇다. 명심해 두기 바란다, 마스터, 생명은 항상 지속되는 것이다.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순간에서 순간으로, 매순간, 각자가 생명의 무대에서 표현함에 따라, 자신을 행복으로 충만하게 해줄 무한한 기회를 가지게 된다. 자신의 순간 순간을 무엇으로 채우는가 하는 것은 그의 자유의지와 욕구,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옳다고 여기는 것에 따른다. 그것은 그의 선택이자 재량이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통치력이다.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생각과 감성의 왕국인 것이다.

 

당신의 정부와 종교는 법과 규칙, 계율에 따라 대중을 다스리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각자의 사고작용에 조용히 작용하고 있는 의지를 다스리지는 못한다. 그 실체만이 그럴 수 있다. 한 실체가 다른 이를 죽이려는 뜻을 가지고 있다면, 혹은 그러한 생각을 가짐으로써 자신의 영혼으로 그러한 일을 한다면(누구도 다른 이보다 나을 수는 없다. 생각 속에서 살인을 했다면 그는 살인을 한 것이기 때문에 - 생각 속에서 남을 해친 적이 없는 이는 아무도 없다), 어느 쪽이든 그 실체는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그렇게 표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당신이 이해해 주기 바란다. 자신을 표현하는 일에 살인자와 함께 참여한 자는 그 살인자의 희생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태워지거나, 잘려지고, 괴롭힘을 당하는 가능성에 대해서 숙고했을 것이다. 그것을 숙고하고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는 그 일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살인을 해야 하는 자나 살인을 당해야 하는 자는 - 그 일을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서로 서로에게 이끌린다... 경험하기 위해서.

 

학살자를 무서워하거나, 그들을 심판하고 저주하려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나는 살인을 한 그를 사랑한다. 어떻게 안 그럴 수 있겠는가? 그는 하느님의 섭리와 생명과 경이로움에서 제외되어야 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마스터.

 

피살자들은 돌아올 것이다. 다시 또 다시, 왜냐하면 생명은 영구하고, 생명은 영속하니까. 생명은 영속하는 유일한 것이고, 또한 모든 것이다. 만약 내가 그 행동을 혐오하고 학살자에 대하여 비판을 하게 되면, 그것은 나 자신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되며, 내 삶이 그 판단에 의하여 악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라. 왜냐하면 유아독존인 나 자신이 자신의 일부를 제거하여 내 존재로부터 분리시켜 버리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더 이상 전체가 아니다. 알겠는가?

 

어떤 사람이 한 순간에 다른 사람들을 학살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에 그는 그 행동으로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지독한 죄책감과 자기비판, 그리고 두려움 속에서 살 것이다. 그리하여, 그에게는 다가오는 시간이 편안한 것이 못 된다. 그가 그 자신을 용서할 때까지... 학살자는 이미 그 자신에 대한 판결을 해 버렸다. 왜냐하면 그가 그 행동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가지든지 그것에 속박 당할 것이고, 그때 이후부터 영겁의 순간까지 자신만의 생각과 감성의 왕국에서 그 일을 처리해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행동을 혐오하지 않는다. 그 행동의 합리적 이유를 알아냈다. 그것을 이해한다. 나는 그 너머에 존재한다.

 

하느님을 이해하는 데 있어 악이라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지혜를 제공해 주는 경험이다. 이것이 내 대답이다. 인간이 더 이상 그의 형제들을 비난하지 않으며, 자신이 결코 사악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과 자신의 존재가 하느님이라는 것을 깨닫고, 또한 하느님이라는 생명력에 의하여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는 자신의 가치와 능력과 불멸성을 알아보기 위해서 전쟁이나 약탈, 살인 같은 행위들을 더 이상 경험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인간이 법이나 계획, 규칙 등 구속하는 의식으로부터 벗어나게 될 때, 그는 자신과 전 인류를 사랑하도록 허용하는 존재의 기쁨과 평화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마음대로 구상하며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다. 그때에 그는 하느님처럼 사랑할 것이다. 그때 그는 하느님처럼 존재할 것이다. 모든 생명을 양육하고 지원하는 터전인 하느님처럼. 그렇게 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