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6장. 삶 뒤에 또 삶(2/3)
★ ★ ★
마스터 :
람타, 죽은 이를 만나거나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가능한가?
람타 :
당신의 모친을 보고 싶은가?
마스터 :
그렇다. 매우 보고 싶다.
람타 :
그렇게 될지어다. 그러기를 모친이 동의한다면, 가능하다. 그러면 우리가 당신이 모친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나 전혀 예기치 않은 때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당신은 나중에 그것이 상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당신이 나중에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이다. 당신의 모친을 빛으로 보게 되는 것은 그녀가 당신보다 고귀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빛은 그녀의 원질이 진동하는 매우 빠른 속도에 의해서 나온다. 그 속도에 의해서 빛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도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당신이 그 실체의 빛을 본다면, 그것은 단지 그녀가 높은 진동률로 낮은 세상과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세상에 있으면서 여기 이 청중 사이에 모여 있는 이들도 많다. 그들이 사랑하는 실체가 이 청중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희미하게 빛나는 빛이며 당신이 그들을 보려고 한다면 시선의 초점을 벗어난 바깥 부분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직접 보려고 하면, *원추세포로 이루어진 당신들의 눈으로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이곳에 있다. 알겠는가?
마스터 :
알았다. 고맙다.
람타 :
좋다. 알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아무 것도 믿지 말라는 것이다. 결코! 믿는다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이해해야 하는 것을 당신 자신에게 억지로 주입시켜 버리는 일이다. 믿음은 매우 위험하다. 믿어 버림으로써, 당신의 존재에 진리로 정립되지 않은 것을 쫓아 살고, 행동하고, 믿어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 이렇게 되면 당신은 매우 연약하게 된다. 이처럼 연약한 상태에서, 당신은 조종당하고, 저주받고, 비난을 받으며, 그리고 생명마저도 잃을 수 있다 - 모두 믿음 때문에.
무엇이든 당신이 알고 싶은 것을 알라. 그저 이해하기를 원하고 당신 존재 안에서 우러나는 느낌에 귀기울임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당신의 느낌이 지혜롭다는 것을 항상 신뢰하라. 느낌을 거스르지 말고, 내면에서 좋게 느끼지 않으면 억지로 믿으려 하지 말라.
또 살인자와 살륙자를 동정하는 것을 배워라. 그들은 일을 저지르고 난 뒤에 겪어야 할 엄청난 감성적 부담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 이러한 일에 수천 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러나 죽임을 당한 자는 곧바로 육신을 갖게 된다. 살인자는 결코 잊지 못한다.
마스터 :
이 지상의 삶을 떠나면 자신의 삶을 평가하거나 그 다음 생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하지 위해서 어디로 가는가?
람타 :
이해의 과정 중에서 그가 가지고 있는 종합적인 태도에 걸맞은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된다.
예를 들자면 당신은 ‘제한 속의 생존’ 단계에서부터 고통의 단계, 힘의 단계, 그리고 말없는 사랑의 단계까지 충분히 이해하였다. 그리고 사랑을 실현하고, 사랑을 말하며, 사랑을 표현하는 다섯 번째 의식의 단계를 경험하고 있다. 이 생을 지나게 되면 낙원이라고 하는 다섯 번째 세상으로 가게 되는데, 그곳은 당신이 현재 인식할 수 있는 최고 경지의 이해 수준이다.
달리 말하면, 마스터, 당신이 지금까지 알고 이해하게 된 것들은 매우 광범위한 것이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가치와, 당신의 소중함, 당신이 터득한 진리의 독자성, 당신의 사고과정이 갖는 힘을 배우고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주위에 있는 생명 가운데서 당신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기 시작하였다. 당신은 이 모든 진실들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경험하고 깊이 숙고함으로써, 당신은 이러한 것들을 존재의 이상으로서 또한 자아왕국에 실현될 진실로서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신이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더 깊이 이해해야 할 것이 남아 있고, 존재의 한없는 상태는 아직 보지도, 경험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다. 또한 지금 현재 표현하고 있는 것들을 먼저 알고 이해할 때까지는 그러한 것들을 이해하거나 이상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 지혜가 쌓이고 쌓여야만 더욱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먼저 당신 자신의 지고한 아름다움을 알고 난 뒤 당신 자신에 대해 사랑과 동정심을 표현해 보지 않고서는, 당신은 모든 생명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거나 알 수 없고 또 다른 이에 대한 사랑과 동정심을 깊이 있게 표현할 수 없다. 자아에 대한 사랑이 실제로 이해가 되면, 그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 이외의 생명까지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신의 이해가 확장하게 된다. 그리고 일단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고 나면, 당신 밖에 있다고 느껴지는 생명마저도 바로 당신 자신임을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알겠는가?
그래서 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당신은 당신의 사고방식과 감성을 표현하는 태도에 걸맞은 의식-이해의 세상으로 가게 된다. 당신은 더 무한한 이해가 가능한 세상으로 갈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아직 당신 자신의 현실이 되지 않았으므로, 그와 같은 이해의 경지가 실재한다는 것을 당신이 아직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스터 :
그러면 이곳을 떠날 때 이 세상으로 돌아오건 다른 세상으로 가건 우리의 삶은 항상 우리가 생각하는 그대로일 것이다.
람타 :
정확하게 이해하였다. 그것이 당신의 사고방식에서 더 무한해지는 법을 내가 당신에게 가르치고 있는 이유이다. 당신의 생각이 더 무한해질수록, 당신 삶도 그렇게 된다. -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당신이 이곳, 생각과 감성이라는 당신의 왕국에 창조하는 세계가 더 클수록, 이곳을 떠날 때나 당신이 선택하여 다시 돌아왔을 때, 당신은 더 큰 세상을 경험할 것이다.
죄책감, 그리고 자신이나 남에 대한 비판, 형제에 대한 비꼼과 증오 따위에 젖어 있는 이들은 이 세상을 떠난다 해도 그 경험을 계속하게 되고 그것으로부터 배움을 얻을 때까지 계속된다. - 그러한 것들로 그들 자신을 가득 채우고 마침내 그들이 가야 할 더 바람직한 길이나 경험해야 할 더 큰 세상이 있을 것이라고 깨닫게 될 때까지.
마스터 :
일곱 세상이 있다고 했다. 다른 세상들에 대해서 설명 해 줄 수 있겠는가? 특히 일곱 번째 세상에 대해서.
람타 :
당신이 있는 이곳은 첫 번째 세상이다. 3차원 지각이 가능한 곳이다. 이곳에서 실체는 하느님을 물질이라는 형태로 이해한다. 이곳에서 얻는 것은 훌륭한 것이다. 탄생의 과정을 겪어 이 세상에 태어나고 육신의 한계와 본능을 견디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모든 수준의 의식과 이해가 존재하는 곳이다. 그래서 이곳은 ‘표현되는 하느님’ 또는 본보기 세상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감성적 이해를 넓히기 위하여 물질적 형태로 의식을 나타내고 목격할 수 있는 곳이다. 수많은 세상이 있지만 당신이 있는 이 지구라는 곳은 본보기 세상으로서 실체가 육체를 빌려 경험하고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
두 번째 세상은 고통과 후회, 죄책감을 이해하는 경험을 쌓는 곳이다.
세 번째 세상은 힘을 실현하는 세계이다. 이곳에서는 다른 이들을 통제하고 다스리고자 한다.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성이나 육체적인 수단을 동원하지 않고 ‘마음속의 생각’으로 그렇게 하며 남들을 자기의 관점으로 보게 만들려고 한다.
네 번째는 사랑의 세상이다. 이 세상에서 사는 이들은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깊이를 표현하지 못한다. 빛의 존재로서 진정한 사랑을 느끼지만, 그러나 그것을 표현할 능력이 없다.
다섯 번째는 낙원이라는 곳이다. 이곳은 ‘황금빛’이라고 하는 것으로 둘러싸인 첫 번째 세상이다. 생각해 보라, 태양에서 나오는 빛과 같은 황금빛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을. 다섯 번째 세상에서는 그 빛이 모든 것을 감싸고 있다. 모든 것들은 고유한 색을 가지고 그 싱그러움을 드러낸다. 그곳엔 또 밤이 없이 황금빛만이 있다. 그리고 음악, 아름다운 음악이 항상 들린다. 모든 것을 감싸는 빛은 그 색상에 따라 경이롭고 조화롭게 움직이면서 진동을 한다. 이 조화로운 운동이 ‘생명의 숨’이다. 공기를 호흡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낙원의 세상에서는 소리와 음악으로 숨을 쉬고 빛 속에 산다
알다시피, 첫 번째 세상인 당신들이 사는 이 세상에도 육욕과 고통, 그리로 힘을 이해하고 통달한 이들이 있다. 그들은 현실세계에 사랑을 가져왔다. 그들은 이곳에서 사랑의 표현을 비교적 쉽게 성취할 수 있었다.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단계의 이해는 이 본보기 세상에서 쉽게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여지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첫 번째 세상에 있으면서 사랑을 베푸는 이들, 말과 행동으로 사랑을 밖으로 표현하며 자신의 삶을 사랑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이들은 이 세상을 떠나면 다섯 번째로 간다. 낙원이라는 세상에는 수십 억 년이나 나이를 먹은 이들도 있으며, 이들은 이 낙원이 너무나 멋진 곳이어서 그 위에 다른 세상이 더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다섯 번째 세상에서 사는 이들은 사랑을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한 순간에 원하는 것은 바로 나타나게 된다. 고기 잡는 것을 좋아하는 낚시꾼이 낚시를 하고자 원하기만 하면, 그 순간 그는 바로 앞에 호수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호수에는 사이프러스와 포플러 같이 그가 좋아하는 나무가 우거져 있다. 그 호수의 가을 모습을 좋아하면 포플러는 이제 계피 색깔이 되고 사이프러스는 짙은 에메랄드빛으로 물든다. 낚싯줄을 던지면서 신선한 바람을 원하면 시원한 미풍이 호수를 가로지르면서 불어온다. 그 풍치 좋은 호수 한가운데로 작고 연약한 지렁이 미끼를 던지고 어떤 고기를 잡고 싶다고 원하면 그것을 잡게 된다. 그 고기는 이 지구의 고기와 같은 모습이다. 이제 그 고기를 자신이 꿈꾸던 집으로 가지고 가서 조리를 한다. 그는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고 그렇게 하는 것을 사랑한다. 이곳에 사는 실체들은 그보다 더 좋은 곳은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그곳을 낙원이라고 부른다. 사랑을 깨닫고 표현하지 않는 이들은 도달하기 어려운 곳이다.
다섯 번째 세상에서 한동안 머물고 나면 모든 것을 둘러싸는 빛의 근원 무엇인가, 그리고 그 자신은 무슨 자격으로 그곳에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많은 이들은 왜 자신이 그곳에 있을 수 있는지 의아해하지 않는다. 그저 단순히 받아들인다. 그러다 결국 곰곰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 빛과 음악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러면 그때 눈부신 생명력의 에너지를 보게 된다. 이것은 평등함을 가지고 있는 에너지로서 빛과 꽃과 고기와 호수와 가을의 계피색 포플러, 모두가 대등하게 보인다. 이때부터 만물의 평등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고, 아무 것도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알기 시작한다. 이것을 보기 시작하면 사랑을 표현함으로써 이해하고 알게 되었던 그 모든 사랑을 가지고 온갖 사물, 온갖 실체의 하나됨을 숙고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섯 번째 세상으로 진보한다.
여섯 번째 세상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나무나 바람,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자신과 별개라고 믿고 있는 이에게, 다른 모든 것과 완전한 하나이면서 동시에 하나인 그것과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설명해 줄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여섯 번째 세상도 일곱 번째의 입구일 따름이다. 일곱 번째에서는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에 따라 당신의 실체는 완전하게 그렇게 되어 버린다 - 그래서 ‘하나됨 안의 하느님’만을 보고 그 하나됨의 세상에 살 때, 그는 자신이 보는 그것이 되며, 또 그것과 더불어 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치의 초상관성(超相關性)과 무상(無上)은 일곱 번째 세상의 특징이다. 그 세상으로 가는 길은 여섯 번째 수준을 이해하는 것, 즉 당신의 본래 모습을 아는 것이다. 당신의 본모습은 순수한 하느님, 순수한 논리, 순수한 생각, 순수한 생명, 순수한 빛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의 전체로서 본질이며 토대이다.
이제 일곱 번째이다. 눈부신 것보다 더 눈부신 것을 상상해 보라. 그 밝음의 진화하는 핵심은 색깔이 더 이상 밝음을 가질 수 없는 그러한 빛의 근원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눈부신 빛을 낸다. 밝음의 핵심에선 이러한 경이로움이 번쩍인다. 핵심이 있는 바다는 움직이고 팽창하며 위로 굽이쳐 오른다. 핵심이 굽이쳐 오르면 핵심에서 나오는 밝음은 빛의 열병식을 만들어 낸다. 빛의 다발이 외곽으로 퍼져 나가면서 그 핵심부는 계속 진화한다. 그리고 존재한다.
그 핵심에 다다르는 이가 바로 당신이다. 당신이라고 하는, 그 핵심에 다다라 밝음을 더하며 장관을 만들어 내는 이는 핵심에 대한 생각을 숙고하며 독특한 형태로 그 핵심이 되어 지속해 온 존재다.
핵심을 숙고하고 그와 하나가 된 당신은 모든 생명이 태어나는 근원이 된다. 핵심이 밝게 빛날 때 그곳에서 나오는 것은 생각이다. 독특한 형태로 지속되는 당신의 생각에서부터 모든 생명의 의식이 양육되고 확장된다.
내 설명은 매우 모자란 것이다. 이 일곱 번째에 대한 비전은 공간과 시간, 측정의 한계를 넘는 것이다. 언어의 한계를 넘어 감성적인 이해에까지 다다른다. 그러나 마스터,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진화하고 이해를 넓히고, 한 순간 한 순간, 한 걸음 한 걸음, 깨달음에 깨달음을 더함에 따라, 당신의 미래는 점점 더 확장이 되고 마침내 당신의 감성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감쌀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가 당신이 기쁨을 느낄 때이다. 이것이 일곱 번째 세상이고 하느님인 것이다. 여기가 모든 것이 마지막으로 다다르게 될 종착점이다.
*원추세포로 이루어진 당신들의 눈 : 오라를 보기 위해서는 간상세포를 이용한다. 어떤 물체의 오라를 보기 위해서는 그 물체의 주위에 있는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초점의 바깥 부분을 통해 그 물체를 보는 방식으로 오라 읽기 훈련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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