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지구·미래/다른세상

차원 세계의 특수 메카니즘

영원오늘 2007. 6. 19. 23:32

이영만 씀

 

차원 세계의 특수 메카니즘 (1)


2005년을 살고 있는 우리들... 아니 내 자신을 돌이켜 보면 얼마나 외부로 부터 쇠뇌를 당해 왔는지, 단지 놀랍기만 할 뿐이다.

특히 물질세계가 지배하고 있는 세계관은 왜 그토록 세뇌를 당해야만 했을까? 단지 나의 마스터 유전자가 내가 아닌 외부의 다른 집단 하의 통제에 들어갔기 때문인가? 아니면 끊임없는 이 세뇌의 전파에 내가 대항할 힘이 없어서 일까?

나는 지금까지 인류역사 동안 불변하게 지켜져 왔던 ‘3차원 외부 공간의 절대 진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즉, 이세상은 외부에 존재하여, 모든 물질은 나와 상관이 없이 존재한다고 생각 하는 것을 말한다. 거대한 건물과, 도시, 사람들, 국가, 이 행성 자체, 그리고 우주 끝까지 어떤 신념을 신봉 하였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같다. ‘나와 상관없이 외부에 세상이 존재 한다는 것.’

그동안 나를 세뇌시켜 왔던 부류는 어떤 부류 이었던가? 주로 학교에서 받은 교육, 즉 선생이나 TV같은 뉴스매체, 어느 것 하나 사념에 절대복종 외에 허락 하지 않았던, 각종 종교단체나, 각종 이익 단체들...
사실 돌이켜 보면 그들은 그런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직종에 불과 할뿐 그들이 존재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의 삶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부류들이었다.
사실 그들의 말은 모두 거짓이었고, 속임수 이었으며, 그들 또한 다른 통제 부류의 집단의 지시를 받고 하는 일에 불과 할뿐이었다.        
과연 그들을 모두 거짓말쟁이로 몰아갈 정도로 나는 자신감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새로운 사실을 얻었을까?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허블망원경이 촬영한 찬란한 우주를 보면서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거나 공경 심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을 상당히 무시해왔으며, 외부 세계관을 ‘철학자, 신학자’들에 의존할 정도로 상당히 수동적이 이었으며 게을렀다.
그래서 아마 나와 상관없이 3차원 세계가 존재한다는 이론을 쉽게 받아 들였는지 모른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꿈속의 세계를 통해서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현실 세계도 일종의 단편적인 홀로그램 영상물임을 간파 했다. 꿈속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구분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임을 알 아 차리면서 사실 그 간격이 존재 하지 않음을 알았다. 일종의 사물이나 시공간도, 생각의 구분인데 사실 이것들의 근거는 존재 하지 않는다. ‘구분’도 생각이며, 결국 ‘구분 지어 진 것’도 생각이다. 증명 과정 없이 너무 직관적인 것 같지만, 사실 직관적인 것이 옳은 것이다.

‘여러분의 세계는 여러분 스스로 창조 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외부 세상을 내 자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일까?

이 사실을 파악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것은 진실이다. 나는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으며, 일련의 이러한 사실을 떠받을 수 있는 메커니즘이 존재 한다. 물론 그 메커니즘은 모두 처음 들어 보는 생소한 것이 된다 하더라도...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줄 화학약품은 이미 개발되었다. (그 약품명은 여기서 밝히지 않겠다.) 인간의 신경계에 손을 대기 시작한 과학자들은 조금은 알고 있을 것이지만, 이미 정부로부터 강력하게 통제 당하면서 일반인은 거의 지식을 공유 하지 못한 것은 당연 하다.

‘여러분의 세계는 여러분 스스로 창조 한 것이다.’ 사실 이 명제는 인류가 앞으로 온전하며, 통합적인 과학을 발전 시켜 나가면서 발전시키는 것이며, 3차원 우주뿐만 아니라 무한한 다른 차원의 문을 여는 새로운 영역의 시작이 될 것이다.

먼저 공간에 대한 고찰이다. 우리는 ‘크다’, ‘작다’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고대 철학자나 현대 과학자들은 무한히 큰 개념과, 무한히 작은 개념에 대해서 매우 궁금하게 생각해 왔다. ‘도대체 무한히 작다면 어떤 현상이 발생 할까?’ 이런 질문은 과학자들을 즐겁거나 머리 아프게 하는 질문이다. 최근의 초끈이론은 이러한 개념에 새로운 견지를 하나 더 했다. 물론 수학 가설적 이론이기 이지만, 엄청나게 작은 것은 다시 엄청나게 커 질 수 있다는 것. 크기에 역수가 존재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인간이 오감으로 사물의 영역, 즉 3차원 공간을 감지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전자기파의 전체 파장에서 거의 플랑크상수 크기에 불과하다. 달리 말하면 우리의 세상은 실은 플랑크상수 크기의 엄청나게 작은 세상에 불 과 할 수 있다. 아예, 크기의 개념을 모조리 상실해 버린다면?

나와 친구 2명이 탁자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다. 탁자위에 조기 1마리가 있는데 서로가 이 조기를 보고 있다. 과연 조기는 몇 마리일까? 백이면 백 ‘1마리이다.’ 라고 말할 것이다. 3마리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물론 1마리라는 견해는 강력한 증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3마리라는 견해보다 앞서 있다. 왜냐하면 누군가 1명이 조기를 먹어 버리면 나머지 2명은 조기를 못 먹기 때문이다. 즉, 이 사실 때문에 조기가 3마리라고 말하는 견해는 정신병자나 할 수 있는 말로 여기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엄청난 공간의 비밀이 숨겨 있다. 누구하나 조기가 3마리라고 의심하지 않는 것은 아마 너무 6센스가 무뎌있다라고 외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사실 나와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은 서로 공간을 점유 하지 않는다. 전부 개개인이 만들어 놓은 개인공동구역일 뿐이다. 하지만 3차원 공간에서 물질은 가느다란 실처럼 얽혀 있어서 서로가 공동으로 볼 수 있는 지역이 존재 하는데 그것 때문에 조기를 누가 먹어 버리면 나머지 사람이 먹지 못하는 이유가 숨어 있는 것이다.
그 얽혀 있는 망은 정신적인 텔레파시 망이며 그것이 3차원 공간을 만드는 규약인 것이다. 만약 다른 한사람이 조기를 먹는데, 다른 사람도 또 먹을 수 있다면, 3차원 공간의 규약은 깨져 버리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서로 볼 수 없게 되며 다른 차원에서의 소통밖에 할 수 없으므로, 사실 3차원 공간에서는 만날 수 가 없는 것이다. 3차원 공간에서 서로 얼굴을 보고 만나며, 육체간의 접촉을 느낄 정도라면, 엄밀한 3차원 공간의 규약을 지켜야 하며 친구가 먼저 조기를 먹었더라도, 섭섭함을 달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질은 순간순간 자신의 감정 몰입도에 따라 생성 되는 것이다. 배후에는 자신이 느끼는 자아가 아니라 심연속의 또 다른 자아의 강력한 에너지장이 있으며, 이는 한차원에 속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3차원 세계의 메커니즘은 사실상 엄청나게 복잡하다.

‘여러분의 세계는 여러분 스스로 창조 한 것이다.’는  마스터 유전자의 핵심적 내용이 틀림없다.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여는 열쇠임인 동시에, 인간의 온전함을 일깨우는 첫 포인트다.

물론 이러한 근거에는 더욱더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

그것은 다음시간에 계속 살펴보겠다.

‘물질을 만드는 배후에는 어떤 힘이 존재 하는가?’ - 02
‘3차원 현실적인 사건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 03
‘심연속에 있는 자아는 어떠한 존재인가?’ - 04
‘시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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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극 양상(三極 樣相)
차원 세계의 특수 메카니즘 (2)


-물질을 만드는 배후에는 어떠한 힘이 존재 하는가? -


01의 서두에서는 자기 자신이 이 3차원 세계를 만든다는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언급 하였다. 하지만 이 명제를 받쳐 줄만한 우주 근원에 대한 우리들의 지식은 거의 없는 관계로 사실상 믿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현재 보잉기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자동차, 컴퓨터, 핸드폰 같은 공업제품들이 발달하여 ‘문명’이 발달했다고 우리들은 생각 할 수 있겠으나 그것은 착각이다. 사실, 현재의 문명은 영화 스타워즈식으로 표현하면 ‘포스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원시시대나, 암흑시대에 비유 할 수 있겠다.

‘포스에 대한 지식’이 없다고 해서 그냥 호기심을 접어 버리고 그냥 살 수 는 없다. 어쩌면 그것은 개인 취향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나름대로 이 지식을 얻는 것에 삶을 바칠만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을 표현 해 주는 사물은 무엇일까? 물론 다들 사시는 환경에 따라 틀리겠지만, 그것은 ‘자신의 몸’이다. 우리는 몸이 단백질과 수조개의 세포로 구성 되어 있다고 배웠다. TV나 책에서 또는 학교에서 생체에 대한 여러 가지 지식을 배웠고, 일부는 계속 공유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지식으로는 육체의 숨겨진 완전한 진실을 알기가 어렵다. 우리는 여러 가지 사념이나 관념으로 육체를 제한하고 있다. 사실 육체는 제한이 없다.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큰 두려움인 ‘죽음’ 조차도 육체는 초월하고 있다.  육체를 창조한 그 배후의 에너지장의 존재를 알면, 사실 육체는 영원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남들이 죽는 것을 보고, 육체가 늙거나 혹은 사고로 파손 되는 것을 목격 하고 자신도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 하지만, 그것 역시 모두 배후의 에너지 장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에 불과하다. 우리 자신에게는 ‘죽음’은 존재 하지 않는다.

우리가 외부에 있다고 생각되는 ‘외물(外物)’은 모두 우리 자신의 육체와 내적인 자아가 만들어 놓은 것들이다. ‘자아’는 여러 층으로 구분되어 지는데 사실 그 ‘자아’층들이 이 우주의 구성의 핵심(核心)이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수십억 광년에 걸쳐 있는 초신성이나 또는 전자나 쿼크가 우주의 핵심(核心)이라고 생각하면 아주 크게 벗어 나있는 것이다.
자아층에 대한 일련의 지식을 쌓고 그것을 우주의 중심에 대한 인식으로 가져오게 되면 반드시 인류 사회에 커다란 혁명을 불러 올 수가 있다. 그것은 3차원 외부 세상에 대한 탐구는 종결되고 내부 세계로 향하는 전환점인 것이다. 3차원 외부 세계는 내부 자아가 만들어놓은 극히 일부의 ‘이미지’에 불과 한 것이며 자아의 내부 세상에 무한한 세계의 실상이 존재 한다는 것은 지구의 문명체제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정말 살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우리들 자신의 내면에 어떤 ‘바다’같은 곳이 존재 하는데 그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다. 우리들 자신은 아침에 잠에서 깨고 저녁에 잠잘 때 까지 이‘에고’라고 녀석과 자신을 동일시하는데 사실 ‘에고’라는 녀석은 ‘바다’위를 떠다니는 ‘기름막’같은 존재이다. 특히 그 녀석은 ‘사회성’에 아주 탁월한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에 사실 이 녀석과 나를 동일시 하지 않으면 3차원 세계에서 밥먹고 살기가 힘이 든다. 에고 또한 단순한 존재가 아니고, 상당히 복잡한 존재이며 무조건 배척해야할 상대는 아니다. 모두 자아의 일부로서 필요한 존재이지만, 문제는 ‘에고’가 침범하지 말아야할 영역까지 모두 침범 하는 것이 문제이다. 영원한 갈등을 불러 오는 ‘에고’의 존재는 ‘퍼스널리티 완성’이라는 완전한 인격체를 가져야만 비로소 그 기능을 온전하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는 에고가 활동하는 우리가 깨어 있다고 착각하는 대낮에 ‘내면의 자아’의 커뮤니케이션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자아의 여러 층은 우리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물질로 만들어 낸다. 그 물질은 어떤 의식을 가진 전자기개체들의 조합으로 만들어 지는데, 전자기개체들 또한 사념의 원료이기도 하다. 주변의 산이나, 아파트, 뛰어 노는 아이들, 나무, 울어대는 매미들... 모두 실상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 진다. 이들의 의식은 서로 간에 엄청난 공조와 동의하에 우리들 자신의 ‘의지’를 반영하여 ‘강도’, ‘내구력’을 결정하게 된다. 행성 지구는 단지 규소나 철로 만들어진 무생물의 존재가 아니다. ‘지구’또한 집단의식의 결정체 이며 그 자신 또한 여러분처럼 의식을 가지고 삶을 영위 하고 있다. 산이나 돌맹이도 마찬가지이다. 그들 또한 우리들 자신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고 있다. 서로의 의식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무한한 세계를 창조 하고 있다.

생각은 에너지파동이다. 끊임없이 흘러 들어가서 흘러 나간다. 이미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것은 공간과 시간에 상관없이 존재한다. 이런 것들은 차원간 차원 자아와 자아들 간의 긴밀한 협조 아래 에너지망의 응축점으로부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통해 현실화 되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생각의 산물이 물질화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임계점에 도달 하지 못하면 그냥 사념의 개체들로만 존재하게 된다. 우리들 자신의 육체에서는 관측되기가 쉽지 않는, 암호화된 신호들이 나오는데 그것들은 물질화될 대상들의 데이터를 담고 있다. 즉, 내면의 자아는 다시 육체를 이용하여 물질을 창조 하는 것이다.

특히, 내분비계중 송과선이 발생 시키는 효소는 물질을 만들 때 어떤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어떤 현실을 창조 하고자 할 경우 송과선을 사용하면 효과를 볼 수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7살부터 내분비계가 대부분 정지 한다는 것은 인간의 비극일지도 모른다.)
육체속을 흐르는 혈액속의 Fe또한 고도의 암호화된 데이터의 종류이며 주로 지구의 의식이나 전자기개체와 연결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놀라운 사실에도 불구하고 3차원공간이 외부에 자신과 상관없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가장 큰이유중 하나가 ‘과학적 사실’이다. 모든 사실은 이 과학적 관측결과와 사실들과 강력하게 충돌하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일련의 이러한 ‘진실’은 과학적 사실과 하등의 관계도 없다. 과학은 외부 물질계와 정신계(수학)통합으로 만들어 지는데 이것들 모두 내부 자아에서 만들어 지기 때문에 과학의 관측결과와 진실은 전혀 관련성이 없게 되는 것이다. 즉, 과학적 사실로 어떤 내면을 탐구 한다는 것 자체는 커다란 오류이며, 내면의 무한한 진정한 ‘그 우주’ 또한 탐구가 되어 질 수 없는 것이다. 즉,  우리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객관적 세계’가 우위에 있고 ‘주관적 세계’가 안에 있다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이처럼 과학으로 모든 것을 탐구 하려는 잘못을 범한 것이다. 실은 주관적인 세계안에 객관적인 세계가 있는 것인데 말이다.

실례를 들어 보면 거의 1만년전에 만들어진 대피라미드와 비밀의 방들을 볼 수 가 있다. 현대의 과학적 지식이 거의 전무 하였던 그때 어떻게 지금의 과학지식으로도 수용 할 수 없을 말큼 놀라운 구조물을 만들었을까? 실은 더욱더 놀라운 것은 대피라미드보다 그 밑에 있는 ‘비밀의 방’인데 그것은 지금의 과학기술을 아무리 발전 시켜도 절대로 알아 낼 수 없는 사실들이 숨어 있다.(인간의 정신을 영원이 사물의 외부로 분리해버리는 이상 말이다.)

지동설과 뉴턴식 수학적 과학모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무수한 과학적 사실과 검증된 이론들...
돌이켜 보자. 사실 ICBM같은 핵무기나, 항공모함에서 이륙하는 전투기, 괴음을 내고 질주하는 전차들...이것들이 여러분을 짓누르는 가장 강력한 도구 들이며 모두 ‘과학’의 산물이다.
여러분 자신이 현실을 창조한다는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아누나킨과 시온주의를 섬기는 유태인들이 일부러 여러분을 압박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도구 들이다.
물론 통제의 수단인 여러 모델도 존재한다. 고대에는 왕본주의나, 제정일치, 지금은 국가나 자본주의 체제이다.
(다음 시간에는 여러분 자신과 엄청난 충돌을 일으키는 군사무기와 자동차 핸드폰, 컴퓨터와 같은 도구들, 그리고 현 문명체제의 전반에 대해서 다루어 보겠다.)

3차원 세계의 여러분의 모든 지식은 완전히 깡끄리 버려도 근본적인 진리와 아무런 하등의 관계도 없다. 어차피 모든 우주는 자신의 주관적 세계에 잠겨 있다. 40억광년의 퀘이사가 떠다니는 광대한 은하계집단이 우주가 아니라 자신의 심연속의 무한한 바다가 우주이다. 차원은 무수히 연결되어 걸쳐 있으며 항상 중심은 우리들 자신이다. 사물은 덧없으며 항상 사라지고 새로 생성된다. 여러분 주의의 사람들은 아주 소중한 존재이다. 일련의 진실을 깨닫지 못하는 이상 그 사람들은 여러분의 영원한 투쟁의 대상이거나, 자신을 위해 조종당하는 소모품쯤으로 여기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당신은 패배한 것이다. 영원이 이 상황에 갇히는 것이다.’
최소한의 동반자로 여겨야 한다. 높고 낮음은 존재 하지 않는다. 사물은 여러분 자신의 행복을 위해 존재 하는 것이지, 그 이상의 그 이하의 존재도 아닌 것이다.
어떠한 소유의 형태도 사라져야 한다. 분활적인 기이한 정신이상의 상태는 버려야 한다. 에고를 뚫고 내려와서 내면의 자아가 그 위로 올라 와야 한다. 더 이상 거짓말을 말할 필요도 속일 필요도 없다. 생각은 뒤로 하고 느낌이 활성화 되야 한다.

‘마스터 유전자를 여러분이 통제하는 그날을 위해서’

3차원 세계의 특수 메카니즘 (3)  --- 사념체의 공격


(안녕하세요? 이영만입니다. 눈치채신분도 계시겠지만, 사실 저 휴가입니다. ^^; 하지만 휴가 기간 동안 어디 놀러 가지는 않았고, 거짓말 좀 보태서 여전히 진리??에 매도 중입니다. 어떤 글을 써서 뭔가 올린다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지요? 하지만, 가만히 있는 것 보다는 제가 아는 지식을 좀 공유해보자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글은 정보 전달 효율성을 위해 공손한 표현??은 자제하고 있으니...양해좀 부탁 드립니다.)



전생퇴행을 해보면 ‘전쟁’과 관련이 없는 사람은 없다. 모두 삶이 전쟁터에서 시작해서 전쟁과 관련되어 끝난다. 지구에서 삶을 살았다면 바로 ‘전쟁’은 삶의 일부 일 수밖에 없다.
특히 개인적으로 나는 2차 세계대전의 악몽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히틀러의 나치 사념체가 이직도 나에게 미치고 있을 정도이다. 나뿐만 아니라 수억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세계대전은 모든 사람들에게 결국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마 지금 문명이 이러한 형국이라면 21세기도 20세기와 별반 다를 바 없을 것 같다. 다만 20세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21세기는 결국 전쟁으로 인류가 파멸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사실 지금 내가 총을 들고 전쟁터에 다시 나간다면 악착같이 살기 위해서 서로에게 총질을 할 의도는 전혀 없을 듯하다. 그런 것들은(살기위해 서로 죽이는일) 이젠 예전의 일(20세가나 중세시대의 일)이지 지금은 아닌 것 같다. 나의 느낌으로는 앞으로 전쟁運이 많이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남아 있는 것으로 감지가 된다.

‘현실을 내가 창조 했다면 전쟁은 왜 벌어지는 것일까?’ 라는 질문은 내 자신이 끊임없이 해왔던 질문이다. 포격을 맞아 자신의 집이 싸그리 날아 가버리거나, 아이를 부둥켜 앉고 흐느끼고 있는 여인네들을 보고 좋아 하는 사람은 없다. 나의 가족 나의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사랑하는 사람마저 영원히 헤어지는 그런 형국을 즐기는 사람은 이 세상에 절대로 존재 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극은 여전히 계속 되고 있다. 미국이 일부러 세계를 향하여 모두에게 적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전쟁은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 웬만해서는 군중들이 일고 들어나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발생되기가 힘들다. 하지만 개인보다 집단이, 그리고 군중이 더욱더 난폭해지며 공격성은 배가 된다. 왜냐하면 군중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의 조작이 은밀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스터 유전자를 상실한 인류를 가장 통제하기 쉽게 하는 방법들에 대한 것들은 오랜 역사를 통해 개발되어 왔다. 가장 먼저 쓰인 방법이고, 지금도 쓰이며 또한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공포’이다.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마구 조장 하는 것이다. ‘공개처형’이나 ‘고문’등의 방법이 대표적이다. 특히 神을 인간 외부에 두어 강력한 힘을 내부에서 외부로 완전히 뺏어 가는 방법이 쓰였다. 그것이 바로 ‘종교’의 시초이다. 특히 ‘종교’와 ‘공포’는 같이 쓰면 엄청난 효과를 함께 누릴 수 있다. 그래서 항상 ‘종교’가 지배한 세상에는 끊임없는 ‘공포’와 ‘학살’, ‘죽음’,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 스타워즈 식으로 표현하면, 어두운 측면의 에너지를 이용하는 자들이 이것들의 대가(大家)들이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먼 미래까지 이 어두운 에너지가 사람들을 파고들게 할 수 있는 것일지 모두 계산함 셈이었다.

과학이라는 새로운 혁명의 물결을 타기 시작 했지만, 역시 과학의 힘으로 개발된 전쟁무기는 훨씬더 무지막지 해졌다. 100만이 넘게 사는 도시를 몇 시간만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20세기 초기에 지구에는 유달리 보기 힘든 사건이 일어났는데 바로 ‘사념체 전성시대’가 열리기 시작 한 것이다. 공식용어로는 ‘이데올로기’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것들은 사실 사념체라는 4차원의 기생(寄生)적인 생물체같은 존재이다. 사념체의 전성시대는 곧, 엄청난 대규모 전쟁을 예고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쉽게 빨려 들어갔다. 20시 초에는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중세시대를 못 벗어나고 있는데다가, 막상 들이 닥친 소수의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지배와 어설픈 문명화의 작업과 더불어 수많은 공포가 결국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 간 것이다. 특히, 자본의 흐름과 언론이 배후에서 조작 하고 있는 것도 한 몫을 거들었다.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은 20세가 후반에 갑자기 다른 별에서 오지 않는 이상, 모두 20세기 초에 톡톡한 댓가를 치렀을 것이다. 그만큼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지 않을까?

사념체, 즉 이데올로기는 그냥 사념체 일뿐이다. ‘나찌즘, 공산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모두 똑같은 존재들이다. 나쁘거나 좋거나, 높거나 낮거나, 상대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은 모두 환상이다. 우리들 자신은 항상 모든 물질 세상이 자신에 의해 창조 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외부에 세상이 존재하며 그 어떤 절대적인 힘이 외부에 존재한다고 믿는 관계로 자연스레 사념체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다. 20세기부터 발달된 무선전파 기술에 의해 다수의 군중들이 전파에 의해 사념을 머릿속에 끊임없이 심게 되어 진다. 사실 마스터유전자를 상실해버린 인류에게 어떤 ‘판단’이라는 것은 내리기 힘들게 된다. 사념이 곧, 선이고 악이 되는 형국에서 자연스럽게 모두 군장을 싸들고, 전쟁터에 나가는 것은 당연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어떤 이데올로기란 사념 자체에 엄청난 거부 반응이 있었다. 사실 내 삶에 이런 것들이 침투하는 것 자체를 거부 하였다. 이글을 보는 분들도 한번쯤 상기 해보기 바란다.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많은 사념들을 받아들이기 강요당했는지를...

사념체가 곧, 法이고 국가이며, 통제수단이고, 여러분을 모두 전쟁터에 불러 오게 할 수 있는 강력한 파워이다. 이것이 바로 아누나킨과 그를 신봉하는 시온주의 유대인들이 여러분을 통치하는 방법이다. 여러분이 외부세상에 이 세상을 움직이는 통제권과 파워가 있다고 믿는 이상 영원히 이들 노예가 될 것이다.

이제 체면에서 깨어나야 한다. 사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옳고 그른 것, 좋고 나쁜 것을 부여하는 것을 당장 그만 두어야 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착각 하는 것도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사념이란 존재에 선과 악을 부여 해서는 더더욱이 안되며, 사념이 우주의 진리를 설명 해 줄 수도 없는 것이다.


지금 보는 세계를 자신이 창조해낸다는 사실을 아는 이상 자신의 소중한 삶을 사념체에게 맞기지 말아야 한다. 물론 사념체는 개인뿐만아니라 집단무의식 영역까지 침투해 있는 관계로, 이들을 떼어내기는 힘들지 모른다. ‘국가’, ‘영토’, ‘민족’이란 사념의 영역은 집단무의식의 영역에 속해 있으므로 개인 의지의 반영이 미약 해 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가장 우선 되어야 할 사항은 여러분 자신의 새로운 삶에 대한 갈망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본다. 언제까지 전쟁터를 뛰어 돌아다니며 목숨을 바쳐, 자본의 노예와 거지로 살아야 하겠는가? 이제는 완벽할 정도로 무식한 공업제품 덕에 지구라는 행성이 파멸 일보 직전까지 놓여 있다.
나는 제안 하는 바이다.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이 강력한 의지로 ‘집단무의식영역’에 호소하는 요청해주기를 바라고, 그러면 분명히 문명체제의 전환을 이룰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삶의 온전성은 반드시 우리들 자신이 스스로 확보해야할 것 들이다. 지구가 태어나기 전이나 파멸한 후이나 변하지 않는 진실은 이 세상은 스스로가 창조하여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다. 외제 외부에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파워들이나 통제권들은 이제부터 회수할 시점에 온 것이다.


“모든 중심은 우리들 자신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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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無心)
 (2005.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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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스럽겠습니다만, 요 근래에 올려주신 글들을 명상수행 란이나 사랑과지혜 쪽에 다시 올려주심이 어떨 런지? 예, 물론 이 글을 여기에 두시고, 새로이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냥 묻히기엔 좀 아깝죠.
 (2005.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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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네...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글이 다 완성되면, 오타수정이나 맞춤법 검사 후에 그게시판에 다시 게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5.08.05)  
ㄷㄷㄷ 
"삶의 온전성은 반드시 우리들 자신이 스스로 확보해야할 것 들이다."
“모든 중심은 우리들 자신에게 있다.”

예~~~그리하여 실로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인 것이겠죠.
외부에 뿌려진,쏠려진 우리의 중심을...
우리안으로(구체적으로 우리 몸안 중심으로)..되돌려,옮겨와야 겠지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