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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이 언급한 '유대전쟁사' 란 어떤 역사였는가?

영원오늘 2007. 7. 4. 15:30

글쓴이 : 선구자

 

이문열이 현재의 한국의 홍위병들의 어리석음을 비유하여 예를 든 유대의 로마와의 전쟁 역사는 요세푸스가 쓴 "유대전쟁사" 에 자세하게 잘 나온다.

기원 70년경 유대 왕국은 로마 총독과 로마군이 주둔하고 있었으나 유대인 헤롯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이른바 "분봉왕" 이다,,
유대왕국은 현재 팔레스타인의 아주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서교역의 요충지로서 많은 부를 쌓아서 번영하고 있었다, 주위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론 등이 이곳을 침공하여 유대인들을 포로로 많이 끌고 갔던 이유도 바로 이 유대왕국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었다.
로마군이 유대땅으로 들어오기전 이 유대 왕국은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 셀레우커스가 세운 시리아의 셀레우커스 왕국에 의해 고통을 겪었다,,, 이 셀레우커스 왕국을 무찌르고 예루살렘을 점령한 것이 로마의 유대왕국 진입의 서장이다.

유대왕 헤롯은 이러한 중동의 헤게모니 변화에 재빠르게 편승하여 로마에게서 그 왕국을 다스릴 수 있는 권리를 주어받았다, 이 헤롯왕의 대 로마외교는 아주 교묘하였기 때문에 로마제국도 유대인 헤롯이 유대왕국을 다스리는 것을 용납하였다,, 주위의 다른 나라들은 로마에게 차례차례 멸망당해 그 독립을 잃고 로마의 시리아 총독의 지배를 받게되는 동안에도 유대왕국 하나만은 로마 령 한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자치를 부여받고 유대인에 의해서 다스려졌다.
심지어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도 유대왕국을 자기 제국에 병합하기를 원하였으나 그 애인 안토니우스 장군 조차도 헤롯의 왕국을 멸망시킬 수 없어서, 자기 애인의 요청을 거절할 정도로 유대 왕국의 독립은 유지되고 있었다.

유대왕국의 헤롯왕은 동서교역의 중심지를 기반으로 삼아 경제적으로 아주 번영하였다,, 그가 세운 에루살렘의 유대교 성전은 로마령 중에서도 최고로 거대하고 웅장한 건축물로서 당시 헤롯 왕국의 번영 실상을 말해준다,,, 마사다의 요새가 만들어진 것도 헤롯왕 때였다,, 그 요새의 궁전의 화려함과 견고함은 헤롯 왕국의 전략적 치밀함을 일컬어준다,,,

비록 헤롯의 유대왕국은 로마군이 점령하고 있고, 로마의 보호를 받는 신세였지만, 그것이 유대 왕국에게는 이익도 있었다,, 즉, 주위의 다른 민족들이 감히 유대땅을 넘볼수 없었던 것이다,, 로마군이 주둔하고 지켜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징병도 없었고, 함부러 자기 땅에서 쫓겨날 위험도 없었다,,, 로마인들은 유대왕국과 그 헤롯왕이 로마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변치 않는한, 유대 왕국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지 상관하지 않았다,
다만 로마제국에 대하여 유대인들은 무거운 세금을 바쳐야했다,, 그러나 로마군에게 안보를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유대인 부자들과 귀족들은 그렇게 로마에 세금을 내는 것을 아까와하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은 신약성서에도 그대로 나와있다...
유대인들은 자체적으로 재판도 할 수 있었고,, 예수 크리스트를 재판한 유대 제사장 및 헤롯왕의 이야기가 신약성서에 실린 것을 볼 때에 유대인들은 사실상 자치를 누리고 로마 제국의 판도 내에서 많은 이익을 보고 있었던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 하에서 유대 왕국 안에서는 심각한 모순과 빈부격차가 대두하였다는 것이었다,,즉 저런 이익들을 유대왕국 헤롯왕과 상층부 귀족들 및 유대교 제사장, 바리세인 계급들만 독차지하고 나머지 유대인 평민들에게는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대 평민들은 여전히 심각하게 가난하였고, 결국 이러한 빈부격차와 가난한 현실은 유대 평민들을 광신적인 종교적 열기와 독립 요구로 이끌어갔다...(계속)


이러한 유대 평민들의 불만을 타고 그들을 선동한 무리들이 열심당 "질럿"(Zealot) 들이었다.

그들은 헤롯왕을 비롯한 유대 상층 지배층들은 로마의 꼭두각시로서 제거할 대상이며 로마군을 싸워서 무찌르면 유대 왕국이 독립을 얻을 수 있다고 선동하였다,, 그들은 유대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로마등 외세를 몰아내고 순수한 유대인들만의 나라를 만들자고 하였다. 종교적 광신이 이러한 생각에 불을 부쳤다.

그런데 이러한 움직임을 로마인들도 이용하였다,,,로마총독들은 이런 유대인들을 마구 다루어서 유대인들의 민족감정을 자극하였다,.,이들은 유대에서 더 많은 돈을 거둬서 부자가 되려며는 헤롯왕과 그 백성들이 반목을 하면 할 수록 좋았다..때마침 로마 총독들은 에루살렘에 로마의 신상을 세우는 도발까지 저질렀다.,
이에 분노한 질럿들은 마침 예루살렘 성전에 수많은 신도들이 모인 것을 이용하여 에루살렘에서 봉기하였다..
이것은 "유대반란" 이라고 일컬어지는데,,, 유대왕국 지배층에 대한 , 그리고 로마제국의 질서 내에 있던 유대의 체제에 대한 봉기였기 때문에 로마 측에서 그렇게 일컬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볼 때에는 글쎄,, 이것도 유대인들의 독립투쟁이라고 불러야할까?

실상은 유대반란 아니 독립전쟁의 과정은 그렇게 성스럽지도 거룩하지도 않았다.
유대왕국을 장악한 질럿들은 자기들 유대인들까지도 학살하였다, 에루살렘 성을 농성하고는 그 안의 백성들이 굶주리고 시달려도 항쟁만 부르짖었다. (원래 요세푸스 자신도 질럿이었으나 로마에 패하면서 질럿들의 어리석고 잔인한 항쟁에 반발하여 로마로 전향하였고, 이후 그가 저술한 "유대전쟁사" 에서 질럿들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통렬하게 서술하고 있다...)

로마 황제 네로가 유대 반란 토벌을 명하였다,,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이 그 선봉에서 유대왕국을 향하여 진군하였다,, 이 로마군에는 그동안 유대왕국과 유대인들의 번영을 시셈하던 주위 다른 민족들이 자진하여 군대에 합류하였다,
이들은 유대 땅에 진입하자말자 학살과 약탈등 만행을 저질르며 진군하였다,, 이들에게는 유대인들에 대한 동정심은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었다,, 이런 진압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유대 양민들이 죽어갔다.
마침내 질럿들은 쫓겨서 에루살렘 성전 하나만 남고 모두 섬멸되었다,, 에루살렘 성전에 포위된 시민들은 질럿들의 등쌀에 의해 탈출할 기회도 없었다., 굶주린 끝에 실성하여 자기 자식까지 삶아먹었다는 엄마의 비참한 이야기가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에 전해진다,,,

결국 예루살렘 성은 티투스가 이끄는 로마군에 의해 함락되고 그 안에 있던 시민 수십만이 더불어 학살당하였다,,,질럿들의 어리석은 독립 욕구는 결국 자기 동족 수백만의 죽음과 나라의 멸망을 초래한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었다,,, 헤롯이 로마에 충성할 때에는 자치하도록 놔두어서 그처럼 큰 성전이 서게 허용하였으나 반란이 일어나니 로마군을 막는 거대한 요새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로마의 직접 통치를 받게 된 유대에 그런 요새를 놔둘 이유는 없었다...

유대왕국은 완전히 로마의 차지가 되었고, 거기 살던 유대인들은 쫓겨났으며 그 자리는 주위 다른 민족들이 들어와서 차지하였다,,, 로마의 포로가 된 유대인들은 로마 콜로세움 경기장을 세우는 데에 노예로서 사역되었다,, 지금도 로마의 티투스 개선문에는 이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한 큰 촉대를 들고 행진하는 로마군의 모습이 새겨져있으며 이 비참한 광경이 유대인들에게 두고두고 치욕거리로 전해졌다..

지금의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유대와 로마와의 관계와 다르다, 그러므로 이문열의 비유가 현재 그대로 맞을 수는 없으나,, 현재 한미 관계를 이간 시키고 작통권 문제를 마치 미국에 대한 한국의 독립투쟁으로, 그리고 맥아더 장군을 미군 침략군으로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은,,, 그리고 북한을 동족이라며 친밀하게 생각하고 자유민주주의 한국인들을 친미모리배, 친일파라며 국수적 민족주의를 주창하는 한국 사람들은,,, 비록 일부라고는 하나,,,사실상 한국판 질럿들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한국의 지금 세대의 어리석음에 의해 장차 한국은 미국에 의한 안보우산도 잃어버리고, 미군의 보호도 받기 힘들어져서 결국 중국, 러시아 등 주위 타민족들에게 한반도의 우리 땅마저 빼앗길 위험이 한층 더 커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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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봤습니다. 그런데.. 유대 역사와 로마와의 관계를 너무 의도적으로 엮은 모습이 아쉽네요. 결론은 저도 동감합니다만.. 중간을 생략한 역사는 인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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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냐 그렇지 않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닌듯.....그리고 홍위병이란 단어를 쓴 이문열역시 극단주의자기는 매한가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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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다시 생각해보니, 젊은 세대는 오히려 사상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오히려, 머리 허연 40-50대 386 들이 문제여요,, 그들은 나이 들어 수구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사상에 살면서도 자기가 젊은 세대고 신세대, 개혁세대 라고 떠들고 다니니까요... 고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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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유대 침략과 헤롯왕 옹립의 과정은 ,, 물론 많이 생략했습니다,, 그러나 큰 대강 구조로 볼 때에 로마의 유대 침략을 저처럼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 국수주의자의 입장에서는 제 의견이 틀렸다고 생각될 것이고,ㅡ, 역사란 평가하는 사람 나름따라 달리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난 헤롯왕 당시의 유대-로마 관계를 저처럼 특이하게 해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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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를 가장한 친북사대단체가 있죠. 이른바 주사파. 실패한 정책에 목을 메고 제대로 된 시각보다는 편향되고 삐뚫어진 시각으로 자칭 진보 좌익이라 합니다. 무슨넘의 진보가 오히려 역사에서 퇴보한 사회주의와 주체사상을 도입하자고 주장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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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님 정말 식견이 높으시네요. 음~ 그런데, 저는 약간 다르게 생각합니다. 의외로 국수주위는 어디에 부딪쳤을 때 더 강해지죠. 쉽게 이야기해서 외부의 적이 있을 때 국수주의가 강력해집니다. 유대에서도 국수주의가 강했던 두 시대가 있는데 첫번째는 그리스계의 점령때... 그리고, 로마 점령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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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점령한 후 선구자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로마의 세계관이 영향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디아스포라에 한정해서라고 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 사는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보다는 덜? 국수주의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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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전인수식 비유에 삽질을 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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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렇구나.... 그러니까 마사다 요새도 이때 파괴된거군요. 외국다큐보니까 마사다 참관이 신병훈련 필수코스였다가 지금은 여러 논쟁끝에 중단됐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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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해서 질문합니다만, 에이디 70년이면 예수 사후인가? 질럿과 Jesus무리와의 관계는 머 언급될 게 없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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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다 요새는 유대반란과 예루살렘 함락 이후 얼마 안 있다가 함락되었습니다,,, 유대반란은 예수 사후에 일어난 것이며, 성경 속에는 예수님이 유대 반란을 예언하고 "예루살렘 성 밖에 군대의 깃발이 둘러싸면 속히 대피하라" 라는 말씀을 남기셨다는 귀절이 있습니다,, 이것을 믿고 대피한 기독교도 유대인들은 무사하였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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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 유다가 열심당원, 즉 질럿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가 로마 지배에 대하여 군사적 항거를 하지 않으니까 유다가 배신하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예수와 같이 십자가 처형된 두 강도는 사실 질럿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예수 대신에 풀려난 바라바는 성경에서는 강도라고 하였지만, 그게 아니고 질럿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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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통곡의 벽도 이 때가 시작이군요. 솔로몬 시대 처음 만들어진 성전을 헤롯이 웅장하게 개축하고 로마군은 유대반란때 이 성전을 파괴하면서도 벽 한 쪽만은 남겨 자신의 위력을 보여주었다지요. 이후 로마시대에는 이 벽에 유대인출입이 엄금되었으나, 동로마 시대에는 일 년에 하루만 개방되어 유대인들이 기도와 통곡을 했던 것이 지금의 통곡의 벽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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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태인들이 로마의 지재에 만족하고 그 안에 안주했었더라면 로마제국의 붕괴와 함께했전 그 많은 속주들의 멸망처럼 그저 그렇게 이름없는 속주로써 하염없이 무너졌을 것입니다. 제롯당(실제로는 예롯당이 더욱 유태어에 합당하지만)의 항거는 분명코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선구자님은 모르시는지요. 유태의 종교는,유태인의 법이요,교육이요,사회생활입니다. 이것을 떠나 유태인은 존재할수 없지요. 그런데 로마가 이것을 건드렸으니. 그리고 유태인이 자신의 독�투쟁을 해서는 안되었다는말은 우리나라의 일본에 대한 독립투쟁이 �지않다고 하는것과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예기하자면 로마는 서기4세기후반 게르만의 용병 오도아케르에의해 멸망하지만, 유태인은 20세기중반에 그들의 나라를 다시 세웁니다. 물질의 폭거에 대항한 정신의 승리 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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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허연 40-50대 386 들이 문제..." 기분이 편치 않네요. 전체적인 내용은 공감하지만 세대간에 갈등을 야기하는 표현은 자제 하심이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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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로마가 멸망하면서 그 속주들도 하염없이 무너졌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야만족들이 침노하지 않는 이상 속주들과 그 민족들이 유지된 곳이 많습니다,, 동로마의 그리이스인들과 그 속주가 대표적인 예이죠,, 갈리아의 경우도 하염없이 망한게 아니라 게르만족과 융합하여 프랑스로 더 강한 국가가 되고 그 민족도 유지되었습니다.. 유대가 반란이 없는 체로 로마 지배에 있었다면,, 로마가 망한 후에 독립할 수 있었을겁니다,, 타국으로 유랑하는 신세는 면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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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저는 유대와 로마의 관계에서 지금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비유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의 지배와 조선식민지와의 관꼐와는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제 글은 일제시대 때와는 관계없습니다, 갑자기 일제시대를 끌어와서는 억지로 비판하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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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머리 허연 386입니다,, 저같은 386 세대는 이제 머리 허연 중년, 장년이 되었고,, 그러면서도 아직도 운동권, 화염병 던지던 과거를 향수 가지면서 무슨 훈장 단 것 처럼 행세하고 있습니다, 내 스스로 내 세대의 수구적인 과오에 대하여 비판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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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유대인들을 종교적, 민족적으로 자극한 것은 분명히 잘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저항은 정당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강조하는바는 유대인들이 처한 비참한 패배와 재난이 한국인들의 그것이 될 수도 있다는 위험성입니다,.,. 유대와 로마가 한미관계와 똑같다는게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