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왕검의 중시조는 신농, 우리의 중시조는 단군왕검
신농은 유망가계의 시조
지금까지 12회에 걸쳐 단군왕검시대 이전의 시대를 개괄해 왔는데, 이렇게 힘든 작업을 해 온 이유는 단군왕검시대가 이들 시대를 징검다리로 하여 도달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시대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단군왕검시대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대이다. 동이와 한족을 구별할 수 있게 해 주는 시대가 단군왕검시대이기 때문이다.
단군왕검이 다스리는 대제국이 출현하기 이전까지는 우리와 한족의 구별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다만 이족으로 불릴 수 있는 동이만이 산동반도 일대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족으로부터 독립해 나간 것이 화하족으로 불리는 한족이었다.
단군왕검이 출현하는 시대 이전에 중원에는 큰 물줄기를 이루는 세 종족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신농을 조상으로 하였다. 이들은 신농으로부터 8대 유망까지 조상이 같았다. 유망대에 와서 황제와 갈라지고, 유망계열에서 4대를 내려와 배달나라의 태제泰帝가 나온다. 이렇게 세 종족이 중원을 가르게 되는 것이다.
유망의 가계 (동국역대東國歷代, 홍사鴻史)
1.신농 2.제승 3.제임 4.제내 5.제백 6. 제즉7.제양 8.제유-① 제괴 ② 제망 ③ 제성 ④ 泰帝 ⑤ 洪帝 ⑥ 檀君王儉
황제의 가계 (황제에서부터는 駱賓基 1917-1993 의 금문)
1.신농 2.제승 3.제임4. 제내 5.제백 6.제즉. 7. 제양 8. 황제-① 소호 ② 교극 ③ 제곡 ④ 제지 ⑤ 제요 ⑥ 제순 ⑦ 禹王
전욱고양의 가계 (유망에서부터는 낙빈기의 금문)
1.신농 2.제승 3.제임4.제내 5.제백 6.제즉 7.제양 8.유망-①희화 ②제전욱 ③ 곤
유망집안과 황제집안의 누비혼인
유망가계의 제양과 황제가계의 제양은 우리 역사와 중국 역사에서 소전少典으로 나오는 분이다. 소전은 유망과 황제의 아버지가 된다. 그러나 어머니가 다르다. 유망가계의 제유帝楡는 유망이다. 유망과 황제는 아버지 제양 즉 소전에서 갈라져 나오고 이들은 유망집안과 황제집안의 중시조가 된다. 낙빈기에 따르면, 유망집안과 황제집안은 누비혼(Punalua)라는 양급제兩級制로 맺어진다. 두 집안이 이복형제간임에도 불구하고 모계사회의 특징인 공동남편과 공동부인의 가계를 이어가는 것이다. 이 제도는 순임금까지 계속된다.
유망의 이복동생 황제는 그의 이복형 유망의 딸 누조와 결혼한다. 이렇게 사위가 된 사람을 자子로 불렀고, 아들을 남男으로 불렀다. 백伯은 외삼촌으로서 조카딸 자매가 있는 씨족마을로 장가든 사람이다.이러한 혼인제도는 유망집안과 황제집안이 한 대를 건너뛰며 제위帝位를 물려받고 돌려주는 기이한 혈연제도를 유지한다.
유망의 딸 뉘조와 유망의 이복동생 황제 사이에서 항아와 소호김천이 출생한다. 유망의 제위를 외손자 소호김천이 물려받는다. 따라서 제위의 대물림은 1대 유망, 2대 소호김천이 된다. 3대는 유망의 큰아들 희화와 황제의 딸 항아 사이에서 출생한 전욱고양(제위 47년)이 물려받는다. 4대 제위는 황제의 증손자인 제곡고신(제위 55년)이 물려받는다.
그러나 제곡고신 대에 와서 제곡고신은 5대 제위를 전욱고양의 양자인 곤에게 물려주지 않고 자기와 측실 간적 사이에서 낳은 아들 지에게 물려주어 지가 5대 제위(제위 8년)를 잇는다.
이때 제위상속제도가 싹트기 시작한다. 그러나 제곡고신의 정실인 중계의 아들 요堯가 이복형제인 지에게 제위를 도둑맞았으므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쿠데타를 일으켜 제위를 찾아 6대 제요(제위 37년)가 된다. 이어서 순이 쿠데타를 일으켜 요를 죽이고 7대 제순(제위 9년)이 되었다. 다음에 쿠데타를 일으켜 순을 죽이고 8? ?제위를 이은 사람이 우(제위 8년)였다.
유망집안에서 떨어져 나온 단군왕검의 가계
유망(제위 43년)은 아들 4명과 딸 1명을 두었다. 1자는 희화 주, 2자는 금정 해, 3자는 희, 4자는 유였다. 이들 4명중에서 한 분이 제괴帝魁일 것이다. 제괴를 중시조로 하여 단군왕검이 태어나는 다른 한 분파가 유망집안에서 나온다.제괴를 중시조로 하여 ② 제망 ③ 제성 ④ 태제泰帝 ⑤ 홍제洪帝 ⑥ 단군왕검檀君王儉이 대를 잇는다.
<이고선李固善>은 그가 쓴 <단서대강檀書大綱>의 <조선기朝鮮紀>에서 조선의 시조를 <단군세기檀君世紀>처럼 단군왕검에서 시작하지 않고 2대를 거슬러 올라가 태제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우리에게는 생소하게 보이는 대 가름이지만 설득력 있는 대 가름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가 누비혼인이 성행했고, 누비혼인으로 출생한 외손자를 사위로 맞아들이던 시대임을 감안한다면, 단군왕검의 아버지 홍제는 그의 장인이 되고, 그의 할아버지 태제는 처 할아버지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단군왕검시대의 「왕검」과 「곤」과 「우」
단군왕검시대에 단군왕검(재위 93년, BC2333-BC2240)과 제순帝舜(재위 9년, BC2320-BC2312)과 우왕禹王(재위! 8년, BC2311-2304)과 곤 (우왕의 장인)은 이 시대를 이끌어간 삼두마차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기록에는 곤은 도산국塗山國의 주인이었? 우가 그의 딸과 결혼하였다.
순이 제위에 오르면서 곤에게 도산의 치산치수를 명하였다. 곤은 7년 동안 치수에 힘썼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순은 곤에게 책임을 물어 우에게 곤을 죽이라고 명했다. 한족의 역사는 산동반도에 있는 우산에서 우가 그를 처형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중원의 패권을 쥐고 있던 단군왕검이 홍제에게서 물려받은 배달나라라는 국호를 곤에게서 나온 문자인 조선으로 바꾸어 썼다는 점에서 사위인 우가 장인인 곤을 죽이게 하였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보다는 곤이 단군왕검과 동시대 사람이고 그가 당시에 국제무대의 중심에 있었던 도산의 맹주였다는 점에서 곤을각별하게 생각하여 도산으로 부루태자를 파견하여 그를 살릴 수 있는 외교적인 교섭을 벌였던 것으로 보인다.
역사에 기록된 도산회의塗山會議는 도산의 치수에 관한 회의와 각 나라의 경계를 확정하는 이외에 곤을 살리는 회의도 겸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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