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반야심경.
舍 利 子
사리자
사리자여!
세존의 제자 사리불을 불러 주의를 환기시켜 주시기 위한 것이나 여기서는 지혜의 눈이 밖아져 정각을 이룰 모든 이들로 봐도 좋다.
[사리자는 지혜제일 제자이다.
명안(明) 정안(正) 정문안(頂門)을 갖춘 자라고도 하며,
사리불이라고도 한다.
밝은 지혜는 본래 이름도 형상도 없으나 이름하여 밝은 지혜라 하는
것이다]
知佛無言口生蓮 지불무언구생연 하리니
流水靑山共一家 유수청산공일가 이라
以法裁官不容針 이법재관불용침 이어도
法外私通車馬行 법외사통거마행 하니라
부처가 말이 없음을 알면 입에서 연꽃이 피리니
흐르는 물 청산은 한 집안 일이라
법으로는 바늘 하나 통할 수 없어도
사사로이는 거마도 통하는 것이니라
是 諸 法 空 相
시 제 법 공 상
이 모든 것들의 모양도 비어 없어서
색이 모두 본질적으로 공하여 우주 삼라만상 일체가 본질적으로 보면
모양과 형상이 없어 빈(공) 것이다.
지금까지 일체법이 공함을 설했고 지금부터는 공한 그 실상을 설하고자 하며 진공은 참이므로 환이 아닌 것이기 때문에 이름이 공이나 참으로 없는 공이 아닌 실상임을 설하시는 것이다.
[그 빈 것은 둘이 없는 빈 것으로 절대평등한 것이며 영원한 존재의
우주근본체라고 하는 참 나이며 없이 묘하게 존재하는(妙有) 실상으로, 응무소주(應無所住)이고, 나고 죽음이 없고(무생, 무멸) 늘고 줄
것이 없다.
모든 것이 본질이 참으로 공한 진공이므로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주관인 내가 공하면 객관 경계가 따라서 공한 것이니 삼계가 나와 같은 근원이요,
만물이 나와 한 몸이며 공한 마음(應無所住:진여의 마음)이 이생기심(而生其心)하면 갖가지 법이 나고 마음이 생각을 내지 않으면 갖가지
법이 멸하는 것이다.
자성의 실상인 진공인 마음은 있음도 초월하고 없음도 초월하여 있으므로 생사가 없고 선악이 없으며 길흉화복이 없으며 보리도 열반도
없는 것이다]
是心是佛作分別 시심시불작분별 하고
一念萌動萬里差 일념맹동만리차 하나니
山則是山水是水 산즉시산수시수 이라
山水以前是甚 산수이전시심마 던가
마음이라 부처라 이름지어 분별하고
한 생각 싹터 움직이면 곧 만리가 어긋나나니
산은 곧 산이요 물은 물이라
산 물 이전에는 이 무엇이던고?
不 生 不 滅
불 생 불 멸
생기는 것도 아니요, 없어지는 것도 아니요
일체가 본질적으로 공하니 공(빈)한 것은 생기는 것이 없으니 없어지는 것도 있을 것이 없다.
본래 원만하게 구족해 있으나 相이 본래 있지 아니하여 본래 공하므로 생기고 없어질 것이 당연히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빈 것은 비었다는 것조차 없이 비어, 옛부터 지금까지 생겨남도 없이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다.
생겨남이 없으니 없어질 바도 아닌 것으로 변전하지 않는 그대로 불변인 것이다.
따라서 본디 남이 없으니 멸이 없는 것이다.]
月光照物物不染 월광조물물불염 이고
常用天下不增減 상용천하부증감 이라
板齒生毛鬼氣毛 판치생모귀기모 하고
鬼食和聲鼠無角 귀식화성서무각 이니라
달이 비춰도 물듦이 없고
항상 쓰지만 늘고 줄지 않는 것이라
판대기 이빨에 털나고 귀신방귀 털이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요 쥐뿔도 없도다
不 垢 不 淨
불 구 부 정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분별상이 없는 허공 같은 빈 것에 더러울 것이 없으니 깨끗이란 말조차 있을리 없다.
[본래 더러운 것이 없으니 깨끗함이라는 것도 없고 더럽혀질 것이 없는 청정한 있음이 없는 법성이 바로 일체 중생들이 구족한 자성인 것이다.
일체가 본래 공하니 물들이고 더럽혀도 물들고 더럽혀지지 않는 것이므로 공한 이 자성은 일체에 상즉하여 있되 마치, 달이 물에 떠도 물에
젖지 않고 물결에 흔들리면서도 흐트러지거나 깨트려지지 않음과 같은 것이다]
但心生生 단심생생 하여도
應無所住 응무소주 이니
波上月影 파상월영 하니
散如不散 산여불산 이니라
다만 마음을 내고 내어도
머무는 바 없이 머무니
물결 위에 잠긴 달이
흩뜨려도 흩어지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不 增 不 減
부 증 불 감
느는 것도 주는 것도 아니니라.
자성은 허공이라는 것도 없는 허공같은 것으로 끝없는 무한대의 우주에 상즉해 꽉 차있는 원만구족한 전체이니 늘고 줄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법성의 실상이 끝없는 태허와 같은 데 갓이 없는 것이 늘고 줄 것이
있을 수 없다.
한계가 있을 때 늘고 줄 것이 있으나 무한대의 존재를 생각해 보라.
따라서 더하고 덜함이 있을 수 없고 보태고 뺄 것이 없는 것이다.
다시 비유로 말하면 틈 없이 꽉 찬 병 속의 물이 흔들리거나 늘거나 줄
것이 없는 것과 같다]
日照萬像不增減 일조만상부증감 이니
如來恩泰亦無量 여래은태역무량 하여
永劫現用不增減 영겁현용부증감 하며
佛元不動常如如 불원부동상여여 하니라
태양이 만물을 비추나 늘고 줌이 없으니
여래의 은혜가 크고도 무량하여
무량 겁을 나투어 써도 늘고 줄지 않으며
부처는 본래 움직임 없이 항상 여여 하니라.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乃至無意識界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내지무의식계
이러하므로 빈 가운데는 물질의 현상이 없으니,
느낌, 생각, 지어감과 의식이 없고 눈, 귀, 코, 혀, 몸, 뜻도 없으며,
물질, 소리, 냄새, 맛과 닿는 것 모두가 없고,
보는 영역에서 인식하는 영역까지도 없고,
그러므로 허공같이 청정한(깨끗한) 빈 가운데
몸 등 물질의 현상 일체가 무엇인들 있을 것이 없다.
즉 6근이 없으므로 6경이 없고 따라서 6식을 낼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니 18계가 곧 환이건만 중생의 삶은 일상생활에 6근과 6진으로 살림을 살아 6식을 내고 있는 것이다.
[오온(근)인 눈, 귀, 코, 혀, 몸이 없고 이 오온이 없으니 여섯 가지 경계인 곧 보이는 물질현상, 소리, 냄새, 맛, 촉감, 의식작용을 일으킬 6경이라는 것이 본성이 공하여 있을 것이 없고, 또 보이는 것에서 의식하며 느끼는 영역까지도, 즉 의식 작용하는 6식이 따라서 없는 것이다.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는 6근이 6경으로 인하여 의식하는 6식을 처음과 끝 사이를 乃至로 줄여서 즉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 보고, 감촉
해 아는 인식작용 하는 경계를 처음인 보는 경계에서 끝인 의식하는
경계를 들어 설명한 것이다.
차별상으로 보면 6근이 인연에 응하여 경계인 6경(6진)을 6식으로 인식하고,
평등본질 면으로 보면 6근이 6식으로 인하여 6진인 경계를 동시에 내는 것이다.(이 6심의식에서 제7심식 末那識과 제8식 阿賴耶識이 제9식인 白靜識:암바라식에 이르러 계합하게 되면 곧 견성이라 하는 것이다)
이 6근 6진 6식이 본질에 있어는 둘이 아니며,
하나(공)로부터 생하고 멸하는 것이라 일체의 생하고 멸하는 것은 실체가 없는 공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상으로 존재하는 것은 남(生)이므로 멸하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어서 있다면 필경에는 없어져 하나(空)로 돌아가는 것이다.
처음부터 상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없어질 것도 또한 없을 것이니,
따라서 절대 없어지지 않는 것은 근본체인 없이 있는 법성체 뿐 이어서,
이 본래면목은 원융무애(일체하나로 융통한)하며 사사무애(事事無碍:
사물 하나하나가 실체가 공하여 서로 장애가 없음)하여 걸림없이 방해받지 않고 뜻대로 되며 또 이사무애(理事無碍: 理는 절대평등한 본체이고, 事는 상대적 차별현상)하여 걸림이 없는 이치이나,
진여문에서는 본질이 공하여 걸림없는 不二이므로 곧 걸림없는 열반의 경계, 색불이공의 투철함이 이와 같은 것이기에 무애자재한 묘유묘용이고 중도상이다.
묘한 공이라는 것은 있음 없음을 초월하여 머물며,
일체가 여기에서 나투고 멸하는 것으로 오묘하여,
비었으면서도 비지 않는 것이기 때문인 것(진공묘유)이다.
나고 멸하는 일체는 실체가 없는 환(幻)인 것이고, 시작 없는 본래부터 있는 공한 법성체는 일체를 나투고 작용하는 근본 모태요 바탕인
것이다.
따라서 따로 창조신이 있어 우주를 만들었다면 그 神은 있음이니 분명 있기 전에는 만든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럼 그 신은 누가 만들었나?
만들어진 것이 있다면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생긴 것은 반드시 머물렀다 허물어져 멸하여 없어지는 성주괴공(成住壞空)으로, 생주이멸, 생노병사로 생했다 멸하는 것이 거듭될 터이니 이 神 또한 윤회를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신마저 필경에는 없이 있음(공)으로 돌아가야 해답이 나올테니 그것은 근본당체(根本當體: 진여인 만유일체의 본바탕)라고 하는 법성을 요달하여야만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빈곤도 상대적으로 부유함을 세워야 있다고 할 수 있고, 불행도 행복을 대비함으로서 갖는 현상이며 실재하지 않는 것이니,
따라서 무엇이든 있다면 상대적인 있음을 세워 "같지 않다"는 부정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공)도 집착 말고 중생도 떠남이라고 한 것이다.
일체가 공하므로 형상(모양)의 실다움이 없어 듣는 것과 보는 것과 듣고 보는 것의 처소도, 분별하는 것의 처소도 없이 공한 가운데는 근(根)과 진(塵)의 세계가 본래 없는 것이다]
汝我本來則無二 여아본래즉무이 이요
主客實相有而無 주객실상유이무 이니
金獅子脫外虛空 금사자탈외허공 이라
無相無空無無空 무상무공무무공 이어라
너와 내가 본래 곧 둘 아니요
주인과 객이 실상은 있어도 없음이니
황금사자가 허공 밖을 벗어남이라
본래 상도 없고 빈 것도 없고 비어 없음도 없어라.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無老死 亦無老死盡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무노사 역무노사진
어리석음이 없으니 또한 어리석음 다함에서 늙고 죽음까지 없고,
또한 늙고 죽어 다함까지도 없어
우주 근본체가 본질적으로 공(비)하여 일체가 항상 하는 상이 없고,
자아(個我) 또한 없으니 자아의 집착으로 인한 어두움(무명-미혹-번뇌망상)이 본래 공하여 없을 수밖에 없다.
남이 없으니 죽음도 없고, 따라서 무명이 없는데 이 무명이 다할(멸진) 것이 당연히 없고, 무명으로 인하여 인연법으로 연기의 因이 공하여 없으니 果도 따라서 없는 것이다.
[緣起 즉 범어 pratltyasamut da의 번역인 생멸 연기론(설)의 원리인,
因으로 果의 과보를 낳게되는 상속하는 고리로서 생하고 멸하고 다시 이어지는 것으로,
① 無明 즉 번뇌, 망상, 집착의 근본 무지로 인하여 →
② 行 즉 선악의 과거의 업이 생기고 行으로 인하여 →
③ 識 즉 금세에 처음 태에 의탁하고 이로 인해 →
④ 明色 즉 태에서 마음(오온)과 물질이 생기고 이 때문에 →
⑤ 六處가 六入, 즉 육근이 갖추어지고 이로 인해 →
⑥ 觸 즉 지각 작용이 생기게 되고 이로 인해 →
⑦ 受 즉 외계로부터 받아들이는 고락의 감각을 감수하게 되고 이로
인해 →
⑧ 愛慾 즉 구하는 마음이 생기고 이로 인해 →
⑨ 取慾 즉 가지려는 집착하는 마음이 생기며 이로 인해 →
⑩ 有 즉 애와 취욕에 의해 지은 선악의 과업인 업보가 쌓이게되고 이로 인해 →
⑪ 生 즉 다시 업보에 따라 태어나(업신)고 태어남으로 인하여 →
⑫老死 즉 늙고 죽음이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앞에 것(因)이 멸해 그 綠이 남(生)이 없으면 뒤의 것이 생기지
않게 되므로 생이 없으면 사도 없게된다.
이렇게 인연에 의하여 원因이 결果가 되어서 윤회하는 것으로 남(生)이 없으니 인연에 의하여 연기되는 늙고 죽을 것이 없고 그 노사가 없는데 그 다함(멸)이 있을 수 없는 것임]
[연기의 시작인 첫번째인 무명에서 乃至로 중간을 줄이고 긴 12연기론의 시작과 끝(⑫ 노사진)을 들어 설명한 것이다.
따라서 개아로 인한 무명도 본래 없으니 인연 따르는 늙고 죽음이 없는 것이고, 열 두번째인 늙고 죽음 다할(노사진) 것도 없게 된다.
이 연기의 시작인 무명이 본래 없으면 인연따라 연기(생기는)되는 생사가 본래 없는 것임을 꼭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범부는 생사의 허환(색심)에 끄달려 생사 있음으로 착각하여 두려워하는 것은 나(업신)에 집착하고 애착하게 되어 미혹(무명)인 무지가
생기는 것으로 이로 因하여 연기하여 윤회의 果보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원으로 돌아가(회광반조) 본래 비어 내가 없고 생사 없음을 요달하게 되면 무명이 사라지고 업장이 녹아 쉬고 쉬어 육도만행을 멈추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12연기법이란 것도 본성을 살피면 인도 과도 없고 없다는 것까지도 일체가 공해서 생이 없으니 사도 없음을 깨달아 일체가 공적함을 요달하게 되는 것이다]
見與所見俱空寂 견여소견구공적 이니
生死涅槃都是塵 생사열반도시진 이네
本無束縛無解脫 본무속박무해탈 이며
全身是手全身眼 전신시수전신안 이니라
보는 것도 보이는 것도 모두 공적하니
생사와 열반이 티끌일 뿐일세
본래 속박이 없으니 해탈도 없으며
온몸이 손이요 온몸이 눈이니라.
無 苦 集 滅 道
무 고 집 멸 도
괴롭고, 집착하여 쌓임도, 없어질 것도, 닦을 것도 없나니
일체 모든 것을 관해 보면 실체(실상)가 없으며 공적한 것임을 깨닫게 되며 나라는 것(이 몸뚱이를 집착하게 되는 相인 업신)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어 애착하게 되는 것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거짓 세운 이름인 고집멸도 또한 빌려쓴 말일뿐 공하여 없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고집멸도를 사제(四諦) 또는 사성체(四聖諦)라고 한다.
생겨난 모든 중생의 영원불변의 진리로, 苦諦는 태어났으니 현실의
고통이 필연적으로 따르는 것이요,
集諦는 애착으로 인한 번뇌의 원인이 쌓이게 되는 것으로 苦의 원인(애욕의 업인 근거)이므로 유전의 因이요,
滅諦는 이를 벗어나서 이런 생멸이 없는 구경의 열반에 이르는 것이며,
道諦는 열반에 이르는 실천수행의 방법인 길을 말하며,
이 도의 수행덕목으로 팔정도가 있다.
팔정도(八正道)는 범어 ary tanga의 번역으로 이것 또한 방편이요, 빈
성품을 요달하면 평지풍파일 뿐, 본래 고집이 없으니 멸도 없고 닦을
8정도가 있을 것이 없는 것이나
① 바로 볼 줄 아는 正見 ② 바르게 생각하는 正思惟 ③ 바른 말하는
正言 ④ 바른 행위인 正業 ⑤ 바른 직업을 가져 바르게 사는 正命 ⑥
바르게 닦아 나가는 正精進 ⑦ 바른 생각의 집중인 正念 ⑧ 바르고 안정된 마음인 正定이 그것이다.
이러한 것이 공(空)한 본체에서 살피면 본래 없으나 무명으로 인하여
업신이 있게 되는 것이 진리이며 그 업신의 인과 윤회를 끊게 하고자
깨닫고 보면 그 빈 가운데 일체를 갖추고 있음(具足)도 알게 되는(네발을 갖추어야 완전하므로 구족한 것이라 함)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증오해서 깨달아 일체 상을 여의(초월)어야만 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다시 설명하면 고는 수(修)로 과(果)가 되고, 집은 행(行)이므로 인(因)이 되며, 멸은 증(證)이 되어 득(得)이 되고, 도는 득성(成)이므로 성불(成佛)이 되는 것이다.
고제라 하는 것은 괴로운 법을 말하는 것으로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4고를 이르는 것이다.
중생이 살아가는데는 가지가지 괴로움이 있어 아무도 이 고를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집제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고의 발생 원인이 갈애에 있는 것이므로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는 것과 같이 불타오르는 갈망 때문에 因을 쌓게 되는 것이다.
멸제라 하는 것은 이러한 고와 고의 원인을 어떻게 하여야 단멸할 수
있을까 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도제라 하는 것은 이러한 모든 고를 해탈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 것이니, 중생이 본래부터 갖추어 있는 청정한 마음인 반야바라밀다를 가리키는 진리(법)인 것이다]
從物卽過 종물즉과 이요
動念卽乖 동념즉괴 리니
呑下諸佛 탄하제불 인데
何處有生 하처유생 인가
사물에 쫓아 보면 곧 잘못됨이요
한 생각 일으키면 어긋나리니
삼세 제불을 한 입에 삼켰는데
어느 곳에 제도할 중생이 있는가?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지혜도 없으며 또한 얻을 것도 없으니,
얻어 가질 것이 본래 없기 때문이니라.
빈(공한) 것인 절대본체를 관해보면 일체 지혜라는 것도 공해서 있음이 없다.
지혜로써 증오하게 되는 것이나 그 지혜도 있음이 없으니 그것을 얻는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것이므로 얻어 가질 것이 본래 없기 때문이다.
[공적하여 빈 것이 무엇을 주고받을 것이며 또한 공적한 가운데 구족하여 둘 아닌(不二)데 본래 갖추고 있는 것을 내가 나에게 무엇을 주고받겠는가?
그러나 본질적인 언설에 집착하여 끄달리지 말고 살펴 보면, 알 것이
없는 것을 알았으니 얻은 것이요, 얻을 것이 없는 것을 안 것이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탐진치로 인한 업신의 자아는 미혹해있으므로 중생이라 수행으로 닦아 대아(大我)에 이르러 견성함으로써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닦음(수행)을 요하는 것임도 알아 깨쳐 아는 것을 증득한다
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구즉착"이니 "유념간택"이니 하는 문자의 상식에만 끄달려
변견을 가지고 생활 가운데 자기 합리화의 수단으로 고집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닦아 증득할 것은 없지 않으나 더럽혀 물들일 것이 (본래)
없다" 한 것이다.
따라서 미혹 무지한 무명을 거두는 수행을 꼭 필요로 하는 것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증오(證悟: 직접 이르러 올바른 지혜로 진리를 깨닫게 됨)하면
잊거나 기억할 것이 없는 지혜가 발현하게 되는 것이다]
謂得已應錯 위득이응착 이요
無得是眞得 무득시진득 이니
鳥飛虛空後 조비허공후 에는
蒼空亦無蹟 창공역무적 이어라
얻었다 하면 이미 응당 어긋난 것이요
얻을 것이 없는 것이 참으로 얻는 것이니
새가 허공을 날아간 뒤에
창공에는 자취조차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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