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반야심경
菩 提 薩 陀
보 리 살 타
보살은
여기서는 보살은 곧 구경각을 이루어 일체종지를 증득(성불)할 모든
이들을 일컬음으로 보아도 옳다.
[보리(菩提)는 범어를 한자로 음역하면 보(뎨)제이나 쉽게 모지 또는
보리라 발음하고 보살은 보리살타의 줄인 말이다.
보리는 깨달음, 살타는 중생이란 뜻이다.
중생이 깨닫게 되면 부처님이요, 보살인 것으로 보살은 생사를 싫어하지도 않고 열반을 즐기지도 않는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으로 일체 중생을 제도하려는 자비원력으로 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 물건도 취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소승의 근기요,
한 물건도 버리지 않으려 하는 것은 대승보살심인 것이다]
見尾識隱虎 견미식은호 하고
視角亦知牛 시각역지우 나니
道本無修得 도본무수득 이나
不修不免凡 불수불면범 하리라
꼬리를 보고 호랑이를 알고
뿔을 보고 소를 아나니
도는 닦아 얻을 것이 본래 없으나
익혀 닦지 않으면 범부를 면치 못하리라.
依 般 若 波 羅 密 多 故
의 반 야 바 라 밀 다 고
밝은 지혜로 인하여 깨닫게 되었으므로
(반야바라밀다는 재설명이니 생략한다.)
一念頓絶一念慧 일념돈절일념혜 하면
卽是般若自然發 즉시반야자연발 이니
一切如如是佛法 일체여여시불법 이요
別揚佛法非佛法 별양불법비불법 이니라
생각 끓어지고 한 생각 슬기로우면
반야는 저절로 발현하게 되는 것이니
일체의 것 그저 그대로 불법이요
따로 세우면 불법은 불법이 아니니라
心 無 가 碍
심 무 가 애
반드시 마음에 걸림이 없게 되고
[여기에서 마음(心)이라고 하는 것은 여여부동한 절대 당체인 마음(본성)이 아니라 작용하는 마음(성품)이다.
깨닫게 되면 본체의 마음(응무소주)인 공한 묘공을 체인하게 되므로
괴로움을 여의게 되어 걸림이 없게 되는 것이므로 실은 걸리고 아니
걸리고 할 것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아는 것과 행이 하나가 되지 못하면 8만4천 법문을 모두 외우고 꿰뚫어 이해하며, 모든 조사 공안에 막힘이 없다 해도 걸림 없는 해탈 경계가 아닌 중생(범부)일 뿐인 것이다.
일체의 경계와 일체의 법과 일체 행동함에 마음에 걸림이 없고, 작용하는 마음이 일체 법과 일체 경계와 일체 행동에 걸림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예를들면 술 파는 집을 가르쳐 주는 과보로 5백생 동안 손가락 없는
과보가 두려워, 계를 지키려고 꼭 필요한 자에게 알고도 가르쳐 주지
않거나 또 술을 마시는 자를 욕하고 미워하고 비방한다면 오히려 금주병에 걸린 자가 되는 것이요,
그렇다고 술을 먹기 위한 구실로 곡차라고 하여 막행막식을 한다면
이것은 미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마시고 안 마시는 데 걸림이 없어야 하는 것이니 변견에 치우쳐 걸림이 있으면 그것은 불법이 아닌 것이다.
불법을 깨침은 대자유 대해탈이 구경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
대대가 없으니 걸릴 것이 없고, 걸릴 것이 없으니 두려움도 없어, 공포가 있다면 그것은 참공(진공)을 깨친 경계가 아니요 진아를 깨달음이
아닌 것이다]
此心彼心本不二 차심피심본불이 이요
不尋本家由迷惑 불심본가유미혹 이나
泥牛破絶須彌山 니우파절수미산 하고
角兎呑下老野狐 각토탄하노야호 하도다
마음과 마음 본래 둘 아니요
미혹하여 본가를 찾지 못하나
진흙 소는 수미산을 쪼개 버리고
뿔난 토끼가 늙은 여우를 삼켰도다
無가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게 되며,
잘못 뒤바뀐 꿈같은 망상을 멀리 여의게 되어
본래 공적한 가운데 나고 죽는 것이 없음을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체인하여 마음이 바로 허공계와 다르지 않고, 일체가 허상인 것을 깨닫고 마음(자성)이 영원 불멸하고, 내외가 명철한 것을 요달하여 알게
되면 자연 두렵고 걸림이 없게 되는 것이다.
내가 없으매 나 아닌 것도 없어 두려움이 생길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업식인 자아를 참나(진여)로 착각하여 망상에 붙잡혀 업신을 애착하여 없는 죽음에 매여 끄달릴 때 두려운 생각이 생기고, 집착으로 탐진치가 생기는 것이다.
현상계의 덧없는 한정된(無常) 상대적인 물질현상인 자아(업신)를 참(진실함)으로, 실상을 혼동하여 알았고, 항상한(有常) 참나(자성)는 범부의 눈으로 가려 보지 못하여, 절대존재인 영원불멸의 참나의 존재와 업신의 거짓 나를 마치 꿈을 꾸듯 뒤바꿔 생각하여 믿지 않던 실상을 꿰뚫어 보아 공적영지한 것임을 깨달음으로써, 걸림이 없으니 두려움도 멀리 여의게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상을 확인하지 못한 범부들은 무상(無常)한 환과
같은 눈에 보이는 현상계는 믿으려 하거니와 불멸의 항상(恒常)하는
자성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으므로 믿지 못하고 알지 못해 업식의 사대육신과 오온이 영원한 참 나로 잘못 알아 참 나인 자성(불성)의 실상을 잘못 헛된 꿈과 같이 뒤바뀌어 아는 것이다.
그러나 無常을 허무하다거나 허망하다고만 잘못 생각하여 좌절하거나 비관적으로만 생각하게 되기 쉬우나, 무상(無相)하다고 하는 것을
없다는 것이나 허무하다는 소견에 떨어져 염세적인 생각으로 이 생을
잘못 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상(無常)이므로 또한 가능성도 내재한 도리도 알아야 하며, 무상하기에 변전하므로 발전할 수도 있고 또한 업신이나마 사람으로의 이
몸 받았을 때 남은 생을 가치있게 수행정진 함으로써 항상 중생으로
머물지 않고 무상(無上)의 대도를 성취할 수가 있는 것이다.
모두가 고정불변으로 항상하기만 한다면 노력할 필요도 가치도 없으며 부처님은 영원한 부처님으로 중생은 영원한 중생의 苦를 지키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일체가 무상(常)하여, 잘못 안 업식의 나 또한 무상한 것(自我無常)이므로 원만한 열반을 증득하여 불지에 오를 수 있으므로 창조적인 실천이 발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 또한 있는 것이다.
◎ 미인을 볼 때 항상함이 아닌 허상인 것이며, 끝내 죽고 썩어 시체나
해골이 됨을 보고(알고)도 痴心이 생길 것이며, 참 죽지 않는 줄 확실하게 믿는다면 죽음이 두려울 것이며, 새 옷을 분명히 줄 것을 확신하면서도 헌옷(업신) 벗기를 두려워하랴.
업(業: 업장이라고도 하며 몸과 입과 생각으로 짓는 선악의 행위로 因하여 제8식 아뢰야식에 저장되어지는 것)으로 현세에 결과로 받게 되는 것을 업보 또는 응보라 하며 이것을 과보라 하는 것으로 이것에 끄달려 뒤바뀐 생각에 집착해 살며, 허상인 현상을 실상으로 착각한 꿈을 깨어서 공적영지한 실상을 깨쳐 보아 일체법계에 존재하는 것들이
무상한 허상임을 체인하여, 지금까지 고통을 즐거움으로 생각했고,
실상 가운데의 참낙(樂)을 알지 못하고 뒤바뀌어 스스로 속았던 꿈에서 깨어나듯 바로 깨달아야 한다.
중생이 깨치지 못하여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업신인 거짓 나에 애착하고, 그 업에 끄달려 다니며 탐진치로 인하여 생긴 업으로 받은 과보로 다시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업은 몸으로 짓는 세가지 신업과 입으로 짓는 네가지 구업과 생각으로 짓는 세가지 의업이 있다.
◎ 전도몽상에 대한 설명을 더하고자 한다.
중생이 이 육신(업신)의 내가 살아 가는 것은 마치 꿈을 꾸는 것과 같이, 진성(우주법계를 구족한 자성)의 깨끗하고 참됨에 의해 하고싶은
대로 바르게 행하고 뜻대로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뒤바뀐 꿈같은 삶인지도 모르고 업보에 따라 신기루처럼 허상인 형상에 끄달려
살고 있으니 꿈을 깰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참나의 자유로움을 영원토록 누리게 되는 이것이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는 이고득락인 것이다.
이를테면 TV속의 드라마가 마치 실상인 것처럼 끄달려 안타까워하고
잠시 즐거워하거나 슬퍼하나, 그것은 거짓 나인 업신(극작가)의 그리는 꾸밈(업)에 따라 활동하고 있었으나 그 활동은 참나가 아니어서 영원하지 못하고, 드라마(업의 그림자)가 끝나면 잠시 있었던 것은 실상이 아니었으므로 화면의 그림자는(이 생) 사라지고 그 배우(업신)도
또한 그려지는 다른 드라마{업의 과보로 받은 내생(중생심)의 세계)}에 출연하여 극작가(업)의 그림에 따라 끄달리므로 그 틀을 벗어나 피안(불세계)에 이르지 못하고 다시 차안(此岸)에서 활동하게 되는 것과
같아, 꿈도 그러하고 나아가 중생 삶인 이 생도 그러하여 업신에 매여서는 영원히 그 윤회를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이나, 이 허상의 꿈을 깨게 되면(대오견성) 실상으로 보았던 것이 잘못 알았던 환이었음을 깨닫고 현상에 집착하지 않고 걸림없이 자유로워 윤회의 苦를 벗어나
동정일여(動靜一如: 움직여 행동하거나 고요한 삼매 가운데이거나 차별 없이 같아 항상 고루하게 되는 것)하게 되는 것이다]
泥牛潛泳入龍宮 니우잠영입용궁 이요
金獅隱藏虛空中 금사은장허공중 이니
已離分別離禪定 이리분별리선정 하여
似是虛空無思量 사시허공무사량 이니라
진흙소는 용궁에 헤엄쳐 들어갔고
황금사자는 허공 속에 숨어버리니
이미 분별 떠났고 선의 고요함도 떠나
허공 같아도 허공이라는 헤아림도 없나니라
究 竟 涅 槃
구 경 열 반
필경 해탈을 하게 되는 것이니라.
구경은 무극 또는 필경이며 완전한 이란 뜻이며, 열반(해탈)은 집착이 끊어지고 고요적적함인 것이므로 분별심과 간택함이 없는 것이지 열반이라고 해서 멸하여 아예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영생 불멸의 참나(절대본원)를 깨닫게 되면 육신을 갖고 있으되(有餘涅槃) 나(업신)에 집착하지 않고 정신적인 혁명에 의하여 완성된 인격인으로서 생사를 초월하여 영원히 적멸위락(寂滅爲樂: 생사를 뛰어넘어 열반의 고요한 즐거움)을 누리고 상락아정(常樂我淨: 상은 생멸 변화가 없는 덕. 낙은 생사고통을 여의고 안락한 덕. 아는 나에 집착함을 여의고 자재한 참나의 덕. 정은 청정한 덕을 두루 갖춰 누리게 되는 것)하게 되는 것이다]
惟願諸君莫尋佛 유원제군막심불 하라
行住坐臥與君俱 행주좌와여군구 하도다
唯在目前不見面 유재목전불견면 이나
知不見者是佛也 지불견자시불야 니라
오직 바라노니 그대들이여 달리 부처를 찾지 말라
행주좌와(行住坐臥)에 그대와 함께 하도다
오직 눈앞에 두고도 그 얼굴 못 보나
못 볼 줄 아는 그가 다만 이 부처니라
三 世 諸 佛
삼 세 제 불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삼세제불은 이전(과거)이나 지금(현재)이나 앞으로(미래)나 부처를 이루었고 이룰 모두를 들어 설명하고자 함을 살펴야 한다.
[삼세라 하나 나지 않고 죽지 않는 영생 불멸하는 부처(근본당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시공을 초월한다 하는 것은 본래 그러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차별상으로 시공이라 하는 것이므로 인위적으로 지어 만든 가변적인 것일 뿐, 이를테면 과거는 지나간 현재요, 현재는 현재라 할 때
과거요, 미래는 오지 않았다고 생각할 때 현재인 것이다.
근본 본질로 살펴보면 현재라는 기준조차 없고 공간 또한 막힘 없이
그러하여 시공을 초월하게 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일체의 본성이 공하여 중생이 곧 부처인 것이니 곧 중생은 부처인 중생인 까닭이며, 부처라 할 때 중생이니 부처라 할 때 중생이 된 부처이기 때문인 것이다]
月照千江月千個 월조천강월천개 이나
千個更在一個中 천개경재일개중 하고
一建一切一生多 일건일체일생다 이니
一切物物皆含一 일체물물개함일 이네
달 하나 천강 위에 비춰 천개의 달이나
그 모두를 하나가 거두고 잡고 있어
하나가 모두를 건립하고 일체는 하나에서 생기니
물건마다 모두가 하나를 머금고 있네.
依般若波羅密多
의반야바라밀다
이 밝은 지혜에 의지하여 깨닫게 된 것이니
[반야바라밀다는 재설명이므로 생략한다]
子卽是母母是子 자즉시모모시자 이니
當知方物不塞圓 당지방물불색원 하고
方圓各有所有理 방원각유소유리 이니
月照萬像無自影 월조만상무자영 이니라
아들은 곧 어머니요 어머니는 아들이니
당연히 모난 것으로 둥근 구멍을 막지 못하고
모난 것은 모남으로 둥근 것은 둥글어야 맞으니
달이 우주를 비춰도 제 그림자 없음이니라.
故得 阿뇩多羅三막三菩提
고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그러므로 위없이 높고 바른 진리를 얻게 된 것이니라
대략 설명하자면 득은 성취(成就)요 아는 없음(無)이며, 뇩다라는 위(上)라는 뜻이며 삼먁은 바르다(正)는 뜻이며 삼보리는 진리(즉 眞=正知見<바른앎>=지혜)라는 뜻으로 곧 위없는 바른 진리를 깨우쳐 얻은
것이니 다시 말해서 결국 무상(아뇩다라) 정등(샴막) 정각(삼보리)을
성취(득)한다는 설명이다.
성취라 했으나 얻음이 아닌 것으로 본래 있음을 미(迷)하여 깨닫지 못했을 뿐인 것을 증오해서 증득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잊고, 잃은 것을 다시 찾은 것과 같다.
[얻었다고 하나 공적하여 본래 얻을 것이 없고 시공을 초월하여 동시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즉 범어Auttara -samyaksambodhi의 음역으로 무상 정등정각(위없는 깨달음)인 것으로 줄여서 = 곧 정각 =
곧 보리 = 곧 불법 = 곧 진리 = 곧 견성 = 곧 열반 = 곧 해탈 = 곧 성불인 것이다.
삼세 제불이 얻은 것은 얻은 것이 아니요,
어리석은 중생이 자기와 자기 것을 두고 모르고 있다가 스스로 확인(체인)한 것이라. 얻어도 얻은 것이 아닌 얻음인 것이다.
그러므로 證悟, 證得한다고 하는 것이다]
眞知諸佛出此經 진지제불출차경 하면
市中雜話皆法輪 시중잡화개법륜 하고
逐句執言沒迷惑 축구집언몰미혹 하면
龍宮藏經都夢예 용궁장경도몽예 이리라
삼세제불이 이 경에서 나왔음을 참으로 안다면
시중잡담이 법륜의 굴림인 줄 알 것이고
문자에 좇고 말에 끄달려 어리석으면
용궁장경 일지라도 모두가 잠꼬대이리라
故知般若波羅蜜多
고지반야바라밀다
그러므로 알라!
반야바라밀다(심경)는 지금까지 설한 반야심경은
이러한 것임을 알라 하는 것이다.
[반야바라밀다는 "진공묘유"에 계합한 것을 뜻하는 것으로 아주 없음(단멸공)도 아니고 형상이 있음도 아닌 불생불멸로서, 어느 한곳의 처소를 정해 있지 않고 두루하여 출입이 없는 불변의 소소령령한 영원한 실다움인 것이다.
반야바라밀다는 생과 멸이 다한 진공묘유한 것으로 환이 아닌 것이라, 환이 아닌 것은 없어지지 않는 참인 것이기 때문이다.
- 이것이 참나요, 법성, 불성, 참부처인 법신불이며 우주법계의 근본인 것이다.
이것은 무도 아니요, 공도 아니요, 공 아님도 아니므로 공이니 비공이니 하는 것을 여읜 것으로, 모든 것을 초월한 절대空인 진공묘유인 것이다]
普遍之三世 보편지삼세 하여
有應無所住 유응무소주 하는
此實卽本體 차실즉본체 요
本體如虛空 본체여허공 이니라
삼세에 두루하여
마땅히 머묾 없이 머물고 있는
이 실상이 곧 본체요
본체는 허공과 같으니라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크게 신비한 진언이고, 가장 밝은 진언이며,
위없는 진언이고, 견줄 바 없는 진언이니
이 반야심경은 크게 신비스럽고 밝고 부사의하여 더 이상 없고 비할
것이 없는 신령스러운 주(呪: 眞言: 총지)라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이경을 깨달으면 정각을 이루게 되는 까닭이다.
[이 반야심경은 심지(마음바탕) 법문이므로 근본 성품을 밝혀 만법의
근본 도리인 진리를 밝힌 법문으로 마음이라는 진공인 우주 근본체에서 일체 만법을 내는 진리를 증오하여 지혜를 증득하여 열반경계에
들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적영지하고 무명무상(無名無相)하여 오고 감이 없는 지혜의 발현을 체달하는 실상묘법인 경인 것이다]
心欲度衆生 심욕도중생 하고자
用無數方便 용무수방편 하여
以有爲之事 이유위지사 로써
顯現無爲理 현현무위리 로다
중생을 제도하고자
무수한 방편을 써서
함이 있는(事) 것으로써
함이 없는 것(理)을 드러내 보였도다.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능히 모든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헛되지 않는 것이니라.
이 경이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제하고 지혜로워 제도함이 없이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는 법문이므로, 진실하고 거짓되지 않아 틀림없으니, 이것을 외우고 깨달아 앎으로써 마땅히 일체의 고통을 여의고 열반경계에 들게 하는 것임을 확신하라는 뜻이다.
[무릇 현상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한 것이므로 이 모양 없는 모습으로
머묾 없이 머무는 이것이 불생불멸의 우주근본체이며 본래 내 면목이다.
이것만이 진실하고 여기로부터 진리의 지혜가 발현되는 것으로 이것이 일체 법성의 본체인 것이기도 하다.
이것을 깨닫게 하는 이 경(말씀)으로 인해 정각을 이루게 되니 능히
모든 고통 근심을 여읠 수 있는 것이다라는 말씀이다.
청정무구한 자성을 깨닫고 보면 눈병 든 이가 허공 꽃을 본 것처럼 눈병이 나음으로써 비로소 허공에 꽃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 없었으며 허공에는 꽃만이 아니라 허공이라는 그 자체도 없음을 아는 것과
같다.
따라서 지어 만든 환인 고(苦)는 없는 것일 뿐 아니라 실이 아님으로
고통이 있을 것이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헛것을 중생들은 실상으로 보고 알며, 실다운 것은 형상이 없으므로
허환한 형상을 실상으로 뒤집어 잘못 알아, 참과 거짓을 뒤바꿔 앎으로 나 아닌 것을 나로 알고 참나를 나인 줄 모르는 진실이 전도된(뒤바뀐) 꿈에서 깨어나 그 거짓 나의 집착(아집)에서 벗어남으로써 능히
일체고를 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심경은 이를 의지해 일체제불이 정각을 증득하게 되는 것인 까닭에 참으로 실다운 것이며 헛된 것이 절대로 아닌
것이다]
觀佛所見佛 관불소견불 이
一耶更二耶 일야변이야 인가
非一亦非二 비일역비이 이니
卽二亦是一 즉이역시일 니라
보는 부처 보이는 부처가
둘인가 다시 하나인가
하나도 아니요 또한 둘도 아니니
곧 둘이요 또한 하나니라
故說般若波羅密多呪 卽說呪曰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를 주문으로 지금 일러 주노라.
지금까지 설한 반야 바라밀다 심경을 줄이고 농축하여 신비함을 더해 비밀스러운 외움(呪)으로 일러 준다 하였다.
[주(呪) 즉 범어 Dharani(다라니)의 의역이며 총지 또는 능차(能遮)라고도 하는 진언(참말, 진실한 말)이니 呪자는 한자의 윗분(兄)의 귀한
말씀(口, 입)이고, 무량무변의 오묘한 뜻을 지녔으며 비밀스러운 위신력을 갖춘 것이다.
흔히 짧은 것은 주 또는 진언이라 하고 긴 것은 다라니 또는 대주하고
한다]
不容神在由無智 불용신재유무지 이요
盲信奉鬼亦愚癡 맹신봉귀역우치 이니
智慧無別知分別 지혜무별지분별 이라
般若本來無內外 반야본래무내외 하니라
신령함을 부인하는 것은 무지한 소치요
귀신을 믿고 섬김은 또한 어리석은 소치이니
지혜(智)는 무분별지(般若)요 지식(知)은 분별지(解)라
반야는 본래 안과 밖이 없이 있느니라.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주문(진언)이라는 것은 미묘한 뜻과 신비하고 한량없는 힘을 가진,
말로서 설명할 수 없고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신주 또는 비밀주라고도 하며 모든 이치와 신비가 다 갖추어
있으므로 총지(摠持)라고도 하는 것이므로, 굳이 분별심으로 뜻을 알려고도, 뜻에 매이지도 말고 신비한 그대로 외우는 것이 옳은 것이다.
또 이것을 주술로 생각해서도 잘못인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하기에 이 문장은 번역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너무 궁금해하는 이들을 위해 간단하게 대충 해석을 해두겠으나 기억하지 말라.
그 신비의 힘이 반감되기 때문이다.
"가세 가세 저 언덕(피안)으로 가세, 온전히 건너가면 원만한 깨달음을 이루(성취)네" 하는 것이다.
자 그럼 지금부터 어떻게 하여야 하겠는가?
이 경을 강설한 것을 끝까지 살펴 보고 확연히 깨달은 바 있다면 다행이니 잘 보임(보림: 保任: 깨달은 경지를 퇴전하지 않고 지킨다는 것이나 이 지킨다는 것은 지킬 것이 없는 것을 다져 지킴)할 것이요.
그러지 못했다면 정각을 이루겠다는 보리심을 내어, 온갖 괴로움이
있을지라도 참고 견디며(인욕행) 용맹정진하여 물러나지 않고(不退進) 부지런히 애써, 오나 가나 생각 생각에 화두를
(화두 = 공안, 話頭: 古則: 선종에서 마음을 깨치는 불교수행수단으로
참선자가 의심하는 문제인 근본본질 문제로써 깨달아 견성하게 하는
이 화두는 1700공안이 있다 하나 실은 그 수가 그 이상 정해진 바가 없으며 이 화두는 깨친 선지식을 찾아 분명한 간택을 지시 받아 의심하여 수행 정진하는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므로 선지식이 아니면 공부를 해나가는 데 있어
1) 삿되어 병통에 걸리는 것을 막아주지 못하며
2) 바르게 빠르게 견성하는 길을 제시해 주지 못하며
3) 수행인이 지견이 생겨도 이를 본인도 모르니 점검해 줄 수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 궁구해야 한다)
크게 의심해 나가는 의단(疑團: 풀리지 않는 의심의 덩어리)가운데 참구해 가노라면,
홀연히 내외명철하게 되어 몰록 칠통이 타파되어 자기의 본래면목을
바로 보게(觀, 不二) 되면 안과 밖이 공한{백정식: 白淨識: 미세망념이 떨어져 여여하게 일체가 둘 아니게(不二) 됨} 자성의 경계를 증오하게 되어 내가 곧 부처요 우주근본체 인 것을 요달하게 되며,
삼계를 뛰어 넘고 인과를 여의고 윤회의 고를 면하게 되어 생사를 받지 않게 되는 것이며,
지혜가 발현하여 깨달아도 깨달은 바 없고 얻어도 얻은 바가 없는 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이 생이 극락이요 몸벗은 뒤에도 영원한 상락아정으로 적멸의 낙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것을 견성이라 하고 확철대오라 하는 것이다]
路逢劍客須獻劍 노봉검객수헌검 하고
不逅詩人莫獻詩 불후시인막헌시 하리니
愚鈍猛犬逐土塊 우둔맹견축토괴 하고
伶悧獅子應咬人 영리사자응교인 하니라
길에서 검객을 만나면 칼을 바치고
시인이 아니면 시를 바치지 말지니
어리석고 사나운 개는 흙덩이를 좇고
영리한 사자는 응당 사람을 무느니라.
결 론
부처님(석가세존)께서 삼매에 들어 관세음(관자재)보살로 하여금 사리불에게 공의 이치를 설한, 인행시 수행에서 깨달은 바를 설하신 경으로 우주근본체(법성)가 비어 공함을 비춰 보고(觀) 苦를 벗어났고
정각을 증득하셨음을 설하시고,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본래성품이 공하여 나라고 집착하던 색, 수,
상, 행, 식이 공하여 없음을 관하여, 내가 없음을 설하고, 따라서 자성이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며 육근, 육식, 육경을 들어 법계의
모든 것이 본래의 실상이 공적하여 항상하지 않음을 설하시고,
12연기와 4제를 들어 이 같음을 바르게 요달해 알면 따라서 모든 공포를 여의게 되며, 본래 얻을 것이 없음을 알게 되며, 마음에 걸림이 있을 것이 없게 되어, 뒤바뀐 생각으로 꿈 같던 허상에 집착한 것을 꿈을
깨듯 실상을 바로 보게 되어, 삼세제불(모든 이)이 구경의 열반에 들어 해탈하게 되는 것을 설하시고,
마지막으로 이 설하신 반야심경을 오묘하고 견줄 바 없는 것으로 줄여서, 신비한 呪로 일러 준다 하셨으니,
자성의 체와 일체 만법의 상이 있다 하는 소견은 잘못 알고 있는 허상이요 차별상의 집착이며 본질적으로는 비어 공적(空)한 것임을 설하신 것이다.
이 빈 본성을 일러
大空{모든 물질의 현상은 사대(지수화풍)로 이루어진 잠시 있는 허환으로 참다운 성품의 형상이 없음},
本性空(본래 갖추어져 있는 본성이 공함),
畢竟空(일체의 공마저 공함),
自性空(일체만유 각각의 공한 성품),
不可得空(무소유공이니 말과 생각이 끊어져 미칠 수 없는 공),
空空{육근, 육진과 我 또한 모두가 실체가 없고 자성이 비어 없어 철저한 빈(공) 것} 등으로 설명되는 내 마음(자성)이 우주근본체이며 불생 불멸 불변으로 절대근원이고, 자아가 거짓 나요, 육신이 업식으로
생긴 허상이며, 빈 것인 법신이 일체를 낳고 일체가 근본 본질이 공하여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임을 설하셨다.
이러한 것을 밝게 깨달아 체인체득하여 본래 생노병사가 없음을 알고
집착과 미혹으로 인하여 생긴 무명을 거두어 일체고액을 벗어나서 적멸위락 하라는 경이다.
자아(업신)에 속아 실상으로 잘못 알고 이 업신에 애착하여 죽음이 있어 두렵고 아상에 집착하고 자만하게 되는 것이므로, 이제 거짓 나를
던져(크게 죽어) 허상에서 깨어나 절대 진리를 증득하여 영생불멸의
참 나의 지혜로운 삶을 사는 곧 크게 살게되기를 바란다.
인간(업신)은 법관이나 의사가 내리지 않아도 사형선고를 받아 놓고
죽음에 한발씩 다가가고 있는 무상한 가련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중생들은 억지로 외면하고 인정하려 들지 않거나 또는 멀리
있는 것으로 속고 살뿐이다.
깨닫기 전에는 업신에 애착하다 보니 물건을 보면 見物生心으로 보이는 것에 욕심이 생기고,
깨달은 자는 見物觀性으로, 보는 것을 살펴 허상임을 알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깨달은 자는 남의 말에 속지 않고 깨우친 바대로 진리인 자기 말(삼켰다 토함)을 하며 원용(援用)할지라도 남의 말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깨달은 바를 말로써 하는 것이다.
그것은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발현되는 지혜로써 말하기 때문인 것이다.
진리는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본래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깨달은 자의 말은 곧 부처님 말씀이요, 불경인 것이다.
여러분도 늦다 생각하지 말고 지금 당장 바로 알고 참선이나 간경공부등 실참수행하기를 바란다.
누구나 지금부터 초발심이 되어 부지런하게 간단없이 퇴전하지 않게
용맹정진하기 바란다.
초발심이 변정각을 이루는 것이니 초발심이 因이 되고 틀림없이 果로
변정각이 됨을 믿어 의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니 因이 곧 果요, 일으킨 자리에 떨어지는 것이다.
깨닫고 나서 자신만 대자유인으로 살게 되면 그것은 소승인 것이요,
은혜를 꼭 갚아야 하는 것이니 대승 보살심으로 중생제도를 의무로
해야 한다.
이것이 참 자리이타요,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므로 지식이나 지혜를 쓰지 않고 자신만 취하여 갈무리해 두는 것이라면 곧 무용지물인 것과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범부는 물질을 보면 집착심이 생기나
각인은 일체를 보되 보는 놈을 본다.
장군죽비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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