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黃帝陰符經(황제음부경) 券上(권상) ***
*** 黃帝陰符經 序(황제음부경 서) ***
*** 李全 序("이전" 서) ***
少室山(소실산)의 達觀子 李筌(달관자 이전)은 신선의 도를 좋아하여 항상 이름난 산을 돌며 方術(방술)을 널리 찾아 다녔다.
어느 날 嵩山[숭산] 虎口巖(호구암)에 이르러 석벽 가운데에서 비단으로 된 음부경과 두루말이에 주사로 쓰여진 素書(소서)를 얻어 이를 비단으로 감싸서 간직하게 되었다.
봉하여 운하기를 魏眞君(위진군) 이년 칠월 칠일 上淸道士 寇謙之(상청도사 구겸지)가 명산에 감추어서 同好人(동호인)에게 전하고자 하였으며 그 본래의 겉모양은 문드러지고 낡아서 희미해진 것을 이전이 다시 본떠서 기록하였다.
이전이 밤낮으로 이를 외우고 그 뜻을 헤아렸으나 끝내 그 義理(의리)를 깨닫지 못하였다.
후에 秦(진)나라 驪山(려산) 아래에 이르러 한 노파를 만나니(좌계 : 상투머리)를 틀고 남은 머리카락이 해진 옷을 덮었는데 지팡이를 집고 길옆에 서서 불이 나무를 태우는 것을 보고 스스로 말하기를 '火生於木(화생어목)하니 화가 발하여 반드시 목을 극하더라'고 하였다.
이전이 놀라 묻기를 이는 黃帝陰符(황제음부) 상문에 있는 글이니 母가 어찌 얻었음이요?
이에 노파가 말하기를 "내가 이 符(부)를 받아 삼원육갑주가 지났으니 일갑자에 어찌 살펴 알 수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太一遁甲經(태일둔갑경)에 이르기를 일원은 육십세이니 일 갑자를 행함이 된다.
그러므로 삼 元은 백 팔십 歲(해)이며 삼 甲子(갑자)는 일 周㈜가 된다.
육 周를 계산하면 천 팔십 세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나이 어려서 어찌 그 진의를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전이 거듭하여 머리 숙여 절하며 책을 얻게 된 경위를 설명하니 노파가 웃으며 말하기를 나이 젊어서 頰(협)이 生門(생문)에 꿰고 命輪(명륜)이 月角(월각)에 가지런하며 血腦(혈뇌)가 함몰되지 아니하였으니 마음이 공평하고 성질이 어질며 법을 좋아하고 신이 용맹스럽고 지혜를 좋아하니 이에 나의 제자라.
그러나, 나이 오십 육세에, 크게, 대액이 있을 것이라 하며, 이전에게, 앉을 것을 권하고, 말하기를 하늘과 땅이 서로 보호함이 있을 것이라 하고 나무 아래에서 음부의 현묘한 뜻을 설하였다.
이전이 말하기를, 黃帝陰部(황제음부)는 三白言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백언은 도를 말하고 백언은 법을 말하며 백언은 술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그 셋은 실제로는 모두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니 성인과 현인, 지혜롭고 어리석은 이 등이 각각 그 분수대로 얻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음부는 상편에는 神仙抱一之道(신선포일지도)가 실려 있고 중편에는 富國安人之法(부국안인지법)이 있으며 하편에는 强兵戰勝之術(강병전승지술)로 구성되어 있다.
성인이 배우면 그 도를 얻을 것이며 현인이 배우면 그 법을 얻을 것이며 지혜로운 자가 배우면 그 술을 얻을 것이며 소인이 배우면 재앙을 받을 것이니 이는 그 분수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모두는 안으로는 天機(천기)를 헤아림에서 나오고 밖으로는 人事(인사)에 합당해야 하는 것이니 큰 바다의 조수와 온갖 계곡에 담겨진 물이 萬象(만상)을 함유하는 것과 같다.
그 기틀을 펼치면 우주를 감싸고 九夷(구이)를 하나로 묶는다 하여도 이보다 클 수가 없음이요, 그 기틀을 두루(彌)한다면 작은 티끌을 겨자씨에 넣어 숨긴다고 하더라도 족히 이보다 작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정미한 것을 살핀다면 黃庭八景(황정팔경)이라도 족히 써 이보다 더 배울 바가 없음이요, 그 지극히 중요로움을 살피는 것은 경전의 子와 史(사)라도 족히 써 이보다 더한 문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그 교묘하고 지혜로움으로 할 것 같으면 손자와 오자, 한비자라도 족히 써 이보다 기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식물의 성정과 성하고 패하는 수와 죽고 사는 이치가 이러한 機(기)에서 벗어남이 없다.
이 책은 一名 黃帝天機之書(일명 황제천기지서)라고 하니 九竅(구규)와 四肢(사지)를 갖추지 못하고 貪愚癡(간탄우치)하며 風 狂 (풍간광광)한 자라고 할지라도 전함을 얻지 못하겠는가?
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삼일동안 목욕재개 할 것이니 지위가 높고 낮음과 나이의 많고 어림을 가리지 말라.
다만 근본이 있는 자는 큰 스승이 될 것이다.
부귀는 얻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가난하고 천하며 죄지은 자라고 할지라도 이십 紀(기)를 빼앗을 것이다.
하도 낙서에서 황제가 말하기를 성인이 생하고 天帝(천제)가 賜(사)하니 算 (산 )삼만 육천 칠백 이십 기에 主一歲(주일세)라.
만약 사명이 지나침이 있다면 문득 算(산)을 빼앗을 것이다.
산이 다하면 기를 뺏고 기가 다한즉 몸이 죽을 것이니 공덕이 있으면 사명이 문득 산을 더할 것이다.
산을 얻으면 기를 더하고 기를 얻으면 신이 장생불사할 것이니 매년 칠월 칠일 한 권을 베껴 써서 명산 바위틈에 감추면 算(산) 일천 이백 本命(본명)을 얻게 될 것이다.
하루에 칠 편을 외운다면 사람이 지혜가 많아지고 심기가 더하여져 삿됨을 물리치고 재해를 벗어나며 三尸九(삼시구 )을 제거하게 된다.
성인이 금궤에 감추어서 전함을 잊지 않는다.
노파가 말을 마치니 날이 이미 저물게 되었다.
노파가 웃으며 말하기를 내게 보리밥이 있으니 같이 먹자 하고 이에 소매 가운데에서 표주박 하나를 꺼내어 이전을 하여금 물을 떠오라고 하였다.
이전이 계곡 가운데로 내려가서 표주박에 물을 채우니 갑자기 표주박이 무거워져 무게가 가히 백여근에 달함이라.
힘으로 도저히 들 수가 없게 되었다.
하여 문득 샘 속에 표주박을 빠뜨리게 되니 황급히 놀라서 표주박을 잡으려 하였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되돌아와 노파를 찾으니 노파는 간 곳이 없고 오직 보리밥 한 됫박만이 남아 있었다.
이전이 슬피 울며 노파를 찾아 다녔으나 해가 다 지도록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이전이 이에 보리밥을 먹고서 되돌아가게 되었다.
이때부터 점차 배고픔을 잊게 되니 이전은 능히 수일동안 먹지 않거나 또는 하루에 여러 번을 먹더라도 아무런 장애가 없게 되고 기력이 어느 때나 왕성하였다.
이전이 여산의 노파가 설명한 바에 힘입어 음부를 터득하게 되니 이는 이전이 자신의 능력으로 이룬 바가 아니다.
후세의 동호인들은 천기를 공경하고 인연 있는 자에게 전함을 잊지 말라고 하였다.
貧貪癡(빈탐치) 癎(간) 齋賜輒誦(재사첩송) 瓠覓(호멱)간 風 狂(풍 광)
*** 오원자 유일명의 주소 ***
*** 陰符經 註序(음부경 주서) ***
음부경 삼백여 자는 그 말씀이 심히 오묘하고 그 이치는 精微(정미)하다.
때문에, 混沌(혼돈)을 열고, 鴻 (홍 )을 剖析( 부석)하여, 造化(조화)의 비밀을, 통하게 하였다.
이로써 성명의 깊고 깊은 바닥을 열어 보임으로써 古今來(고금래)의
修道第一部眞經(수도제일부진경)이 되었다.
당나라 陸龜蒙(육구몽)이 이르기를 黃帝(황제)가 지었다고 하고 송나라 陳淵(진연)은 이르기를 黃帝가 廣成子(광성자)에게 받은 것이라 했으며 朱 公 또한 이르기를 황제가 지은 것이라 하였다.
邵堯夫(소요부) 선생은 이르기를 전국시대의 책이라고 하였고 程伊川(정이천)은 商(상)나라 末(말)이 아니면 周㈜나라 말기의 책이라고 하였다.
이렇듯 그 설이 분분하여 定見(정견)을 밝히기 어렵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세상에서는 대개 어떠한 것의 가치를 높이고 비중을 싣는 방법으로서 그 출처를 옛 성인들에게서 나온 것이라 하여 신비롭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傳書(전서)와 丹經(단경)들이 黃帝를 저자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문자를 살펴 보건대 황제에서 시작하여 唐(당), 虞(우), 夏(하), 商(상)으로 내려가니 혹자는 황제가 지은 作(선작)이라 하고 입과 입으로 서로 전하여 문자로 기록하지 않은 것을 후세의 眞(진), 仙(선), 侶(려)들이 책으로 만들어서 세간에 流傳(유전)한 것이라고 하나 이 또한 가히 定說(정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 책은 沿訛( 연와)된지 이미 오래되어 진본을 가리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字句(자구)가 어긋난 것이 적지 아니하고 혹자는 驪山 老(여산 노) 의 말의 빌어 百言은 道를 설하고 百言은 法(법)을, 百言은 術(술)을 설한 것이라고 하나 이 또한 聖道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니 이는 맹인을 이끄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 정이천, 태공망 여상, 장과, 장자방, 제갈공명 등의 註語(주어)라고 하여 세상을 속이고 사람을 미혹하게 하니 이 또한 물고기의 눈을 가지고 混珠(혼주)구슬이라고 하는 것과 같으며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는 것과 같으니 크게 眞經(진경)의 妙旨(묘지)를 상실하는 바가 있다.
乾隆(건륭) 사십 사년, 歲次(세차) 己亥(기해)에, 南台(남태) 深處(심처)에서, 諸家(제가)의 註本(주본)을 취하여, 字句(자구)를 교정하고, 세심하게 참작하고, 大意(대의)를 서술하여, 삿된 면을 일소하고, 바름을 구함으로써, 狂言亂語(광언난어)의 폐단을 제거하였으니, 高明者(고명자) 스스로 능히 분별하리라.
大淸(대청) 嘉慶(가경) 三年 歲次(세차) 戊午 九月 九日
樓雲山(루운산) 素樸散人(소박산인) 悟元子(오원자) 劉一明(유일명)
於自在窩中(어자재와중)
*** 陰符經 註解跋(음부경 주해발) ***
음부경은 황제가 도를 설명한 글이되 兵家(병가)에서는 天時孤虛旺相之理(천시고허왕상지리)와 人事進退存亡之因(인사진퇴존망지인)으로 풀이하니 곧 緇黃之流[치황지류]이다.
聖經(성경)을 천박하게 하며 註疏(주소)를 그릇되게 한 것이 또한 적지 아니하다.
그릇 되이 죽은 쥐로써 살아있는 쥐를 대신하듯이 하며 푸른 것을 가지고 누르다고 하니
거기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우리의 스승 悟元老師(오원노사)께서 性命(성명)의 정밀함을 밝히시고 천과 인의 오묘함을 증명하시니 옛 성인들께서 세상을 염려하시는 마음과 체합함이다.
그 감춰진 것을 들추어내시어 후학들이 이치를 궁구하되 그 문을 찾기가 어려운 것을 불쌍히 여기시어 상세하게 해설하심으로써 여러 가지 어긋난 설들을 제거하시었다.
또한 음부의 핵심을 설명하시어 盡性至命之學(진성지명지학)과 有爲無爲之理(유위무위지리)를 모두 세세하게 정립하시어 상세히 갖추어 놓았으니 장장 수 천년 동안 매몰되었던 음부를
오늘날 원래의 뜻을 다 노출시키어 조금도 의심됨이 없게 하셨다.
경에 운하기를 '관천지도집천지행이면 진의' 라 하였으니 나는 말하기를 聖經之精(성경지정) 聖道之微(성도지미)를 盡矣(진의)라고 한다.
大淸(대청) 嘉慶(가경) 三年 歲次 戊午 九月 九日
受業(수업) 門人 王附(왕부) 靑雲峰(청운봉) 甫沐手敬願(보목수경원)
*** 陰符經(음부경) ***
軒轅黃帝著(헌원황제저)
陽門人張陽全校閱(양문인장양전교열)
悟元子劉一明註(오원자유일명주)
後學陶鑄靈重刊(후학도주령중간)
陰者(음자)는 暗也默也(암야묵야)라.
사람이 능히 볼 수 없고 알 수 없으니 스스로 홀로 보고 홀로 아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符者(부자)는 契也(계야)니 둘이서 서로 합한다는 뜻으로 彼(피)와 此(차)가 如一(여일)하다는 뜻이다.
經者(경자)는 徑也(경야), 道也(도야), 常也(상야)니 常行(상행)하는 도로서 經(경)이 오래되어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음부경은 神明(신명)이 暗運(암운)하고 默契造化(묵계조화)하는 도이니 묵계조화란 사람이 하늘과 더불어 합하여 一動一靜(일동일정)이 모두 천기에 합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도 또한 一天이 되는 것이다.
상, 중, 하 삼편이 모두 음부경 三字에 申明(신명)되는 것이니 음부경 세 글자의 뜻을 알게 된즉 삼편의 大意(대의)를 가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上篇 (상편) ***
"관천지도" 하고, "집천지행" 이면, 진의라.
성명의 도는 一天道이며, 하늘의 도는 음양의 도일뿐이다.
修道者(수도자)는 능히 天道(천도)의 오묘함과 神明(신명)의 默運(묵운)함을 알아 음양의 기를 훔치고 造化(조화)의 權(권)을 빼앗아 가히 長生不死(장생불사)할 것이며 가히 無生無死(무생무사)해야 할 것이다.
그 最要處(최요처)는 능히 觀(관)하고 능히 執(집)한다는 데에 있는 것이다.
무엇을 일러 觀(관)이라고 하는가?
格物致知(격물치지)의 관이며 極深硏幾(극심연기)의 관이며 心知神會(심지신회)의 관이며
廻光返照(회광반조)의 관이며 不隱不瞞(불은불만)의 관이라고 한다.
무엇을 일러 執(집)이라고 하는가?
專心致志(전심치지)의 집이며 身體力行(신체역행)의 집이며 愈久愈力(유구유력)의 집이며
無過不及(무과불급)의 집이며 始終如一(시종일여)의 집이다.
즉 하늘의 도를 본다 함은 무위의 공이며 頓悟(돈오)이며 소이 了性(료성)이다.
하늘의 行을 잡는다 함은 유위의 學이며 漸修(점수)이며 了命(료명)이다.
能觀能執(능관능집)은 음양의 도를 사용하여 이로써 음양을 벗어나는 것이며 세간법을 의지하여 세간을 벗어나는 것이니 성과 명을 함께 마치고 心과 法을 모두 잊어 천지를 초탈하여 영겁토록
長存(장존)하는 것이다.
이 두 구절은 선을 이루고 불을 이루는 하늘 사다리가 되는 것이며 성인이 되고 현인이 되는 대도인 것이다.
이 밖의 것들은 모두 방문의 굽은 길이며 邪設淫辭(사설음사)이니 고로 盡矣(진의)라 한 것이다.
"관천지도하고, 집천지행이면 진의라."
이 한마디 말은, 음부경의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다.
*** 음부경 2 ***
天有五賊(천유오적)하니 見之者昌(견지자창)이라.
주)
오적이란 金, 木, 水, 火, 土이다.
하늘은 음양오행으로써 만물을 화생하고 기로써 形(형)을 이루니 사람은
곧 이 기를 받아서 태어나고 자란다.
양이 극에 달하면 음이 생함으로부터(但自陽極生陰) 선천에서 후천으로 떨어지게 되어
오행이 능히 화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서로 대적하고 해함으로부터(自相賊害) 각각 그 性을 따로 하게 된 것이니 목은 금으로써
적을 삼고, 금은 화로써 적을 삼고, 화는 수로써, 수는 토로써, 토는 목으로써 적을 삼으니
이것이 이른바 하늘의 오적이 된다.
이러한 오적을 백성은 일용하되 알지 못하는 것이니, 그 기를 따라서 순행하므로 생겨나고
죽는 것이며 사망하였다가 다시 잉태하므로 生과 死가 그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이를 꿰뚫는 자가 있다면 逆(역)으로 조화를 베풀어 오행을 전도시켜 금이 본래 목을 극하는 것이나 목은 도리어 그로 인하여 器物(기물)을 이루고, 목은 본래 토를 극하는 것이나 토는 도리어 이로 인하여 生榮(생영)하게 된다.
토는 본래 수를 극하는 것이나 수는 도리어 이로 인하여 넘치지 않게 되며, 수는 본래 화를
극하는 것이나 화는 도리어 이로 인하여 지나치게 건조하지 아니한다.
화는 본래 금을 극하는 것이나 금이 도리어 이로 인하여 화를 받아들여 청명함을 이루니
극하는 가운데 새로운 생이 있게 되는 것이다.
오적이 전화하여 五寶(오보)를 이루며 一氣가 渾然(혼연)하여 화는 返本(반본)하게 되니
어찌 창성하지 아니하겠는가?
*** 음부경 3 ***
五賊(오적)이 在心(재심)하니 施行於天(여행어천)이면
宇宙(우주)가 在乎手(재호수)하고 萬化(만화)가 生乎身(생호신)하니라.
주)
사람은 오행의 기를 끌어 몸을 만드니 몸 가운데에는 오행의 기가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마음이란 몸의 주인이며 몸이란 마음의 집이니 오적이 몸에 있다 함은
실은 마음에 있는 것이 된다.
다만 마음은 人心과 道心의 나눔이 있으니 인심으로 用事(사용)한즉 오적이 발하여 喜怒哀樂慾(희로애락욕)의 五物(오물)이 되고 도심으로 用事한즉 오적이 변하여 仁義禮智信(인의예진신)의
五德(오덕)이 된다.
만약 능히 觀天(관천)하여 오행의 消息(소식)에 밝아 도심으로 운용한다면 一步一趨(일보일추)가 모두 하늘에서 나오는 것이며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면 우주가 비록 크다고 하나 손바닥 안에 있는 것과 같으며 萬化가 비록 많다고 하나
내 몸 안에서 벗어나지 아니하니 오행을 모으고 사상을 합하여 성명을 마침이 가히 어렵지 않다
할 것이다.
음부경 4
天性(천성)은 人也(인야)요 人心(인심)은 機也(기야)니
立天之道(입천지도)하여 以定人也(이정인야)니라.
주)
天性(천성)이란 하늘이 부여한 성이니 곧 眞如之性(진여지성)으로 소위 眞心(진심)이다.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하늘의 법칙을 순으로 따라 사람이 이를 얻어 사람이 되는 것이다.
人心(인심)이란 氣質之性(기질지성)이니 곧 知識(지식)의 性(성)으로 소위 機心(기심)이다.
景物(경물)을 보아 뜻이 생겨나고 바람을 따라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니 사람은 이로 인하여
生(생)이 있고 死(사)가 있게 되는 것이다. 天性(천성)이란 天機(천기)이니 곧 天道(천도)이다.
人心(인심)이란 人機(인기)이니 곧 人道이다. 천기를 지키는 자는 보존되고
人機(인기)를 따르는 자는 망한다.
오직 大聖人(대성인)이라야 天道를 觀(관)하고 天行을 잡아 中에 서서 치우치지 아니하니
寂然不動(적연부동)하여 感而遂通(감이수통)하게 되는 것이다.
眞性(진성)을 닦아 氣性(기성)을 화하게 하며 天道(천도)를 지키어 人心을 定(정)하게 하는 것이니 方寸之內(방촌지내)에 털끝만치라도 客氣(객기)가 섞이지 않게 하여야 한다.
天發殺機(천발살기)하면 移星易宿(이성역숙)하고 地發殺機(지발살기)하면
龍蛇起陸(용사기육)하고 人發殺機(인발살기)하면 天地反覆(천지반복)하나니
天人合發(천인합발)이라야 萬化定基(만화정기)니라.
주)
殺機(살기)란 陰肅之氣(음숙지기)이니 곧써 만물을 傷(상)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陰(음)이 없다면 능히 陽(양)을 생할 수 없고 殺(살)이 아니면 生(생)을 지킬 수 없다.
고로 하늘이 殺機(살기)를 한 번 발한즉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시작함이 있게 되고
별자리가 옮겨지며 북두칠성이 回寅(회인)되는 것이다.
땅이 한 번 殺氣(살기)를 발한즉 極(극)이 바뀌어 다시 시작하니 용과 뱀이 땅에서 일어나며
靜이 극하여 또한 動이 있게 된다.
오직 사람도 또한 一天地를 갖춤이니 이러한 음양이 몸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만약 능히 하늘을 본받고 땅을 法하여 殺氣를 움직인즉 오행이 顚倒(전도)되고 地天交泰(지천교태)하게 된다. 이러한즉 人心이 천심과 더불어 합하고 음양이 전도됨이 다만 순간의 일이다.
天時와 人事가 합하여 하나로 가게 된즉 萬物變化(만물변화)의 근본 기틀이 곧 이에서 정하여진다. 중용에 이른바 '致中和(치중화) 天地位焉(천지위언) 萬物育焉者(만물육언자)' 바로 이것이다.
음부경 5
性有巧拙(성유교졸)하니 可以 伏藏(가이 복장)이라.
주)
사람은 음양의 기를 합하여서 형을 이루며 良知(양지)와 良能(양능)으로써 性(성)을 삼는다.
性에는 착하지 아니함이 없되 氣에는 淸濁(청탁)이 있다. 기가 청한 자는 교묘하고, 탁한 자는 졸렬하다. 성이 교묘한 자는 機謀(기모)가 많고, 성품이 졸렬한 자는 탐하고 어리석음이 많다.
그러나 교묘한 성품과 졸렬한 성품이 모두 氣質(기질)의 성품으로써 인심으로 이를 처리하는 것이며 본래의 천성으로써 하는 것이 아니다. 修眞(수진)의 도는 선천을 캐어 후천을 화하게 하는 것이니 일체의 巧拙(교졸)의 性이 모두 감추어지고 쓰이지 않게 된다.
九竅之邪(구규지사) 在乎三要(재호삼요)하니 可以 動靜(가이 동정)이라.
주)
구규란 사람의 몸 위쪽의 일곱 개의 구멍과 아래쪽의 두 구멍을 말하는 것이다.
삼요란 耳, 目, 口를 말함이다. 사람 몸의 아홉 개의 구멍은 모두 삿된 것을 받아들이는 처소가 된다. 아홉 구멍 가운데 耳, 目, 口 세 가지는 삿된 것을 불러들이는 구멍이 되는 것이니 귀로 소리를 들은즉 정이 흔들리고 눈으로 색을 본즉 신이 달아나고 입으로 말을 많이 한즉 기가 흩어지게 된다.
精, 氣, 神이 한 번 상하게 되면 전신이 쇠약해져 性과 命을 敗(패)하게하여 죽지 않는 자가 없다.
사람이 능히 밖으로 보는 것을 거두고 소리를 되돌리며 말을 적게 하여 그 삼요를 닫아 뜻을 허무에 맡기고 마음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며 外念(외념)도 또한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정, 기, 신 三品大藥(삼품대약)을 응결시켜 흩어지지 않게 한다면 아홉 구멍이 움직임도 가한 것이고 고요함도 가한 것이다. 따라서 동할 때나 정할 때나 언제나 天機(천기)로써 응하게 되어 人機(인기)가 사라지게 되니 어찌 邪氣(사기)가 소멸되지 않겠는가?
火生於木(화생어목)이나 禍發必剋(화발필극)하고 姦生於國(간생어국)이나
時動必潰(시동필궤)하니 知之修鍊(지지수련)을 謂之聖人(위지성인)이라 한다.
주)
火는 삿된 마음을 비유한 것이며 木은 성품을 비유한 것이다. 간사하다는 것은 陰惡(음악)한 것을 비유한 것이며 나라는 몸을 비유한 것이다. 나무는 본래 불을 생하는 것이나 불이 맹렬히 타오르게 되면 그 재앙이 나무에 미치게 되어 나무를 극한다는 것이다.
삿된 것이 마음에서 생겨나 삿됨이 발하게 되면 그 재앙이 도리어 마음에 미치어 성품이 어지럽게 되며 나라에 간신이 동하면 그 나라가 무너지게 되고 결국 망하게 되는 것이다.
음이 몸 가운데에 감추어져 있어 음이 강성하게 되면 그 몸을 敗하게하여 명이 무너지게 된다.
마음과 몸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성과 명이 서로 따르게 되어 있는 것이니 이에 수련을 행하여 관천도집천행하여 身心을 항복 받고 성명을 보존하여 後天五行에 얽히는 바 되지 않는다면 그가 곧 성인이 아니고 누구리오?
음부경 6
中篇
天生天殺(천생천살)은 道之理也(도지리야)라.
주)
하늘의 도는 음양일 따름이다. 양은 생을 위주로 하고 음은 살을 위주로 한다.
양하되 음이 아니며 생하되 살하지 아니하는 이치는 있지 아니하다.
고로 봄은 생하고 여름은 자라며 가을에는 거두어지며 겨울에는 갈무리하는 것이니 四時가 차례를 이루고 한바퀴 돌아서 다시 시작하여 끊임없이 순환하여 그치지 아니함이 예로부터 이와 같다.
天地(천지)는 萬物之盜(만물지도)요 萬物(만물)은 人之盜(인지도)요 人은 萬物之盜(만물지도)라.
三盜旣宜(삼도기의)면 三才旣安(삼재기안)이라.
고로 말하기를 食其時(식기시)하면 百骸(백해)가 理(리)하고
動其機(동기기)하면 萬化(만화)가 安(안)이라.
주)
하늘은 만물을 생겨날 수 있게 하고 땅은 만물을 태어나게 한다. 그러나 이미 생겨난즉 또한 죽이니 이것이 천지가 만물을 훔치는 것이다. 세상에는 만물이 있으니 사람이 이를 보아 마음을 내게 된다. 뜻을 함부로 하여 욕심을 따르게 되니 신과 기를 소모시키고 흩어지게 한다.
이로써 어린아이에서 장성하게 되고 장성한 데서 다시 늙어지게 되며 이윽고 늙어서는 죽게 된다.
이것이 만물이 곧 사람을 훔치는 것이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만물이 비록 능히 사람의 기를 훔친다고 하나 사람은 만물의 精華(정화)를 먹음으로서 만물의 기를 빌리어 생겨나고 자라는 것이니 이것이 또한 사람이 만물을 훔치는 것이 된다.
대수행인은 능히 만물의 기를 빼앗아 자신을 위하여 사용한다. 또한 능히 만물이 나의 기를 훔침으로 인하여 내가 훔치고 아울러 천지가 만물의 기를 훔침으로 인하여 내가 또한 그를 훔친다. 三道(삼도)가 一道(일도)로 귀결되고 殺 가운데 생이 있게 된다.
즉 삼도가 모두 그 마땅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삼도가 이미 마땅함을 얻게 되면 사람과 더불어 천지가 덕을 합하게 되니 더불어 행하여 서로 어김이 없게 되므로 三才(삼재)가 또한 편안한 것이다.
삼재가 이미 편안하다면 道氣(도기)가 常存(상존)하게 되며 만물에 능히 屈(굴)하지 않게 되어 조화가 구속받지 아니한다. 그러나 이것은 도의 비밀이니 이 도의 비밀은 한 때의 功(공)에 있는 것이니 반드시 앞서지도 아니하며 뒤에 해서도 아니 되며 太過不及(태과불급)도 아니 된다.
坎(감)이 온즉 離(리)로써 받고 저(彼)가 오면 나는 기다린다. 양이 돌아오면 음으로써 接(접)한다.
크게 중요한 것은 그 때를 잃지 아니하는 것이며 그 기미에 어긋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其時(기시)하면 百骸(백해)가 理(리)하고 動其機(동기기)하면 萬化(만화)가 安이라 한 것이다.
食其時(식기시)란 때를 따라 선천지기를 삼키는 것이며 動其機(동기기)란 기미를 따라서 生殺의 자루를 돌리는 것이다. 食時(식기)한즉 후천의 기를 化하게하여 百骸(백해)가 다 이치에 맞게 되므로 가히 모양이 온전하게 된다.
動機則(동기칙) 선천지기를 회복하여 萬化가 모두 편안해지므로 가히 延年(연년)할 수 있는 것이다. 時나 機는 모두 말로 드러내기는 무척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時는 天時를 말하는 것이며 機는 天機(천기)를 말하는 것이다.
진실로 조화에 밝아 음양에 통달한 자가 아니라면 어찌 능히 안다 하리요? 오호라, 팔월 십오일에 蟾輝(섬휘)를 보라. 정히 이 때가 金精(금정)이 壯盛(장성)할 때이다. 만약 一陽이 솟아나는 곳에 이른다면 문득 마땅히 火를 내어 늦지 않게 하라.
음부경 7
人知其神而神(인지기신이신)하며 不知不神而所以神(부지불신이소이신)이라.
주)
古今의 學人들이 모두 昭昭靈靈(소소령령)한 識神(식신)을 가지고 본래의 元神으로 오인하였다.
고로 空과 相에 집착하여 천 가지의 기이함과 백가지 괴이함에 빠져 늙음에 이르도록 성취가 없었고 결국은 모두 죽음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신이 후천의 신으로서 선천의 신이 아님을 알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이기는 하되 실제로는 신이 아닌 것이다.
선천의 신은 色도 아니고 空도 아니며 지극히 無하되 또한 지극한 有를 포함하며 지극히 虛(허)하면서도 지극히 實(실)하니 이에 神이 아닌 것 같은 神이니 실제로는 지극한 神인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다만 후천의 신이 진실된 신인 줄 알고 윤회에 떨어지고 마니 선천의 신 같지 아니한 신이 능히 성명을 보호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만물이 나의 기를 훔치는 것을 깨닫지 못함이 조금도 괴이하지 않다.
日月有數(일월유수)하고 大小有定(대소유정)하니
聖功(성공)이 生焉(생언)하며 神明(신명)이 出焉(출언)이라.
其盜機也(기도기야) 天下莫能見(천하막능견)하고 莫能知(막능지)하니
君子得之(군자득지)에 固窮(고궁)하고 小人得之(소인득지)에 輕命(경명)하니라.
주)
사람이 능히 천지만물의 기를 훔칠 수 있는 까닭은 천지만물이 정해진 數(수)가 있기 때문이다.
천지만물이 사람의 기를 훔치지 못하는 까닭은 聖道(성도)가 形象(형상)이 없기 때문이다. 해와 달이 비록 높다하나 度數(도수)가 있어 가히 짐작할 수 있다. 해는 일년에 한바퀴를 도는 것이며 따라서 하늘에 춘하추동이 있어 가히 볼 수 있다.
달은 삼십 일에 한바퀴를 도는 것으로 하늘에는 盈虛朔望(영허삭망)이 있어 가히 엿볼 수 있다.
큰 것은 陽이며 작은 것은 陰이니 陽極則陰生(양극침음생)하고 陰極則陽生(음극칙양생)한다.
大往小來(대왕소래)하며 小往大來(소왕대래)하여 음양이 끊임없이 순환하나 그 이치가 일정하여 바뀌지 않는 도가 있다. 지극한 사람은 이에 陰陽造化(음양조화)의 消息(소식)을 짐작하여 一時辰(일시진) 내에 功法(공법)을 써서 鴻 未判(홍 미판)한 氣를 채취하여서 丹母(단모)로 삼는다.
또한 天地虧盈(천지휴형)의 수를 빼앗아 命의 기반을 삼으니 하늘보다 먼저 하여도 하늘이 이를 어기지 아니하며 하늘보다 뒤에 하여도 天時를 받들게 된다. 성인의 공업이 여기에서 生하게 되며 神明이 또한 여기에서 나오게 된다. 이러한 공업과 이러한 신명으로 하는 盜機(도기)는 비록 天地鬼神(천지귀신)이라 할지라도 가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 하물며 사람에서이랴?
천하가 어찌 이를 볼 수 있을 것이며 이를 알 수 있겠는가? 만일 이를 능히 보고 능히 알 수 있는 것이라면 어찌 훔침이 가능하겠는가? 이가 곧 聖人이며 이가 곧써 神이 되는 것이다.
이 道는 忠臣, 孝子, 大賢(대현), 大德의 사람이 아니면 능히 알지 못하는 것이며 烈士(열사), 丈夫(장부)로서 일체의 萬有(만유)를 굽어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능히 행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진정한 修道君子(수도군자)는 뜻을 얻었으나 말이 없고 크게 지혜로우나 어리석은 것 같으며 크게 교묘하나 옹졸한 것 같으니 性을 마치고 命을 마친 후에도 그에 이르지 못한 것 같이하여 조금도 누설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한다. 진실로 몸을 굳게 지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한다.
박복한 사람들은 이와 달리 우연히 조그마한 滋味(자미)를 맛보면 스스로 만족하여 성과 명을 고르게 닦지 아니하며 없되 있는 것 같이 하고 텅 비었으되 가득 찬 것 같이 하며 빈약하면서도 편안한 것 같이 하여 스스로 죄를 지으니 한갓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해가 되는 것이다.
음부경
下篇
者善聽(자선청)하고 聾者善視(롱자선시)라. 絶利一源(절리일원)이면
用師十倍(용사십배)하고 三返晝夜(삼반주야)하면 用師萬倍(용사만배)니라.
주)
소경이 듣기를 잘 한다는 것은 잘 듣는다는 뜻이 아니다. 눈이 보이지 않으므로 신이 귀에 갈무리되어 그 듣는 것이 밝아진다. 벙어리가 보기를 잘 한다는 것은 잘 보는 것이 아니라 귀가 듣지 못하므로 기가 눈에 운기되는 까닭이다. 고로 그 보는 것이 밝다.
이 두 가지로써 보건대 눈을 막으면 귀가 밝고 귀를 막으면 눈이 밝으니
하물며 선천기를 가져 거짓됨을 버리고 참됨을 닦으며 정성스러움을 보존하고
망령됨을 버리는 자, 어찌 능히 장생하지 못함을 근심하겠는가?
淸靜經(청정경)에 말하기를 중생이 참된 도를 얻지 못하는 것은 망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망심이 있은즉 그 신이 놀라게 되고 이미 신이 놀란즉 만물에 집착하게 되며 이미 만물에 집착한즉 생을 탐구하게 된다.
이미 생을 탐구한즉 이는 번뇌이니 번뇌망상은 몸과 마음을 괴롭고 근심스럽게 하여 문득 탁하고 욕되게 하며 생사에 유랑하여 항상 고해에 잠겨 영원토록 참된 도를 잃게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망상과 탐구는 이에 利(리)의 근원이 된다. 사람이 능히 利(리)의 한 근원을 끊은즉 만유가 다 공하게 되고 모든 생각을 다 쉬게 되니 군사를 씀에 이끌어 가는 공이 십 배를 능가하고 또한 능히 두세 번 스스로 돌이켜 存誠去妄(존성거망)하고 朝乾夕(조건석 )하며 주야로 慇勳( 은훈)하여 십이시 중 간단히 없게 하여 점차 至善無惡之地(지선무악지지)에 돌아가니 군사를 써 도인하는 공, 만 배를 능가한다.
대개 군사의 공이란 능히 그 얼굴은 고치되 그 마음은 고치지 못하는 것이며 능히 남과 더불어 規矩(규구)는 하되 능히 사람을 교묘하게는 하지 못한다. 利(리)를 끊어 스스로에게 돌이킨다는 것은 心地(심야)를 바르게 하는 下功(하공)이니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곳에서 스스로 삼가고 조심하는 데에야 師力(사력)이 어찌 미칠 것인가?
至聖(지성)은 운하기를 "하루 克己復禮(극기복례)하면 천하가 仁(인)에 돌아갈 것이니
仁(인)은 나로 말미암음이며 어찌 남으로 말미암음이겠는가?" 라 하였으니
바로 이것이 절묘한 말이라 하겠다.
음부경 9
心生於物(심생어물)하고 死於物(사어물)하니 機在目(기재목)이라.
주)
마음은 주인과 같고 눈은 문호와 같다.
본래 진심은 空空洞洞(공공동동)하며 無我無人無物(무아무인무물)하여 太虛(태허)와 더불어
同體(동체)를 이루니 어찌 생사가 있겠는가? 그 생사가 있다는 것은 後天肉團之心(후천육단지심)일 뿐이다.
마음은 가히 볼 수 없는 것이나 만물로 인하여 나타나니 만물을 봄에 문득 마음이 나타나는 것이다. 만물이 없으면 마음도 나타나지 아니하니 주인이 혹은 생하고 혹은 사하는 것이 만물로 인해서 생겨나고 만물로 인해서 죽는 것과 같다.
소이 만물에 의하여 死心(사심)이 생한다는 것은 모두 눈이 문호를 닫아 훔침을 당하는 것일 뿐이다. 대개 눈으로 보는 바가 있으면 마음이 곧 받아들이니 이는 마음이 생하고 사하는 기틀이 실은 눈에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능히 返觀內照(반관내조)하여 외물을 받아들임이 없게 한다면 생사가 어디로 좇아오겠는가? 古人(고인)이 운하기를 흘겨보지 말 것이니 옆눈질하면 문득 늙어질 것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지극한 말이다.
天之無恩而大恩生(천지무은이대은생)하고 迅雷烈風(신뢰열풍)에 莫不蠢然(막불준연)하니
至樂(자락)은 性餘(성여)하고 至靜(지정)은 性廉(성렴)이니라.
주)
天은 지극히 높고 만물은 지극히 낮다.
하늘과 만물이 서로 멀어 만물에 은혜가 없는 것 같으나 無恩(무은) 중에 실은 大恩(대은)이 생함을 알지 못한다. 하늘이 기를 움직여 우레를 이루고 불어서 바람을 이룬다.
빠른 번개로 진동하여 만물을 발생시키고 더운 바람을 불어 만물을 왕성하게 한다.
發生榮旺(발생영왕)하여 만물이 모두 蠢然(준연)하나 모두 자연에서 출함을 알지 못한다.
이는 無恩而生大恩(무은이생대은)이니 하늘이 어떠한 마음이겠는가? 고로 至樂者(지락자)는 만물이 굴복시키기 어려우니 구속됨이 없어 性(성)이 항상 여유가 있다.
至靜者(지정자)는 만물이 옮기기 어려우니 貪愛(탐애)가 없어 성품이 항상 맑고 청렴하다.
즐거운 자는 남음에 무심하여 항상 스스로 여유롭고 靜者(정자)는 청렴함에 무심하여 항상 스스로 청렴하니 하늘이 은혜 없는 것 같으되 큰 은혜가 있음은 無心(무심)의 用(용)이니 神(신)일진저.
天之至私(천지지사)하고 用之至公(용지지공)하니 禽之制在氣(금지제재기)라.
주)
하늘의 도는 無象(무상)한 데에서 행하고 無形(무형)에서 運(운)하여 만물에 둘이 아니니 그 지극히 사사로움이여. 그러나 四時(사시)에 행하여 만물을 생하니 그 쓰임은 또한 지극히 공적이다.
그 오묘함을 미루어 一氣(일기)가 流行(유행)하니 만물을 禽制(금제)한다. 禽(금)은 擒(금)이니 統攝(통섭)함을 이른다. 制(제)는 造作(조작)함을 이른다. 統攝萬物 制造萬物(통섭만물 제조만물)함은 一氣(일기)에 있다는 말이다.
일기가 상승함에 만물이 모두 따라서 생장하고 일기가 하강함에 모두 따라서 거두고 갈무리되니 생장하고 갈무리되는 것이 모두 이 일기의 금제하는 바이다.
하나의 근본이 흩어져서 만가지 다름이 되고 만가지 다름이 돌아와 한 근본이 되니 삿되다고 하나 공적이고, 공이라 하나 삿되니 非私非公(비사비공)하며 卽私卽公(즉사즉공)하다. 一氣流行(일기유행)하여 순환이 끝이 없으니 활발하다.
음부경 10
生者(생자)는 死之根(사지근)이요, 死者(사자)는 生之根(생지근)이니
恩生於害(은생어해)하고 害生於恩(해생어은)이라.
주)
하늘의 道(도)가 만물을 생하니 즉 이 도는 一氣(일기)로 말미암음이다.
상하로 一氣를 운용하니 上은 陽(양)이 되고 下는 음이 된다. 陽이란 生이며 恩(은)이다. 陰이란 死이며 害(해)이다. 그러나 生이 있으면 반드시 死가 있고, 死가 있으면 반드시 생이 있게 된다.
따라서 生은 死의 뿌리가 되며 死는 生의 뿌리가 된다. 恩惠(은혜)가 있다면 반드시 害(해)도 있는 것이며 害(해)가 있으면 반드시 은혜도 있는 것이니 따라서 은혜에서 해가 생하고 해에서 은혜가 생함이 있다.
사람이 죽음 가운데에서 속으로 生을 구한즉 長生하고 不死할 것이며 사람이 능히 害(해) 가운데에서 속으로 은혜를 찾은즉 은혜가 있고 해가 없이 될 것이다.
이를 벗어나 저(彼)로 들어감에 가히 조심하지 않겠는가?
愚人(우인)은 以天地文理(이천지문리)로 聖(성)하고
我(아)는 以時物文理(이시물문리)로 哲(철)하니라.
주)
어리석은 사람은 生死恩害(생사은해)를 알지 못한다.
이는 天地造化 循環(천지조화 순환)의 비밀로서 곧 天地文理(천지문리)로 聖(성)을 삼기 때문이다.
나는 이르기를 天文(천문)에는 象(상)이 있고 地理(지리)에는 形(형)이 있어 바깥으로 나타남이 있으니 가히 볼 수 있고 가히 알 수 있기 때문에 족히 天地(천지)를 성스럽다 하지 않는다.
時物(시물)의 文理(문리)는 象(상)도 없고 形(형)도 없어 이에 神運(신운)의 道(도)가 속으로 감추어진 것이기 때문에 가히 볼 수도 없고 가히 알 수도 없어 정히 天地(천지)의 곧써 哲(철)이 된다.
대개 만물에는 때가 있어 生하고 때가 있어 死한다. 마땅히 생하는 때에는 때에 맞춰 생하여 생하지 아니할 수 없다. 마땅히 사하는 때에는 때에 맞춰 사하여 죽지 않을 수가 없다.
生은 恩(은)이며 死는 害(해)이다. 나고 죽고, 죽고 나며, 은혜롭고 해되며, 해되며 은혜롭다.
生死恩害(생사은해)가 모두 時運(시운)에 따르는 것이니 또한 天地神道(천지신도)의 운행이 아님이 없다. 天地神道(천지신도)는 볼 수 없는 것이나 만물로 인하여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며 만물의 생사에 때가 있을 보아서 천지신도의 明哲(명철)함을 가히 알 수 있다.
음부경 11
人은 以愚(이우)로 虞聖(우성)하고 我는 以不愚(이불우)로 虞聖(우성)하며
人은 以奇(이기)기로 期聖(기성)하고 我는 以不奇(이불기)로 期聖(기성)하니라.
주)
性命(성명)의 道(도)는 有作(유작)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기 어렵다.
無爲(무위)에 이르러서 衆人(중인)들이 비로소 알 수 있다.
고로 古來(고래)의 修眞上聖(수진상성)들께서 有作(유작)의 시기에는
黜聰毁智(출총훼지)하고 韜明養晦(도명양회)하며 斡天關回斗柄(알천관회두병)하며
恍惚杳冥(황홀묘?)한 本鄕(본향)에서 藥物(약물)을 採取(채취)하고 識(식)과 知(지)가 없는 곳에서
火候(화후)를 行하며 虛無(허무)에 뜻을 맡겨 神明(신명)으로 默運(묵운)하여
비록 天地鬼神(천지귀신)이라도 엿볼 수 없게 하니 하물며 사람임에랴?
이에 사람들이 그 가운데 오묘함을 알지 못하니 혹 어리석음으로써 聖人(성인)을 헤아리니 저들이 어찌 良賈沈藏(양고심장)을 알리오?
虛(허)한 것 같으되 實(실)함이 있어 어리석지 않은 運用(운용)일진저. 無爲(무위)의 때를 당하여서는 和光同塵(화광동진)하고 積功修德(적공수덕)하여 極往知來(극왕지래)하니 한 번 두드림에 백가지로 응함이 있어 神通(신통)이 광대하고 지혜가 無邊(무변)하니 사람들이 혹 기이함으로써 聖人(성인)을 기대하나 저가 어찌 眞常應物(진상응물)이 실제로 기이함으로 행동을 가림이 아님을 알겠는가?
聖人(성인)은 어리석지 않으며 또한 時物文理(시물문리)에 밝다. 성인은 기이하지 않기 때문에 天地文理(천지문리)도 역시 동일하다. 성스럽지 않은 성인은 소이 天地化育(천지화육)에 참여하고 德(덕)이 천지에 짝하는 자이다.
沈水入火(심수입화)하여 自取滅亡(자취멸망)이라.
주)
사람의 貪恩愛(탐은애)는 물구덩이와 같고 酒色財氣(주색재기)는 불구덩이와 같다.
모든 사람들은 천지조화의 도와 성인의 공업인 性命之學(성명지학)을 궁구하지 아니한다.
자포자기하여 거짓으로써 참됨을 삼고 괴로움으로써 즐거움을 삼으니 물구덩이에 빠지고도 알지 못하며 불구덩이에 들어가고서도 깨닫지 못하여 스스로 멸망을 취하니 장차 누구를 탓하리요?
自然之道靜(자연지도정)이라 故天地萬物生(고천지만물생)하고 天地道浸(천지도침)하니
故陰陽勝(고음양승)하고 陰陽相推(음양상추)하여 而變化順矣(이변화순의)라.
주)
큰 도는 모양이 없되 천지를 생육한다. 대도는 이름이 없되 만물을 기른다.
無形無名(무형무명)하니 자연히 지극히 정한 도이다. 그러나 靜(정)이란 動(동)의 터[基]가 된다.
靜極(정극)이 動(동)으로 천지만물이 곧 이에서 생한다.
一이 천지를 생하니 천지는 곧 자연의 도를 얻어서 도를 삼는다.
고로 천지의 도가 浸(침)이라. 浸(침)이란 점점 잠기고 젖어드는 것을 이름이니 또한 자연한 뜻이다. 오직 浸潤自然(침윤자연)함으로 인하여 움직이되 靜(정)을 떠나지 아니하고 靜(정)하되 動(동)을 떠나지 아니한다. 一動一靜(일동일정)이 서로 그 근원을 함께 한다.
고로 음양이 勝(승)하여 동은 양이 되고 정은 음이 되며 동이 극하여 정이 되고 정이 극하여 동이 된다. 음이 극하여 양을 생하고 양이 극하여 음을 생하니 음양이 서로 미루어서 四時(사시)가 차례를 이루고 만물이 생성된다.
혹 變(변)하고 혹 化(화)하여 순서에 입각하지 않음이 없으니 造物者(조물자) 어찌 그 사이에 마음이 있다 하겠는가?
대개 자연의 도는 형태가 없음으로써 이루어지고 형태가 없음으로 인하여 능히 변화하니
이로써 변화가 무궁하게 된다.
聖人(성인)은 知自然之道不可違(지자연지도불가위)로 因而制之(인이제지)라.
至靜之道(지정지도)는 律(율)으로 所不能契(소불능계)라. 爰有奇器(원유기기)하니
時生萬象(시생만상)이라. 八卦甲子(팔괘갑자)는 神機鬼藏(신기귀장)함으로
陰陽上勝之術(음양상승지술)로 昭昭乎進於象矣(조조호진어상의)라.
(성인은 자연의 도를 알아서 가히 어기지 아니하고 인하여 제어한다.
지극히 고요한 도는 율력으로도 능히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니 이에 기이한 기물이 있어 만상을 생한다. 팔괘의 갑자는 신의 기밀과 귀신의 감춤이 있어 음양상승지술로 상에 나아가 만상을 밝힌다.)
주)
성인이란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하는 자다. 오직 천지와 더불어 덕을 합하는 고로 천지자연의 도를 어기지 아니하고 인하여 裁制變通(재제변통)하여 천지와 더불어 功用(공용)을 함께 한다.
이러한즉 자연의 도는 色(색)도 아니고 空(공)도 아니며 지극히 無(무)하되
지극히 有(유)함을 포함하고 지극히 虛(허)하되 지극히 實(실)함을 포함한다.
有無(유무)를 兼該(겸해)하며 虛實(허실)을 應( 응)한다.
고로 그 無(무)를 말한즉 虛空一氣(허공일기)로 無聲無臭(무성무취)하다.
그 道(도)됨은 지극히 고요함에 있으니 고요함이 지극함에 이르러
비록 律(율 )의 기수로도 능히 契合(계합)할 수 없다.
무릇 율력는 능히 모양 있는 것에는 계합하나 모양 없는 것에는 계합할 수 없다.
至靜(지정)이란 모양이 없는 것이니 율력이 어찌 모양을 얻어 계합할 수 있겠는가?
곤릉사 소위 有物先天地(유물선천지)하고 無名本寂寥(무명본적요)란 것이 곧 이것이다.
그 有(유)로써 말한즉 造化不測(조화불측)하여 일체를 감싸니 그 기물됨이 최고로 기이하다.
기물이 기이함에 이르르니 이를 神器(신기)라 이른다. 神(신)이란 만물의 묘함을 말하는 것이다.
고로 森羅萬象(삼라만상)이 八卦相(팔괘상) 과 甲子循環(갑자순환)으로 표현되니
이는 신의 伸機(신기)이며 鬼(귀)의 屈藏(굴장)으로서 그 안에 다 포용되지 아니함이 없다.
곤릉사 이른바 萬象(만상)의 주인이 되어 四時의 시듦을 따르지 아니한다고 한 것이 이 뜻이다.
靜道(정도)란 이름 없는 天地의 시작이며 神器(신기)란 이름 있는 萬物之母(만물지모)이다.
노자의 이른바 無欲(무욕)으로써 그 묘함을 본다는 것이 곧 그 시작을 보는 것이다.
有欲(무욕)으로써 그 竅(규)를 본다는 것이 곧 그 母를 보는 것이다.
有가 아니면 능히 無를 이룰 수 없고 규를 보지 아니하면 妙(묘)함을 보기 어렵다.
묘함을 보는 도는 萬有(만유)가 다 空(공)함이니 無作(무작)이며 無爲(무위)이다.
觀竅(관규)의 道는 음양변화이니 修(수)와 證(증)이 있다.
성인이 자연의 도를 어기지 아니하고 인하여 제어하니 天道를 觀(관)하고 天行을 잡는다.
후천을 따라서 선천으로 돌이키고 殺機 (살기)가운데에서 生機(생기)를 훔치며 五行을
顚倒(전도)하여 逆(역)으로 조화를 베푸니 음으로써 양을 기르고 양으로써 음을 化(화)한다.
양은 강건하고 음은 순하여 음양을 혼합한다.
觀竅(관규)로 말미암아 觀妙(관묘)에 이르르고 神器(신기)로 말미암아 至靜(지정)에 들어간다.
억지로 함으로 말미암아 자연함에 이르르고 有無(유무)를 일치시켜
功(공)과 力(력)이 다 化(화)한다.
陰陽相勝之術(음양상승지술)로 色象(색상)의 바깥 세계까지도 모두 비춘다.
이 술법은 尋常(심상)한 術(술)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에 음양을 훔치고 조화의 術(술)을 빼앗는다.
璇璣(선기)를 돌려 생사의 術(술)을 빼앗는다.
예전에 黃帝(황제)가 닦아서 용을 타고 하늘로 올랐으며
장백단, 갈선옹, 허정양 등이 닦아서 超凡入聖(초범입성)하였다.
집채로 허공에 올라간 자 팔 백이며 허공으로 솟구쳐 사라진 자 삼천이니
이 道로 말미암아 이루지 않음이 없다.
음부경 삼백여 자는 구절구절이 甘露(감로)이며 글자마다 珠玉(주옥)으로서
性命不死(성명불사)의 방법을 보여준다.
萬世에 참됨을 닦는 길을 열어 天機(천기)를 노출하였다.
후세의 丹經子書(단경자서)가 비록 천만가지라 할지라도 음양상승지수를 벗어남이 없으니
뜻 있는 자 만약 이 경을 본다면 정성으로 그 뜻을 참구하고 스승의 한 구결을 얻는다면
일 순간에 그 뒤를 이을 수 있을 것이니 大徹大悟(대철대오)하여 動行之間(동행지간)에
팔 백의 비결에 응하여 막힘이 없을 것이다.
출처 : 진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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