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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션

영원오늘 2019. 10. 28. 08:46

영화 미션후기

 

카르마에 대하여

 

삼가 저의 삼세(三世과거-현재-미래)의 죄()과에 대해 반성(反省)하고 참회(懺悔) 합니다.

저로 인하여 역이고 설켜진 장애와 곤란에 대해  수없는 물질/비물질 세계의 모든 생명체와 의식에 용서(容恕)와 관용(寬容)을 바라며 원망(怨望)과 원한(怨恨)을 풀고 해원(解怨)하시여 대우주에서 자유(自由)와 상승(上乘)이 자재(自在)하시 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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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션에서 초기 거대한 폭포의 상류로부터 한 명의 사제가 십자가에 묶인 채 떠내려오고 거대한 폭포의 물줄기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과,  가브리엘 신부가 직접 선교를 위해 오보에 하나만 들고 천길 낭떨어지를 오르는 모습은 미약한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그러라고 만든 자연 앞에서 미약한 한 인간이 얻고자 하는 위대한 성취가 대비되는 감동적이고 서사적 장면입니다

 

또한 가브리엘 신부의 죽음의 두려움에도 초연한 오보에 연주에 적의를 드러내지 않고 받아주며 인정하는 인디오들의 모습은 예술과 하나님의 사랑은 인종과 문명을 초월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 시켜주는 장면이 펼쳐지는 장관을 보여줍니다

.

 

1.  예전 어릴적 어른들이 너희 아버지 업()은 무었이냐라는 말을 자주 듣고는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업()이란 직업(職業)을 의미하고무었을해서 먹고 살아 가는 가를 묻는 말 입니다.

기서 직()은 소리를 듣고 기록한다는 의미로 직업(職業)은 () () ()으로 짓는 선악() 행위이며

이렇듯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은 ()하던()하던 (業 -  기록) 만들어가는 과정인  입니다.

 

이런 과정으로 살아가는 이유원인과 그것에 따른 결과가 업()-카르마로 남겨지게 됩니다.

 

멘도사는 용병이자노예장사꾼입니다단지 노예거래를 하는 장사꾼이 아닌,  
          노예 사냥을 하여노예시장에 팔아 넘기는 조달 책 역할을 합니다.

멀정한 인간들이 밀림에 살고,그들의 말과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여, 

원숭이와 똑 같은 짐승으로 취급하는 그래서 종교적 판단이 필요한 시대에 

인간에 대한 존중 사랑은 멘도사가 동생에게 보이는 그런 사랑 과 연인의 과의 관계와 

확연히 대조가 됩니다.

 

분명히 문명화란 미명 하에 저질러지는 집단적 카르마의 세계에서 멘도사는 탈출해야 

했고 그 계기는 그의 연인과 동생의 밀애로 인한 갈등그리고 결투로 인한 살인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를 인생 프로그램으로 가져와 사는 인생이었던 것입니다.

 

 

2.  동생을 죽인 멘도사는 인디오들을 마구 사로잡아 노예로 팔아넘기고반항하면 죽이는 

    존재 였습니다. 동생을 죽인 죄책감에서 폐인이 된 멘도사는 가브리엘 신부의 권유로 

    예수회 수사가된  멘도사는 그가 용병으로 입던 투구칼등 무기를 바랑에 싸고 자신의 

    몸에 밧줄로 메달아 험한 산길과 천길 낭떨어지 폭포를 기어올라갑니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어디인가에 자신의 카르마를 저장하고 멘도사처럼 그 것을 메고 

다닙니다- 불교에서 아뢰야식이라고 하던 가요? 지금도 우리는 우리의식 저넘어로 

지금 이순간의 상황을 이 장식(藏識)에 전송하고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

지금 현재의 그리고 내가 있는 장소환경은 그 카르마를 쌓고 반영해야 하는 

시공간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내가 만나는 사람들나의 직업가족등등 이런 것들은 

치밀 하게 연출 된 무대 위의 배우들이며각본에 의해 설정된 환경인 것 입니다.

 

그가 메고 절벽을 올라간 투구와 무기 덩어리는 인간들의 부질없는 욕망투쟁을 상징하는

것으로 다른이들이 스스로 풀어내라 해도 못 풀어내는 인생의 문제 덩어리였습니다.

 

 

멘도사는 울부 짓습니다인디오들에 둘러 쌓인 멘도사는 자신의 목대신 메고 올라간 투구류와 

무기, 바랑이 인디오의  칼끝에서 잘려나가면서 그들에게 용서 받은 감사와 기쁨의 절규입니다 . 이게 바로 종교에서 말하는 우리가 우리를 용서하는 모습과 신이 우리를 용서(새로운 탄생)하는 모습과도 겹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3.    인간은 세상에 태어날 때 하늘에서 부여받은 성품(性稟)으로,

 1) 태어나라고 명()받은 이유로 세상에 살며,

 2) 또 태어나고자 열망했던 이유로 세상에 살고,

 3) 태어나 살았던 과오(過誤)를 만회하고자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 인간들은 1)번은 잊은 지 오래 입니다. 오직 육체에 대한 탐욕(성적욕망)이

 인간의 윤회라는 쳇바퀴의 구동력이며 무었을 해야하는지 무었을 갚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마냥 지나간 하루를 합리화하며, 후회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나의 성격태도환경이것은 바로

나의 초점이 나를 연기하기 위한,

나에게 몰입 되기 위한 대본 없는 연기를 위한 극중 케릭터가 됩니다.

하늘이 명하고내가 원해서 하지만….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인생이 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유의지 만으로 걸어가는 길이 됩니다

           - 현생에서 지은 카르마죄는 지금 당장 해결되어야 합니다.

왜냐면 나의 기억이 살아있고 그 당사자들이 내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죽어서도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자기 자신의 의식에 이식해서 수 없이 다시 태어나는 생을 

통해서든 기억이 잊혀지고 다시 환생 한 세계에서 또 다시, 이유도 원인도 모르는 

가해와 피해자 게임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극복하고 견딜 수 있는 만큼 주어지는 능력 치… 결코 낭비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4.   ()은 카르마의 한문 번역입니다.

존재의 의식이 물질계에 투영 투사되어 근원 에너지와의 파동의 공명속에 물질계를 

살아가는 과정의 단계를 밟아 나아갈 때,  물질계의 환영과 오류 속에 빠져들어 개인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진화의 목적과 방향에서 오염과 결함으로 이탈하였을때

이것을 다시 만회하고 회복해야 정상적 상승 진화의 길에 접어들게 만드는 것이 

카르마 일 것 입니다

 

카르마는 순수한 존재들이 물질계 우주속에 머물게하는 

원인이기도 하고 또  물질계에 사로잡히게  하고 환영(幻影)속에서 중독되어 탐익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  인간은 죽어서도 살던 습관을 버리지 못합니다식욕성욕등등 죽어 흙이 된 육체에

제사 상에 가득한 음식과 술로 위로(?)를 해야하는 힘을 내서 삶과 죽음의 중간단계에서 

힘을 나게하고' 인연과 물질에 대한 집착으로 계속된 윤회와 환생을 거듭하게 하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진화하는 생명체는 그 생명체 에너지장에 그 때그 당시 생각과 행동의 에너지 파동을 기록 하게되고

이 기록이 다시 파동으로 전환되어, 생각으로 연결되면말하게 되고말하게 되면 행동하게 됩니다

또한 자신의 환경도 자기 자신이 그렇게 만들던그런 환경이 되는 곳으로 움직여 그것을 체험하고 행하게 됩니다

이 글도 이런 과정의 연속인 것 입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반영입니다지난날의 모든 과오와 카르마를 싯어 내고 온전함으로 돌아오기 위한 치밀(?)한 계획으로 우리 모두는 이 물질계 현장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카르마와 운명

 

우리의 운명이 사전에 고정된 숙명이라면과거의 어떤 과오나 실패도 반성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왜냐면 이미 결정되어 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설정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운명이 숙명적으로 미리 고정된 것이 아닌 원인과관계로 결정된다면인간세상의 수 없는 사

람들과 복잡 다단한 원인과 결과개인적 집단적사회적국가적인 인과 속에서 나도 알 수 없는 

어떤 원인으로 결과가 결정되어 버린다면-나비 효과라고 할따요?-대책도 없는 너무나 

싱거운 게임이 될 것입니다

앞의 두가지에  자유의지라는 것은 들어 설 자리가 없는 것 입니다.

 

반대로 모든 것이 자유의지에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 이라면 미래는 결정되지 않았고 

불투명 한것이고모든 것이 과거와 현재의 결과에 의한 확률적 가능성에서 닥쳐올 운명을 

예감해야 합니다이렇다면  미래는 너무나 불투명하고 가고자 하는 길은 난해 해집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 현재에 의식이 초점으로 고정되어 있지만

우리 가슴 속에 현존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간,시간이라고 특정 할 수 없는 어디 인가에서 동시에 존재 할 것 입니다.

 

즉 나는 120편짜리 지구연대기의 소재 목 시므온 열전중  지금 이순간 인 108편 어디인가에  

초점을 두고 보면서 연기를 한다고 하면 나의 내면에 계신 하나님은 120편 전 시리즈를 

120개 tv화면으로 동시에 보고 있는 것,

아니 120억...개의 모니터로 1초당 몇천 프레임의 나의 뇌파의 모든 생각과 상상까지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나는 '현재'에 의식의 촛점이 있지만지금 순간에서 과거와미래를 이미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하나님 촛점의 일부 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가 지나갔다미래가 오지 않았다 이야기할 수 없을 것 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모든 순간의 열쇠이며 자물쇠 입니다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은 단지 설정이며

지금 나를 둘러싼  환경은 의 생각행동이 바로 이 순간에 카르마로 과거와 미래로 동시적으로 

요동치며 파급이 되는 것 입니다..

 

살인자노예사냥군 멘도사는 순박한 인디오들의 용서로 그의 생각에서 돈벌이이며, 

짐승인 인디오가 인간으로 스스로 문명을 개척하고 완성해 나아가는 존재로 변신하게 합니다

그리고 사냥감인 인디오와 동거동락하는 삶으로 그를 변모 시키게 됩니다. 이전과 정반대의 삶... 

이런것도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기적의 현장인것 입니다.

기적이 어디 따로 있는 것일 까요?

 

5.   운명의 결정은 항상 손에 닫고내가 결정 할 수 없는 곳으로부터 시작 되는 것 같습니다.

거대 권력 국가간의 국경분쟁과 조종 그리고 종교계의 개입점점 약해져가는 종교계의 입김은 국가지도자들의 책략과 이권 나누기에서 당위성을 부여해주는 역할로 전락하게 됩니다.

자신이 감당 할 수 없는 환경에 처 했을 때반드시 고수해야 하는 어떤 가치를 지속 해야 할 때, 인간은 투쟁에 나서게 됩니다

순응도 한 방법이고저항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상과 천상을 아우르는 숭고한 진리의 다른 모습 사랑’, 또 지상과 천상을 정당성으로 이어주는 정의’ 이 양날의 칼은 희생과 죽음을 불러오는 또 다른 길이 됩니다.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전쟁이냐 아니면 정의와 공의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냐는 인간의 삶과 역사에서 수없이 회자된 타이틀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던 굴복과 순응 아닌 다음에야 반드시 희생과 저강도 이든 고강도이던 투쟁이 동반되게 됩니다칼을 들고 적과 싸워 이길수 있는 전쟁도 아닌데 인간은 뻔한 결과로 나아 감니다.

 

이 전쟁은 인디오 모두를 죽여 증거를 인멸하는 몰살 전쟁이었습니다.

 

살아 남은 어린아이들은 죽음과 전쟁으로 물든 문명의 껍질옷을 모두 벗어 버리고 밀림으로 

사라집니다문명과 선교를 위해 오지 않은 것이 오히려 나았다라는 기술은  순수함을 잃어버린 

종교와 문명에한 양심적 개탄이었으며지구적 카르마로 얽혀버린 식민지배의 폐해가 지금도 

지속되는 지역에서 인간의 소중한 가치에 대한 인식이 오히려 문명과 종교의 틀에서 왜곡되고 

비틀어져 타락한 것 이상으로 더, 이 지상에 사는 인간들에게 각인되어 있다는 비탄 일 것입니다

 

모든 카르마는 내가 생각하고행한그 에너지가 나에게 각인되는 현상이며 에너지 기록인 것입니다

당한 사람에게도 카르마로 적욕 기록되고 서로 양자가 그것을 되 값으며 인생유전 환생을 하게 됩니다

역할을 바꾸어… 끊임없이….

 

카르마는 남에게 행해상대인 남에게도 고통과 분노등 각인을 시키지만,  

자신에게도 자해와 상대로부터 반영된 고통을 각인하게 됩니다

양패구상(兩敗俱傷)이 바로 카르마 인것입니다.

양패구상은 피해자와 가해자 양자가 다 상처와 패배를 맛보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쳇 바퀴의 게임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하며이것이 바로 지구감옥의 실체 중 일부인 것 입니다.

 

그렇다면 카르마를 없에는 방법은 무었일가요?

 

1)     카르마는 나에게 각인된 기록 기억이 나에게 반영되어 나오는 것 입니다그래서

내가 지금부터 올바른 선택과 행동으로  카르마의 반영을 극복하는것입니다.

       말이 쉽지 지금의 나에게서 나오는 어떤 무었이 카르마의 반영인지 또 물질계의

       삶에서 계속 이어지는 카르마의 생성은 또 어덯게 막아야 할 지 고민이되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일수 밖에 없는것입니다.

       힌트가 하나 보입니다.

 

카르마도 엄밀한 법칙이지만또한 진정한 참회와 용서로 순식간에 쌓여 있는 

  카르마를 녹여버릴 수 있는 것도 또한 생각으로 창조된 이 우주에서의 법칙이라고 한다

  남에 대한 잘못을 진정으로 용서하고 , 또 자기 자신을 용서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카르마의 저울에 균형을 잡아 놓고내면에 있는 절대자를 찾게 되면 윤회에서 벗어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윤회하기 싫다고 하지만 영이 그렇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윤회에서 

벗어 난다고 한다많은 사람들이 현재 의식으로 생각하는 것과 영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셈이다

- 밥 코프란-

 

결국 현재의식을 넘어있는 상위자아,내면의 신성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컴퓨터게임 케릭터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게임을 즐기는 내가 더이상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면벋어 날수없다는것.... (도대체 나란 놈은 누구이더냐....!!!!)

 

2)     심상화 수련을 통해 부조화스런 카르마 그림자의 투사를 그에 상응되는 조화로운 투사와 합치는 것이다이 방법에서는-생 드라마의 부조화스런 카르마가 자기 과거 본래의윤회의  창조점으로 되짚어 돌아가서과거에 그와 반대되는조화로운 행위가 일어난 것처럼 심상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DNA에 들어있는 과거의 형태발생적 프로그램을 바꾸어 현재를 치유하자는 것.

현재는 과거의 반영이며 현재와 과거는 동시에 존재하는것이며나의 의식이 과거의 카르마생성 시점으로 돌아가서 에너지의 불균형을 중화사키고 그때 적용되는 카르마의 기록을 수정하는 것..,,,

역시 현재 의식이란 지금 물질육체의 초점을 벗어나지 못하게하는 고정 점이 됩니다.

그러나 인식 ISBE, IAM은  과거와 미래에서도 자유스런 초점인 것입니다.

부끄러움,분노증오,회피 이런 것이 아니라 나의 의식에서라도 정면으로 대응하고 나 자신을 부정하지 말며인정하며 과오를 받아들이고용서를 구하며나 자신을, 상대를 치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현재에서 미래는 내가 원하는 방향이 될 수 밖에 없기에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를 정확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전생의 과거 기억을 되살 릴 수 있는 정도의 고단한 노력과

수행이 전제 되어야 함도 포함되겠습니다.

 

3)     카르마도 결국 에너지입니다나에게 각인된 기록/에너지 체계의 부조화.오염이며 이것이 동력이 되어 또다른 카르마가 일어나게 하는 나의 인생드라마는 그 원천에서 어떤 미세한 힘으로부터 시작됩니다이런 힘의 작동이 나를 쓸어트리는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한 발작 더 걸어 나아가게 하는 힘으로 인식 전환 시켜야 합니다나의 감정과 성격에서 모나가고 불규칙적이며 예측가능하지 못하는 점이 발행한다면 분명,  앞에는 카르마로 내가 해결을 해야 하는 대상이 앞에 서있음을 인식하고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마하릭 쉴드 명상법은  역전된 반입자를 재 배열하고 정상적 에너지로 돌려서 우리의 에너지장.

         DNA에 다시 에너지로 돌려주게 한다고 합니다. 

         생각으로 이루어진 홀로그래픽우주에서 생각, 믿음과 자유의지 의 힘은 모든 부조화를 원상으로 복구 시킬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아래 예수님의 거침 없는 발언을 적어 놓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ISBE, IAM등에서 언급된 것 처럼 우리 물질세계는 ISBE들의 게임장이고

들어 올때가 있으면나갈 때가 있고이 게임장을 벗어 나기 위해서는 이 게임장에 대한 미련,후회,죄책감 등이 작동(카르마)하여  다시 복귀하거나,  발목을 잡게 하는 일이 없이 끊임없이 자신과 남들을 힐링(용서)하고 완전체, 온전한 존재로 인식하고 상대해야 합니다. 카르마 위원 분들의 사랑어린 조언과 격려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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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가에게 승찬이 물었다.

"제자는 몸이 문둥병에 걸렸으니, 청컨대 스님께서 저의 죄를 씻어 주십시오."

혜가가 말했다.

"죄를 가져오너라. 허면 참회케 해 주리라."

승찬이 침묵하다 답했다.

"죄를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혜가가 말했다.

"그대의 죄가 전부 참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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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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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결자해지(結者解之) 입니다... 
아무도 대신하지 않는, 할수 없는  ... 
그러나 내면과 동행하는 그런 길 말입니다. 
 

이전에 올린 카르마와 관련된 글입니다.

>

 

남을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blog.daum.net/brokenblock/7298486

용서란 blog.daum.net/brokenblock/7298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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