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잊혀진 신성 (1/3)
인간은 자신이 신성하지 않다고 자주 듣게 되면, 그것이 확고한 믿음이 되어 버린다. 귀 여린 진실의 탐구자인 인간은, 따돌림을 당하지 않으려고, 그토록 어리석은 말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 ★ ★
한때는, 인간이 자신의 유산과 계보를 알고 있었다. 한때는 인간이 하느님을 알았다. 자기 존재에게서 떨어져 있는 근본으로서가 아니라 지속되는 생명의 숭고한 있음으로서 그리고 자신의 신성하고 영원한 자아의 바로 그 생명력인 생각으로서 하느님을 알았다.
한때는 인간이 그것을 알았다. 인간은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우고 다가오는 세대에게 '내면(mid)의 불꽃(pyra)', 마음속의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한 상징으로 남겨 주었다. 인간 역사의 흐름 속에 많은 일이 일어났었지만, 그 피라미드는 인간의 위대함과 신성함의 상징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인간이 이 지상에서 처음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인간이 자신이 하느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때까지만 해도, 한 육신으로 수 천년을 살았다. 육신을 불사하게 하는 힘은 존재하는 상태에서 인간이 표현하는 무한한 생각의 순수성이었기 때문이다.
인간, 신-인간(神人間)은 이 지상에서 처음으로 삶을 경험하면서부터 그 자신이 하느님이라는 것을 잊기 시작하였다. 왜? 그는 이 놀라운 물질계의 놀이마당을 너무 좋아했고, 그래서 이곳에서 경험하고 창조하는 것만이 중요한 모든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자신의 창조성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에 - 또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매개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 무한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장엄한 피조물인 인간은 생존, 질투, 그리고 소유 같은 제한된 생각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인간이라는 존재 - 그의 영혼과 영성 - 는 영원하다! 아무 것도 그것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신이 그 자신을 위해서 지구의 흙으로 창조한 육신은 그를 점유하고 있는 불사의 존재인 생각에 종속된다. 인간이 어떤 생각이든지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그것은 그 몸에 발현된다. 육신은 인간 왕국의 궁극적 부분으로 그 속에 거하는 신의 사고작용에 의해 지탱된다.
신-인간이 생존이라는 태도를 경험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몸에 영원한 생명력을 점화시켜 주는 생각의 힘을 약화시키게 되었다. 그래서 몸은 쇠약해지기 시작하였다. 몸이 쇠약해지기 시작함에 따라, 그의 두뇌가 추론 할 수 있는 능력도 감퇴되었다. 추론하는 능력을 잃게 되자 두려움이 그의 의식에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두려움의 요소들이 인간의 사고작용 안에서 하나의 태도가 되었을 때, 육체는 두려움의 힘과 그 영향으로 우환(憂患)과 질별..죽음의 고통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 지상에 처음 건설된 문명은 위대한 깨달음으로 채워져 있었으나, 그들 사고작용의 무한성은 죽음에 대한 기대와 생존을 위한 태도에 따라 점점 흐릿해져 제한적으로 되어 갔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긴 생존태도는 생존을 위한 이른바 '본능'이라는 것으로 다음 세대에 넘겨졌다. 왜냐하면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것은 그의 세포와 유전자 구조 안에 새겨지게 되기 때문이다.
신은 몸의 형태를 빌려 자신의 창조성을 경험하려는 욕망으로 물질의 한계 속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신은, 인간으로서, 제한이라는 태도를 이 지상에서 경험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육체적인 경험 속에 갇히게 되었다. 그 신의 첫 번째 육신이 죽음을 경험했을 때, 그는 허공이라고 하는 곳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 허공은 빛의 차원으로, '전지(全知)한 하느님'을 이해하는 의식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물질의 세상으로 돌아올 수도 없는 곳이었다. 그 신은 이제 더 이상 무한한 생각의 세상으로 졸아갈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제 그는 그 자신의 사고방식 안에 한계라는 변형된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물질계 놀이마당이 경험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장소임을 발견하였던 신은 삶의 진보를 계속하기 위하여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몹시 갈망하였다. 그래서 신은 자기 자손의 씨를 얻어 다른 육신을 가지고 돌아왔다. 물질계에서 계속 경험하기 위하여, 그리고 전생에서 그의 사고작용을 변형시켰던 모든 제한된 생각을 조정하기 위하여 도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 지장의 물질적인 양상들을 더 많이 경험하기 시작하면서, 신은 그보다 더 많이 변형을 경험했고, 한계의 늪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 갔다. 그렇게 하여 이 본보기 세상에서 환생이 반복되기 시작하였다.
신들이 인간으로서 삶의 모험을 계속하기 위하여 이곳에 자꾸 자꾸 되돌아오면서 점점 이 세상이 그들의 삶의 전부가 되었고, 그러면서 그들은 그들의 계보와 신성을 잊어버렸다. 더 이상 하느님을 모든 생각인 '총체'로 인식하지 않았다. 비록 그들이 원한다고 해도, 이제 그들은 순수한 생각, 무한한 존재의 세상, 즉 태초부터 그곳에서 그들이 표현해 왔던 의식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지식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제한된 세계, 제한된 생각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합리화했다. 그래서 의식이 표현해 내는 또 다른 세상도 소위 말하는 '제한된 천국' 제한된 세계로서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세상에서 가장 장엄하고 단순한 것을 잊어버린 실체들은, 육신이 죽으면, 그들의 행복과 집합적 태도인 생각에 따라 삶을 경험할 수 있었다.
신들이, 인간으로서, 자신이 신성하고 불사한다는 것과 모든 전능과 전지가 진실로 그들 안에 있음을 알지 못하게 되자, 주변에 널려 있는 에고에 물들기 시작하였다. 곧 이어, 그들은 신비한 힘과 지식의 광대한 자료를 이용하여 자신들만의 하느님을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다른 이보다 자신을 더 높이 올리려고 애쓰는 실체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인간이 두려워하며 떼를 지어 다니기를 좋아하는 피조물이 되자, 예지자나 예언자, 계시자가 나타나 파괴와 멸망을 예언하면서 자신의 권능을 강화시켜 나가는 데 혈안이 되었다. 예지자는 자기가 말하는 것에 사람들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저주와 파멸의 협박을 가했다.
이렇게 하여 이 지상에 종교가 탄생하였다. 종교는 인간 내면의 아름다움, 영원한 하느님 격으로부터 인간을 더욱 분리하였다. 종교는 매우 영악했다. 사람을 칼로 지배하거나 다스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종교는 오직 하느님에게는 도달할 수 없다는 가르침 즉 전지함과 전능함은 인간에게 불가하다는 가르침만을 계속했다.
그런데 영혼은 영원한 기억을 갖는다. 영혼은 모든 생의 모든 경험을 기억한다. 무엇이든 여러 번 반복해서 들으면 아무리 변형된 이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에 확고한 현실이 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신성하지 않다고 자주 듣게 되면, 그것이 확고한 믿음이 되어 버린다. 귀 여린 진실의 탐구자인 인간은, 따돌림을 당하지 않으려고 그토록 어리석은 말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당신이 한 사람에게 하느님은 그의 밖에 있으며, 그는 비천하고 영혼이 약하다라고 충분히 오랫동안 말한다면, 그 생각은 그의 영혼의 기억 속에 견고하게 각인(刻印)된다. 그러고 나면 달라지기가 매우 어렵다. 이것이 실제로 이 지상에서 수 천년 동안 일어났던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실체들은 이 생에서 다음 생으로 번갈아 가면서 이와 같은 가르침의 지배를 계속적으로 받아왔다.
그들은 그 이해에 맞추어져, 자신은 사악하고, 하느님은 자기 존재의 밖에 있으며, 결과적으로 그들 자신은 신성과 거리가 멀다고 믿어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하느님을 아는 유일한 길이자 하느님에게로 돌아가는 길은 예언자들과 성직자들, 그리고 종교 단체의 계율을 따르는 것이라고 알게 되었다.
'다른사람 > 람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람타 / 제13장. 삶에 법칙은 없다(2/2) (0) | 2007.06.19 |
---|---|
람타 / 제14장. 삶의 목적 (0) | 2007.06.19 |
람타 / 제15장. 잊혀진 신성 (2/3) (0) | 2007.06.19 |
람타 / 제15장. 잊혀진 신성 (3/3) (0) | 2007.06.19 |
람타 / 제16장. 환 생 (1/2) (0) | 2007.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