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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불교카페서 펌) 채식을 해야 하는 이유

영원오늘 2012. 8. 15. 12:30

식물은 어떤 존재일까요.

 

1. 이 우주의 주인공은 사람이고, 땅은 사람이 살아갈 터전이며,

땅은 인간에게 필요한 양식을 제공해주는 것이 이 세계, 이 우주의 법칙입니다.  

 

2.  모든 생명체는 기운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은 씨앗에서부터 완전함에 이르기까지

잘 설계되어 있기에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그 기운이 활동하며 흐르고 있습니다. 

 

3. 식물을 자르거나 타격을 가하거나 어떤 위해를 가하려 할 때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인간처럼 감정을 가져 아픔이나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 아니라,

식물 저 자신도 살아있는 동안 온전한 형체를 이루어가며

자기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어가고자 하는 의지의 파동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4. 땅에서 자라나는 식물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맨먼저 생명유지를 위한 산소를 제공해주고 인간이 산소를 소모하고 노폐물인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면  

그것을 다시 받아들여 산소로 바꾼 후 돌려주며 이러한 작업을 살아있는 동안 끝없이 반복합니다. 

 

3. 식물은 사람이 다가가는 것을 결코 겁내지 않으며 오히려

사람의 손길, 눈길, 관심에 더욱 더 활발한 성장을 합니다.

 

4. 식물은 살아가는 동안 사람에게 필요한 다양한 영양과 에너지를 저장하고 있다가

언제라도 사람이 함께할 수 있도록 제자리에서 죽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5. 각종 식물은 저마다 나름대로 사람의 건강과 치료에 필요한 성분을 갖추고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모든 노력을 갖추고 때에 맞춰 쓰일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6. 식물은 땅에서 살아 있을 때, 그 자신을 살리기 위해 해온 그 작용을,

 인간의 몸에 들어가면 그때부턴 인간을 위해 그 작용을 합니다.

 예를 들면 외피를 먹으면 외사를 막아주고,  줄기 기둥을 먹으면 인간의 몸을 소통시크는 등,

 한의학 본초 이론은 바로 그런 점을 관찰하여 식물의 작용을 약효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7. 인간은 숲에 거하고, 식물을 먹고 식물과 함께 할  때, 식물의 향기와 함께할 때

 기분이 좋고 매우 평온하며 깊은 행복감을 느낍니다.

 

8. 식물은 인간이 가장 좋아할 만한 결실을 만들어내고,

인간이 아름답게 생각할 만한 작품을 만들며, 인간이 매력적인 편안함을 갖춤으로서 인간을 불러들입니다.

 

9. 식물은 인간에게 양식과 결실을 내어주면서 인간을 건강하게 성장시키고

  인간이 그것을 채취하고 먹는 과정에서 씨앗이나 개체가 번식 성장하며,

 인간이 함께하며 먹어주는 과정이 반복될수록 식물들은 널리 번성하며 더 많은 양식을 준비해줍니다.

 

10. 식물과 대화를 해보면, 인간에게 쓰일날을 위해 무궁토록  살아가며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느껴보세요. 그대의 열매를 정말 기쁘고 행복하게 맛있게 먹겠다고 염원하면 어떤 비료나 퇴비를 주지 않아도 반드시 맛있는열매가 열립니다. 관심을 두지 않고 길가 돌멩이마냥 관심을 두지 않으면 그 달콤한 감도 점점 똘감이 되어 갑니다.

 

식물과 동물의 생명

 

11. 동물의 생명은 평생 만들어가는 육신을 이용하며 온갖 체험을 하면서

 저 자신의 일깨움과 성장과 변화를 이루어가고자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그들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는 그 자신을 목숨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저항하고 울부짖고 살기위해 노력하며, 가녀린 멸치한마리도 잡으려하면 그토록 몸부림을 칩니다.

 

반면 식물은 인간,동물을 살리기 위해 평생토록 한자리에서 그 향기로움,

그 아름다움, 그 유혹적인 모습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편안하고 기분좋게 건강하게 돕기 위해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으며,  그들을 취할 때 어떤 비명도 지르지 않으며 어떤 반항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 익은 것은 먹기 좋게 떨어져주며, 가장 맛있고 영양많을 때는 가장 채취하기 쉽도록 준비해줍니다.

소리를 지르지 않지만 거세게 반항하고 있는지 어떻게 아냐고요? 하늘은 우리가 우리의 가슴으로 모든 것을 느낄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칼로 식물을 자를 때와 동물의 목을 칼로 자를 때 가슴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12. 동물은 인간에게 먹히는 존재가 아니기에 누린내, 비린내 등

인간이 싫어하는 온갖 냄새와 저항하는 힘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식물은 인간의 양식이 되어주기 위해

인간이 좋아하는 향기와 꽃과 기운을 모두 다 갖추고 다가오길 바라며 늘 기다리고 있습니다.

 

13. 생명이라는 말은 존재가 갖고 태어난 사명을 말함이며, 식물의 생명은 인간,동물의 양식이 되는데 있으며, 동물의 생명은 그들 자신의 영혼이 체험하고 겪고 느껴 영혼의 성장을 이루어가는데 있습니다.

 

14. 동물과 식물에 달라붙거나 그들을 괴롭히는 듯이 보이는 미물들은,

동물은 더욱 동물답게, 식물은 더욱 식물답게 성장토록 촉진하고 자극을 주는 것이 그들의 생명이고 사명입니다.

 

15. 식물이 가장 건강하게 자랄 때 어떤 병해충도 달라붙지 않으나, 허약하게 자라면 병해충으로 덮히게 되며,

인간도  건강하게 생활하면 어떤 병균도 달라붙지 않으나, 허약하면 온갖 병균이 득실 되게 됩니다.

 

16. 곤충 등 작은 생물들은 식물들의 성장과 번식을 돕거나, 땅을 이롭게 하거나, 더럽고 탁한 환경을 정화하거나 하고 있으며, 덕분에 식물은 더욱 잘 자라고 동물은 더욱 건강하게활동할 수 있게 됩니다.

 

17. 동물을 잡아먹을 때 우리의 가슴은 결코 편치 않으며 강팍해지며, 우리의 건강은 일순 힘이 나는 듯 하나 남이 만든 육신에 의지했기에 자기 자신의 육신은 점차 나약해지고 환경과 병마에 견디기 어려워지면서,결국 주어진 삶을 다 살지 못하고 귀중한 목숨을 병마로 잃게 됩니다.

 

18. 식물을 먹을 때, 우리는 참 편안하며 마음은 너그러워지며, 따로 건강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땅이 태초부터 우릴 위해 준비한 양식을 먹는 것이기에 우리의 영혼이 다 성장할만큼 충분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생명의 양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식물의 에너지를 받아 살아갈 때 이 땅의 삶을 마치고 더 큰 삶을 이루어갈 때까지 우린 온전한 정신과 몸을 갖게 되며,  때가되면 우리 스스로 몸을 버리고 떠날 수 있게 됩니다.

 

19. 인간이 식물을 채취해 먹는 것은 우주의 주인공 인간의  온 땅과 하늘의 태양과 온 우주가 기뻐하는 일이며,

 인간이 동물을 잡아 먹는 것은 지상의 온영혼과 하늘까지도 슬퍼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22. 우리는 식물을 먹을  때, 결코 미안한 마음으로 먹어선 안되고, 티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정말 행복한 마음으로 먹어야 하며 그럴 때 식물을 통해 전해지는 행복덩어리 우주의 에너지를 더 크게 더 깊이 느낄 수 있으며, 나의 본성을 일깨우며 절대자로부터 부여받은 무한한 나의 능력을 온전히 일깨우게 되는 것입니다.

 

20.온갖 동물들은 다양한 환경에서 인간의 체험과 성장을 돕는 동료동물들이며, 동시에 그들 역시 인간의 삶을 바라보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바라보며 성장을 꾀하고자 인간을 가장 잘 따르며 인간의 관심을 가장 좋아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그들을 해치려는 의도가 있게되고 그들이 느끼게 되면,,

 

 

21.  인간이 동물을 잡아 먹는 것은 그들이 평생동안 이루어가야할 모든 체험의 기회를 박탈해버리는 것이며, 우리는 그들과의 교감을 통해 어울림을 배워야 하는 것과 자연과 우주와 하나가 될 수있는 기회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23. 식물도 생명이네, 동물도 생명이네, 이걸 먹으나 저걸 먹으나 다른 것 없다는 생각은 서글픈일이고, 동물을 먹으면서 즐겁게 먹으면 참으로 슬픈일입니다. 그런데 식물을 먹으면서 식물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생각으로 죄책감을 갖고 먹는 것은 정말 슬픈일입니다. 

 

24. 인간은 오랜 세월 동안  자만심, 정복욕 그런 것들에 끌려오다보니 온갖 정복 도구를 만들게 되고, 자기자신을 보호하는 울타리를 치게 되며 결국 거대한 문명세계를 이루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우리의 무궁무진한 능력을 다 잃게 된 원인이 되었고, 때문에 우린 늘 부족하고 늘 허덕이며, 늘 탐욕을 발휘하며 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25. 우리는 나무들 가까이, 온갖 꽃과 푸른 잎새들이 나풀거리는 숲속에, 맑고 상쾌한 에너지 가운데서 살아갈 때 온 몸과 마음으로 양식을 취하게 되므로 최소한의 음식만으로 충만한 행복을 누려갈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주변이 정화되고 깨끗한 곳이라면 우주의 에너지와 가르침을 담아주는 식물들의 마음과 기운을 더욱 잘 받아들에게 되면서, 태초 신이 부여한 모든 능력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린 아무것도 없어도 결코 부족하지 않고, 허덕일 일도 없으며 오직 충만함 속에 있게되며 어떤 탐욕도 생겨날 일이 없습니다.

 

26.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과, 이 땅에 자라나는 식물들 너무나 오염되었기에, 그리고 우리들도 오랫동안 남의 것을 뺏어 먹고 살아왔기에 이젠 뺏는 것을 그치고, 식물들을 잘 정화하여 그 소중함을 생각하며 조금씩 조금씩 진심으로 기쁨과 감사함으로 먹도록 해야합니다.

 

27. 식물의 존재는 이 땅이 내어주는 양식으로서 마치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과 같습니다. 오이를 먹으며, 오이야 고맙다 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오이를 자라게 해준 그 땅과, 빛을 쪼아준 그 태양, 수분과 어울림을 이루어준 그 바람에 먼저 감사를 하며, 그 작물을 키우기 위해 뙈약볕 굵은 땀방울을 흘려가며, 인고의 정성을 들여 키워온 농부들의 손길을 진정 감사해야 합니다.

또 그 모두 우주의 에너지를 담고 있는 신이 마련해준 양식이기에 이 음식을 먹고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리라는 깊은 의식 가져야 할 것이고, 그럴 때 우리는 하루하루가 깨어나고 성장하고 거듭나는 시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28.  식물의 열매를 먹는 것은 그들의 결실을 뺏어 먹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준비해준 행복에너지를 먹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행복을 찾아가기 위한 본성을 갖고 있어, 그러한 열매들을 먹을 때 인간의 내면엔 절로 미소와 행복감이 피어나게 됩니다. 그 달콤하고 새콤한 맛, 그리고 아삭함과 부드러움과 같은 맛을 통해 행복감을 느끼면 내부에 긴장은 풀어지고 마음은 여유로와지며, 한없는 평온을 이루어 가게 됩니다.

 

다만 행복하다 해서 전체를 보는 눈을 잃어버리고, 위장이 감당할 수 있을정도만큼 먹어댄다면 또 다른 고통이 따라올 것입니다. 나의 몸이 받아들이는 능력도 잘 살피고, 또 나무에 몇개 남지 않은 열매였다면, 내가 다 먹는 바람에 다른 분들은 굶지 않나, 다른 동료동물들은 먹을 게 없지 않나, 전체를 살펴보면서 그 행복이 모두와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29. 식물은 자연그대로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 먹는 것이 가장 좋지만, 오랜세월 숲을 떠나 콘크리트 속에 살아오면서 나약해진 우리의 육신은 그 모두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먹기 어려운 것은 적절히 조리를 하면서 밀고 당기고, 당기고 밀어가면서 점차 본래 에너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기능을 회복하여 우리의 그 무궁한 능력을 회복해가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30. 채식은 정말 사랑입니다. 채식을 하는 것은 이 땅의 생육기운과, 저 태양의 따스한사랑과 온 우주의 광대무변한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들끼리는 물론 동료 동물들과 어울리며 그 사랑을 실천해가면서 온전히 사랑을 이루어갈 수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http://cafe.daum.net/amtb/ZEB/91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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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토지/ 공기/ 물/ 효율/ 동물/ 건강

 

* 인 간 *

1. 매년, 전세계에 3천만 인구가 기아로 죽는 가운데, 영국에서만 해도 2억5천만 명을 충분히 먹일 수 있는 식량이 가축의  사료로 사용되고 있다.

 

2. 고기 먹는 사람 1명이 소비하는 땅은 20명의 채식인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크기이다.

 

3. 3초마다 지구상 어딘가에는 한 명의 어린이가 기아로 인해 죽는다.

 

4. 미국이 육류 소비를 10% 줄이면 6천만 명(영국 총인구)을 충분히 먹일 수 있는 1억 2천만 톤의 곡식을 절약할 수 있다.

 

5. 모든 미국인이 채식인이 된다면, 6억 명(인도 총인구)을 충분히 먹일 수 있다.

 

6. 축산업 확장은 백만 명의 인구를 대대손손 살아온 땅에서 이주하게 했다. 미국 남부, 중부 원주민들, 북아프리카 인디언들, 영국의 소작인들 ?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7. 사람들이 살던 땅을 버리고 도시로 와서 영양결핍, 질병, 기생충병, 2차 감염으로 죽고 있다.

 

8. 제3세계 국가들의 신생아10명 중 1명은 첫돌이 지나기 전에 사망한다.

 

9. 영국은 제 3세계 국가에서 2천1백만Kg 상당의 곡물을 가축 사료로 사용하기 위해 수입한다.

 

10. 지나친 방목으로, 8억5천만 인구의 거주지역이 사막화되었다. 그리고 이미 2억 3천만 인구는 극심한 사막화로 절박한 기아에 시달리며 생존을 지속 할 수 없다.

 

11. 서양의 10억 인구가 고기와 유제품을 먹어 치우면, 그 10억은 건강을 잃게 되고, 35억 인구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 토 지 *

12. 가축 사육을 위해 미국의 숲들이 지금의 속도로 계속 벌목된다면, 50년 안에 모든 숲들이 사라질 것이다.

 

13. 1200평의 땅은 75 Kg의 쇠고기, 또는 9070 Kg의 감자를 산출할 수 있다.

 

14. 영국 전체 경작지의 8/10에서 산출된 식품이 가축의 사료로 사용되고 있다.

 

15. 450g의 소고기를 만들기 위해 고단백 식품인 콩이 7Kg 사용된다.

 

16. 1945년부터 영국은 축산업을 위해 꽃피는 목초지의 95%, 숲의 50%, 초원의 40%, 습지의 50%, 늘어선 관목 224,000 km를 잃었다.

 

17. 미국에서만 해도, 매년 60억 톤의 토양이 가축들이 가하는 압력으로 인해 부식되고 있다.

 

18. 만약 모든 사람들이 채식 한다면, 축산업으로 사용되고 있는 땅의 90%를 숲으로 되돌리고 여가 활동 장소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19. 1960년부터 미국 중부의 숲 25%가 축산업으로 인해 파괴되었다.

 

20. 1966에서 1983년 까지 38%의 아마존 열대 우림이 축산업으로 인해 파괴되었다.

 

21. 축산 농장의 90%는 청정한 숲에 세워지며, 축산농장의 토양은 양분 상실과 과다 방목으로 인해 점차 불모지가 되어 8년 내에 회복불능의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22. 과다 방목은 토양을 파괴하고 불모지를 증가시킨다. 미국에서만 해도 첫 방목이 시작된 이래 피해를 입은 5천2백6십억 평의 토양 산출량이25-50% 감소되었다.

 

23. 1인치 두께의 지표 토양은 생성에 200-1000년이 걸린다. 미국은 200년간 축산으로 지표 토양의 1/3인 약7인치 깊이까지 오염시켰다.

 

24. 축산업으로 야기된 지구온난화는 해수면을 높여 평야를 소실시킬 것이다.


* 공 기 *

 

25. 축산으로 인한 열대 우림 파괴는 행성의 호흡기를 파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전세계의 산소 공급량이 줄어든다.

 

26. 매년 13억 마리의 가축들이 6천만 톤의 메탄가스를 방출하고 있다. (메탄가스는 지구 온난화를 유발하는 강력한 온실가스이다.)

 

27. 가축 사육지를 위해 숲과 초원을 불태우는 것과 축산폐기물은 매년 5천만~1백만 톤의 메탄가스를 방출한다.

 

28. 이 수치들을 합치면, 메탄 방출의 25%는 축산 때문이다. (수십억 마리의 양, 돼지, 가금류는 수치측정에서 제외되었으므로 실제 수치는 훨씬 더 높음)

 

29. 가축의 사료가 되는 작물에 사용되는 비료는 질산화물을 배출하며 이는 온실 효과의 6%를 차지한다.

 

30. 비료, 제초제, 살충제는 대기에서 혼합되어 유독한 복합 발암물질을 생성한다.

 

31. 축산유통을 위해 육류, 우유, 버터 보관에 사용되는 냉장시설에서 배출되는 프레온 가스는 오존층을 파괴하고 있다.

 

32. 가축의 소변에서 발생하는 암모니아는 대기를 오염시킨다.

 

33. 트럭, 배, 도살장, 우유 제조장, 육류와 유제품 관련 공장 등지에서 소비되는 석유는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킨다.

 

34. 비료와 제초제, 그리고 여러 농약을 생산하는 대규모 화학 공장들에서 배출되는 가스는 대기를 오염시킨다.

 

* 물 *

 

35. 450g의 밀 생산에는 95L의 물이 필요하지만, 450g의 고기 생산에는 9500L의 물이 필요하다.

 

36. 영국의 가축들은 연간 2억 톤의 배설물을 배출한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우리의 하천에 방류된다.

 

37. 살장의 더러운 핏물은 우리의 하천에 방류된다.

 

38. 미국에서는 1초 마다, 전 인구가 5천4백Kg의 폐수를 방출한다. 하지만 미국의 가축들은 11만 Kg의 폐수를 방출한다.

 

39. 가축 사료를 위한 작물에 쓰이는 질산염과 살충제는 결국 우리의 강으로 흘러 들어 간다.

 

40. 영국에서는 육류와 유제품 생산을 위해 가축 한 마리당 매일 70리터의 물이 소비된다. 이는 연간 1천5백9십2억5천만 리터이다.

 

41. 450g의 스테이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물은 한 가정이 일년 동안 사용하는 물의 평균 총량에 해당한다.

 

42. 가축을 위한 작물 재배와 도살장에 사용되는 용수로 인해 지하수가 고갈되고 있으며, 이것은 엄청난 물 부족 사태를 불러올 것이다.

 

43. 미국 산 호아킨 벨리의 지하수는 축산업으로 해마다 1조9천억 리터씩 고갈되고 있다.

 

44. 농경지의 18%가 인위적인 물을 공급 없이는 생산이 불가능하다. 축산(주원인)으로 인한 지구온난화 때문에 이러한 추세는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2억 달러의 비용이 든다.

 

45. 450Kg의 소고기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물은 군사용 전함을 띄우기에 충분한 양이다.

 

46. 육류와 낙농 산업에서 폐기되는 용수는 강으로 들어가 바다를 오염시키고 적조화 현상을 일으킨다.


* 효 율 *

 

47. 1cal의 고기를 생산하는 데는 60cal의 석유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양의 석유는 사람이 먹어서 20cal의 에너지를 낼 수 있는 곡류와 야채를 생산할 수 있다. (이것은 1200배 더 효율적이다)

 

48. 축산업을 위해 운행되는 트렉터, 급유함, 트럭(사료 및 가축 운송)에 수백억 리터의 석유가 소비된다. 농경지 관개, 도살장 운영, 부패 방지를 위한 냉동, 정화시설 운영을 위해 수백억 리터의 물이 소비된다.

 

49. 가축에게 공급된 에너지량(곡물, 콩류)가운데 6%만이 고기로 전환된다. 94%는 열에너지와 운동에너지 (대부분 가축들이 좁은 우리 속에서 사육되는 이유) 그리고 털, 뼈, 배설물 등으로 소진된다.

 

50. 450gm의 소고기를 생산하는 데는 약 4리터의 석유가 필요하다.

 

51. 일반적으로 4인 가족이 일년간 소비하는 소고기량 생산에 필요한 석유의 양은 6개월간 그 가족의 자가용 운행에 필요한 충분한 석유의 양에 해당한다. (물론 운전하는 거리에 따라 달라짐)

 

52. 만약 육류에 환경부담금이 책정된다면 소비자 가격은 지금의 최소한 4배가 될 것이다.

 

53. 유럽공동체는 육류 생산에 1억 파운드를 지원하는데, 그 결과 여러 호수를 이룰 정도의 우유와 산더미 같은 고기와 버터가 버려진다. 이 자금을 유기농 야채, 과일, 곡류 생산 촉진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54. 1979년 미국에서 1억 4500만톤의 작물을 가축에게 먹여서 2100만톤의 동물의 몸(고기)를 생산했다 - 낭비된 농작물 비용은 200억 달러이다.

 

55. 1950 ~ 1985년 까지 유럽과 미국에서는 곡류 생산이 대규모 증산되었으나 그 2/3을 가축의 사료로 사용하고 있다.

 

56. 모든 곡식의 70%가 가축 사료로 쓰인다.

 

57. 고기, 달걀, 우유, 버터를 먹는 것은 너무나 비싸서 지구가 감당해 낼 수 없을 정도이다.


* 동 물 *

 

58. 물에 뛰우는 낚시 그물과 다른 현대식 그물들은 이용한 조업은 수십억의 바다 생물을 죽이고 해저를 교란시킴으로서 생태계를 약화시키고 파괴한다

 

59. 어획용 그물은 어부가 잡고자 하는 물고기보다 10배나 더 많은 다른 동물들을 죽인다.

 

60. 그물에 걸린 물고기는 천천히 고통스럽게 질식사한다.

 

61. 매년 1백50억 마리의 육상 동물들이 음식과 그 밖의 이유로 인해 도축된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죽임을 당하는 해상 동물들의 수는 이 보다 더 많다. (사고로 그물에 걸러 죽는 돌고래 1천여 마리 포함)

 

62. 닭들은 한 닭장에 3마리가 함께 넣어진다. 닭장은 날개를 펼 수 없을 정도로 좁으며 대다수가 일어설 수조차 없다.

 

63. 달걀을 낳을 수 없는 수평아리는 필요로 하지 않아, 그의 자매인 암평아리가 사육장으로 보내지는 동안, 독가스로 죽거나 가죽이 벗겨진다.

 

64. 부자연스럽게 갇힌 환경에서 스트레스로 서로 상처를 입히지 못하도록 마취도 없이 병아리들의 부리를 자른다. 이는 당신의 손톱을 마취 없이 뽑는 것 같은 고통을 준다.

 

65. 성장호르몬과 인공 조명을 사용하는 현대적 사육법은 뼈를 과도하게 자라게 하여 다리의 골절과 좌상을 일으킨다.

 

66. 암퇘지들은 너무 좁아서 심지어 뒤로 돌 수도 없는 가로 1.3m, 세로1m크기의 콘크리트나 판자 바닥으로 된 축사에 묶여 사육된다.

 

67. 식육을 위해 키워지는 닭들은 약 2-3만 마리가 창문도 없는 한 사육장에서 한 마리당 10-20 평방센티미터 (cm²)의 닭장 속에 갇혀 사육된다. 비좁은 환경 때문에 일어나는 싸움은 흔한 일이며 암탉들은 욕창에 시달린다.

 

68. 닭 사육장은 성장 촉진을 위해 하루 23시간 인공조명을 켜둔다.

 

69. 사육장에서 도살장으로 옮길 때, 좁은 공간에 많은 동물들을 가득 밀어 넣고 음식도 물도 공급하지 않는다. 그 결과, 스트레스를 받고 상처 입거나 죽는다. 이 절차에서 법적 요구 조건들은 공공연히 무시된다.

 

70. 도살 전에도 95%의 닭들은 상처로 괴로워하며, 30%가 골절로 고통스러워한다.

 

71. 전기로 기절시킨 후 도살하는 것의 문제는 많은 동물들(약 6%)이 전기 충격에도 기절하지 않고 의식이 있는 채로 목이 잘린 후 (여전히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가죽이나 털 제거를 위해 끓는 물속에 넣어진다는 것이다.

 

72. 영국에서만 해도, 매 분마다 도살장에서 4천 마리 동물들의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73. 송아지 가죽은 생후 2주된 송아지를 죽여서 만든 것이다.

 

74. 젖소들과 양들의 도축한 후 남은 부산물을 갈아서 다른 젖소들에게 먹이로 준다. 이는 미국에서 가축 광우병의 원인이 되었으며, 그들은 플라스틱 찌꺼기도 먹이에 섞어 주고 있다.

 

75. 젖소들은 송아지를 임신한 후 10개월간 우유를 수유할 수 있다. 그래서 인공 수정으로 임신시켜 우유가 나오게 하고, 송아지는 태어난 지 12시간 만에 도살되거나 송아지 사육상자로 보내진다.

 

76. 젖소들은 자연적으로 20년을 살지만 5-7세가 되어 우유 생산량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도살된다.

 

77. 영국에서는 가축을 전기로 기절시키거나 볼트건 (못 박는 총)으로 머리를 쏜 후 목을 자르고 끓는 물에 넣어 가죽을 벗긴다. 이 모든 생산 공정은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에 거꾸로 매달아 이루어진다. 이것이 공장식 도축이다.

 

78. “ 동물들은 인류의 가장 폭력적인 면의 희생물이자 불행한 노예이다.”
존 스튜어트 밀 (철학자) -

 

79. 식육용 송아지는 움직일 수도 없는 좁고 어두운 우리 속에 갇혀 돼지의 피, 초콜렛, 분유를 먹이로 먹는다. (우리가 어미의 신선한 우유를 먹는 동안…)

 

80. 젖소는 본래 송아지들을 위해 하루 5리터의 우유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증산 시스템을 사용하는 현대 축산법으로 하루 25-40리터의 우유를 생산해낸다. 그 결과 젖이 붓고 염증이 생기며 녹초가 된다.

 

81. 가축 사료에 쓰이는 작물을 얻기 위해 거대한 농경지에서 단일종 재배 결과, 그 지대에 사는 생물 개체수가 점점 감소된다.


* 건 강 *

82. 채식인은 모든 측면 (질병이나 그 밖의 이유)에서 사망률이 20%나 낮다. (즉, 채식인들은 장수하며 자주 병에 걸리지 않는다.)

 

83. 고기는 항생제와 호르몬, 생산 시 스트레스로 인한 독소, 그리고 그 가축이 사료로 먹은 온갖 작물의 농축된 농약잔여물로 가득하다.

 

84. 물고기들은 중금속과 여러 오염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오염 물질은 대부분 축산폐기물에서 비롯된다.

 

85. 세계건강기구 WHO는 포화지방, 설탕, 소금을 적게 먹고, 섬유질을 많이 섭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는 정확히 채식이나 완전채식(비건식)의 특징과 일치한다.

 

86. 가축들은 50%의 포화지방을 갖고 있다.

 

87. 채식인은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27%낮고, 완전 채식인(비건)은 57% 낮다. (영국에서 심장질환은 가장 큰 50%의 사망원인이다.)
※ 참고: 채식인 (Vegetarians) = 식물성 식품을 식단으로 하며 동물성 제품은 유제품을 허용함
완전채식인(비건 vegan) = 식물성 식품을 식단으로 함.

 

88. 채식인 가운데 비만은 매우 드물다. 비만은 많은 질병과 연계된다.

 

89. 채식인과 완전채식인은 혈압과 콜레스트롤 수치가 낮다. 혈압이 높으면 심장질환, 뇌졸증, 신장쇠약에 걸릴 위험이 있다.

 

90. 채식인은 당뇨병으로 사망할 확률이 50% 낮다.

 

91. 채식인은 비타민 A, C, E를 많이 섭취하기에 일반인보다 암 발병 확률이 40% 낮다.

 

92. 채식인은 담석과 신장결석이 생길 확률이 적다.

 

93. 배설물이나 박테리아 등에 감염된 육류 때문에 80%의 식품이 독성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대부분이 살모넬라 알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고기는 부패하고 있는 살인 것이다.

 

94. 칼슘 상실로 인해 뼈에 골다공증이 걸리는 것은 대부분 고기가 포함하고 있는 유황성분과 우유의 카제인 단백질이 소변으로 체내 칼슘을 빠져나가게 하기 때문이다. 육류와 유제품 소비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골밀도가 낮다.

 

95. 50%의 사람들이 (한국인은 80%) 우유를 소화시키는 효소를 갖고 있지 않다. 우유 알레르기는 천식과 습진 발병과 관련있다.

 

96. 고기를 먹는 사람은 채식인이나 완전채식인(비건)보다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릴 확률이 두 배 높다. ? 파킨슨 병도 육식과 관련 있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97. 계란 노른자는 매우 농후한 산화지방을 포함하고 있으며, 흰자는 소변으로 체내 칼슘을 배출하게 하는 알부민 단백질을 다량 포함하고 있다. 버터는 80%, 크림은 40%, 치즈는 25-40%의 산화지방을 갖고 있다.

 

98. 육식하는 사람은 장암에 걸릴 확률이 채식인보다 2.5배 높다.

 

99. 슈퍼마켓과 도살장에서 육류를 포장하는 랩은 남성의 정자수 감소를 일으키는 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100. (주로 야채를 많이 먹는) 중국인들은 미국인보다 20%의 열량을 더 섭취하지만, 미국인들이 20% 더 비만하다.

 

101. 1987년 미국에서 210만 명의 사망자가운데 150만 명이 식이와 관련된 질병으로 사망했다.

 

 

그러면 이제부터!

 

여기까지 읽어주신 여러분, 축산업과 낙농업이 이 행성에 불행을 초래하는 주원인임을 알기 시작하셨기를 바랍니다. 육식은 부유한 국가 국민들의 건강을 해치고, 가난한 국가는 굶주리게 하는 것입니다. 매년 수십억 동물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것이며 동시에 환경을 파괴하는 주요 원인입니다.  축산업자들과 낙농업자들은 이를 어떻게 변명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그들은 요점은 “고기가 맛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기맛을 좋아하니 그렇게 말할만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고기대신 먹을 수 있는 맛있는 것은 넘쳐 납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서 깊고 고급스러운 요리 중의 하나인 인도요리의 경우만해도,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오늘날에는 정말 고기와 유제품이 드시고 싶으시면, 건강한 비동물성 대체식품들이 가득합니다. (채식햄, 채식불고기, 채식닭고기 등…) ? 인터넷에서 “채식”을 검색해 보시면 식품점이나 채식식당을 쉽게 찾으실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사례들을 보시고 조금이나마 동물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이제부터 육식을 줄이거나 채식하셔서 환경을 보호하고 지구를 구하는데 동참해 주십시오.

 

출처~ http://cafe.daum.net/amtb/ZEB/87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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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은 우리의 의식을 땅에 네 다리를 디디고 있는 동물과 같이 땅에 묶이게 할 것이다. 그리고 채식은 하늘로 뻗는 나뭇가지와 같이 우리 의식을 하늘 높이 날게 할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식사 할 때 음식앞에서 눈을 감고 음식을 주신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리는 아름다운 풍속이 있다. 그러나 오늘은 올리는 대부분의 감사기도에는 옛 사람들이 느꼈던 참된 메시지가 빠진 하나의 형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원래 기독교에서의 감사기도는 오늘날처럼 “하나님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말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옛 사람들의 기도는 잠시 후면 내 몸속으로 들어가 나의 의식 속에서 흐를 에너지와의 대화를 나누는 하나의 깊은 교류였던 것이다. 그리고 에너지와의 대화란 다름 아닌 코를 통해 에너지의 향기를 맡고, 눈을 통해서 에너지에 채색된 아름다운 빛깔을 보며, 귀를 통하여 에너지의 진동을 들으며, 입으로 에너지를 받아들여 맛있게 먹는 행위 그 자체가 바로 감사의 기도였던 것이다.
 

  그 감사의 기도가 오늘날 입으로, 직접 말로 하는 “감사합니다!”로 대체되어 버린 것은 사람들이 육식을 즐김으로써 유체감각이 둔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유체감각의 둔화란 인간에게 있어서는 TV로 비유하면 칼라와 스테레오로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을 흑백과 모노로 보고 듣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그리하여 육식을 즐기는 사람들에게서는 자연히 명상의 범위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육식이 명상에 방해가 된다는 것일까? 티벳의 좌도밀교에서는 돼지고기와 술을 먹고 마시면서도 명상수행을 한다는데 어째서 그들은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고도 명상이 잘 된다는 것일까? 그리고 만약 그들이 고기를 먹고도 명상을 할 수 있다면 우리라고 고기를 먹으면서 명상을 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사실을 말하자면 그들은 고기를 먹을 때 그들은 자기자신의 전생의 육식에서 살점을 물어 뜯는 것을 느낀다. 그리하여 그들의 고기먹는 행위는 자기자신의 살점을 물어 뜯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그들에게는 이미 자신의 과거의 전생을 바라볼 수 있는 수행이 충분히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고기를 물어 뜯을 때 다른 육신에게 연민을 쏟아 부을 수 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육식을 하고서도 명상 수행을 한다는 말만 듣고 무턱대고 육식을 따른다는 것은 매우 무모한 짓이다.
 

  우리의 육체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세포들은 그 하나하나가 라디오의 진공관과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가 유체라고 하는 것은 이 진공관과 같은 세포의 모임 속을 흐르고 있는 전기형태의 유질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의 세로파는 진공관은 거의 불이 들어오지 않은 채 잠들어 있다. 이 세포라는 진공관에 불이 많이 켜져 있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은 자기자신의 유체를 민감하게 느낀다.

 

  사실 깨달음(enlightenment)이라는 것은 우리 육체를 이루고 있는 모든 세포에 환히 불이 켜진 상태를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육식은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에 생체전기(Bio-Energy)가 자유롭게 흐를 수 없도록 노폐물을 축적시킨다고 한다. 그리하여 육식을 즐기는 사람일수록 그 노폐물이 하나의 전기 절연체와 같은 역할을 하여 세포라는 진공관에 불이 켜질 수가 없다. 그리하여 육식을 즐기는 사람은 자기자신의 내면을 흘러가는 에너지를 바라볼 수 없다. 우리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없을 때 자연히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초점의 중심이 외부로 이동한다. 오늘날 인간의 기술문명은 육식에서 비롯하여 외부로 누전된 에너지의 화석이다. 

 

  식물은 빛의 원천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를 열매와 잎 등에 고스란히 모았다가 인간에게 전달하여 준다. 그리고 인간은 이 빛의 원천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에너지를 증폭시킬 수 있는 7개의 회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염소와 같은 동물들이 일생동안 아무리 채식만을 하여도 깨달음에 이를 수 없는 것은 동물들은 인간들과 들리 에너지를 증폭시킬 수 있는 회로가 없기 때문이다. 채식은 우리 몸의 세포로 하여금 휘황찬란한 샨데리아와 같이 빛을 내뿜으며 깨어나도록 돕는다. 그리고 채식 중에서도 생식은 잠든 세포들을 더욱 빨리 깨어나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갓나온 아기는 전생과의 연결이 아주 가깝다. 그리고 의식 또한 너무나도 명료하여 어린 아이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 그대로를 보고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어린 아이는 아직 마음이라는 컴퓨터를 움직일 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어린아이들에게 지금과 같은 숫자 외우기의 교육이 아닌 의식과 마음사이를 연결해 주는 명상교육을 할 수 있다면 어린 아이들은 보다 쉽게 자기들의 전생을 기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온 어린 아이는 열을 가한 화식을 먹으면서부터 자기자신의 전생의 기억과 점점 멀어져 간다. 그리하여 12살이 지나면 전생과 연결되어 있는 기억으로부터 까마득히 멀어져 간다.

 

  지금에 와서 단식을 살을 빼거나, 육체의 건강을 위하거나, 불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옛날에는 단식이 자기자신의 전생을 기억해 내기 위한 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생식은 완만하기는 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전생의 기억이 쉽게 되살아 나도록 도움을 준다.

 

  금욕수행을 하는 수도승이나 요기들은 같은 채식이라 하여도 버섯과 같이 음지에서 자란 식물들은 먹지 않는다. 왜냐하면 음지식물은 유체 안에 축기되어 있는 에너지를 외부의 음적인 자극에 쉽게 감응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고추나 마늘, 후추와 같은 음식들을 피하고 있다. 왜냐하면 강한 자극성을 가지고 있는 음식물 또한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에 무의식적으로 오감의 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채식은 인간의 의식으로 하여금 자동적으로 깨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 속에서는 채식도 아주 심각한 중독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식물을 재배하는 모든 땅으로부터 우리가 뿌린 화학비료와 농약이 그대로 우리의 피 속으로 전달되어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농부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땅에 뿌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세계에 뿌리고 있는 것이다.

 

  식물들은 우리가 뿌린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내내 고통스러워하며 자란다. 따라서 고통에 시달리며 자란 음식물은 우리가 계속 먹을 때 우리 또한 내내 고통에 시달릴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자연과 의식의 세계 속에서는 모든 만물이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채식이라고 무턱대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만약 식물을 재배하려 한다면 우리는 식물에게 야생과 같이 행복한 환경을 논과 밭에도 마련하여 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이란 너무나도 자기 파괴적이다. 불교나 자이나교에서 생명이라면 아무리 하찮은 벌레라도 죽이지 않고 연민의 정을 보내는 것은 존재에 관한 하나의 과학이다.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그렇게 많은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미국이 육식국가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햄버거와 켄터키치킨과 같은 육식을 즐긴다. 죽어 있는 동물들의 살을 먹는 그들은 동물들이 죽을 때 피 속에 남긴 노여움과 공포의 화학물질을 매일같이 흡수한다. 이제 그들의 피 속에는 노여움과 공포의 화학물질이 순환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자신들의 피 속으로 흐르고 있는 화학물질을 해소시키기 위하여 ‘람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이제 그들은 사람을 죽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면 영화관에 앉아 공포와 노여움의 화학물질을 집단적으로 뿜어낸다. 그리하여 ‘람보’는 그들의 영웅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람을 죽이고 싶을 때 ‘람보’가 언제나 살인을 대행하여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채식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우리가 깊은 산속에서 자란 고산식물이나 나무의 열매를 먹었을 때 자기도 모르게 기쁨이 샘속는 것은 자연의 조화 속에서 행복을 만끽하고 자란 식물들을 먹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논밭을 옛날과 같이 다시 쾌적한 환경으로 되돌려 놓아야만 한다. 지금과 같이 인간과 인간이 원하는 식물 이외에 다른 모든 생명들을 농약으로 죽이면서 우리자신의 행복만을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서양의 식당은 고기를 써는 나이프와 토막난 고기를 찍어 먹는 포크로 상징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서양식 상징물들을 그냥 하나의 식사도구로만 보아 넘길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서양 식탁에서의 나이프는 인간이 수많은 갈등과 전쟁을 통하여 살생을 일삼아온 칼의 축소형이요, 포크는 창의 축소형이기 때문이다. 

 

  서양은 식탁에서조차 창과 칼을 휘두르고 찌르는 살생의 그림자가 서려있다. 그리하여 서양사람들은 식사때에도 그들의 강한 공격적인 성향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불교 전통이 있는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밥상에서조차 죽어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생명을 존중하는 하나의 상징이 깃들여 있다. 우리가 법당에서 볼 수 있는 부처님의 형상은 모두 연꽃위에 앉아 고요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밥상 위에 놓은 숟가락 또한, 법당에서 부처님을 앉히고 있는 연화좌 모양으로 음식물을 모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밥상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젓가락 또한, 인간에게 무한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이다. 밥상위에서의 젓가락은 마치 하나의 공안과도 같다. 왜냐하면 젓가락 또한 이중적인 구조로 되어있는 마음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는 마음이 하나일 때, 그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가 무위(無爲)가 된다고 가르친다. 이와 마찬가지로 밥상에서 분리되어 있는 두 개의 젓가락도 하나같이 조화되어야만 음식물을 집어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밥상에서 두 개의 젓가락을 통하여 하나의 조화를 배우는 것이다.

 

  인류는 오래 전에 불의 발견과 함께 수렵에 의한 육식을 즐겨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인류에게 지성이 싹트고 문화와 역사가 일어난 것은 인류가 농경생활을 시작한 뒤의 채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추측된다. 고기도 채소도 에너지를 주는 똑같은 영양소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만 육식보다는 채식이 왜 인간에게 지성을 가져다 준다는 것일까? 그리고 왜 채식이 인간에게 명상적인 분위기를 가져다 준다는 것일까?

 

  우주의 모든 물질은 음(音)의 진동으로 되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 이르러 물리학자들은 빛세포, 바위와 같은 모든 물질들이 하나의 음에서 비롯한 파동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원소붕괴론도 모든 원소가 음의 파동으로 되어있지 않다면 그 이론의 성립이 불가능하다. 과학자들은 하나의 물질이 음의 파장으로 해체되는 현상을 붕괴라 말한다. 음의 파동으로 일어난 바위는 다시 모래로 분해되고 모래는 또한 보이지 않는 파동의 비형상으로 붕괴하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도 이 물질 붕괴현상의 초극점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우주에는 마음의 붕괴보다 더욱 빠른 현상이 없기 때문이다.

 

  음의 파동은 일정한 싸이클을 넘어가면 그것이 빛이 된다. 따라서 그 빛이 지구에 도달하면 식물들이 그 빛을 자신의 세포 속에 축적한다. 우리가 그 식물을 음식으로 먹을 때, 그것은 우주에서 갓 도착한 음의 파장인 바로 그 결정체를 먹는 것이다. 그리고 동물들이 식물 속에 축적되어 있는 빛을 흡수할 때 빛은 그 물질 속에 깊이 갇혀 버린다. 그러므로 무거운 물질 속에 갇힌 빛은 지구의 중력에 강한 영향을 받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우주를 자유롭게 여행하던 빛은 지구의 중력으로부터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육식을 통하여 자유를 잃은 빛의 인자(因子)를 섭취한 우리는 지구에서 탄생과 죽음이라는 윤회의 수레바퀴에 걸려 버리는 것이다.

 

  육식을 계속 즐길 때 지구의 중력에 강한 영향을 받는 빛의 인자를 우리의 세포 속에 게속 축적하게 된다. 그때 인간의 의식은 지구의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이 명상적인 분위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인간의 지구의 중력으로부터 무거운 영향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채식을 계속 할 수 있다면 채식 그 자체가 우리에게 완전한 해방을 가져다 줄 수는 없지만 지구의 중력으로부터 탈출 할 수 있는 모든 기초를 제공하여 줄 수 있다.

 

마하트마 간디는 인도의 독립을 위하여 모든 폭력을 배제시키고 그냥 단식만을 하였다. 그리하여 인도는 마하트마 간디의 단식 덕분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간디의 비폭력 평화행진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것은 바로 채식에서 비롯한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정치가들은 간디와 같이 채식을 하여야만 한다. 오늘날의 모든 정치가들이 육식을 즐길 때 그들은 지구의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리하여 그들은 명상 속에서 사물을 바라볼 수 없는 것이다. 그때 이 세상에서는 여러 가지 이름의 투쟁과 전쟁이 일어난다. 사실 옛날에는 민주주의 제도라는 것이 필요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채식을 하는 현자들이 깊은 명상속에서 사물을 바로 바라보며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민주주의 제도를 바라볼 때, 그 이상은 유토피아라고 할지라도 실제로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모든 나라가 거의 전쟁과 폭력으로 시달리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아무리 좋은 제도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제도가 근본적으로 인간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뜻한다. 인류가 지금과 같이 육식을 계속할 때 아무런 이상주의도 실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채식을 계속할 때에는 인류의 이상은 아무 거리낌없이 그대로 실현될 것이다. 사실 채식은 우리에게 아무런 이상도 필요하지 않는 존재 그 자체의 자유를 느끼게 할 것이다.

 

  회교가 왼손에는 코란을 들고 코란을 거부하는 이교도들에게 오른손으로 칼을 휘두를 수 있는 이유도 그들이 육식을 즐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독교가 다른 이교도에게 100년 동안이나 십자군을 원정보낼 수 있었던 것 또한, 그들이 육식을 즐기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지금까지 지상에서 육식을 허용하였던 모든 종교는 전쟁을 성전(聖戰)이라는 이름으로 허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채식을 즐기는 종교에서는 그것이 아무리 정당한 싸움이라 할지라도 성전같은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자이나의 교조인 마하비라(Mahavira)는 자기가 지나가는 길에서 벌레를 밟지 않으려고 항상 빗자루로 길을 쓸고 다녔다고 한다. 지나가는 길에서 하찮은 벌레를 밟을까 조심하는 이가 어떻게 사람을 죽이고 전쟁을 일으킬 수가 있단 말인가? 우리자신의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동물들을 마구 죽일 수 있다면 우리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인간끼리 서로 죽일 수 있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리고 이와같은 현상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신문이나 TV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도살장에서 집단적으로 동물들을 살해할 수 있을 때 전쟁터에서 인간끼리 집단적인 살인이 가능하다. 비록 부처님의 말씀 중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어려운 말씀들은 못 들은 척 하더라도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라!”는 이 한 마디만 가슴에 와닿는다면 어떻게 우리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동물들을 집단살인할 수 있단 말인가? 동물들을 도살장에 몰아넣고 집단 살인하는 인간의 이 행위가 결국 인간을 집단적으로 가두어 놓고 가스로 죽이는 히틀러의 아우슈비츠의 종족살해와 박 종철의 죽음까지도 가능하게 하였다. 사실 박 종철 군을 고문살해한 경관은 매일같이 육식을 즐겼음에 틀림없다. 사실을 말하자면 박 종철 군을 죽인 것은 인간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동물들이 죽어가며 뿜어낸 두려움과 노여움의 화학물질이 인간의 몸에 축적되어 있다가 화학반응을 일으켰을 뿐이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박종철 군을 고문으로 죽인 경찰관을 미워한다면 미워하는 자 또한, 육식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참된 채식주의자는 그 자신을 죽일지언정 아무도 미워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참된 채식주의자의 몸 속에서는 두려움과 노여움의 화학반응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 하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육식을 계속할 때 아무리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을지라도 우리의 내면은 동물들의 의식으로 가득할 것이다. 육식을 계속 즐길 때 이 세상은 인간의 가면을 뒤집어 쓴 동물들이 으르렁 거리며 뛰어다니는 밀림과도 같을 것이다. 지금 누가 깊은 산속에 들어간다 하여도 거기에서는 별 위험이 없다. 그러나 지금의 이 세상은 깊은 산속보다 더욱 더 위험하다. 아무리 깊은 산속이라 할지라도 야생동물들이 거의 멸종되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위험이 없다. 그러나 이 세상의 뒷골목과 빌딩의 모퉁이 사이에는 깊은 산속에 있어야 할 무서운 동물들이 바위 뒤에 숨어있는 것과 같이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육식은 그토록 인간으로 하여금 문명속에서 조차 동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성에서도 채식은 인간에게 기쁨을 가져다 준다. 채식을 즐기는 사람은 성에서 에너지의 흐름을 강의 흐름과 같이 완전하게 바라볼 수 있는 명상을 즐길 것이다. 그러나 육식은 성에서 에너지의 흐름을,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지 그 방향을 바라볼 수 없도록 한다. 육식은 성에서 인간을 기계의 반복과 같이 움직이게 하다가 지쳐 버리게 만든다. 지금과 같은 포르노영화나 비디오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그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행위의 되풀이 이외에 아무것도 아님을 알것이다. 그러나 육식을 즐기는 인간일수록 이 포르노의 비디오 앞에서 흥분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동물들의 가장 기초적인 행위가 바로 이 포르노영화에서 보는 것 같은 반복동작이기 때문이다. 동물의 특성이 먹고 자고 계속 씨를 불려 나가는 것 이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포르노문화는 인간의 의식을 동물의 생식 차원에 고정시켜 버린다.

 

 그러나 인간의 성에는 생식 이상의 것이 담겨있다. 채식은 우리 스스로에게 명상이 일어나도록 도움을 준다. 그리고 채식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의식이다. 육식은 우리의 의식을 땅에 네 다리를 디디고 있는 동물과 같이 땅에 묶이게 할것이다. 그리고 채식은 하늘로 뻗은 나뭇가지와 같이 우리 의식을 하늘 높이 날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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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프리메이슨 연구모임(프.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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