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는 뭐든지 가능할 것 입니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는 상위지아가 만든 이세상에 존재하기위한 아바타 케릭터라고 본다면
상위자아는 계획을 짜고 "나"는 그 계획에 맞닥뜨려 행(?)하여 나아가는 존재…
물론 “나”는 상위자아가 무슨 계획을 짜고 구성했는지, 모릅니다
- 알면 재미 없겠죠? 의미도 반감.. 이건 우리의 기억이 상실된것에 대한 자조인지도 모릅니다 -.
“나”는 현실을 맞다아야 알 수 있으며 인지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인과관계를 통해서 유추는 할 수 습니다.
여기서 자유의지란…
나라는 존재가 상위자아와 단절 되어 있다는 장벽을 쌓은 설정에서
완전한 “자유의지 개념”이 라기보다는 상위자아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향 타라고 할 수 도 있겠습니다.
성경에 이에 대한 문구가 보입니다.
[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 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 하니라
– 마태복음 6장 30-34-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이는 상위자아가 계획함을 따르려는 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 하니라…
우리(나)는 상위자아, 초월자아가 계획하고 원하는 바를 수행하는 존재이므로
상위자아, 초월자아는 "나" 를 너무나, 지극히 사랑하는
바로 “나”이므로 아무 걱정 할 것이 없다는 것 입니다…
그러면 자유의자가 상위자아가 계획한 것에 반 했을때는 어떤 일이 있을까요…
성경에서 본다면 돌아온 탕아의 비유(누가복음 15장 11-32절) 입니다.
……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 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누가복음 15장 11-32절)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상위자아와 일치된 상태를 의미 할 것입입니다.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상위지아의 의도에 이탈이 되어 이른바 인간의 에고, 판단과 의도로 폭주하다 복귀한 모습입니다… 그
과정에 지난한 고통과 번민 등등은 부수적이 지만 반드시 돌아와야 하는 길 입니다...
상위 자아와 일치 되어 또 다시 모든 것을 .. 완전해진 상태의 기쁨..
그러고 보니 하느님, 예수님 고상하고 거창한 이름을 들이 대는 것 보다는 진정한 “나”를 찾는 모습…
찾아가는 모습 중에 일어나는 과정을 이야기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형과 동생은 누구 일가요? 바로 상위자아가 만든 복수의 아바타 “나”들 이겠죠?
상위자아도 그 위에 초월자아를 따라 존재하고 행(行)하고 있으므로
어느 순간 초월자아의 의도에 상위자아도 따라 행(行)할 수 도 있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란 것도 하느님에의해 부여된, 상위에서 의도된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어느 하나 하나님의 의도에 벗어 난 것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지극하고 정성 된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십니다...
알고 보니 우리에게 부여된 자유 의지란...
하느님이 우리를 존재 하게하고 인도 하게하는 근원적 "에너지, 힘, 영감...." 인 것입니다..
그럼 왜 99마리 양보다 길잃은 한마리 양이 더 중요하고 반드시 찾아야 할까요?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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