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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와 석탈해

영원오늘 2020. 7. 29. 20:49

고래잡이 자손 박혁거세와 석탈해와 금와왕의 삼겹탈 둔갑 과정 -

 

 

신라는 과연 고래국가였는가? 서라벌 인근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잡이 역사는 어디까지 이어졌을까? 울산 반구대 고래 암각화를 그렸던 선사시대 고래잡이들은 그 지역을 가까이 하여 일어난 신라문화에도 이어졌다는 사실은 앞서 밝힌 여러 사실들에 이어 신라 역사 속에 더 많은 증거들이 있을 수 있다.

 

이 글은 고래 이동로의 반환지점인 울산 반구대 지역을 가진 동해(東海)를 바탕으로 일으킨 신라와 그리고 동해의 북쪽 연안인 동부여 및 고구려의 시조신화 나아가 나중에 발해 유물에 남아 있는 바다와 고래문화를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고래토템 문화로 재해석하는 새로운 방법론으로 우리 역사를 돌아보는 시리즈 글이다. 

 

북태태평양 아메리카 인디안들(First Nations)의 토템폴은 실제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쓰는 탈(Mask) 문화로도 그 토템숭배가 이어져 있다. 특히 그들은 태양새탈 안에 고래탈 그리고 그 고래 탈 안에 사람 탈을 만들어 쓰고 있는 삼겹탈의 둔갑 토템 문화가 존재했다. 탈이라면 처용탈춤으로 유명한 신라 문화에서만이 아닌 역사 기록에서도 그 프로토타입을 찾아낼 수 있다. 과연 처용탈도 하나가 아니라 삼겹탈이 되어 있었을까?

 

나는 우리 민족에게도 동물로 둔갑하는 둔갑토템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삼국유사>에서 찾아낸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의하면 김수로왕과 탈해의 '탈 둔갑 싸움'을 했다.   

 

완하국(琓夏國) 함달왕(含達王)의 부인(夫人)이 아기를 배어 달이 차서 알을 낳으니, 그 알이 화해서 사람이 되어 이름을 탈해(脫解)라 했는데, 이 탈해가 바다를 좇아서 가락국에 왔다.  키가 3척이요 머리 둘레가 1척이나 되었다.  그는 기꺼이 대궐로 나가서 왕에게 말하기를, "나는 왕의 자리를 빼앗으러 왔소."하니 왕이 대답했다.  "하늘이 나를 명해서 왕위에 오르게 한 것은 장차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편안케 하려 함이니, 감히 하늘의 명(命)을 어겨 왕위를 남에게 줄 수도 없고, 또 우리 국민을 너에게 맡길 수도 없다."  탈해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술법(術法)으로 겨뤄 보려는가?"하니 왕이 좋다고 하였다.  잠깐 동안에 탈해가 변해서 매가 되니 왕은 변해서 독수리가 되고, 또 탈해가 변해서 참새가 되니 왕은 새매로 화하는데 그 변하는 것이 조금도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탈해가 본 모양으로 돌아오자 왕도 역시 전 모양이 되었다.  이에 탈해가 엎드려 항복한다.  "내가 술법을 겨루는 마당에 있어서 매가 독수리에게, 참새가 새매에게 잡히기를 면한 것은 대개 성인(聖人)께서 죽이기를 미워하는 어진 마음을 가진 때문입니다.  내가 왕과 더불어 왕위를 다툼은 실로 어려울 것입니다."  탈해는 문득 왕께 하직하고 나가서 이웃 교외의 나루터에 이르러 중국에서 온 배가 대는 수로(水路)로 해서 갔다.  왕은 그가 머물러 있으면서 반란을 일으킬까 염려하여 급히 수군(水軍) 500척을 보내서 쫓게 하니 탈해가 계림(鷄林)의 땅 안으로 달아나므로 수군은 모두 돌아왔다.  그러나 여기에 실린 기사(記事)는 신라의 것과는 많이 다르다.

  

이 내용은 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내용인데 신라의 탈해가 등장하고 있다. 탈해와 김수로가 매와 독수리 참새로 변하는 과정이 나온다는 것은 둔갑탈과 같은 무속적 탈 문화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동물토템 싸움은 바이블의 모세가 파라오와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여 서로 싸우게 하는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탈해는 그 이름 자체가 알을 까고 나놔 궤를 열고 나왔다 하여 '탈해(脫解)'라 했다고 <삼국유사> 탈해왕조에서 말하고 있다. 특히 탈해가 탄 배에 까치들이 따라왔다 하여 까치(鵲)라는 글자에서 조자(鳥字)를 떼고 석씨(昔氏)로 성(姓)을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 또한 새의 탈을 벗고 석씨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1. 까마귀의 해탈(Sun Mask)과 고래의 달탈(Moon Mask)

 

콰키틀(Kwakiutl) 인디안들을 비롯하여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달은 탈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그들의 이른바 달 탈(Moon mask) 전통에 잘 나타나 있다. 신라인들의 일월숭배 또한 지배자들이 해와 달에 이어져 있었던 것을 연오랑과 세오녀 기록에도 나오듯이 인디안들도 해와 달을 자신들의 신화 속의 실제 인물로 묘사했다.

 

콰키틀 인디안들의 달 탈(Moon Mask)은 달이 변하는 것은 탈을 바꿔 쓰는 것으로 신격화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말 '달'이 '탈'이라는 그 어떤 신화적인 연관성이 있었기 때문에 '달-탈'이 서로 유사하게 발음되어 음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달과 탈의 관계는 고래잡이 문화에 직결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해안선을 따라 움직이는 고래는 밀물 썰물의 교차가 일어나는 해안 환경에 연결되어 있고 그 밀물 썰물은 달에 의하여 이어져 있다.

 

달에 의하여 바다의 밀물과 썰물의 변화를 느껴야 하고 인간 또한 월경으로 대표되는 여러가지 심리적 변화까지 가져올 수 있다. 해는 흐리고 맑음의 하늘을, 달은 바다의 풍랑과 해류의 변화를 좌우하는 얼굴로 고래잡이 선사시대 사람들은 보았을 것이다.

 

고래도 사람만큼 달과 해를 느끼고 있지 않을까? 아니 고래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고 선사시대 코리안 고래잡이들이나 아메리카 인디안 고래잡이들은 생각하고 그들의 고래토템 숭배에서 달과 태양을 수반시켰을 것이다. 

 

*콰키틀 인디안들의 달 탈 (Moon Mask)

고래잡이 문양과 함께 그려져 있다.

 

 

 

*인디안들의 해탈과 달탈

Native American Miniatures - Sun and Moon Masks

set by Aubrey Johnson c2007

 

 

 

아메리카 인디안 달 탈(Moon Mask).

보름, 반달, 그믐의 이미지

 

 

 

*부엉이 달탈

 

  

 

*신라의 미소

불교의 보살화돤 여신들의 본래 모습은 

단순한 여인이 아닌 달탈 종류의 동물토템이 포함된 모습이었을 개연성이 있다.

 

 

 

*콰키틀 인디안들의 해 탈(Sun Mask)

삼족오와 태양처럼 태양새가 구현된 태양 탈이다.

 

 

*아즈텍 태양신을 닮아 있는(특히 왼쪽 작은 보살) 국보 84호 서산 마애삼존불

많은 마애보살상들은 그 이전 태양숭배시대의 잔흔을 가지고 있다.

 

 

*콰콰카왁(콰키틀) 인디안의 태양 탈

메소아메리카 아즈텍 인디안들의 태양 신상이 이러한 북미 인디안들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아즈텍 인디안들의 머리 장식. 깃털은 태양(태양새) '광배'를 의미한다.

밀워키 인디안 섬머 축제에서 2007년 필자 촬영.

 

 

*Aztec Sun Stone. 아즈텍 태양신

 

 

북미 태평양 연안의 인디안들에게 해탈과 달탈은 까마귀가 중요한 태양새 이미지로 연관되어 있다. 우리 민족도 삼족오나 석탈해의 신화에서 보듯이 까마귀나 까치 토템 숭배 흔적이 존재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태양은 모든 만물의 창조적 상징의 힘으로 묘사되며 콰키틀 인디안(콰콰카왁 인디안이라고도 한다) 신화에서는 하늘에 거하는 조상으로 매일 아침 전복껍질로 된 다른 외투를 뒤집어 쓰고 나타난다고 믿었다. 달은 밀물 썰물을 관장하여 중요한 수호신으로 받아들였다.

 

Here we have the set, in some northern tribes there is a story of the Raven that has a chip of the Sun that he drops and the Moon is formed along with these stories. The Sun in all cultures stands as a symbol of creative power and life in the Kwakwakawakw one myth is an illustrious sky - dwelling ancestor who each morning put on a cloak of Abalone shells. The Moon controls the tides and is a important protector and guardian spirit.

 

신라인들의 전복토템 숭배는 포석정에 구현되어 있으며 일월신에 이어져 있다. 처용탈춤이 '밤드리 노니다가'에서 보듯이 밤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나는 콰키틀 인디안들의 달탈 - 해탈과의 신화적 연계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2.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토템 탈들에 대한 이해

 

달은 밀물 썰물에 연관하여 고래(Whale) 탈로 표현되며, 해는 까마귀와 같은 태양새(Thunderbird) 탈에 연계 구현되어 있다. 고래와 태양새를 바탕으로 나머지 인디안들의 탈들이 확대 연장선에 있다. 신라의 처용탈은 밤문화와 연결되어 달탈의 하나 즉 고래탈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이러한 바탕에서다.

 

 

*<악학궤범>에 실려 있는 신라의 처용탈 그림

 

 

*범고래 해탈. Killer Whale Sun Plaque

Campbell Indian Reserve. Campbell River, B.C., Canada

 

*까마귀 탈 (Raven Mask)

까마귀는 태양새와 자주 그 의미가 교차되어 표현된다.

인디안들은 사람으로 현신하거나 어떤 것으로든지 둔갑할 수 있다고 믿었다.

 

*쿨루스(Kulus). Totem pole Plaque.

때로는 토템폴 최상단의 태양새(Thunderbird) 또는 그 형제로 표현된다.

하늘 높이 사는 새로 사람으로 둔갑 환신한다고 믿어졌으며 삼족오에 해당한다.

 

*쿨루스(Kulus). 까마귀를 닮아 있다.

태양새의 동생으로 나올 때의 토템폴에서는 아래쪽 중간에 들어가며

템포가 다혈질로서 묘사되며 인디안 탈춤에서 활약을 자주 한다.

 

*늑대 탈.

늑대는 범고래의 지상 현신으로 믿어졌다.

The wolf was the land manifestation of the killer whale.


 

*야기스(Yagis) 탈.

콰콰카왁(콰키틀) 인디안들의 바다 신수로서 폭풍우와 풍랑, 위험한 소용돌이 물결의 신으로 받아들여졌다.

<심청전>의 인당수의 신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수면에 코를 내밀어 숨을 쉬는 바다 짐승 토템으로 받아들여졌다는

면에서 고래 또는 바다사자 등과 관련한 해신으로 인식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호콕(Hokhokw) 탈.

호콕은 콰콰카왁(콰키틀) 인디안들의 신화에서 거대한 식인 새이다.

우리의 '북망산'과 같은 '세상의 북쪽 끝의 공양(Cannibal at the North End of the World)'을 의미하는

거대한 '박스박왈라눅수지웨(Kwakwaka'wakw 인디안들의 토탬 새)' 새로서 하마차(Hamatsa) 축제 무용에 사용되는

세 가지 탈 중의 하나이다. 긴 부리로 사람의 두개골을 열어 그 뇌를 먹음으로써

죽은 망자의 혼이 호콕이 되는 것으로 믿어졌다. 

사람이 새가 되는 과정으로 장례의식이 행해진 것이다. 

 

*태양새 둔갑탈. Thunderbird Transffering Mask

태양새는 가장 강력한 신으로 산 위에 사는 새로서 인디안들의 추장으로 환신하는 새로 믿어졌다.

 

고래잡이들은 고래토템 숭배자들이면서도 고래를 잡아야 했다. 그들은 스스로 태양새의 화신으로 여기면서 고래사냥을 해야 했을 때 그들의 고래토템 폴과 그 탈의 모습은 둔갑 탈(Transferring Mask)의 문화를 낳았다. 고래이다가 태양새여야 하며 다시 사람이어야 했던 것이다. 나중에 다시 다루겠지만, 물에는 고래, 땅에는 개구리(또는 거북이), 하늘에는 까마귀로 삼중 우주의 토템으로 받아들였다. 고래잡이는 이들 세 가지 토템 모두에 의지해야 했다.

 

인디안들의 태양새(Thunderbird)가 때로는 고래와 조합적이지 않고 갈등적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것은 고래잡이 활동에서 내륙으로 들어간 인디안들의 변화된 신화에서 나타난다. 추장으로 현신한다고 믿는 태양새의 이름은 다양하며, 굶은 태양새는 고래를 잡아 먹는다고 믿어졌다. 숭배하면서도 사냥해야 하는 이른바 Dear의 대상이면서 Fear의 대상이 고래토템의 양면이었던 것이다.

 

고대 선사시대 이원론의 신화들은 모두 이러한 야누스적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공포시대에 신 자체가 동물들의 흉포함을 함께 경외하면서 그들으 자비를 기대해야 했던 약한 인간들의 정신세계였기 때문이다.  

 

고래토템 숭배에서 마을 사람들이 고래를 잡아먹어야 하는 경우를 태양새 개념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태양새의 양 날개 아래에는 벼락을 의미하는 시세열 뱀(이시미, Sisuitl) 두 마리를 대동하고 있는데 눈을 깜박이면 벼락이 된다고 생각했다. 고래가 수면 위에 떠오르면 두 마리의 시세열 뱀이 혀로 벼락을 내려 고래를 죽이면 태양새가 내려가서 고래를 물고 산 위로 가져간다고 믿었다.

 

바다에서 벼락과 천둥이 치면 고래들의 생명에 지장을 주거나 수면으로 올라오는지에 대한 연구들은 신화적인 고래토템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잠수함의 소음에 고래가 죽는다는 보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3. 서라벌의 향동지일출(向冬至日出) 라인은 신라식 토템 라인

 

나는 앞선 <역사산책> 글들에서 서라벌의 옥녀봉이 신라의 도성 반월성, 첨성대 그리고 대왕암에 연결된 이른바 향동지일출(向冬至日出) 라인인 태양의 길에 대해서 논했다. 향동지일출(向冬至日出) 라인은 그 자체가 신라적인 토템폴이라고 할 수 있다.

 

 

*서라벌 유적들과 동짓날 일출 방향 향동지일출(向冬至日出) 라인

옥녀봉 - 반월성 - 첨성대 - 선덕여왕릉 - 대왕암(해중능)

 

대왕암은 고래이며 옥녀봉의 옥녀의 정체가 태양새의 의미로 나는 해석한다. 반월성은 고래잡이 배의 작살잡이 샤먼으로서 왕(王)이며, 첨성대는 '고래'를 의미하는 것으로 서라벌의 향동지일출선은 그래서 동짓날 해돋는 길을 따라 이루어진 고래 토템폴의 신라 스타일로 해석한다.

 

 '서라벌 토템 폴' 구조

 

옥녀봉   - 첨성대 -  반월성  -   선덕여왕릉  -   대왕암

    태양새 - 고래 - 왕(고래잡이 배) - 까마귀(작살잡이 신) - 고래 -  

 

콰키틀 인디안들은 고래잡이배 양면에 그들의 '이시미'인 벼락 뱀(Lighting Snakes)을 새기는 전통을 이어왔다. 이것은 '두 마리 시세열(Sisuitl) 이시미'의 의미로 당나라 사람이 신라배를 묘사하면서 '두 마리 용이 배를 호위하여 끌고가는 것'으로 묘사된 것과 일치된다는 사실을 앞선 글에서 논했다. 벼락 뱀의 머리는 때로 늑대의 머리로 장식하기도 한다. 늑대는 벼락 뱀의 지상 현신으로 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콰키틀 인디안들의 태양새는 고래와 연관하고 있으며 추장의 환신으로 받아들여졌다. 추장이 죽으면 천둥이 우는 것으로 믿어졌는데, 우리 민족 전통에서 소라를 불어 왕의 붕어를 알리는 소리를 낸 것은 천둥소리를 모방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태양새의 부리는 토템폴 제작에서 매의 부리 모습으로 자주 표현된다. 고래잡이들에게 고래를 잡는 존재를 매부리에 연결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고래 토템폴에서 태양새와 고래 그리고 개구리도 중요한 요소로 들어간다는 의미에서 개구리의 '구리' 의미를 특별히 해석해 두고자 한다. 

 

 

4. 한민족 시조신화의 구조: 알(태양새) - 고래(올챙이) - 개구리(사람)

 

이미 앞선 글 <발해에도 고래 토템폴이 있었다>는 내용에서 발해의 '토템 폴'은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토템 폴처럼 태양새 - 개구리 - 고래가 함께 새겨진 내용을 설명한 바 있다.

 

나는 이 글을 빠른 템포로 써나가고 있다. 결론부터 쓰는 식이 빠른 타이핑이다. 개구리는 고래의 어원인 '구리'의 파생어라는 것이 필자의 해석이다. 고래의 어원은 '고리'이며 '구리'였다는 것을 앞선 글에서 다루었다.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 에는 '고리'라는 표현이 나오며, 이만영의 <재물보 才物譜>에는 '고리' 를 바다 속의 큰물고기라고 설명했다.

 

고래를 의미하기도 한 고리는 구리와 함께 고구려 국호의 유래가 되었을 수 있다. 따라서 고구려 고려에서 나온 코리아의 어원이 고리(고래)에서 나왔다는 주장이 가능한 것이다.

 

고구려는 '구려'로도 불려졌으며 구려(九黎=九麗·九夷·句麗)는 '구리'로도 칭해져 '고구려'를 '고구리'로 발음해야 한다는 학설이 등장하기도 했다. 치우천왕 때에 나라 이름이 '구리'로도 불려졌다. 고래토템에서 동반자로 나오는 개구리의 어원을 상고해볼 때 "고래 = 구리"는 '개구리'의 '구리'에 이어져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고래와 개구리가 함께 토템폴에 나오는 그 이유는 고래(구리)에 대한 '개구리'가 서로 세트로 이어져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동부여와 관련하여 고구려 시조신화는 고래와 개구리가 의미있는 '토템 세트'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밝혀두고자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구리'는 '고리(고래)'로서 나중에 '코리아'의 어원의 기반이 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두고자 한다. 이것은 토템 폴에 개구리가 고래와 함께 새겨진 내용에서 그 단서가 나온다. 여러해 전에 나는 이와같은 아메리카 인디안 토템폴에 연결은 시키지 않았지만, 그 당시 나는 <신화 이야기65> 高句麗 국호는 개구리에서 비롯되었을까? 라는 글을 쓴 바가 있다.

 

인디안들의 토템폴들을 볼 때마다 나는 작은 개구리가 왜 토템폴에 들어가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부여의 왕이 된 금와왕은 금개구리에서 나왔으며, 콰키틀 인디안들의 신화에서 태양새인 까마귀를 타고 인디안 추장과 함께 다른 마을에서 고래 토템폴을 가져오는 개구리는 신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인디안 토템폴에서 개구리 - 구리(고래)는 나에게 흥미있는 상상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개구리는 물에서 올라온 육지 동물이다. 양서류라고 하지만 올챙이는 물에 살고 개구리는 사람처럼 사지가 나와 있으며 점프를 하며 땅에서 주로 살며 물에 들어가기를 좋아한다. 또 결론부터 말해보자. 개구리는 사람이고 올챙이는 고래다. 선사시대 토템신화적인 동물-인간 상호 호환적 환생둔갑 의식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여 현대 자연과학적인 생각으로 개구리를 보지 말고 고대 선사시대 사람들의 동물토템 세계의 눈으로 개구리를 보아야 한다.  고래토템숭배자들은 사람이 죽으면 고래가 되며 고래는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믿었다. 개구리도 그렇게 이해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고래는 올챙이를 닮아 있고 사람은 개구리를 닮아 있다.

 

나는 역사를 공부해온 사람으로서 신화학에 누구보다도 많은 글을 써온 사람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동부여 금와왕의 신화는 동물토템숭배 신화의 해석 없이는 바른 이해를 할 수 없다.

 

금와왕을 낳은 '해부루'는 분명 바다활동 지역에서 온 인물이며 금와왕은 육지에서 왕이 된 인물로 보아야 한다.

 

나는 해부루의 '해부'는 '바다의 고래잡이'라는 의미인 해부(海夫)에서 비롯한 표현으로 본다. 한자 기록에서는 해부루(解扶婁)로 표현되어 있지만 석탈해 신화에서 처럼 解는 海의 다른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해부루를 낳았다는 해모수 또한 바다에서 고래잡이와 관련된 인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해모수는 그 후대적 한자 표기 이전에 바다의 어머니 해모가 낳은 짐승으로서 '해모수(海母獸)'의 뜻이 숨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동부여는 바다에 임해 있어 신라와 함께 고래잡이 나라였다. 해부루가 고래(올챙이)라면 해부루에게서 나온 금와는 올챙이(고래)가 변한 개구리(사람)가 된다. 지금 토템숭배시대의 눈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같은 북방 신화의 금와왕 신화체계를 고래가 출현하는 같은 동해 바다를 면한 고래토템의 나라 신라의 탈해왕에게서도 볼 수 있다. '탈해'란 '바다를 벗어난' 탈해 즉 올챙이(고래)에서 벗어나 사람으로 거듭 태어났다는 '탈을 벗은' 탈해의 의미가 된다. 삼국시대 신화에 표현된 한자들을 좀더 이두 구결식의 영향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 해석해야 한다.

 

신라의 박혁거세 박씨 왕조에 이어 나타난 4대 왕인 탈해왕(脫解王 BC 19년~AD 80년, 재위 AD 57년~80년)은 부여의 금와왕과 같은 '개구리' 의미가 있다. 

 

탈해(脫解)를 해부루(解扶婁)에서처럼 '解'를 '海'로 보면 탈해는 탈해(脫海)가 된다. 바다에서 나왔다는 뜻이다. 바다 고래(올챙이)에서 땅으로 나와 개구리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고구려의 뒤를 이은 발해(渤海) 칭호 또한 재미있게도 바다(海)가 그대로 들어가 있는 국호이다.

 

고래와 관련한 바다의 고래토템 숭배의 잔재라 할 수 있다. 발해는 그 국호 자체가 아예 바다를 그 바탕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바다 조상을 바탕하고 있었다는 것을 과시하려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 밝힌 <발해에도 고래 토템 폴이 있었다>는 글에서 고래 - 개구리 - 태양새의 구조가 그대로 인디안들의 토템폴과 일치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것은 중요한 해석으로 자부한다.

 

 

고래(물고기) 위에 개구리가 있고 그 위에 시세열(Sisuitl)로 보이는 용이 있다.

 

 

*태양새, 개구리, 까마귀, 고래 순서의 고래 토템폴

토템폴 아래에 시세열(Sisuitl)이 있는 이 토템은 배를 탄 고래잡이들을 의미한다.

 

 

<삼국유사>에서 보는대로 석탈해가 바다에서 올라올 때 까치(鵲)가 울었다고 했다. 석탈해가 바다의 고래잡이배와 같은 배에서 올라와 개구리처럼 왕이 되었을 때 그 까치 鵲에서 새(鳥)를 제하여 석(昔)이 된 석탈해(昔脫解)로 불렀던 것이다. 바다에서 올라온 석탈해는 고래잡이의 후손으로 보아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바다에서 육지로 석탈해를 따라 까치가 따라왔던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석탈해가 신화적으로 까치에게서 태어났다고 해석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석탈해가 용성국에서 '알'로 태어났는데 고래잡이 배에 고래를 싣는 궤짝 안에 넣어져서 신라에 도착한 것이기 때문에 "바다에 바위도 없는데 까치떼가 날아왔다"고 <삼국유사>가 기록한 것은 까치토템 숭배에서 태어난 '알'에서 '고래' 즉 고래잡이배와 고래궤짝을 탈처럼 벗어버리고 거기에서 다시 개구리처럼 육지로 올라온 구조를 가지는 것이다.

 

개구리는 생략되어 있지만, 석탈해가 궤짝에서 나와 7일만에 입을 열어 비로소 사람이 되었다고 기록한 뜻에서 그것은 토템신화적으로 '개구리(사람모양이다)'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개구리의 '구리'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멍텅구리'는 사람에게 쓰는 말이 되었지만, 본래 '멍텅구리'란 말은 못생긴 바다 고기의 하나가 '멍텅구리'이다.  

 

구리(고래 = 올챙이)에서 사람(개구리)이 된 것을 왜 '개구리'라고 표현했을까? 개구리의 '개'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이 개구리의 '개'를 덮고(蓋) 여는(開) '개'에서 찾고자 한다. 즉 개구리에서 '구리'가 어간이며 거기에 한자말인 덮는 개(蓋)와 여는 개(開)에서 '개'를 붙인 것으로 풀이한 것이다. 이것은 아메리카 인디안 고래잡이들의 둔갑탈(Transferring Mask)의 이해를 통하여 해석할 수 있다. 개구리 안에 사람이 있는 인디안 토템 구조를 알 수 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개구리 둔갑을 의미하는 인디안 관모.

A RARE TLINGIT POLYCHROMED WOOD CLAN HAT 

부여의 금와왕 신화와 같은 의미의 개구리 탈 속에 사람이 있는 관모를 쓴다.

관련글: <발해에도 고래 토템 폴이 있었다>

http://cafe.chosun.com/club.menu.bbs.read.screen?page_num=1&p_club_id=dreamview&p_menu_id=65&message_id=562593

 

석탈해로 말하자면, 처음에 용성국에서 '알'로 태어난 것은 태양새의 알이다. 그런데 궤짝에 넣어져서 '바다 용이 호위하는 배'에 실려 바다를 떠 신라로 온 기간은 '고래'의 의미이다. 알 껍질을 벗는 것은 태양새 껍질을 벗는 것이고, 궤짝 자체를 벗고 나온 행위는 고래의 탈을 벗는 행위이다. '궤짝 고래탈'을 벗은 뒤에 7일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석탈해가 완전한 사람이 되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석탈해 신화에서 그 둔갑구조는 인디안들의 둔갑탈에서처럼 다음과 같은 과정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까치의 새(鵲)에서 새의 탈을 벗어 석(昔) 성이 되고 이름에서 바다(고래)를 벗어버린 '탈해'이다. 닭이 아침의 새라면 까치와 까마귀는 저녁의 새이다. 까치(鵲) 그 자체가 석(昔)이기도 한 것이다.

 

까치 ->(昔) -  배의 궤짝(고래) -  탈해(脫海)

태양새 탈  -  고래 탈   -  사람 탈

알(깃털) - 올챙이(고래) - 개구리(人)

   

인디안들의 삼겹 둔갑탈(Triple Transferring Masks)은 새 부리 안에 고래, 고래 탈 안에 사람이 나오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다음의 인디안 둔갑탈의 3단계 과정을 살펴보자.

 

 

*제1차 고래 탈.

알라스카 고래잡이 탈 

http://duanepasco.com/port.masks1.html

 

 

*태양새 탈 안에 고래 탈이 나온다.  

http://duanepasco.com/port.masks1.html 

 

*태양새 탈 안에 범고래탈 안에 고래래잡이 얼굴 '처용탈'이 나온다.

three-way transformation mask

http://duanepasco.com/port.masks1.html

 

그러나 이러한 천상, 수중, 지상의 변화에 나오는 새, 고래, 개구리 등의 동물토템은 나중에 인간들로만 대체되는 과정으로 변천한다. 인형 안에 인형이 연속으로 들어 있는 러시안 마트료쉬카(Matryoshka) 인형도 이러한 원시 둔갑탈에서 인간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나트료쉬카 중복탈 형태는 남미의 잉카 탈에서도 보듯이 북미에서 중미로 내려가 남미에 도달하는 동안 동물부분이 인간만으로 변화된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북미에서 남미로 내려간 과정에서 인간화된 탈이 되었듯이 러시안 마트료쉬카(Matryoshka) 인형의 기원 또한 알라스카에서 시베리아로 건너가 인간화한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아즈텍 올멕 인디안들의 삼겹탈

http://ionarts.blogspot.com/2005/01/aztec-empire-at-guggenheim.html

 

 *러시안 마트료쉬카(Matryoshka) 인형

 

*케잘코틀의 둔갑

http://www.greatgreenapple.com/folk_artists/pineda/5042_coyote/index.shtml

  

이러한 둔갑탈 과정은 우리 민족의 전통 고전인 흥부전의 구조에서도 나타난다. 제비 부리가 물어다 준 박은 '제비의 알'을 상징한다. 흥부전의 말미에는 그 박 속에서 신선이 나온다. 제비부리 - 알 - 사람의 과정을 보여주는 흥부전이다. 놀부에게는 박 안에서 신선이 아닌 도깨비로 나온다. 태양새 안에서 고요한 고래가 아닌 진노한 고래가 나온 것이 상직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흥부전 이야기는 '박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탈바가지 이야기'인 것이다.

 

석탈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박혁거세가 '알과 같은 박'에서 나왔다는 것이나 그 부인 알영이 계룡의  옆구리에서 나와 그 부리를 씻어 떨어졌다는 것은 우리 민족 신화에서도 '삼겹탈 둔갑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개구리란 알(태양새 토템)에서 다시 올챙이(고래토템)로 거기에서 개구리 토템(사람)의로의 탈태하는 과정은 석탈해의 '탈해'의 脫(탈)이 탈의 둔갑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전통 탈은 다른 탈에서 새로운 탈로 둔갑하는 탈이라는 중복적 탈의 개념이 들어 있는 것이다.

   

개(蓋) 되어 있는 탈을 개(開) 고 또 개(開)하면 개구리 즉 사람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개구리'란 '고래(올챙이 모양)'를 열고(開) 나오면 '개구리'가 되는 것이다. 고래를 열고 나와 지상의 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배 안의 궤짝을 열고 나와서 왕이 된 석탈해나 바다의 고래잡이 어머니에게 태어났다는 박혁거세는 그렇게 고래토템 숭배자가 내륙으로 들어와 왕이 된 것이다.

 

가야의 김수로왕에게서는 거북이가 개구리 대신에 등장한다. 거북이도 개구리처럼 사지가 달린 사람 모습이며 물에서 뭍으로 올라오는 토템이다. 

 

북쪽 동부여의 금와왕과 고구려 고주몽에게서는 '개구리'로 나타나 있으며 발해의 토템폴에서 개구리 토템폴에 이어져 있다. 거기에서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고래토템 폴에 태양새와 고래와 함께 개구리가 자주 들어가는 것은 이러한 둔갑탈의 삼대 기본 구조에서 비롯한다고 할 수 있다.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태양새와 고래 토템은 신라적이라면 금와왕처럼 개구리가 강조된 토템폴은 동부여 발해에 이어지는 개구리 토템의 계승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여 원시적 삽겹 둔갑탈은 천상(태양새) - 수중(고래) - 지상(개구리 사람)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밟았다. 나중에 점차 태양새에서 바로 고래 과정이 생략되고 사람탈로 2단계로 되거나 사람탈로만 둔갑탈이 되는 과정으로 변화한다. 개구리가 죽으면 다시 고래가 되거나 태양새가 되는 것이 신선사상에서 육지신선화 및 바다신선화의 장례과정을 밟은 것이다. 문무대왕이 죽어 대왕암에 묻힌 것은 개구리가 다시 고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왜 '덮고 여는' 개가 구리 앞에 붙었을까 궁금할 것이다. 둔갑 탈(Transferring maksks)에서 '개구리'란 '구리(고래 = 올챙이)'를 열고 나온 '개구리'라는 의미이며 그 개구리에 엉덩이에 아직 올챙이 꼬리가 붙어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신화에서 7일이 보통) 말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알 - 구리(고래=올챙이) - 개구리(사람)의 과정인 것이다.

 

 

5. 박혁거세 어머니 해척지모(海尺之母)는 고래 조상을 의미

 

박혁거세가 나정에서 단지 알에서 태어난 것으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삼국유사> 탈해왕조에 보면 재미있게도 박혁거세 어머니는 고래잡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있다.

 

          時浦邊有一 名阿珍義先. 乃赫居王之海尺之母.

 

     이때 포구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아진의선(阿珍義先)이라고 하는데

     바로 혁거세왕(赫居世王)의 고기잡이 어멈(海尺之母)이었다. - <삼국유사> 탈해왕편 -

 

박혁거세의 어머니는 해척지모(海尺之母)이다. 신라인들은 반구대 고래잡이들의 신화적 혈통적 계승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근거임을 필자는 찾아낸 것이다. 박혁거세와 석탈해는 신라 초기 왕실 신화의 주인공들이다. 

 

해척지모(海尺之母)는 해모(海母)이며 해모수의 해모와 같은 바다의 해모이다. 석탈해의 해탈과 같은 바다의 해신의 어머니가 해척지모(海尺之母)인 것이다. 우리 민족의 신화들은 모두 해신의 어머니의 후손임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인 것읻.

 

'해척지모(海尺之母)'란 표현은 바다의 고래잡이배를 인도하는 여성 무당으로서 깃털 옷을 입은 인디안 고래잡이배의 앞에 선 샤먼으로 볼 수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해석하면 해척지모(海尺之母)는 항해하는 고래잡이배의 방향을 선택하는 무속적 선장일 수도 있으며, 동시에 바다의 해신으로서 고래일 수도 있다. 고래의 후손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우리민족 고대 신화들의 기본 구조인 것이다.

 

고래 암각화에서 고래는 암컷으로 나오며 때로는 수컷과 구분하여 그 이름을 예(예)로 칭하기도 했다. 고래를 조상으로 믿는 아메리카 인디안들이나 솔로몬제도의 뉴조지아 섬의 원주민들이 상어를 조상으로 믿는 것에서 보듯이 사람이 죽어 고래가 되고, 조상이 고래가 되어 돌아온다고 믿었다. 신라의 문무대왕은 죽어서 신룡이 된다는 것은 고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대왕고래 토템으로 인한 이름 대왕암의 물 갇힌 모양이 고래를 닮아 있다고 내가 주장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이다.

 

스칸디나비아 백해 지역의 카렐리안(Karelian) 암각화에는 여자에게서 고래가 태어나는 그림이 있다. 박혁거세의 '海尺之母'란 신화적이며 '고래에게서 태어난 박혁거세' 의미 이전에 '海尺之母'에게 태어났다는, 그래서 '고래가 박혁거세'라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박혁거세의 해척지모(海尺之母)는 석탈해에게서는 태양새라 할 까치의 '알'에서 태어나 '고래'의 탈을 벗고 7일만에 사람(개구리)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석탈해는 어쩌면 탈이 세개(석탈)인 '석탈-해' 나온 사람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6. 왜국 동북쪽 1천리 용성(龍城在倭東北一千里)은 아막낙 섬에 가깝다

 

석탈해에 대하여서 <삼국유사>에서는 낯선 배 한 척이 큰 궤짝을 싣고 당도했으며 그 궤짝 안에서 남자아이가 나왔는데 그가 석탈해라는 것이다. 아기가 아닌 남아로 표현되어 있다. 기록의 구체적인 표현에 따라서 석탈해는 작살잡이였을 수도 있는 표현이다. 

 

배에 실린 그 궤짝의 길이를 보자. 길이가 20척이고 너비가 13척이다. 그 크기가 '고래 사이즈'이다. 나에게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방 다가온다. 고래가 돌아와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둔갑 무속신앙을 보여준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고래잡이배가 돌아왔으며 그 작살잡이가 나중에 왕이 되었다는 그 당시의 '용비어천가'의 시조신화인 것이다. 다시 말하여 지배자의 가문 배경이 강력한 고래잡이 가문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 까치들이 따라와 울었는데 "이 바다 가운데에는 본래 바위가 없는데 무슨 까닭으로 까치들이 모여들어서 우는가" 라고 박혁거세의 어머니 해척지모가 말했다. 고래잡이배를 따라 온 까치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미시시피강을 종단하면서 뉴올리즈 끝 강 하구 어귀에 가본 일이 있다. 고기잡이 어선들이 들어와서 그곳에서 고기를 풀어 올리는데 펠리칸을 비롯하여 수많은 종류의 새들이 날아와서 고기의 파손된 것 등을 먹고자 날아다녔다. 바다에서 새들은 고기잡이배를 따라다니면 생기는 것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고래를 한자로 '물고기 도읍'이라는 의미의 경(鯨)이라고 한 것은 수많은 고기떼들이 고래 근처에 모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새들도 모일 수가 있는 것이다.

 

석탈해를 태우고 온 배는 '고래잡이배'였으며 까치들은 그래서 따라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석탈해가 타고 온 배가 고래잡이배였다는 증거는 또 나온다. 20척 X 13척의 궤짝을 열어보니 그 안에 석탈해 소년 외에도 칠보 노비가 함께 실려 있었다는 것인데 고래잡이 뱃사람 숫자였을 수도 있다.

                                                                                                    

    有端正男子. 幷七寶奴婢滿載其中. 供給七日

 

     

       단정히 생긴 남자 아이가 있고 아울러

    칠보(七寶) 노비(奴婢) 가득  있었다.

    칠일 동안 먹였다.  

 

7일이란 막연한 숫자가 아닌 바이블의 7일처럼 사람이 되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박혁거세가 죽어 신선이 되는 기간도 7일로 표현되었다. 토템숭배시대의 눈으로 해석하면 알 - 고래(올챙이) - 사람(개구리)이 되는 과정에서 사람(개구리)이 되는 기간이 7일이 된 것이다. 그래서 석탈해를 7일간 먹이니까 비로소 말을 했다고 기록한 것이다.

 

여기에서 '노비'란 고래잡이들의 성원과 같은 구조로 해석될 수도 있다. '칠보 노비'라고 했지만, '칠명의 노비'로 볼 수 있다는 것은 20척 X 13척의 궤짝 사이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에서 그렇게 추정이 가능한 것이다. 가로가 13척이면 세 사람씩 두 줄의 들어갈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옛 신화적인 표현들에 너무 과학적인 공식을 대입하지는 말자. 신화는 시대를 달리하여 표현되면서 그 뜻과 표현법이 전이된다는 것은 단군신화의 내용이 불교적 표현으로 바뀐 사실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남자 아이는 샤먼이면서 고래 등에 작살을 꽂는 작살잡이였다는 것이 되며 나머지 일곱명은 흔히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고래잡이배 한 척의 구성원의 숫자권인 5 - 10명 정도권인 것을 알 수 있다.  

 

7일동안 먹인 뒤에 석탈해 아이는 입을 열어 그가 용성국(城國)에서 온 사람이라고 말했다. 용(龍)이란 고래를 의미하는 후대적 표현이었다. 용성국 즉 '고래잡이 나라' 자체가  고래잡이와 관련된 오호츠크해 이상 알류산 열도에서 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왜국의 동북쪽 1천리라고 한 것은 분명 대륙인 고구려쪽이라기보다 오호츠크해에 가까운 섬으로 보아야 한다. 고구려 북쪽이라고 하지 않고 왜국의 동북쪽이라고 기록한 것은 용성국이 섬이기 때문이다.

 

  言曰. 我本龍城國人.亦云正明國. 或云琓夏國.

  琓夏或作花廈國. 龍城在倭東北一千里.

 

  말하기를 나는 본시 용성국(龍城國) 사람인데,

  정명국(正明國) 혹은 완하국(琓夏國)이라고도 한다.  

  완하(琓夏)는 또 화하국(花厦國)이라고도 하니,

  용성(龍城)은 왜국(倭國) 동북쪽 1천리 떨어진 곳에 있다

  

왜국 동북쪽 1천리라는 이 사실은 왜국의 범위를 어디까지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나라를 섬으로 구분했다면 혹카이도 북쪽 사할린 지역 이상 쿠릴열도와 알류산 열도까지 닿을 수 있는 섬들의 카테고리를 넓게 잡을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고래잡이 연안 지역의 섬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석탈해가 분명 신라에 들어와서 왕이 되었다는 것은 그 신화적 구조의 복합적 구성에서 나에게는 신라지역의 인물이 왜국 동북쪽 1천리에서 '돌아왔다'는 것으로 해석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황룡사에 모셔진 장육존상을 만들기 위한 철이 배에 실려 온 곳은 인도였을 것이고 할 수 있겠지만, 석탈해가 온 곳은 왜국 동북쪽의 용성국이며 용(고래)과 관련된 고래잡이 섬에서 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고대사에서 동해 동북쪽의 역사는 더 주목받아야 하며, 아메리카 대륙으로 뻗어간 역사는 새롭게 발굴되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최초로 주장한 고래를 따라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루트는 이 모든 고고학적 증거들이 갖추어져 있으며 기존 문헌 기록들에서 그 증거들이 재해석될 수 있는 내용이 많은 것이다.

 

<삼국유사>에서 석탈해가 탄 배가 먼저 가야지방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신라쪽으로 급히 갔다는 기록의 의미는 무엇일까? 자연스러운 해류에 맞긴게 아니라 노비들은 배를 몰아 신라로 되돌아가고자 했던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하면 본래 출발했던 고래잡이 지역인 신라쪽으로 되돌아왔다는 뜻으로 볼 수가 있기 때문에 용성국에서 이미 신라라는 회항지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 글의 모두에서 논한대로 <삼국유사> 가락국기에서는 완하국에서 온 탈해가 먼저 대가락국의 김수로왕과 왕위를 다투다가 쫓겨서 신라로 오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런데도 <삼국유사> 탈해왕조에서는 석탈해가 탄 배는 바다에서 먼저 가야쪽으로는 갔으나 가야에는 당도하지 않고 신라로 급히이동했다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의 신라 때의 탈해왕조의 기록으로는 석탈해가 신라의 왕이 된 뒤의 탈해에 대한 기록들이니 가야에서 김수로왕과 왕위를 두고 겨룬 내용은 생략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오히려 가락국의 수로왕은 탈해를 환영하려는 것으로 반대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가락국(駕洛國) 바다 가운데에 배 한 척이 와서 닿았다.  이것을 보고 그 나라 수로왕(首露王)이 백성들과 함께 북을 치고 법석이면서 그들을 맞아 머물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배는 나는 듯이 계림(鷄林) 동쪽 하서지촌(下西知村)의 아진포(阿珍浦)로 달아났다(지금도 상서지촌上西知村·하서지촌下西知村의 이름이 있다).  이때 마침 포구에 한 늙은 할멈이 있어 이름을 아진의선(阿珍義先)이라고 하였는데 이가 바로 혁거세왕(赫居世王)의 고기잡이 할멈이었다. - <삼국유사> 탈해왕조 -

 

그러나 분명한 것은 탈해는 처음에 완하국이라고도 하는 용성국에서 나온 인물로 되어 있으며 그는 분명 '왜국의 동북쪽 1천리 밖'에서 온 인물임은 분명하게 보인다. 그것은 탈해가 고래잡이 후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삼국유사> 가락국기에서 보여주는대로 탈해는 매로도 변하고 참새로도 변했던 '둔갑탈의 샤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래잡이 코리안들의 온돌이 이미 기록상의 석탈해보다 1천년이 더 오래된 아막낙 섬의 코리안들이 신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개연성을 보여주는 장면이 '왜국 동북쪽 1천리'라는 기록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계산은 표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왕복에서 규정화된 표현이 아니겠는가. 

 

신라 초기의 일인 석탈해의 '귀국으로 왕이 되는 것'은 그가 고래를 따라 동북쪽 오호츠크 연안 등 어딘가에 있었을 용성국(고래잡이의 나라)에서 활동하다가 돌아온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돌아올 때도 "붉은 용이 호위하여 왔다"는 <삼국유사>의 표현은 "고래를 따라 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상 석탈해를 태운 배를 맞이한 사람은 박혁거세의 어머니 해척지모(海尺之母)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은 석탈해의 '입양모'처럼 되어 있다. 이것은 석탈해가 박혁거세와 함께 신화적으로 같은 종족이었다는 의미가 들어 있어 더욱 '돌아온 고래잡이'의 의미를 부여해주고 있다.  

 

 

7. 고래(용) 따라 신라에 돌아온 '고래잡이' 석탈해 

 

"고래잡이에서 돌아온 석탈해와 7인의 고래잡이들"이란 나의 해석은 신화적이다. 그러나 그 구조는 고래잡이배의 역사를 바탕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문헌상의 해석을 바탕한다. 

 

석탈해가 용성국에 있을 때 알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의 기록에서도 태양새 토템의 샤먼 집안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배에 궤짝을 실어 그 안에 넣어서 바다에 띄워 보냈는데 배가 바다에 나서자 "갑자기 붉은 용이 나타나더니 배를 호위해서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라는 것이다.

 

돌고래 떼가 배 옆을 달리며 따라오거나 앞서 가거나 하는 장면이 떠오르는가? 석탈해를 호위하여 신라로 이끌어 오게 한 것은 간단히 말하여 '고래'다.  

 

신화시대의 '용'이란 고래였으며, 용은 후대의 표현이다. 석탈해를 호위하여 신라로 돌아온 용이란 콰키틀 인디안으로 말하자면 시세열(Sisuitl)일 수도 있지만, 배를 따라 오는 고래일 수가 있다. 이 내용은 고려시대 중기의 기록인 <삼국유사>가 1천년 전의 신라 초기의 기록을 불교식으로 재기록하고 있어서 그 원뜻은 훨씬 더 '인디안스러운' 내용이 있었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석탈해에게서 알과 용의 관계는 그러니까 태양새와 고래 토템을 보여주는 것이다.

 

석탈해는 처음 '알'에서 태어나 '고래잡이배'에 실려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궤짝 안을 박혁거세 어머니 해척지모가 열어보았을 때 '부화하여' 남자아이로 변해 있었다. 태양새(까치) 알탈을 벗 다시 궤짝으로 표현된 고래탈을 벗은 모습이 석탈해 아이 모습이다. "7일을 먹여 비로소 입을 연" 석탈해는 그때에야 사람 즉 토템 폴에서 보면 '개구리'가 된 것이다. 인디안들의 토템 탈인 삽겹탈 둔갑(Triple Transferring Masks)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토템폴과 토템 둔갑탈의 과정은 고래잡이들의 고래따라 내려오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 것이 '붉은 용이 나타나 호위하여 신라까지 왔다'는 표현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난생신화란 막연히 알에서 났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태양새의 탈을 깨고 나온 것이며, 알에서 나온 다음 올챙이(고래)로 살다가 다시 탈을 벗고 환생의 과정 후에 사람 즉 개구리로 태어난다고 여긴 토템 숭배의 삼중 구조였다.

 

그래서 다시 사람이 죽으면 태양새로 환생한다고 믿었다. 난생신화는 이러한 과정을 줄여서 알에서 나서 살다가 죽으면 그 영혼이 새가 되어 영생불명의 신선이 된다고 표현했다. 토템에는 수중과 지상 그리고 천상의 과정을 거치도록 구조가 코리안 고대 신화체계의 구조로 나타나 있는 것이다.

 

 

8. 동부여와 고구려에서 삼겹탈 둔갑과정: 알 - 고래 - 개구리  

 

동부여의 금와왕의 경우를 좀더 살펴보자. <삼국유사>의 동부여 조에서는 동해 바닷가에 가섭원이라는 곳에 나라를 세운 것이 동부여라는 표현이 나온다. 바닷가라는 면에서 고래토템 숭배의 나라가 동부여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와왕 신화를 보면 해부루가 개구리 얼굴을 한 금와를 큰 돌 밑에서 거두어 키우게 되니 그가 금와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코리아 역사에서 개구리가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인디안 책에서나 볼만한 내용이 아닌가. 개구리 토템숭배는 아메리카 인디안 토템 숭배에서 중요한 코드이다.

 

금와왕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 동부여조에서 이어진 고구려조의 처음에도 이어진다. 금와가 만난 유화부인이 해부루의 아버지 해모수를 만난 이야기를 해주는 내용에서 유화부인은 '물 속에서 살았다'고 했다. 물 속이란 고래가 사는 바다를 의미하는 것이다. 개구리로 말하면 올챙이가 사는 물속이다. 다시 말하여 올챙이는 고래를 닮아 있고, 개구리는 사람을 닮아 있다. 우리는 앞서 본 사진에서 인디안들의 개구리 탈 안에 사람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유화부인은 물의 신 '하백(河伯) '로서 표현된  자체가 고래숭배의 표현으로 그렇게 물의 신을 의미하는 하백이라 했을 것이. '하백(河伯)'은 신라지역으로 말하면 해척지모(海尺之母)와 같은 해신인 것이다.

 

유화부인은 금와에게 해모수를 만난 것에 대하여 "여러 동생들과 함께 물밖을 나와서 노는데"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금와의 조상으로서 '올챙이에서 개구리가 되어 땅 밖으로 나오는'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필자는 해석한다. '여러 동생들과 함께 물밖으로 나왔다' 표현 자체가 많은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어 물밖으로 나왔다는 것을 의미한다인디안들에게 개구리는 다산의 의미가 있다. 개구리가 알을 많이 낳기 때문이다

 

고래토템 숭배시대에 올챙이는 고래의 의미이고 개구리는 사람의 의미라는 사실에 대입하여 보면 금와왕과 물 속에서 나온 유화부인의 이야기는 고래에 닿아 있다는 신화적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올챙이는 고래를 닮아 있고 개구리는 사람을 닮아 있다.

 

 유화부인이 해모수와 사사로이 통하여 고주몽을 낳았다. 고주몽의 고씨는 고래 고씨를 의미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해모수(解慕漱) 하백(河伯)  유화부인과 사사로이 통해서 주몽(朱蒙) 낳았기 때문에 고구려란 '고래' 의미하려 그렇게 국호를 '구려(구리=고래)' 칭했다고 필자는 추정한다. 물에서 나온 유화부인은 '개구리'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고래토템 숭배는 모계사회를 바탕했던 시대의 종교였다.  

 

'물에서 나온 개구리' 유화를 이상히 여겨 금와() 유화를 방에 가두었다고 했다. 방안에 갇힌 '개구리' 유화부인이 낳은 것이 알이며 거기에서 주몽이 태어나는 것이 고구려 시조신화이다. 주몽은 개구리 알에서 태어난 것이다. 주몽이 대소의 추격을 피하여 도망칠 때 자라와 물고기가 도와 강물을 건너는 과정은 고래의 과정이 된다. 그런 과정 뒤에 주몽이 왕이 된 것은 '개구리(사람)'가 된 것이다. 

 

'고구려' 국호는 구려(구리)라는 고래인 것은 개구리 + 고래 = 고구려의 의미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동명성왕(東明聖王)의 '東明'이란 동쪽의 태양을 의미하는 동시에 동해바다의 해신인 고래의 의미가 암시되어 있다. 명신이란 앞서 다룬 장생포 고래신사의 이름에서도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에서도 바다의 고래신을 의미한다.

              유화부인(알) - 자라 물고기 도움받는 (고래) - 고구려 건국(개구리) 

 

이렇게 볼 때, 토템신화적으로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도 석탈해도 김알지도 모두 고래에서 사람으로 둔갑 환신한 '개구리'에 의하여 태어난 올챙이(고래)가 되기 위한 '개구리 알'이었다는 추정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곤연 연못 옆의 바위 밑의 금와왕, 물속에서 나온 유화부인이 낳은 알에서 나온 주몽, 나정 우물 옆에서 태어난 박혁거세, 해척지모에 의하여 바닷가에서 발견된 석탈해, 이 모두가 개구리 알에서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삼국유사>에서 금와왕이 낳은 장자 대소(帶素) 주몽을 시기하여 말할 때에 '주몽은 사람이 낳은 자식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고래와 개구리 토템 신화 해석의 이해없이는 해석이 어려운 것이다. 석탈해가 용성국에서 알로 태어났을 때에도 불길하게 생각하여 알을 배에 실어보냈다고 했다. 알에서 난 주몽이 괄시받은 것과 같은 바다의 고래잡이 부족들이 내륙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권력 게임으로 볼 수 있다.

 

박혁거세 어머니 '해척지모'가 받아들인 석탈해는 해척지모 모계 왕실에 입양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그가 왕이 되는데는 기간이 오래 걸렸다. 석탈해는 38살에 왕위에 올랐다. 

 

이것은 아메리카 인디안 고래잡이 부족들이 강 어귀 안쪽으로 들어가 연어잡이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묘사하는 것과 일치한다. 그래서 연안을 약간 벗어난 연어잡이 인디안들들에게는 태양새가 고래를 낚아채는 모양으로 토템을 만든다. 

 

*와카(Waka) 토템폴.

범고래를 잡고 있는 태양새

  

고래잡이 종족으로서 '알에서 태어난' 주몽을 두려워하고 배척하여 장자 대소의 요청에 왕과 신하들이 주몽을 죽이려   주몽이 쫓겨 가는데, 까마귀의 의미인 오이(烏伊) 따라가고 자라와 물고기들이 강물에 다리를 놓아 그 위를 타고 건너는 장면은 콰키틀 인디안들의 개구리 신화에서 까마귀 등에 타고 가는 개구리의 이미지에 오버랩되는 장면이다.

 

'까마귀' 오이(烏伊) 함께 엄수(淹水) 이르른 주몽은 '나는 천제(天帝) 아들이요, 하백(河伯) 손자'라고 말했다. 아메리카 인디안으로 말하면 천제(天帝)는 태양새이며 하백(河伯)이며, 주몽 자신은 개구리이다.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어 주어 건너게 했다" 표현한 것은 '고래의 후손' 고주몽의 고래토템 가문의 신화로 해석되는 대목인 것이다

 

주몽이 "햇빛을 받아 낳았다 하여 스스로 고(高) 삼았다"  것은 천제(天帝) 하백(河伯) 관계로 낳았다는 '고래의 후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천제(天帝) 인디안 토템으로 말하면 태양새(Thunderbird) 의미하며 하백(河伯)이란 고래를 의미하여 그 사이에서 고주몽이 '개구리'로 왕이 되는 것이다. 

 

천제(天帝) 고래잡이들에게서는  앞에 타는 샤먼이며 작살잡이로서 성적으로 고래와 관계를 맺는 의식을 행하기 위하여 생식기를 노출하는 반구대 암각화의 사람형상의  샤먼이며 지상의 왕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신라와 동부여 및 고구려에 고래=고리=구리에 이어진 개구리가 사람으로 둔갑한 토템둔갑 신화가 동부여와 고구려 시조 신화에 들어 있는 것이다. 신라에는 닭과 까치, 까마귀가 강조된 반면에 북쪽인 동부여와 고구려는 개구리가 강조되어 있는 것으로 그 둔갑토템 숭배는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다.

 

 

9. 아메리카 인디안들에게서 보는 포석정의 전복 토템과 계룡의 부리 

 

신라는 해돋는 바다가 가까와 고구려의 오녀산성보다 더욱 동해바다가 가까운 나라였다. 그렇기 때문에 신라는 바다와 아침해 그리고 해돋는 새벽 우는 닭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고구려와 달리 동해바다가 가까왔던 고조선의 아사달은 동부여의 '가섭원'처럼 바닷가였다. 그래서 '아사달'은 '아침닭'으로 내가 해석하는 것은 태양새의 나라 '계림(鷄林)' 또는 신라의 국호가 동쪽 바다의 해돋는 것을 보고 홰를 치며 우는 닭을 태양새로 받든 나라와 같은 태양새의 나라라는 의미가 있다.

 

'鷄林' 또한 '새벌'로 풀이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해석이다. 닭은 '새'이며 수풀은 '숲벌'이기 때문에 '새벌'이 된다. 서라벌의 다른 표현이 새벌이며 결국 계림(鷄林)으로 표현된 것이다. 오늘날 '서울'의 기원이 된 '서라벌'은 태양새 토템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닭은 김알지에서 시작되기 전에 이미 박혁거세 알영 신화에서 시작되었다. 계룡(鷄龍)이 그것이다. 신라에서 닭의 나라라고 해서 닭을 독립되게 보아서는 안된다. 태양새+고래의 '鷄龍'이 신라의 시작 토템폴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나는 앞서서 아사달의 '달'은 '닭'으로 해석했다. '달(닭)'은 '탈(닭)'이기도 하다는 것은 수탉 '탉'에서 유추될 수 있다. 새란 사람이 되는 탈이며 닭인 것이다. 신라 시조 알영부인이 계룡의 옆구리에서 나와서 그 부리를 물에 씻으니 없어졌다는 것은 계룡탈을 벗으니 그 안에서 사람이되 부리를 달고 있는 탈을 쓴 알영이 나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알영은 이름 그 자체가 알이며 태양새 탈인 것이다. 아래의 헤일척(Heiltsuk) 인디안들의 탈에서 알영부인의 '부리'를 찾아보라. 전복껍질 안에 알영이 있다!

 

 *헤일척 인디안 둔갑탈. Heiltsuk Clam Mask 1900년 스미소니안.

비너스 여신처럼 조개껍질 안에서 부리 달린 사람(알영)이 있다.
Heiltsuk mechanical clam mask, ca. 1900. British Columbia, Canada
Carved and painted wood, leather and cotton string.

 

대합조개 안에 병아리 부리를 한 모습은 가히 갓 태어난 '알영'을 닮아 있다. 대합조개(clam)는 비너스 여신이 태어난 그 대합조개다. 전복을 닮은 포석정은 여성의 심볼을 나타내더라도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포석정은 신라 시조 신화에 깊이 연관성이 있다. 나는 신라인들의 금성(Venus) 숭배가 전복을 닮은 포석사(포석정) 사당이 조개토템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신화이야기> 시리즈 글에서 여러 차례 다룬 바가 있다.

 

계룡은 그 비늘이 전복껍질로 되어 있는 신수로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알영은 전복껍질 속에서 나온 여신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부리를 씻어 떼낸 알영부인에 대한 <삼국유사>의 기록은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둔갑탈을 찍은 필름처럼 다가온다.

 

둔갑탈은 우리 민족의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 시대의 시조신화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태양숭배와 함께 왕이 등극할 때는 동물토템 숭배의 역사가 '해동육용'처럼 그 겹겹의 탈을 벗어 나온 조상들이 들먹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헤일척(Heiltsuk) 인디안들의 둔갑탈.

태양새 탈을 벗기전의 모습.

Transformation Mask. Nuxalk or Heiltsuk
British Columbia. About 1865
Wood, metal, hair, cotton, paint and resin
Canadian Museum of Civilization, VII-B-20, CD94-673-007, CD94-673-008

 

*둔갑탈을 연 모습

 

*하이다 인디안들의 둔갑탈

위에 갈매가가 있다.

A complex transformation mask. Closed, the mask depicts a Whale with a seagull on its head. When the Whale's face is opened, the dorsal fin and gull's head both fold back to reveal the humanlike inner face. Copper eyebrows, lips and cheek decorations complete this mask.
Collected on Haida Gwaii in 1879 by Israel W. Powell.

http://www.civilization.ca/cmc/exhibitions/aborig/haida/haama02e.shtml 

 

 

 

Kwakwaka'wakw Sun Transformation Mask
Kwakwaka'wakw sun transformation mask, worn during the Peace Dance, ca. 1870 to 1910.
British Columbia, Canada. Carved and painted wood, cloth, copper, alloy, iron, sinew, and tanned leather.

 

코리안과 아메리카 인디안의 역사는 이제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 거의 신화적 문화적 지리적 연계성에서 보다 확실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태양을 따라 간 길, 고래를 따라 간 길은 남아 있었던 코리안들의 문화 속에도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태평양 양안을 두고 코리안과 인디안은 '콘디안'의 한 시조의 신화와 그 전통을 이어왔다. 

 

나는 코리안과 인디안을 합친 조어로 콘디안(Korndian)이라는 말을 써왔으며 따로 게시판까지 만들어 글을 올려오고 있다. 콘디안 문화는 코리안들이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결과적 문화비교 증거의 문화들이다.

 

태양 길을 따라 고래 길를 따라 간 코리안들은 그들의 문화와 신화를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가지고 간 것이다. 태양의 나라 고래의 나라 코리아의 신화와 역사와 문화는 아메리카 신대륙에서도 많이 발견되는 것은 그 후속적 방증들인 것이다.

 

이러한 콘디안 문화 발견은 필자처럼 한국에서 서양사를 전공하고 다시 미국에서는 동양사를 전공한 사람이 태평양을 오가면서 양쪽 문화를 비교할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내가 코리안 신대륙발견론을 터트린 것은 하루에도 수백번씩 태평양을 헤엄쳐 기나긴 글의 파도를 남기며 아메리카와 코리아를 오가면서 탄생된 결과이다. 

 

나는 해돋는 동방에서 태어났으나 지금 서쪽에서 그 동방의 나라를 보고 태양의 길 고래의 길을 쓰고 있다. 태양의 길 고래의 길을 따라 이루어진 코리안 신대륙발견은 라운드 트립의 왕복발견이다.(12/06/09 오두)

 

 

* 필자의 관련글들:

 

<코리안 신대륙발견> 태양의 길을 따라 신대륙으로 간 코리안들

 

계룡(鷄龍)은 고래와 태양새의 고래잡이 토템

 http://cafe.chosun.com/club.menu.bbs.read.screen?page_num=3&p_club_id=dreamview&p_menu_id=65&message_id=560773

 

 <코리안 신대륙발견> 신라의 처용탈은 고래뼈로 만들어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