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용호결

영원오늘 2008. 4. 26. 21:44
 

용호결

[용호결] '북창결(北窓訣)' 또는 '용호비결'로 알려져 전해내려 오고 있다. 이조 중종(中宗) 원년(1506) 음력 3갑신일에 태어난 정염 선생이 남기신 글이다. 이 어른은 1490년대 중엽이후 3대에 걸쳐 벼슬하던 집안에 태어났으며, 아버지 순붕(順朋)께서 중종, 인종, 명종, 세 임금을 섬겨 벼슬 자리에 있었고, 어머니는 태종(太宗)의 장왕자 양녕대군의 증손녀였다.
선생은 어릴 적부터 마음을 가다듬어 신과 통할 줄 알았다고 전해온다. 어렸을 때 산사(山寺)에서 선가(禪家)육통법(六通法)을 시험하려고 3일 동안 마음을 가라앉혀 사물을 바라보아, 가까이는 동리 집안의 사소한 일에서부터, 멀리는 산너머 백리 밖의 일까지도 통달하였으며,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천문·지리·의약·복서·율려·산수·외국어를 두루 배워서 못하는 바가 없었다. 비록 천리 밖의 일이라도 마음을 고요하게 집중하면 곧 알아내었다.
선생은 유··선의 삼교에 관통하였으나, 근본을 성학(星學)에 돌려 그의 유혼에도 효제(孝悌)를 오로지 힘쓰게 하고, '소학' '근사록' 초학자의 지름길로 삼았다.

일찌기 선생께서는성학은 인륜을 중시한다. 그러므로 긴요하고 오묘한 곳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불(仙佛)은 오로지 마음을 닦고 본성을 깨닫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상달(上達)한 곳은 많고, 낮고 쉬운 것을 배움은 전혀 없다. 이것이 삼교가 제각기 목적하는 바가 다른 까닭이고 선불은 대동소이하다라고 하였다.
선생은 늘 탄식하시기를말하여도 믿어주지 않고, 행하여도 알아주지 않는다.”하고는 마음껏 노래부르며 스스로 희롱하며 방랑의 행각에 낙을 붙였다. 그러면서도 남과 더불어 말할 적에는 단 한 마디도 공자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일이 없었다고 한다.그 깨달음은 부처와 같고, 그 행동은 노자와 같았으며, 사람을 가르치는 데는 한결같이 성인을 기준으로 삼았다고 전기로 전해 온다.

 

원문에 관하여
단학에 관한 문헌으로 이 [용호결]보다 뛰어남이 없다고 믿어, 오늘 날까지 전해오는 여러 책들을 모아 한자한자 검토하여 본문과 같이 정리해보았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 규장각, 연세대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 것과 민간에 유포된 몇 종을 저자가 대조해 본 결과 문맥에는 큰 차가 없으나, 글자의 사용에 있어서 아래와 같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1)
主와 住
(2)
相과 常
(3)
氣와 그 옛글자
그래서, (1)은 住로 통일하고 (2)는 구별하였고 (3)은 氣로 통일하였습니다.

원문에 주문과 주해가 구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문은 큰 글자로 주해는 작은 글자로 하고 글체를 달리 하였습니다. 현대문도 주문과 주해의 글자 크기를 달리하여 원문의 뜻을 살렸고, 그 다음에 <한방울의>이라는 이름으로 저자의 소견을 피력해 보았습니다.
한글 세대에 낯설게 느껴질 한문을 먼저 실은 것은 옛 원문의 뜻을 받드는 어른에 대한 예의로써 그렇게 하였습니다.  

 - 본 코너는 하동인 선생이 엮은 "단학비전 조식법"에서 전문을 인용하였습니다 -

단을 닦는 일(修丹之道) 지극히 간단하고 지극히 쉽다. 이제 이 도에 관한 책이 너무 많아서 서고에 가득찰 지경이나, 말로는 나타내기가 너무 어렵고 황홀하여 읽는 사람이 알기가 어렵다. 그 때문에 옛날이나 지금이나 처음 배우려는 사람은 손댈 방법을 몰라서 불로장생 하려다가 오히려 도중에는 그만 두는, 즉 요절하는 자가 많았다.

<참동계>란 책은 실로 단학의 시조가 되는 책이나, 그 내용이 우주의 이치를 설명한 역의 표현 방법인 괘와 효를 빌어, 비유로 설명하였기 때문에 처음 배우는 사람으로는 도저히 짐작조차 못할 바가 많다. 그래서 이제 입문에 있어서 가장 적절한 사항을 알기 쉽게 약간의 장으로 나누어 설명하려 한다. 만약, 능히 깨달을 수 있으면, 한마디 말로 충분하다. 즉 공부 시초에는 폐기하는 일뿐이다.

한방울의
450년전의 선비를 위하여 쓴 글로 당시로는 상식에 속한 글을 인용한 것이 오늘날에는 알기 어려운 글이 되었습니다. 단을 닦는 방법은 폐기 즉 기를 가두는 일이라는 것을 천명하셨습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을 다음에 주해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한 마디의 비결이다. 매우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나, 옛사람은 비밀로 하여 선선히 말로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배우려는 사람들이 쉽게 손댈 방법을 알지 못하였다. (자기자신의) 기식 속에서 단을 닦는 법이 있는것을 모르고, 밖으로 금석에서 구하여 오래 살려다가 오히려 요절하였으니 참으로 애석하다.

한방울의
<참동계>는 한말의 도사 위백양(魏伯陽)이 선단의 제조법을 논한 책으로 주자(朱子)도 주석한 일이 있었고, 우리나라의 이퇴계(李退溪) <계몽전의>(啓蒙傳疑)에서 논한 바가 있습니다. <참동계>란 물과 불, 납과 수은으로 오래사는 신선되는 약을 만드는 원리도 쓰여져 있는 책인데 많은 이들이 참 뜻을 잘못받아들여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행하였던 듯 합니다.
㉯ 자기의 숨속에는 단을 닦는 법이 있는 줄 모르고 신선이 되겠다는 분에 넘친 욕심 때문에 금석지제 즉 요새 말로 영양제인 각종 미네랄을 먹음으로써 그렇게 될 줄 알고 본말이 뒤바뀌어진 수련을 한 사람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몸에 좋다면 무엇이든 앞뒤 가리지 않고 먹는 요새 일부 사람과 서로 통하는 데가 있음을 봅니다.

이제 폐기를 하려는 이는 맨 먼저 마음을 고요히 하고, 책상다리를 하여 단정히 앉아  ·주렴을 드리운 것 같이 감은 듯 뜬 듯한 눈으로 콧등을 보고 콧구멍으로 배꼽 언저리를 마주하여 공부는 정신을 전적으로 이렇게 하는 데에 있으며, 이때 등뼈를 구부려 수레바퀴가 둥굴게 휘어지 듯 해야 한다.
들이쉬는 숨은 솜에서 실을 뽑아 내듯이 가늘게 솔솔 끊임없이 길게 계속 뽑아내고, 내쉬는 숨은 미미하게 조금씩 계속 토하여, 늘 신과 기가 서로 엉퀴어 배꼽 아래 한 치 세푼의 자리에 있는 단전에 항상 머물어 살도록 하라.

한방울의
㉮ 폐기하는 마음 가짐과 자세한 요령을 적은 글입니다. 형식으로부터 정신내용으로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 위 원문의 마지막 줄의 상주의 주를 注로 쓴 책이 있습니다. 폐기의 초기에는 신과 기를 따로따로 생각하여 쏟아 넣는 뜻으로 注로 쓴 듯 합니다. 원저자가 어느 쪽으로 쓴 것인지는 이제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 시선··배꼽·등뼈, 호흡 요령을 주의하십시요. 이 글 가운데서 등뼈를 구부려 수레 바퀴 휘어지 듯 둥글게 하라는 글이 불교의 참선 자세와 다른 점이며, 또 오해가 많이 생길 수 있는 구절입니다.
㉱ 이 자세와 호흡 요령은 초습자가 꼭 습관화할 일입니다. 자세에 있어 그렇게 못할 사람을 위하여 26쪽에서 여러 가지를 이야기해 놓았습니다.


모름지기 굳게 닫을 필요는 없다. 참지 못함에 이르러도 밖으로 내보내지 아니하고, 다만 아래로 내보내려는 생각을 더 하며, 오줌눌 때와 같이 은근히 하면, 이른바 취어 뢰손풍 상태가 된다. 즉 내쉬어야 할 숨이 몸안의 유순한 바람의 덕을 보게 되어 마음과 몸이 화평하게 된다. 그러므로 능히 마음을 안정시켜 머리를 숙여 아래를 보아 눈으로 코끝을 보고, 코와 배꼽을 마주 대하게 하면 기가 부득불 내려가게 된다.
폐기의 초기단계에는 가슴이 점차 번거롭게 꽉 차고, 때로는 찌르는 듯이 아프기도 하고, 혹 뱃속에서 꾸루룩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무엇인가 내려가는 현상들이 모두 폐기가 되어가는 좋은 징조이다.
부분의 풍사, 즉 간장의 풍과 심장의 화가 바른 기운의 핍박을 받으면 비어있는 곳으로 흘러들어가서 기를 전해보내는 길이 생긴 다음부터라야 기가 스스로 편안하게 되고 병은 저절로 삭아 없어지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실마리가 된다. 그래서 가히 잠시의 증험이라고 할 수 있다. 항상 가슴앓이나 배병이 있는 사람은 정성껏 폐기하면 좋은 효과와 묘미를 느낄 수 있다.

한방울의
㉮ 위 주문과 주석문으로 초습자가 수련할 전 과정을 설명하셨습니다. 맨먼저 마음을 고요히 하라, 선수정심의 심법이 가장 기초가 됨을 잊어서는 아니될 일입니다.
㉯ 가슴·횡경막·배의 삼위일체 된 호흡으로 단전으로 기가 흘러들어 가는 <전송지도>(傳送之道)가 이루어져야 됨을 강조합니다.
㉰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북창선생의 아우 고옥(古玉)이 인용한 듯한 아래 글이 있습니다. <눈이 이르는 곳에 마음이 또한 이르는 것이므로 몸을 단련하는 법에 눈으로 코를 내려다 보고, 코의 끝이 배꼽과 상대케 하여 심화(心火)를 단전에 하강(下降)시키는 법이 있으니 잠깐의 공부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 편향이란 간식·중참을 뜻합니다.

생각하고 염원함을 항상 이와 같이 하여 공부가 좀 익숙해져 이른 바 현빈의 한 구멍을 뚫어 얻으면 백 구멍이 비어 있어 모두가 통하게 된다. 구멍 안에서 태식을 하여 이 한구멍을 얻으면 선을 닦는 길이 된다.

한방울의
㉮현빈의 현은 신비하고 심오함을 뜻하고, 빈은 암컷, 생산, 생성을 뜻합니다. 그래서 현비은 천지만물을 생성하는 신비한 암컷을 뜻하게 됩니다. 이 글귀는 노자 도덕경 제 6장에 비롯합니다.
()는 구멍 , 비어있을 , 구멍 뚫을 입니다.

이것으로 태식을 하게 되고, 태식함으로써 주천화후를 하게 되고, 주천화후를 함으로써 결태가 된다. 그러니 현빈일규에서 모든 것이 비롯된다.
어떤 이는 이것을 방문의 보잘 것 없는 술이라 해서 긍정하고 즐겨하지 않으니 안타깝다. 공부해서 변하고 화하여 날고 속구치는 술법 따위는 감히 내가 말할 것이 못 되지만 양신하는 데는 여러 방문이나 여러 약이 있더라도 이에 비할 바가 못된다. 이 방법을 여러 달 행하면 백 가지 질병이 두루 없어질 터이니 어찌 성심껏 행하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대개 풍사 우환은 혈맥 속으로 숨어들어 몸안을 돌아다니게 되며, 부지중에 사람을 죽이는 도끼 같은 흉기가 됨을 알지 못하고, 원을 찾아 가서 약을 써도 이미 때가 늦다. 의가는 병이 난 후에 병을 치료하지만, 도가는 병이 나기 전에 미리 병을 다스린다.

한방울의
㉮방문은 곁문, 직계가 아닌 다른 계통, 이단을 뜻합니다.
고황 ; 고는 심장 밑, 황은 횡경막 위 부분을 가르킵니다. 좌전 이란 책에 진나라 경공잉 병의 정이 어떤 의사도 치료하지 못하는 자리로 숨는 꿈을 꾸엇는데 바로 그 자리가 고황이었다 합니다.

정기와 풍사는 얼음과 숯이 서로 받아들이지 않음과 같다. 기가 머물러 있으면 풍사는 스스로 달아나고, 백맥이 자연스럽게 유통하여 삼궁의 기도 자연스레 오르내리게 되니, 질병이 무엇을 핑계하여 생길 수가 있겠는가? 좀더 정성을 다하여 근면하면 반드시 수명을 연장하여 죽음을 물리침에 이르겠지만, 그 찌꺼기라도 얻으면 역시 평생을 편안하게 누리지 못함이 없을 것이다. 이 일을 사랑함은 영생을 원함이니, 내가 항상 여러분에게 가르쳐 준 것 역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이 글을 보는 이는 내 뜻을 짐작하여 망념을 용서하면 다행으로 생각하겠노라.

한방울의
㉮이른 바 양생(養生), 양신(養神)을 논한 글입니다.
삼궁 ; ① , 가슴, 머리  ② 단전, 심장, 이환   ③ 척추가 밑에서 끝나는 자리 즉 미려를 하궁, 배꼽아래 한치세푼의 자리 즉 단전을 중궁, 머리의 이완을 상궁이라 하는 이도 있습니다.

삼가 생각컨데 옛 어른께서 말씀하시기를 <순으로 따르면 사람이 되고, 역으로 거스르면 신선이 된다>고 하셨다.
대개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이 넷을 낳고, 넷이 여덟을 낳게 되어 64에 이르게 되며, 더 나아가서 만 가지 일로 이루어지게 됨이 인도이다.  순추공부
다리를 포개어 단정하게 앉아서, 발을 드리우듯 눈꺼풀을 내리고 입을 꼭 다물고, 세상 만사의 분요를 수습하여 오로지 무의 경지인 태극으로 돌아감이 선도이다.  역추공부
<
참동계>에 소위 "뜻을 다 맡겨 허에 돌림으로써, 아무런 생각도 없다는 생각마저 없는 경지가 상례로 되게 하라"는 것이다.  무는 태극의 본체이다.
스스로 경험하고 실험하며 증명하여, 그 경험을 다음 할 일에 옮겨서 추진하여, 마음을 하나로 하여 딴 생각없이 흔들리지 아니함이 신선이 되는 첫 순서이다.
다만 뜻을 세움은 일찍함이 귀하고, 몸의 원기가 쇠퇴한 후에는 백배의 공을 들여도 선의 줄에 올라가서 함께 자리하기가 어려우니라.

한방울의
㉮도를 배움에는 아래와 같이 때가 있음을 오진편(悟眞篇)의 주()에 있습니다. <여순양이 64세에 정양진인을 만나게 되고, 갈선옹은 64세에 정진인을 만났으며, 마자연은 64세에 유해섬을 만남으로써 신선이 되었다. 그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젊을 때부터 그 방면에 뜻을 두었으니 비결을 얻어서 신선이 된 것이니 어찌 그의 효용이 적다 하겠는가. 세상사람들은 즐겨하는 욕심에 집착하여 정기를 상실하게 되고, 생각함을 심하게하여 신이 줄어 없어지고, 과도한 피로로 진기를 손상하니, 한번 진양을 잃으면 비록 비결의 큰 길을 64세 전에 배워도 성공하기는 어렵다. 일찍 욕심을 끊고 장년에 도를 구하면 색상이 있는 육체가 무너지지 않고 정기가 줄어 없어지지 않았을 때 스승을 만나 참을 얻어 실행을 빨리하면 도를 깨달을 수 있다>
㉯여자 14, 남자 16세 전에 전송지도를 얻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현 교육 학제로는 그렇게 하기 어려우니 가정교육으로 또는 뜻있는 분의 자녀교육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폐기

복기 또는 누기라고도 한다.
정경 <신선·도사는 선에 있음이 아니라, 정을 쌓고 기를 포개어 참되고 바르게 됨을 말한다.>하였다.

폐기하려면 눈으로 깃발을 삼아, 기의 오르내림이 좌우·전후 어디로나 마음먹은 데로 가게 하면 된다.

기를 올라가게 하려면 위로 보고, 내려가게 하려면 아래로 본다다. 오른 눈을 감고 왼 눈을 뜨고 위로 보면 왼쪽 기가 돌아서 오르고, 왼눈을 감고 오른 눈을 뜨고 위로 보면 오른쪽 기가 돌아서 역시 오른다.
기를 아래로 내리려면 몸 앞쪽의 임맥을 사용하고, 위로 올리려면 몸 등쪽의 독맥을 사용하여, 신을 행하면 기도 행하고, 신이 멈추면 기도 멈추어 신이 가는 곳이면 기가 가지 아니하는 곳이 없다.
눈으로 명령하는 것은 흡사 군에서 깃발을 신호로 하여 부대를 움직임과 흡사하다. 또 위로 보고자 하면 눈을 뜨지 아니하고 눈동자만 굴려 위로 보아도 역시 그렇게 된다.

그러나 세상 사람은 모두 몸 윗쪽은 왕성하고, 아래 쪽은 허해서, 아플 때는 언제나 기가 올라가기만 하여, 아래 위가 서로 교류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기가 내려 가도록 힘써, 중궁에 있도록 하여, 비장과 위장으로 화창하게 하면, 혈맥이 두루 잘 흐르게 된다. 이렇게 함은 건강을 위한 사람 뿐 아니라 단을 지키고 간직하는 요령으로도 이 규칙을 지켜야 한다.

능히 혈맥으로 두루 돌고 흐르게 하여 임맥과 독맥이 모두 통하게 되면 수명이 길어져 장수함을 누릴 것이다. 어찌 그렇게 되지 아니 하랴.
그렇기 때문에 단을 거두려면 반드시 폐기하는 일로 손대는 방법으로 삼는다. 폐기하는 방편으로, 발을 포개고 손을 단정하게 하고, 얼굴에 화창함이 나타나는 마음을 하여, 눈썹을 내려 아래로 보아, 신과 기가 배꼽 밑 단전 한 가운데에 반드시 서로 모여 있도록 하면, 윗쪽에 있는 풍사가 마치 구름 걷히듯 안개 걷히듯 슬금슬금 아래로 내려가서, 먼저 가슴과 배쪽으로 달려가서

처음에는 배에 가득 차고, 다음에는 배가 아파진다.

전하여 보내는 길이 생긴 이후 신체가 화평해지고, 땀기가 밖으로 나와, 몸이 부드러워져서 온 맥이 두루 크게 돌게 되면, 마음먹은 일이 서로 깊이 융화하여 화기가 돌아서, 눈앞에 흰 눈이 솔솔 내려, 자기가 육신에 깃들어 있는지 육신이 자기 속에 있는지를 알 수 없는 고요하면서도 어둡고 깊은, 듣지도 볼수도 없는 은미함이 있는 눈부시게 황홀한 음양이 갈라지기 전의 태극의 경지에 이미 들어 있으리라.
이 경지가 이른바 진경계이며 진짜 길이다. 이 외는 모두 그릇됨이고 망령될 뿐이니라.

한방울의
㉮ 폐기하는 기초 요령은 앞의 총론에서 논하였기 때문에 이 폐기장()에는 언급이 없습니다. 그 대신 눈으로 깃발을 삼아 심기를 통제하는 요령과 사람 몸의 상성 하허를 논하여 몸을 화창하게 하는 요령을 말합니다.
㉯ 비결을 적은 옛글에는, 이상하게도 반대로 적은 것이 흔하게 전해오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좌우의 글자를 우좌로 바꾸어 적은 따위 입니다. 어느 심술 궂은 분이 한 번 써놓은 것이 소중하게 간직되어 전해 온 모양입니다. 비결에 속하는 것을 누구나 알게 써 두면 고마움을 모르게 되기 때문에 그렇게 쓴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는 어지러운 시대에 그것을 갈망하는 이에게만 전하기 위한 한 방편이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전해오는 책 모두 원문의 폐기 장 끝에서 열째 줄의 폐기는 폐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총론의 [일언지결]에 맞지 아니합니다.
중궁을 원문에서 <무기토>로 설명하였습니다. 오행 사상으로 무는 토의 양정(陽精)이고, 기는 토의 음정(陰精)을 나타냅니다. 또는 한 가운데를 상징하며, 모든 것을 받아 들이는 성질이 있습니다. 사람의 몸에 있어서, 토는 영양의 흡수기관인 위와 장에 해당됩니다.
용호결에서 임독맥을 통하게 하는 글귀는 여기 뿐입니다. 단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나 아니하는 사람이나, 임맥과 독맥은 언제나 제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몸에 고장이 생겼을 때 이 임맥과 독맥에 신호가 재빨리 오게 됩니다. 그래서 [혈맥을 두루 돌게 하여]하는 글귀의 전제가 됩니다.
폐기를 하여 태식을 하게 되고, 태식하는 가운데서 주천화후를 겪게 되어 결태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에 임맥과 독맥은 그때 그에 알맞는 제 구실을 다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보자가 폐기함으로써 얻는 조그마한 기를 독맥으로 보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 일은 성급한 짓입니다.
<용호결>에서는 일체의 언급없이 주천화후 장에서 실법을 전해주시고 있습니다.
영추경(靈樞經)이란 고전에는 기의 주행법칙으로 양경(陽經)은 하강하고, 음경(陰經)은 상승한다는 글귀가 있습니다. 독맥은 양경, 임맥은 음경의 하나입니다. [상성하허]라는 글귀와 [상허하실]이라는 글귀를 혼돈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단전에 폐기함도 이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진경계 진도로를 천명해 주신 글귀는 매우 귀중한 것입니다. 이 경지를, 부지런히 정심·잠심하며 폐기하여 하루 빨리 체험하도록 하십시오.
㉴ 한문 세대인 단학인이 즐겨 암송하던 글귀가 위 폐기장의 마지막 부분에 있습니다. 이 경계를 한 번 체험한 분은 이 수련을 그만둘 수 없게 됩니다폐기를 옳게 못하면서 폐식으로 환상을 잘못 보고 떠드는 일도 무리가 아닌 듯 합니다.

 

태식

경에, 태는 복기하는 가운데서 응결하고, 기는 태중의 숨에 따른다. 기가 몸안에 들어오면 살게 되고 신이 형체에서 떠나면 죽게 된다. 오래 살고자 하면 신과 기가 서로 살게 하라. 신이 행하면 기도 행하고 신이 머물면 기도 머문다부지런히 이렇게 행함이 바로 진정한 길이다.

한방울의
㉮ 이 글을 태식경이라 합니다. 태식경으로 전해오는 글을 마지막으로 실어 두겠습니다.

폐기함이 좀 익숙하여져 신기가 차차 안정되면 조금씩 조금씩 배밑 털난 데까지 세심하게 이치로 미루어 끝까지 규명하여 기식이 앞으로 나아가는 길따라 나가고 들어오는대로 첫째로 호하고 둘째는 흡하여, 언제나 그렇게 하는 가운데에 자연스럽게 머물러 있다.  이것이 이른바 현빈일규이며 단을 닦는 일은 이에 있을 뿐이다. 이렇게 호흡하여 입과 코사이 밖으로 기가 나가지 아니하게 하라. 그렇게 하여 언제나 한 치의 남은 기는 늘 입과 코 사이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이른바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태속에서 숨쉬는 법으로 이른바 뿌리에 되돌아가 생명을 다시하는 귀근복명의 길이다.

근본으로 되돌려서 본원으로 돌아감은, 사람이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는 코와 입으로 호흡하지 아니하고, 다만 탯줄로 어머니의 임맥과 통하고, 임맥은 폐로 통하고 폐는 코로 통하여, 어머니가 숨을 내쉬면 태아도 내쉬고, 들이쉬면 태아도 들이쉬게 된다. 태어나서 탯줄이 한 번 떨어지면, 자기 입과 코로 호흡하게 되므로 몸가짐과 영양이 잘못되면 어느 사이에 진기가 소모되어 녹아져 질병이 생겨 요절하게 된다. 만약 이 귀복하는 법을 익혀 정진하여 그치지 아니하면 벽곡과 등선이 모두 여기에있다.

옛 시에도 <집이 부숴져도 고치기 듯 약이 말라도 살기가 어렵지 아니하네. 귀복법을 알고 익히면 금 같은 보물을 쌓음이 산과 같네>라고 했다.

그래서 태식이 능한 후에야 기가 부드러워져 화해지고, 기가 화해지면 심신이 안정되며, 호흡이 없는 숨의 경지에 이른다.
경에도 <기가 정하여 지면 호흡이 없어진다.>고 하였다.
옛날 갈선옹이 매년 한더위에 깊은 못 속에 들어가 열흘동안이나 있다가 나왔다는데 이것은 폐기로 태식하였기 때문인 것이다.

한방울의
현빈일규라는 글귀가 이제 두번째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것을 얻게 되는지를 알도록 하십시오.
㉯ 원문에 밀추자가 두번 나오는데 이 글자에 주의하여야 합니다. 미는 방법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옛글 그대로 옮기면, 용신가의(用神加意)불용신가의(不用神加意)입니다. 신과 의를 사용하는 법과 그렇게 하지 않는 법입니다. 의를 가한다는 것은 힘을 가한다는 뜻이 됩니다. 저자는 이 두가지 방법을 처해진 상황에 따라 구별하여 사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임을 강조합니다.
현빈일규는 단전에 기가 모여 팽창이 한계에 이르면 터짐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겸손하게 충분히 부드러운 수련을 하여 저절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뜻을 잘못 가하면 덧나는 일이 꼭 일어납니다.
귀근복명은 이른바 선천기(先天氣)의 회복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영양을 섭취함은 후천기로 도우는 일이고, 조식으로 기를 단전에 모음은 흩어진 기를 모으는 일이 됩니다.

 

주천화후

화의 상황에는 안팎이 있고 느리고 빠름이 있다. 처음에는 기와 혈이 모두 허하고, 폐기한 지가 오래 되지 않아서 화후가 일어나기 쉽다.
배꼽과 아랫배 사이에 기가 한동안 오래 흩어지지 아니하면 반드시 따뜻함이 있다. 따뜻한 기가 그 사이에서 나온다.
이 때를 맞이하면 혈기가 점차 실해지고 화기도 역시 늦어진다.또 문무진퇴의 법이 있으니 상세하게 몸소 살펴 참작하여 수련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방울의
㉮ 나무나 연탄에 불을 지필 때, 불붙는 과정을 살펴보면 위글의 이해가 빠를 듯 합니다. 물건에 따라 나름대로의 인화점이 달라 불쏘시개만 확타고 불을 붙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체력이 약한 사람에는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불쏘시개에 불을 붙이는 과정이 세세 미미하게 호흡하여 단전에 기를 모으는 과정이라면 기가 자라나는 과정은 불이 붙어 잘 타는 과정입니다. 타는 불에도 강하게 잘 탈 때와 그렇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빨리 타면 오래 가지를 못합니다. 이 불을 쓸만하게 계속 탈 수 있게 하는 과정이 태식과정이며, 조식법5과에서 그 행로를 설명하였습니다.
화후는 단학용어로 기후와 어금버금한 말이며 조식에서 생긴 열기와 움직임을 나타냅니다.
화후가 일어나면 이를 다스리는 법에 문무진퇴란 법이 있습니다. 문과 무는 서로 맞먹는 대립된 힘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문은 부드러움을 무는 강함을 뜻하며, 또 문은 신()을 쓰지도 뜻을 가하지도 아니하고 자연의 법에 따름을 말하고, 무는 신을 쓰고 뜻을 가하여 자기 생각을 따르도록 함을 나타냅니다. 때와 자리 따라 이 두 법을 알맞게 사용하여 나아가고 물러남을 문무진퇴라고 합니다.
㉱ 아래의 원문은 큰 글자의 주문(主文)과 작은 글자의 주해문(註解文)을 따로 따로 주문을 읽은 다음 주해문을 읽는 편이 이해가 빠를 듯 합니다.

주천화후라함은 열기가 온 몸을 돌아 퍼짐을 말하는데 불과하다. 신기가 서로 배꼽과 아랫배 사이에 함께 엉켜 살고 있을 때, 기회를 용하게 잡아 뜻을 가하여 훅 흩지어지게 하면

이 때에 강약의 화후와 경중의 법도가 있으며, 또 진퇴의 법이 있으니 잘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 몸과 마음이 고요하고 안정된 후에 화기의 추진을 법대로 하면 방광이 불같이 뜨거워지는 동시에 양 신장이 탕()같이 끓으며 허리 아래는 시원하고 상쾌하여 여느때와는 다르다만약 가볍게 화후를 푸허하지 아니하면 온 몸에 화열이 확 나돌게 되어 도리어 크게 몸이 상하게 된다.

따끈따끈한 기가 미미한 상태에서 뚜렷하게 변하여 위로 올라가서  열기가 닿는 데는 점차 열리고 벌어지면서 위로 올라간다.

마치 꽃봉오리가 점차 피어 벌어짐과 같으니, 이른바 <화지에서 연꽃이 핀다>는 것이다.

신수화지라 함은 허의 극치에 이르러 정숙하고 돈독함을 간직하고 있는 시점을 지킴을 말하는 것이다. 바로 이 일이 가장 긴하고 중요한 때와 자리이다.

이 경지를 잘 간직하여 좀 지속하고 있으면, 열이 점차 성하게 일어나서

이것이 이른바 꽃봉오리가 바야흐로 피어 감로가 점차 진하게 나타나는 경지이며, 이때에 역류하는 물이 올라 달콤한 침이 입에 고여 예천이 되니 이른바 옥장금액이다.

배속이 크게 열려 텅 빈 것같이 되어, 삽시간에 열기가 바로 온몸으로 퍼지는 데 이것을 주천화후라고 이른다.

운화를 법대로 능히 하면 인내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지는 아니한다.

한방울의
수련자를 위하여, 폐기·태식을 바탕으로 하여 이룬 기에 따른 열기·화의 처리 방법의 심법을 가르쳐 주신 글입니다. 매우 중요한 부문이라 주문이나 주해문을 한 번 읽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경지입니다. 건성으로 지나기 쉬운 귀절입니다.
㉯ 법대로 하라는 그 법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되는 대목입니다. 이글을 깨달을 수 있도록 조식법에서 시종일관하여 강조해온 바가 있었습니다. 이 장에도 두 군데나 그렇게 된 뒤에 행동에 옮기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 태식을·조식을 고도로 할 수 있게 되면 무호흡에 가까운 상태에 들어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신기가 요지부동의 상태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때 비로소 간직된 기의 덩어리에서 나오는 화기를 몸으로 돌게 하는 일을 주천이라 하고 그 때의 화기 상황을 화후라고 알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취허(吹噓)는 이두(吏讀)식으로 푸허라고도 읽습니다. 푸하듯이 가볍게 뜻을 짧게 가하여야 함을 나타내는 글입니다.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신을 가하기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 이 장에서도 함부로 덤벼서는 아니됨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중에는 이와 같은 종류의 책을 많이 읽어 본 분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 책과는 달리 이 <용호결>에는 임맥과 독맥을 지나가게 하는 구절로써 폐기편에 혈맥을 두루 흐르게 하여 즉 단재를 이룬후에 그렇게 하라고 한 구절 뿐임을 함부로 보아 넘겨서는 아니됨을 거듭 강조하면서 아울러 그점이 세상에 나도는 책과 바로 다른 점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 이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고 체온이 남달리 올라간 상태에서 태연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체온이지만 체온의 질이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때로 화끈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곧 원 상태로 쉽게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주천화후에 이르는 순간을 햇볕이 계속내려 쬐는 수반(水盤)의 수증기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바람이 있으면 수증기가 보이지 아니합니다. 바람없이 햇볕만 쪼이고 있을 때 한점의 산들바람이 불면 수증기가 크게 퍼집니다. 이런 상황을 고도의 태식하는 가운데서 포착하는 것이 정독의 시점입니다. 신행기행의 원칙따라 푸허하는 것이며 그것도 열기가 오그라드는 마지막 찰나를 포착하여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 책에 따라 <신수화지>의 신수가 없는 것도 있습니다.

배꼽 아래 한치 세푼이 바로 하단전이며 상단전인 이환궁과 더불어 서로 응하여 공명하면 이른바 옥로라고 하는데 불이 따뜻하여 정상인 이환을 따뜻하게 하면, 붉은 노을인 자하가 이환에서 나르게 된다. 위아래로 쏟아져 상하가 고리같이 둥글게 되어 끝없이 될터이다. 성심껏 옥로불을 더욱 따뜻하게 길러서 계속 잃지 아니하면

하룻동안 자···유시에, 즉 밤낮 열두 시와 여섯 시에는, 꼭 진화하여 온온지기로 하여금 잠시도 쉼도 없게 하여 언제나 밤낮이 한결 같게하면 열 달 뒤에 태가 가히 이루어지리라.

청명한기가 올라 이환궁에서 결정하게 된다. 이 결정체를 선가에서는 현주, 불가에서는 사리라고 한다. 그렇게 되는 이치가 반드시 있는 것이니 도가 이루어지는 여부는 수도하는 사람의 정성에 달린 것이다.

다만 일찍 달성함을 귀하게 여긴다.
또 듣기에 불로써 약을 고으고, 단으로 도를 이룸은 신으로 기를 거느려 기를 형체에 머물게 하여 잠시도 서로 떨어지지 아니 함에 지나지 않는다.
술은 알기 쉬우나, 도의 어려움을 만나 어지럽게 끝나니 전심전력으로 행하지 아니하여 여럿이 배우기는 하나 필경은 한 둘의 이름도 없이 끝난다. 그래서 배우는 이의 성의를 귀하게 한다.

한방울의
㉮ 하단전과 상단전이 서로 공명하여 정수리에 자하가 나르게 되면, 이른바 도통의 문에 접어든 것입니다. 그래서 독맥을 통하면 도통하게 된다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하단전의 기로 상단전을 따뜻하게 하여 옥로를 이루게 하면 이른바 삼화(三火)가 뜨는 단계에 듭니다.
㉯ 이 주천화후 장에서 일어나는 몸의 별별 증상을 그럴듯하게 소설화한 책이 많습니다. 이런데 현혹되지 마십시오.
㉰ 위 원문 끝에서 3째 줄 끝술죽이지바로 앞에 이하결문(以下缺文)이라는 네 글자가 더 있는 책이 많이 전해 옵니다. 이것은 마치 유교의 경전인 대학(大學)에서 격물치지(格物致知) 란에 글의 빠짐이 있는 이유와 비슷합니다.
이는 이단성도(以丹成道)를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인 듯 합니다. 단으로 도를 이루는 과정은 청명지기가 이환궁에서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굳이 쓴다면 <자네가 그 자리에 스스로 가서 알아 보게나>하시는 글 외에는 없는 듯 합니다.

또 시에 <정기가 항상 몸 속에 가득하니, 편안한 곳에서 한가로이 지내는데 걸릴 것이 무엇인가. 달마대사가 태식법을 얻었기 때문에 능히 벽을 면하여 마음을 보았는데> 하였다.

황정경 <사람들은 모두 오곡의 정으로 배를 불리나 나는 홀로 이 음양의 기로 배불리네> 하였으니 이 두 시로 보면, 벽곡은 전적으로 태식에 의한 것이니 진실로 능히 벽곡을 하고 홀로 음양의 기로 배불리면 땅의 문은 닫히고, 하늘문이 열리리라. 어찌 평탄한 길로 신선에 오르지 못하랴

위의 세 조목은 비록 각각 이름을 붙이기는 하였으나, 오늘에 한 조목, 내일 또 한 조목 행하는 것이 아니고, 행하는 공부는 오로지 폐기하는 중에 있어야 함을 명싱하라.
다만 공부에는 얕고 깊음이 있고, 등급의 높고 낮음이 있어, 변화하고 비승하는 술이라 할지라도 모두 이 셋에서 벗어남이 없으니 다만 정성에 달려 있을 뿐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