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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유치원역사(5 )우리유아교육의 뿌리

영원오늘 2009. 11. 26. 11:33

     한국유치원역사(5)              

 

                                                           우리유치원의 뿌리

 

Ⅰ. 서언


우리나라 옛 유아교육이 어떠하였는가를 알아보는 것은 대단히 의의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해방 이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개화기 이전과는 달리 이후에 유입된 서양식 유아교육이 토착화되지 못하고 계속 겉돌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식 유아교육은 문호 개방과 함께 유입되었다. 개항 이후 일제의 강점은 언어 말살 정책을 필두로 예술, 문화, 교육 등 모든 것을 앗아갔다. 그 결과 약 1세기 동안 우리의 유아교육은 그 모습을 감춘 채 우리 민족의 역사 속으로 숨겨졌거나 아니면 우리의 의식 속에 숨겨져 왔다. 따라서 옛 우리의 유아교육 자리에 새로 유입되는 서양식 유아교육이 우리 자녀들을 대상으로 마치 우리의 유아교육인양 행세해오고 있다.

듀이는 모든 교육은 개인이 그가 속하는 동족에 대한 사회적 의식의 참관에 의하여 진행된다.1)고 하였다. 이는 개인에게 축적된 문명의 자본을 계승하자는 것이다. 김인회는 교육을 인간의 삶 그 자체를 배우는 것2)이라 했다. 따라서 교육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은 그 민족이 가지고 있는 문명의 자본으로서 문화와 풍토와 의식 등 삶의 모든 것으로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오랜 생활 속에서 형성되어 온 문화는 민족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유아교육은 민족문화의 풍토 속에서 자연스런 사회 변동에 따라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진정한 교육의 변화요 발전이다.

해방 이후 우리의 역사 속에 묻힌 유아교육을 찾으려는 노력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서양의 유아교육이론이 우리의 유아교육인 것처럼 인식되었기 때문에 교육현장에서 그대로 적용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요즘 생활교육보다는 지식 위주의 주입식 교육, 창의성보다는 모방 또는 암기 위주의 교육, 자율성 신장보다는 의지력을 조장하는 교육 등이 이루어짐으로써 많은 문제가 노정되고 있다. 해방 후 여러 차례에 걸쳐 해결을 위하여 교육개혁을 해왔다. 그러나 기초교육의 부실은 해결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욱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를 잉태하고 있다. 즉 교단의 붕괴, 학생들의 왕따, 학원 폭력, 국제화란 미명으로 자행되는 영어교육의 부작용, 학교교육의 불신으로 성시를 이루는 조기 유학 붐, 교원에 대한 불신으로 빚어진 주객이 전도된 학원의 성황, 대학입학 문제로 겪는 학생들의 갈등 등은 해방 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겉도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외국에서 새로 개발된 유아교육이론을 수용하려는 노력은 1980년대 이후 급격히 늘어났으며, 이들 이론이 현장의 유아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으로 인식됨으로써 마치 만병통치약인양 유치원 현장에서 비판 없이 수용하고 있다. 결국 외래의 새로운 이론이라면 무조건 받아들이려 하기 때문에 교사들은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최근 서양에서 연구된 유아교육이론은 문화의 발전 속도에 편승하여 유입이 빨라지고 있다. 즉 삐아제 인지발달이론, 상황중심교육, 주제접근법, 열린교육, 레지오 에밀리아 3)또는 DPA(developmentaly appropriate practice), 프로젝트  접근법, 발도로프교육, 영재교육 등이다. 방학을 이용이 되면 새로운 외국의 유아교육 이론을 정신없이 받아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유아교육이론과 내용을 담은 전문서적은 찾기 힘들 뿐만 아니라 교재는 전무한 상태이다. 있다면 이론이나 방법이 담긴 내용보다는 논문과 저서에서 역사적 배경의 한 부분으로 다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잊혀져가는 고유한 유아의 교육방법을 찾아 이를 토대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미미한 상태이다.

요즘 사용되고 있는 대부분의 교재들은 외국의 유아교육 이론을 중심으로 한 전문서적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민족의 고유한 교육문화와 풍토에 얼마나 어울리느냐하는 점이다. 문화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오랜 시간을 두고 형성되기 때문에 그 민족의 생활과 의식 속에 용해되어 있다.

따라서 예로부터 전래되어 오는 우리의 고유한 유아교육이론이나 방법을 조명하는 일이 대단히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 일은 교육의 기초과정인 유아교육을 우리의 교육 문화 풍토에 적합하도록 복원하는데 첫걸음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유아교육과 관련된 저작물은『태교신기(胎敎新記)』,『원람(兒孩原覽)』,『사소절(士小節)』등을 비롯한 각종 학회에서 발간하는 학회지(學會誌)와 문집(文集) 또는 서한문(書翰文)이 있다. 특히 『소학(小學)』은 우리 교육에 수용된 지 오래되었으며, 그 후 많은 영향을 주었고, 유아교육과 관련된 내용이 각종 저서에 삽입된 것도 있지만 많은 부분들은 구전(口傳)되고 있다.

우리의 옛 유아교육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것은 일부 저서, 개개인의 문집, 개화기에 출간된 잡지 등을 비롯하여 마을이나 가문에서 이어오는 것 등이다. 특히 개화기 잡지들은 우리의 유아교육에 관련된 내용과 서양의 유아교육 이론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소학』,『태교신기』,『원람』,『사소절』등을 비롯한 문집과 개화기의 잡지에 소개된 글을 중심으로 우리의 고유한 유아교육을 조명함으로써 민족의 역사와 의식 속에 침잠되어 오고 있는 유아교육이 회생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Ⅱ. 잠재된 민족의 유아교육


한 민족의 교육문화는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없다. 왜냐하면 민족의 교육문화는 유구한 역사 속에서 그 민족의 삶과 함께 있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족이 가지고 있는 교육의 역량 역시 민족의 고유한 교육문화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민족의 교육 역량은 그 민족의 교육문화로서 민족사에 용해되어 있다. 교육 문제는 그 민족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역사적 이해 없이 해결의 실마리를 잡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교육개혁이라는 미명하에 해방 후 수십 차에 걸쳐 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해 왔지만 지나치게 의도적이었기 때문에 해결보다 더욱 복잡한 교육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외국의 유아교육을 수용할 때는 우리의 삶과 관련이 있는 교육,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기록인 역사의 인식이 필요하다. 교육은 삶의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외국 유아교육의 수용은 교육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새로 유입되는 유아교육 이론이 우리의 전통적 유아교육과 조화를 이룰 때 변화되며, 수용된 이론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고유한 유아교육 문화와 유리된다면 변화는 고사하고 생명력마저 잃게 된다.

부상되고 있는 유아의 교육 문제를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어머니와 자녀의 교육에 관한 생각을 알아야 한다. 유아교육은 아이와 어머니 사이에 형성되는 산물로서 어머니들이 지니고 있는 자녀교육에 관한 의식에 따라 좌우된다. 예나 지금이나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은 다름이 없다. 자녀교육에 대한 어머니들의 의식이 우리의 것이냐 아니냐에 있다. 옛날의 어머니들과 지금의 어머니들이 어떠한 자녀관과 교육관을 가지고 있는가를 비교하는 것은 오늘의 유아교육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

자녀관가 교육관의 차이는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받아들이는 전통의 고수와 신사조의 수용에 있다. 세대 간의 차이는 교육방법에 대한 인식에서도 나타난다. 기성세대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시키는 교육보다 스스로 하는 교육에 관심을 가졌다. 평양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이라는 속담을 들어 스스로 하기를 기대했다. 신세대들은 교육환경이다 뭐다 하면서 시키면 한다는 생각은 거의 일반화되어 있다. 요즘 과외공부의 활성화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기성세대는 성장 후를 생각하는 미래지향적인 자녀관과 교육관에 비해 젊은 세대들은 현실지향적인 자녀관과 교육관을 지니고 있다. 즉 신세대는 기성세대보다 가시적인 면에 관심이 있다. 미래지향적인 생각은 스스로 하는 교육을 요구하는. 반면 현실 지향적인 생각은 시켜서 하는 교육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즉 기성세대는 자녀에게 맡김으로써 자립심을 키우는 반면 신세대는 자녀에게 맡기지 않기지 때문에 의존심을 키울 가능성은 높다. 의존심이 지나치면 자녀가 부모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독립심이 약하다. 기성세대의 자수성가를 바라기 때문에 자녀들의 잠재력과 흥미와 호기심 및 의지 등의 특성을 고려하게 된다. 반면 일부 신세대는 무조건 시키면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해가고 있다. 바로 고가의 과외교육이 그 한 예이다.

요즘 많은 부모들은 일상생활에서 올바른 일을 찾아 스스로 실행함으로써 자녀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보다는 성적 올리기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녀가 일등을 하기만을 고집하고 있다. 그릇된 자녀 교육관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한다. 자녀교육에 관한 문제는 좀 더 자녀를 심층 깊이 이해하고 여유 있고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와 다른 아이와는 그들 나름의 특성이 있고, 서로 다른 특성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옛 어머니들의 자녀교육관을 보면 자기 자녀의 교육을 위하여 스스로 솔선  수범함으로써 자녀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한석봉을 명필로 자라게 한 어머니의 교육이 그 한 예이다. 교육 문제에 대하여는 차분하면서도 스스로 생활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자녀들의 모범이 되도록 신중하게 대처하였다. 즉『소학』을 배우지 않았어도 그 내용을 듣고 보아왔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생활의 실천 덕목으로 삼아왔다. 이처럼『소학』은 우리의 옛 유아교육에 수용된 것으로서 수세기 동안 우리의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옛날의 어머니들은『소학』의 내용을 유아교육의 근본으로 삼아 실천에 주력해 왔으며, 오랜 기간 동안 일관되게 유지되어 왔다.

당시에도 오늘날과 같은 사회 변동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그 속도와 형태는 다르겠지만 그 시대 나름의 상당한 사회 변동을 겪으면서도 교육의 기초 또는 근본으로 여겨왔던『소학』은 그 내용의 개혁이나 개정이 거의 없이 전래되어 오고 있다. 실로 엄청난 오랜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초 교육으로서 자리 매김을 하여 온 것이다.

오랫동안 변화가 없었던『소학』의 교육 사상에 변화의 조짐이 일기 시작한 것은 개화기의 소위 서양의 신문물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변동의 추세는 더욱 세차게 지속되었다. 우리의 고유한 유아교육사상으로 자리 매김 하였던『소학』은 정부 수립 이후 거의 자취를 감추고 서양식 교육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교육현장에서는 찾아 볼 수 없으나 사람들의 의식 속에 희미하게나마 명맥을 유지해 옴으로써 그 잔영(殘影)만이 뇌리에 맴돌고 있을 뿐이다.

옛 우리의 교육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성적보다는 행실 즉 인격을 중요시하였다. 용어가 외국의 유아교육과 같지 않다고 하여 우리의 유아교육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개화기의 잡지에는 유아교육을󰡐기르는 법󰡑이라 표기하고 있다. 예로부터 잘 낳아 바르게 기르는 것이 부모들의 관심이었다. 그 사실은『소학』,『여범』,『여훈』,『태교신기』,『계녀서』,『사소절』,『원람』등 유아교육과 관련된 내용들을 담고 있는 저서들이 출간되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이들 저서들은 오늘과 같은 유아교육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부분이 태교와 육아를 다루었으며, 주로 여성인 어머니들의 몫이었다. 여성인 어머니만이 지니고 있는 모성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자녀교육에서 모성애의 중요성을 인정한 것은 옛 서양교육이나 동양교육이나 마찬가지이다. 모성애란 용어가 우리 문헌에 없다하여 유아교육이론이 없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서양만이 유아교육이론이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편견이 그 이유가 있다.

첫째, 연구의 불모이다. 우리의 문헌이나 기록을 찾으려는 노력이 부족을 들 수 있다. 왜냐하면 유아교육과 관련이 있는 대부분의 문헌들은 한문과 한문을 혼용한 옛 한글로 쓰여 있기 때문에 한문을 배우지 않았거나 옛 한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에게는 독해에 어려움이 있다. 또란 유아의 교육과 관련된 문헌의 단행본보다는 문집이나 학회지 등에 산재해 있기 때문에 마치 사금을 일구는 심정으로 수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움이 따랐다.

둘째, 용어의 이해이다. 외국의 이론에서 사용하는 용어만을 이해하고 믿었기 때문에 이미 오래전에 우리가 사용해온  고유한 용어를 도외시 하였다. 즉 유아교육이란 용어의 표현이 국가나 민족이나 시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변화되어 왔다. 지구상의 모든 국가나 민족은 그들 나름의 유아의 교육이 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방법과 이론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시대에 따라 용어의 표현이 변해 왔을 뿐이다.


Ⅲ. 전통과 수용의 조화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유아교육제도에 많은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다. 대표적 형태의 기관은 유치원이었으나 요즘은 명칭이 어린이집, 놀이방, 각종 학원 등 다양하다. 특히 많은 변화가 있는 것은 교육내용과 방법이며, 새로운 문제의 야기이다.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과 많은 연구들이 있어 왔고 또 진행되고 있다. 변화를 주도한 중추적 기능은 유치원 교육과정이다. 왜냐하면 교과서가 없는 유치원 교육의 지침서 역할을 하는 것이 유치원 교육과정이기 때문이다.

서양의 유아교육 사상과 이론이 함축된 유치원 교육과정이 제정된 것은 1969년이다. 제정된 이후 1998년까지 여섯 번이나 개정을 했다. 이러한 현상은 급격한 사회 문화의 변동에 대처하기 위한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다가 올 새로운 산업 정보화 사회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교육의 일환으로서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수용되고 있는 외래의 유아교육은 토착화는 고사하고 정착되지 않은 채 겉돌고 있다.

우리나라 유치원 교육과정의 제정은 우리의 전통적 유아교육은 배제된 채 서양의 유아교육 이론이 기초가 되었다. 개정 역시 우리의 전통적 유아 교육보다 서양식 유아교육이론에 따랐다. 오히려 우리의 전통적인 유아의 교육은 비과학적이라고 비하하거나 심지어 명확하게 정립된 이론 자체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외래의 것을 수용할 때 우리의 것을 주체로 할 것인가 아닌가가 중요하다. 수용을 나무에 비유하면 접목과 이식이 있다. 접목은 그루에 같은 종류의 가지를 접붙이는 것이다. 이식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을 송두리째 옮겨다 심는 것이다. 외래의 유아교육을 수용할 때 우리의 것을 그루로 삼고 그 위에 외래의 것을 접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외래의 것을 수용하여 접목하였을 때, 접목으로 사용된 수용은 살아날 수 있기 때문에 생명력은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루인 뿌리는 될 수 없다, 결국 수용은 생명력은 유지될 수 있으나 기틀의 동질성은 없다.

우리의 고유한 유아교육은 한때는 외래 교육 사조를 현명하게 수용함으로써 제자리를 찾아 발전하여 왔다.『소학』의 교육사상을 예로 들면, 『소학』 역시 외래교육이었다. 그러나 수용되어 토착화됨으로써 우리 유아의 교육에 영향을 주었고, 오랜 기간 동안 발전을 계속해왔으나 지금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소학』은 우리의 유아교육에 토착화되었기 때문에 개화기 서양식 유아교육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만큼은 주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당시의 학회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오늘의 유치원은 개화기 외래의 유치원 교육제도의 유입으로 수용되었으며, 변화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침탈로 단절되었다. 해방 후 새로 수용된 유아교육은 외래의 유치원 교육제도를 그대로 답습하였다 따라서 우리의 전통적인 유아교육사상과 내용 및 방법은 찾아보기 어렵다.

요즘 뜻있는 젊은 신진학자들이 우리의 옛 유아교육을 되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매우 다행스럽고 고무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장구한 세월 동안 우리의 삶 속에 면면히 녹아 있던 유아교육 사상과 이론들은 혼란에 빠진 유아교육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그 방향을 새롭게 정립하는데 좋은 지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우리의 옛 유아교육이 현대 우리나라 유아의 교육에  시사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첫째, 유아의 발달과 교육의 이해이다. 우리가 배우고 있는 이론은 거의  서양의 것이다. 그러나 다산 정약용은 우리 나름의 인간발달이론을 주장하였다. 즉 가장 지혜로운 사람을 상지(上智), 극히 어리석은 사람을 하우(下愚)로 구분하였다. 다산은 선천적인 천품설(天品說)에 반대하였다. 상지와 하우는 생후에 획득한 습관에 의해 차이가 나타난다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고정불변으로 보는 그릇된 인간발달관이다. 즉 선천적 천품 의식이다. 다산의 천품설의 반대는 유아의 교육에서 발달의 고정관념을 해소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둘째, 태교이다. 태교는 인간의 존엄성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사람의 품성은 본성과 기질이 있다. 본성은 하늘이 준 것이고, 기질은 부모로부터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품성은 또한 지성과 감성으로 나누어지며 지성과 감성은 출산 후 임신모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감화되기 때문에 태교를 신중하고 엄격히 하였다. 따라서 우리의 옛 교육은 태교를 시작으로 여겼다.

셋째, 양육이다. 태교 후 출산하여 갓난아이의 양육은 젖먹이는 법과 질병의 예방에 주력하였다 양육은 교육하기 이전 주로 어머니가 젖을 먹여 기르는 것을 일컫는 것으로서 자연의 순리에 따랐다. 주로 어머니가 하지만 원만히 수행하기 위하여 남편을 비롯한 온 가족이 자연스럽게 협조함으로써 건강하고 총명한 자녀로 자라도록 도왔다. 자연의 이치를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자녀들이 자연과 접함으로써 생명의 소중함과 질서를 체득하는 과정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도록 하였다. 태몽은 임신 전의 꿈으로. 자녀에 대한 소망과 기대를 의미한다. 오늘날 심리학이 밝혀낸 교육이론과 유사한 것으로서 성취동기와 상관관계가 있다. 우리의 옛 부모들은 꿈을 통해 소망하는 자녀의 탄생을 예견하였다. 태몽을 자녀에게 장래의 기대와 소망을 일깨우는 자료로 연계하여 종종 교육에 활용하였다.

넷째, 교육을 처음 시작하는 시기이다. 현재 심리학의 연구 결과는 공부를 시작하는 시기를 발달 이론에 따라 연령을 기준으로 만 3세부터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유치원교육 역시 만 3세부터 시작하도록 법제화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옛 교육은 처음 교육을 실시하는 기준으로 연령보다 개인의 능력에 두었다. 즉, 아이가 태어나서 스스로 밥을 먹고 말을 할 줄 아는 시기로 잡고 있다.4) 어떻게 보면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생각이다. 왜냐하면 밥을 먹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자기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 교육 방법이다. 첫돌 이후는 문자 교육보다는 삶에 필요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생활 경험을 하도록 하였다. 실제생활 교육에 중점을 둠으로써 인간다운 인간으로서의 삶 그 자체에 존엄성을 깨닫게 하였다.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배우도록 하였다.

양육을 벗어난 시기의 교육하는 방법은 실천을 으뜸으로 삼았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란 말이 예로부터 전해오고 있다. 즉 백 번 듣는 것이 실제 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오늘의 교육적 용어로 표현하면 경험교육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의 옛 교육은 이보다 앞선 것 같다. 왜냐하면 백문불여일견 보다 백견불여일행(百見不如一行)을 중요시 한 것 같다. 백 번 보는 것이 한 번 실제로 해보는 것만 못하다는 것은 체험의 중요성을 일컫는 것이다.

당시는 청결과 예법은 실천 덕목이었다. 옛 교육은󰡐쇄소응대󰡑로부터 시작한다는 기록이 바로 그 것이다. 물을 뿌리고 비로 쓸고 사람을 대접하는 것은 직접 하지 않고는 안 되는 일이다.󰡐진퇴지절󰡑역시 마찬가지이다. 요즘 유아기의 교육은 습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핵가족화에 자녀 하나 갖기로 외톨이 가정이 많다보니 생활습관이 소홀하다. 습관은 영․유아기부터 일상생활 경험에서 얻어진다. 유아기 교육의 시작은 유아 자신이 몸소 실천하는 생활과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같은 원리이다. 물론 방법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다 사람을 대하는 방법과 예절로서 인간관계를 원만히 하는 관건이다.

쇄소는 단순히 생각하면 물 뿌리고 쓸고 청소하는 청결이지만 더나가서는 청렴과 연계되는 사상이다. 단순히 주위를 깨끗이 하는 것만이 아니다. 사리가 분명하고 일을 처리함이 청렴하고 처신이 올곧게 해야 한다. 특히 공직에서 공과 사를 분명히 하는 청렴한 태도까지 포함되는 사상이다.

응대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이며, 사람을 마지하고 배웅하는 예법이다. 사람을 대할 때 인사와 같은 대화하는 방법과 대면할 때 인상과 말씨는 인간관계에서 더없이 중요하다.

진퇴지절은 단순히 나가고 물러나는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진퇴는 나아가고 물러남을 가리킨다. 지절의 절은 예절 또는 절차이며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이기도 하다. 집을 나갈 때와 돌아올 때 웃어른에게 예의를 갖추어야 하고, 행선지와 용무와 귀가 일시를 웃어른께 말씀드리는 물론 그대로 행하여야 한다. 관직에 등용되어 나갈 때나 물러날 때 명분과 태도가 분명해야 한다.

우리의 옛 교육은 궁극적 목적이 사람 됨됨이의 지혜로움에 두었다. 사람 됨됨이는 인간성이 전제조건이다. 즉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이다. 따라서 존경을 받으려면 깨끗하고 청렴해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사리에 밝고 공사가 분명하며 청렴결백한 어진 사람이여 한다. 어진 사람이 되려면 아름다움을 알고 아름답게 사는 것이다. 아름다운 삶이란 인격의 조화에 있다. 아름다움의 조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알 수 있다. 사람을 맞이하고 대하는 상황에서 느끼게 된다. 자기 자신이 깨끗하지 않으면 사람들로부터 믿음을 얻기 어렵다. 깨끗하기 위하여 자기 스스로 물 뿌리고 쓸고 닦는 등 자신과 주위부터 솔선해야 한다.

여섯째, 교육은 수기에 있다. 수기는 사람이 사람 되는 방법이다. 유학의 근본 사상인 수기치인(修己治人)과 일맥상통한다. 남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려면 자기 자신의 수양이 필요하다. 수기의 첫 걸음은 쇄소응대진퇴지절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려면 쇄소를 철저히 했다. 즉 지저분한 것을 없애기 위하여 물 뿌리고 쓸러내는 것처럼 처신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또한 응대와 진퇴지절은 필수적이었다. 즉 사람을 맞이하고 나가고 물러나는 예법에 상응하는 예절이다.

『소학』에 따르면 교육의 시작을 유아기부터 ‘쇄소응대진퇴지절󰡑에 두었다. 또한 유아기 교육의 근본으로서 실행의 첫걸음으로 삼았다. 쇄소응대진퇴지절은 사람이 갖추어야 할 기초적인 덕목이었다. 쇄소응대진퇴지절이 갖추어진 후에 부모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되 이에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

일곱째, 학문하는 조건이다. 쇄소응대진퇴지절을 철저하게 다 한 다음 여력이 있으면 시를 읊고 노래와 춤을 추며 글을 읽으라는 것이다. 교육이란 사람이 되는 것이며, 사람 됨됨이 된 연후에 문학, 예술, 학문에 입문하여야 함을 권하고 있다. 모두 오랜 세월 동안 흩트리지 않고 간직하여 실천해 온 교육사상이다.

여덟째, 외국 유아교육의 수용과 토착화이다. 개화기 이전은 외국의 유아교육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것이 주체가 되었다. 바로『소학』의 수용에서 알 수 있다.개화기 서양식 유아교육의 수용은 대등하였으나 일제 강점기는 외국인이 설립한 유치원은 우리의 준비와 의지에 관계없이 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유아교육을 그루로 삼은 문화의 터에 외국의 유아교육을 씨앗가지로 접목시켜야 한다. 접목된 외국식 유아교육은 그루의 도움으로 성장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씨앗가지라도 접목이 안 되면 말라죽는다. 접목이 잘되었다하더라도 속성은 그루와 다르다. 이식한 것 역시 아무리 건실해도 어디까지나 다른 종(種)이지 토종은 될 수 없다.

우리의 전통 유아교육에 외래의 유아교육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갈등은 불가피한 것이다. 외래 유아교육의 토착화는 전통과 수용의 조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전통이 주체(주인)가 되고 수용이 객체(손님)가 되면 토착화에 기여하나 수용이 주체(주인)가 되고 전통이 객체(손님)가 되면 갈등관계로 예기치 않은 문제가 파생된다.

우리의 옛 사람들은 수용에 현명하게 대처함으로써 토착화는 물론 많은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다. 그 예를『소학』의 수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간 발달은 생활을 통해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 옛 유아교육은 태교부터 육아에 이르기까지 가정을 중심으로 건강하고 총명한 자녀의 성장을 위한 것이었다. 자연성을 존중하였기 때문에 교육 행위는 지나치거나 부족함을 경계하였다. 따라서 유아교육은 유아 자신의 실제적인 경험을 통하여 당면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결국 부모를 비롯한 가르치는 사람들이 삶의 능력과 지혜를 익히도록 세심한 배려와 도움을 주는 교육이다. 우리의 옛 교육은 삶의 필요성을 알게 하고 이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노력이었다.


Ⅳ. 『소학』과 유아교육


『소학』은 BC 280~250년 하(夏), 상(商), 주(周) 삼대(三代)에 걸쳐 내려오던 서적을 진시왕(秦始王 BC 246~210)이 모두 불 살랐기 때문에 없어진 것을 남송(南宋 서기 1187년)) 때 주자(朱子)가 복원하였다. 즉 유학의 경전 및 역사책에서 어린아이의 교육에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내용들을 주자가 수집하여 편찬한 책이다.5)

사람이 생명을 가짐에 하늘이 명한 성품은 순수하게 지극히 착하여 본래 다름이 없다. 기질인 성품은 지(智),우(愚),현(賢),불초(不肖)를 근저(根柢)라 햇고, 청(淸)․탁(濁)․미(美)․오(惡)를 기괄(機栝)이라 하였다. 근저와 기괄은 차이가 없을 수 없다. 청․탁․미․오는 임신의 초기 자고 앉고 먹고 보고 듣는 것에 감화된다.6)

『소학』이 담고 있는 내용은 어린아이들에게 하는 교육이다. 처음 하는 시작하는 교육은 쇄소응대(灑掃應對)와 진퇴지절(進退之節)이다. 즉 주위의 청소를 잘하는 것, 대인 관계를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하는 것, 집을 나가고 들어가는 것과 벼슬길에 나가고 물러나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 가정에서 효도를 잘하는 것, 가정 밖에서 어른들을 공경으로 대하는 것, 그리고 모든 행동은 도리에 벗어나지 않는 것 등이다. 그 외에 여가가 있으면 시를 읊고 글을 읽으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되 분수에 넘치지 않도록 하는 것7)학문의 대요는 이치를 깊이 연구하여 몸을 잘 수련하는 것이다.

주자는 사람들에게 대학의 도를 말할 때 자주『소학』의 글을 참고하였다. 그 까닭에 대하여 질문을 받은 주자는󰡒배우는데 있어서 대소의 차이는 물론 있다. 그러나 진리로 향하는 도는 하나이다. 그러므로 어렸을 때『소학』을 익히지 아니하면 방심하기 때문에 덕성을 길러서 대학의 기본을 삼을 수 없게 되고, 성장하여 대학의 11진지(眞知)를 습득하지 못하게 되면 성현의 의리를 밝히고 또한 그 의리를 여러 가지 일에 베풀어 소학의 성공을 이룩할 수 없게 된다.󰡓8)고 대답하였다.

주자는『소학』을 교육하는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하여󰡒어찌해서 옳지 않다고 하겠는가? 만약 성인이 되어서도 대학의 도에 미치지 못하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이미 지나간 세월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공부하는 차례와 덕목을 어찌 다시 보완하지 못하겠는가?󰡓9)반문하였다.

주자는 경(敬)이라 글자는󰡒성학(聖學)을 이루는 근원으로 처음이면서 마지막이라 들은 바 있다.󰡓10)고 하였다. 따라서『소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경으로 본원을 삼지 않으면 근원을 함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쇄소와 응대에 있어서 분명한 것은 깨끗하고 청렴하여야 하며, 사람을 대하고 나아가고 물러서는데 분별이 없으면 육예(六藝)의 교육이 조심스럽게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라 했다.

『소학』은 유아기부터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에 옮겨야 할 사항들을 기록해 놓은 것으로서 가정에서 필수적으로 활용된 교육용 도서였다.

『소학』은 8세가 된 아동들이 반드시 읽혀야 할 정도로 중요한 책이었다.11) 즉『소학』은 고대 중국에서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당시 우리나라에 수용되어 개화기까지 유아교육의 필독서로서 교육의 입문서 역할을 하여왔다. 따라서 당시는 경서를 배우기 전에 『소학』의 교육 방법을 미리 갖추었다12)는 점에서 볼 때 유일한 유아교육 사상의 근간이 담겨져 있었다고 보여 진다. 즉, 유아교육의 목적과 내용 및 방법이『소학』에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유아의 교육은『소학』의 내용인 쇄소, 응대, 진퇴지절을 최우선적으로 하였으며, 이를 철저히 한 다음에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와 효(孝)․제(弟)․충(忠)․신(信)13) 등으로 구성된 예절과 학문을 중심으로 한 내용을 교육하였다.

『소학』을 배울 이 당시의 아이는 대개 어려서는 지식과 생각을 주장할 나이에 이르지 않으니 바른 말과 지극한 논리로 날마다 어린이 앞에서 전개하여 귀에 차고 배에 가득하게 하였다. 오랫동안 하면 자연히 편안하게 익숙해져 마치 본디부터 소유했던 것처럼 된다. 그 뒤에는 비록 헐뜯는 말의 동요와 유혹이 있더라도 들어올 수 없게 된다. 만약 어린이를 위하여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점점 자람에 이르러 뜻과 생각에 치우치는 것을 좋아함이 안에서 생기고, 여러 사람들의 입으로 한 말이 밖에서 미화한다. 이렇게 되면 그를 순전(純全)14)하게 하고자 한들 불가능할 것15)이라 하였다. 이처럼『소학』은 예로부터 오랜 세월 우리의 교육에서 소중히 하여 왔음을 알 수 있다.

주자는󰡒뒤에 낳아 처음 배우는 사람은 우선『소학』을 보아야 한다. 그것은 사람을 만드는 본보기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으며, 또한󰡒‘몸을 닦는 큰 방법은『소학』에 갖추어 있고, 의리의 정밀과 미묘함은『근사록(近思錄)』에 자세히 했다󰡓16)고 밝히고 있다.

『소학』의 내용은󰡒옛날에 자제를 교육함에는 말할 줄 알 때부터 곧 가르침이 있어 물 뿌리기․쓸기․응낙하기․답변하기의 따위에 이르기까지 모두 익히는 바가 있었다. 그러므로 자라서 크면 말하기가 쉬웠는데 오늘날 사람들은 다만 대답하는 것만 가르치고, 점점 자라면 곧 허탈한 글만을 짓도록 가르치니 모두 그 성품의 바탕을 무너뜨린다.󰡓17)는 것이다. 이는 인성 교육의 중요성과 함께 당시의 교육이 본래의 의미인 ‘일상’적인 삶에 필요한 기본적인 정서와 기능보다는 문자 위주의 교육에로 흘러가는 파행적 교육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Ⅴ. 옛 유아교육 사상

 

1.『소학』의 수용과 토착화

 

『소학』이 우리나라에 수용된 것은 조선 시대 숙종(肅宗: 서기 1594년) 때이다. 당시 이성덕(李成德)이 주자의『소학』을 편술(編述) 하여 왕에게 바치면서 널리 쓰였다.『소학』의 서제(書題)에 의하면󰡒옛날 소학에서 사람을 가르치되 물을 뿌리고 빗자루로 쓸며 응낙하고 답변하며 나가고 물러나는 예절과 부모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스승을 높이고 벗을 친근히 하는 방도로써 하였으니 이는 모두 몸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히 하는 근본이 되었기 때문이라󰡓18)는 것이다.

『소학』을 어린이로 하여금 반드시 먼저 가르치도록 한 이유는 청소를 잘하도록 하고 대인관계에서 대답을 분명히 하도록 하며, 나가고 물러서는 부분을 잘 분별하도록 함으로써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를 익히는 일에 전력하도록 하고, 성장한 다음에 덕을 밝히고 백성들을 새롭게 하고 나아가서 백성들에게 계속 지극히 착하도록 하게 하는 것을 당연한 순서로 보았다.

일상적인 삶과 관련된 교육을 중요시한 남명 조식(南冥 曺植)이 퇴계 이황(退溪 李滉)에게 던진 질문은󰡒‘요즘 공부하는 자들을 보건대, 손으로 물 뿌리고 비질하는 절도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天理)를 담론하여 기인도명(欺人盜名)하고자 한다.󰡓19)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남명은 일상생활 그 자체가 교육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생활 그 자체와 동떨어진 공론(空論)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이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학력(學力)이 아니라 학력(學歷)의 교육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조선시대 말 개화기 이전까지의『소학』은 교육의 기초인 유아의 교육에서 생활 교육을 철저히 하는데 기여해 왔다. 이는 서양식의 형식적 유아교육이 아닌 순수 우리 유아교육의 형태였다. 문자나 지식 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삶에 필요한 사람 됨됨이의 인성 교육이요 인격 교육이요 나아가서는 인간 교육이었다. 조선시대 말의  학회지에 의하면 유아교육은 아이를 기르는 방법이다. 아이를 기르는 법은 마치󰡒동산에 꽃나무를 심는 것과 같아서 기르고 배양하는 법을 적당히 하면 변변치 못한 화초라도 금병(金甁)의 채화(菜花)보다 화려하다. 그러나 기르는 것이 적당치 못하면 향기가 많은 난초일지라도 말라서 죽을 것이다. 사람도 이와 같기 때문에 자식을 낳음에 있어서 약하고 둔한 원인이 태중(胎中)에서 생긴다. 어릴 때 위생에 힘쓰지 않으면 한평생 한이 된다. 만일 건강한 아이를 낳으려면 반드시 건강한 어미를 구해야 한다. 이렇기 때문에 지상의 영웅호걸이라도 어렸을 때에 건강하고 어진 모친이 보호하지 않으면 큰 공을 세우지 못한다.󰡓20)고 하였다. 이처럼 조선시대 말기의 우리나라 유아교육은 옛날부터 전해오는 조상들이 한 태교를 중요시하였다. 태교 이전의 강건한 어머니를 강조하고 있음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소학』의 교육은 효가 으뜸이었다.󰡐효백행지원(孝百行之原)󰡑이라 하여 사람됨의 근본으로 삼았다. 모든 행실은 효에서 부터 시작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실행을 철저히 하였다. 따라서 부모에 대한 효도와 스승에 대한 존경을 비롯하여 어른에 대한 공경을 가르쳤다. 효가 모든 행동에 근원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을 하였다.

『소학』에 담긴 유아교육을 받아들여 우리의 것으로 토착화시키려는 노력을 계을리 하지 않았다. 즉『소학』의 내용을 크게 태아의 교육인 태교와 출산 후의 교육인 육아로 구분하여 다음과 같이 실행하였다.

첫째, 태아의 교육으로 태교를 중요시하였다. 한(漢) 나라의 유향(劉向)이 편찬한『열녀전(列女傳)』은 여자가 임신을 했을 때는 감화되는 바를 삼가야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소학』도 그 내용을 중요시하였다. 즉 착함에 감화되면 착해지고, 악함에 감화되면 악해짐을 말하였다. 사람이 생명을 가짐에 하늘이 명한 성품은 순수하게 지극히 착하여 본래 다름이 없다. 기질인 성품은 지, 우 ,현 ,불초와 청․탁․미․오의 차이가 있다. 청은 지혜롭고 탁은 어리석으며 미는 어질고 오는 불초한 것 즉 남만 못한 것이다. 청․탁․미․오는 임신의 초기에 감화된다. 즉, 자고 앉고 먹고 보고 듣는 것이 다.21)

기괄은 바로잡는 실마리 즉 출발점의 내용이다. 기괄은 교육의 내용으로서 처음부터 바르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근저는 교육의 근본인 뿌리를 일컫는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교육의 근본인 궁극적 목적을 ‘지’인 지혜를 깨닫는데 두었다. 목표는 ‘지’의 하위 단계인 ‘현’(賢)에 있다. ‘지’는 지혜로움이다. 지혜로운 사람, 즉 이상적 인간상인 성인 또는 선지자 내지는 선각자를 추구하였다. 성인이나 선지자나 선각자는 모두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다.22) 즉 지혜로운 사람을 우리는 예로부터 성인(聖人)이라 불러 왔으며23), 어진 사람은 군자라 불러 왔다.

성인이 되는 길은 맑고 깨끗해야 하며, 군자는 길은 어질고 착해야 한다. 따라서 청․탁․미․오는 실천의 실마리를 일상생활에서 찾음으로서 가능하다고 여겼다. 즉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는 지․우․현․불초 가운데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청․탁․미․오와 지․우․현․불초는 태아기 때 어머니의 감동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점에서 오늘의 어머니들에게 시사하고 있는바가 많다.


옛날에 부인이 아이를 배었을 적에 취침을 할 때에는 옆으로 눕지 않았으며, 앉을 때에는 몸을 한쪽으로 쏠리게 하지 않았으며, 설 때에는 한 쪽 발에 체중을 많이 받게 하지 않았다. 부정한 맛이 나는 음식을 먹지 않았으며, 고기의 썰음이 바르지 않거든  먹지 않았으며, 자리가 바르지 않거든 앉지 않았다. 눈으로는 부정한 색을 보지 않았으며, 귀로는 부정한 소리를 듣지 않았고, 밤이면 악사인 장님으로 하여금 시를 외우며 바른 일을 말하게 했다.24)


태교를 한 후에 아이를 낳으면 용모가 단정하고 남보다 재주가 뛰어 나리라는 것이다.25)

교육에서 추구한 이상적인 인간상 즉 성인이나 군자와 같은 사람의 탄생을 위하여 지․현과 청․미의 교육을 태내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사람의 부모가 된 자는 태교를 소홀히 하여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26)라 하여 태교를 왜 하는가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태아와 어머니가 감동이 같고 또한 어머니의 체질을 계승하여 그 관계가 빈번하고 밀접하기 때문에 임부가 정신을 진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지․우․현․불초인 근저와 청․탁․미․오인 기괄의 실마리를 태교에 두었으며, 교육의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이를 철저히 실천해 왔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율곡은 인성의 형성에 있어서는 이(理)와 기(氣)에 그 근원을 두었다. 그는 이와 기는 하나도 아니고 그렇다고 둘도 아니라 하였다.27) 이와 기는 한결 같으며, 편(偏)․정(正)․청(淸)․탁(濁)․통(通)․색(塞)․순수(純粹)․잡박(雜駁) 등에 구별이 없다. 천지만물(天地萬物)을 형성함에 있어서는 편(偏)․정(正)․청(淸)․탁(濁)․통(通)․색(塞)․순수(純粹)․잡박 등의 속성이 있다. 편(偏)은 동물, 색(塞)은 식물, 청(淸)․탁(濁)․잡박 등은 인류에 속한 것이다.28) 즉, 본성은 구별이 없으나 속성은 구별이 있다. 속성은 변화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변화의 양상은 다양성을 의미한다.

둘째, 출산 후 육아교육으로 하나는 청결, 둘은 처신 셋은 사람을 사귀는 일이다. 하나는 청결은 주변을 자신으로부터 점점 넓혀나갔다. 청결의 궁극적 목적은 자신을 깨끗이 하고 주위를 깨끗이 함을 넓혀 감을 의미하는 교육 사상이다. 일상의 생활 교육은 가정은 물론 교육 기관(서당)에서까지 철저히 시행을 철저히 시행하였다. 우리나라의 강토를 일러 ‘금수강산’이라 불리어져 온 것도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옛 유아교육에서부터 중요시하였던 ‘쇄소’는 교육사상의 근간이었으며, 성인들에게까지 확대됨으로써 일반화된 현상임을 이해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깨끗이 하고 자신의 주위를 청결히 하는 것을 으뜸으로 하는 출발점이 바로󰡐쇄소󰡑이었다. 즉 자아 성취의 첫걸음으로 여겼다. 깨끗하고 청결하다는 것은 더러움이 없다는 것으로서 무아의 경지 즉 도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도의 경지에 이르렀음은 곧 지혜를 가진 사람이다. 도에 이르거나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쇄소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소학』에서는 반드시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물 뿌리기․쓸기․응낙하기․대답하기 등 예절은 신중히 하였다. 집에 들어서는 부모를 사랑하고 나아가서는 어른을 공경하였다. 행동이 이에 어긋남이 없게 하였다. 이를 실행하고도 틈이 있는 날 즉,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면 시를 낭송하고 글을 읽으며 읊어 노래하여 음악의 소리를 익히고 손발로 춤추어 음악의 태도를 익혔고, 무릇 생각하는 바가 혹시라도 이에서 넘음이 없게 한 것이다.29)

둘은 처신이다. 그 사람의 됨됨이는 처신, 즉 행동거지를 보면 알 수 있다.처신은 바로 응대와 진퇴에서 길러진다는 것이다. 응대는 사람을 대하는 예법, 방법이나 기술이다. 진퇴는 처신하는 태도이다. 즉,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응낙하고 대답하는 일에 있어서도 지켜야 할 도리와 질서가 있어야 하고 나가고 물러감에 있어서도 지켜야 할 절차와 법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은 사람을 사귀는 일이다. 오늘날 사회성 발달을 의미하며 어린아이들에게는 또래끼리 사귀는 일이다. 좀 더 자라면 멀리 나아가서는 친구를 사귀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초보적이고 기초적인 것이 사교이다. 왕따가 횡행하는 요즘 생활(삶)교육과 같은 것으로서 사람 사귀는 방법을 모르고 는 글 배우는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


2. 근저와 기괄

 

우리의 옛 유아교육은 사람이 태어나기 이전에 하는 태교를 대단히 중요시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품성이 있다. 품성은 지성(知性)과 감성(感性)이 있으며, 근저와 기괄로 나누었다. 지성인 근저는 지․우․현․불초 등 이고, 감성인 기괄은 청․탁․미․오 등이다. 교육 목적인 지혜로운 인간상의 형성을 추구하였으며, 교육 목적 달성을 위한 내용은 감성인 기괄에 두었다. 지성과 감성은 태아에게 많이 감화되기 때문에 우리의 옛 교육의 하나인 태교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즉 출산된 유아는 태내의 성장과정에서 임부의 감동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교육 목적으로 추구하는 인간상은 지혜로움 사람과 어진 사람이다. 즉 지, 우, 현, 불초에서 지와 현이 이에 해당된다. 교육 내용은 해서는 안 될 삼가야 할 일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행동이다. 즉 청, 탁, 미, 오에서 청과미가 이에 해당된다. 근저는 근본인 뿌리로, 기괄은 근저에 영향을 미치는 실마리로 보았다. 근저와 기관은 임신 초기에 임신모의 행동에 의해 감화된다는 것이다. 즉, 한 번 자고, 한 번 앉고, 한 번 먹고, 한 번 보고, 한 번 듣는 것 등의 행동은 태아에게 영향을 준다고 보았다. 

특이한 것은 추구해야 할 것과 지양해야 할 것을 대립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교육 목적에 해당하는 근저를 지=우, 현=불초로 대립되는 개념으로 하였다. 즉 추구하는 덕목인 지․현과 지양해야 할 덕목인 우․불초를 대립시켜 놓았다. 교육 내용에 해당하는 기괄 역시 청=탁, 미=오로 대립되는 행동을 선정하였다. 즉 실행해야 할 행동인 청․미와 경계해야 할 행동인 탁․오와 대립적으로 선정하였다.

교육목적의 설정과 교육내용의 선정은 목적인 근저와 내용인 기괄을 상호 보완되도록 구성하였다. 목적과 내용의 개념을 서로 상관된 상대적 덕목으로 설정함으로써 추구하는 목적과 실천의 내용을 일치시킨 것이다. 즉, 지=청, 우=탁, 현=미, 불초=오이다. 사람의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지혜를 얻는 일이고, 다음은 어질게 사는 일이다. 따라서 추구하는 인간상 역시 지혜롭고 어진 사람이다. 즉 추구하는 궁극적 교육목적이 지와 현이다.

옛 우리 교육의 목적인 지․현은 지혜롭고 현명하고 어진 사람이다. 지인 선지자 또는 선각자 및 성인이며, 현인은 인군 또는 군자로서 모두 도덕적 인간이다. 교육의 목적 달성을 위하야 청과 미를 실천을 중요한 내용으로 삼았기 때문에 맑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삶에 실천 덕목 여겼다.

교육의 궁극적 목적인 지혜로운 사람 즉 성인이 되기 위한 수기(修己)는 중요한 실천해야만 하는 행위이다. 수행은 곧 교육 행위와 같은 것이다. 공자나 석가나 예수와 같은 성인을 일러 선지자라고 할 때 이 ‘선지’의 선은 ‘먼저’ 또는 ‘앞서’를 의미하고 있다. ‘지’는 곧 지혜를 뜻하고 있어 예로부터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인간상이 ‘선각자’ 또는 ‘선지자’이다. 따라서 지혜를 얻는 길이 곧 선각자나 선지자가 되는 길이며 곧 수기의 길인 동시에 교육의 길이기도 하다. 훌륭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아이를 잉태한 어머니는 잠자는 것에서부터 듣는 것, 먹는 것, 보는 것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주의와 조심은 물론 이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 목적과 목표를 달성하려면 태아기에 어머니의 감동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임신부의 정신적 강건과 신체적 건강이 요구되며, 임신 중의 행동거지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태교에서 이를 엄격히 하였다.

우리 옛 사람들은 교육목적과 내용을 서로 상관된 개념으로 성립시킴으로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실천해야 할 행동인 내용을 명확히 하였다. 즉 지혜, 어리석음, 어진 것, 남만 못한 것으로 관련시킴으로써 추구하는 내용은 청과 미이고, 지양해야 할 내용은 탁과 오이다.

교육 목적과 교육내용을 연관시켜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지󰡑는 교육목적인 추구하는 인간상으로서 지혜로운 사람을 말한다.󰡐청󰡑은 교육 내용으로서 청결, 정결, 깨끗한, 맑은 것, 고요한 것(靜), 조촐한 것(潔) 등의 실천적인 행동이다. 삼가 해야 할 행동은󰡐우󰡑와󰡐탁󰡑이다. 즉󰡐우󰡑는 어리석음이며,󰡐탁󰡑은 흐린 것(水不淸), 더러운 것(汚) 등이다. 교육 목표는 군자 즉󰡐현󰡑으로서 어진 것을 이르는 것이다. 교육 내용은󰡐미󰡑즉 아름다움(嘉)으로서 예쁨, 좋음(好), 맛남(甘)을 뜻한다. 되지 말아야 할 것은󰡐불초󰡑즉 못하다는 뜻으로 남만 같지 못함을 가리키는 것이다. 삼가 해야 할 교육내용은󰡐오󰡑즉 미워함, 모진 것(不善), 더러운 것(醜陋), 나쁨(不良), 미워함(憎), 부끄러움(恥), 욕됨, 욕설(辱) 등과 같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근저와 기괄은 모두 일상생활에서 요구하는 것과 실천 가능한 내용들이다.

교육 방법으로는 쇄소응대와 진퇴지절을 생활화하는 것이었다. 교육의 첫걸음으로 아이를 낳으면 제일 먼저 체험을 시킨 것이다. 즉, 참다운 사람이 되는 것은 말로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 자신의 체험을 통한 교육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쇄소는 물 뿌리고 쓰는 일이다. 청결의 의미로서 수기의 대상 즉, 자아실현을 하는 방법으로 채택하였다. 응대는 사람을 대할 때 응낙하고 대화하는 의사소통 방법 즉, 대인 관계의 방법으로 중요시하였다. 진퇴지절은 집을 나가고 들어옴은 물론 벼슬길(出仕)에 나아가고 물러감에 있어서 지켜야 할 도리이다. 도리는 절차와 예절 및 도덕적 행실과 책임 등 처신을 생활의 으뜸으로 여겼다.

우리의 옛 유아교육사상은 학식보다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갖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일에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생활 체험에 역점을 두었다. 즉 일상생활을 통한 체험인 경험을 한문보다 우선하였다. 교육이 충분히 그리고 확실하게 이루어진 연후에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시를 읊고 춤을 추며 글을 읽히었다. 결국 인간이 된 다음 학문을 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학문을 닦음에도 그 바탕은 사람됨에 두고 있다. 사람이 된 다음에 학문을 해야 겸손하고 약하고 못 배우고 힘없고 가진 것이 없는 자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사람다운 참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지도 않은 자에게 학문을 시키면 배운 것을 이용하여 남을 속이고 교만하고 간교하며 우쭐대고 남을 없이 여기고 안하무인격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3. 태교


1) 의의


태육(胎育)이란 태아가 건강하고 총명하게 자라도록 임신 중에 하는 일종의 교육이다. 일명 태교라 할 수 있다. 건강한 아이를 낳으려면 먼저 어머니가 장건(壯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어질고 총명한 아이를 낳으려면 어머니가 먼저 정신 교육을 해야 한다. 교육의 주체인 유아들의 바람직한 성장을 위하여 부모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잘못 낳았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한 것을 아이 탓으로 전가하는 오늘의 풍토에 시사하고 있는바가 크다.

부인이 임신을 하면 기거와 신체와 이목의 감촉(感觸)을 조심해야 한다. 태어난 아이의 문제는 어머니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임신한 어머니는 아이의 바람직한 성장을 위하여 듣고, 보고, 움직이고 조용히 있어야 함을 경솔히 하여서는 안 된다. 바로 현명하고 건강한 아이를 얻기 위한 방법이다. 어머니의 감동과 지각이 태아의 성장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어머니의 생각과 태도는 대단히 중요하다. 잉태한 임신모의 호기심과 흥미에 따른 집념 있는 행동은 태아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임신한 부인은 반드시 먼저 정신을 진작하여야 하며, 때때로는 운동을 적당히 하여 지체를 활발하게 하고 순산의 시기를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

임신모의 일상생활이 태아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의복과 거처와 음식 등에 관해 항상 주의하여야 한다. 마음과 몸이 안정되도록 운동을 적당히 하면 순산에 도움이 된다. 해산하고 양육은 세상의 모든 부인의 당연한 직책이다.

포태(胞胎)한 때와 산전 산후에 영양의 섭취와 위생에 주의하지 않으면 반드시 난치병에 걸려서 종종 위험이 된다.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한다. 만일 평시에 신체를 보호하고 산후에 조리를 잘하면 이런 염려가 없다.

칸트는 인간이 필요로 하는 교육을 양육과 훈육 및 도야를 포함한 교수 등의 형태로 보았다. 출생 후의 교육만을 중요시 한 서양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옛 유아교육은 아이가 탄생하기 이전 모태에서의 성장과정인 태내 교육인 태교와 출생 후 교육인 양육 모두 중요시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연령의 계산법에서도 알 수 있다. 서양은 낳은 날을 기준으로 연령을 계산하고 출생 이전의 태내에서의 성장 과정을 배제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배냇살󰡑이라 하여 임신을 한 후 출산까지 태내에서의 삶을 인정하여 연령으로 계산하였다. 태내의 생명체를 한 인간으로 동등하게 간주함으로써 태내 생명을 존귀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서양과 동양적 인간 존중 사상의 차이다. 사람은 동물과는 달리 교육을 통해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옛 유아교육 사상에서 태교를 교육의 출발점으로 본 것은 인간의 본성을 선으로 보고 있는 성선설의 영향이 아닌가 한다.

유리부인(柳李夫人)은 자신의 저서인『태교신기』에서 인성은 하늘이 준 것이고 기질은 부모에 의해 생긴 것으로 인성과 기질의 성격을 분명히 하였다. 또한 아버지가 낳고 어머니가 기르고 스승이 가르침은 그 뜻이 같다고 보고, 태교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30)


人生의 性은 天에 本하고 氣質은 父母에게 成하나니 氣質이 偏勝이 性을 蔽함에 馴至하리니 父母-子를 生育함에 可히 謹愼치아니 할가. 父의 生함과 母의 育함과 師의 敎함이 其意 一也라. 善이 醫하는자는 未病에 治하고 善이 歟하는者는 未生에 敎하나니 故로  敎師十年이 母의 十月을 育하니만 未若하고 母育十月이 父의 一日에 生하니만 未若하니라.

유리부인은 「태교신기」의 저술 이유를 전해 내려오는 방법과 자기의 체험을 소재로 하여 집필하였음을 밝히고 있다.31)


女範에 曰 上古賢明의 女 - 有娠에 胎敎의 方을 必愼이라 하니今에 諸書를 考컨대 其法이 莫有詳焉이나 自意求之에 盖 或可知矣라 余가 數四娠育에 嘗試한바로서 錄爲一篇하야 諸女에게 以示하노니 敢히 擅自著述하야 人目에 夸耀코자함이나 猶內則(禮記篇名)의 遊厥을 可備할지라.


옛날에 여자가 임신을 하면 태교의 방법은 반드시 신중하게 하였다. 최근에 태교에 관한 여러 책을 보았으나 태교에 대한 내용이 자세한 것이 없어서 자신이 구하여 읽어서 알고 있는 태교의 지식과 자기 자신이 직접 여러 번의 임신 경험을 토대로 기록하여 책을 만들어 모든 여성에게 내보여 자랑을 하고자 하나 여기에 있는 내용은 ‘유내칙(猶內則)’의 내용을 보충하여 갖춘 것이라 했다.

당시의 우리나라 여성의 품성을 그대로 보는 듯하다. 많은 것을 알면서도 뽐내지 않고 겸손하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내는 우리나라 옛 여성상의 참모습이요 우리의 어머니상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옛 우리 유아의 교육은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인 태아기부터의 교육 방법을 중요시하였는가 하면 출생 후 성장 과정에서의 교육 방법에 있어서도 오늘날의 지식 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 등을 체험할 수 있도록 실행을 하였다. 실제 경험 활동을 하고도 여유가 있어야 글을 읽고 시를 낭송하고 노래하고 춤을 추되 생각이 조금이라도 지나침이 없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2) 방법


인간은 남녀의 교합(交合) 없이는 태어날 수 없다. 교합은 남녀 간의 성교를 일컫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성교를 음양의 결합으로 생각했다. 남녀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 방사(房事)로 임신이 된다. 음양의 조화는 오행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다. 태교는 훌륭한 아기의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남녀가 동침(同寢)을 할 때는 반드시 태교의 법에 따라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길일을 택하였다.

소학』의 입교편(立敎篇)에 태교에 관한 내용이 있다. 임신을 하면 눈으로는 부정한 색을 보지 않았으며, 귀로는 부정한 소리를 듣지 않았고, 밤이면 악사인 장님으로 하여금 시를 외우며 바른 일을 말하게 했다. 이와 같이 하면 아이를 낳음에 용모가 단정하고 남보다 재주가 뛰어 나리라는 것이다. 이는 태교를  하는 방법과 이유이다.

특히, 지․우․현․불초의 인간상은 청․탁․미․오의 기능에 좌우되며, 이는 잠자고 앉고 먹고 보고 듣고 하는 일상의 생활 속에서 형성된다고 보았기 때문에 태교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물론 그 방법을 경계하여 게을리 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에 적당한 운동을 해야 하고 지체를 활발하게 하면서 분만의 때를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태아의 발육이 지나치게 크면 분만하기 어려우므로 복부를 꽉 싸매는 것은 옳지 않다. 태아의 발육이 완전하지 못하면 분만하기에 어려움이 따른다. 이때 이치와 형세에 반듯이 따라야 한다.

임부의 의복은 가볍고 따뜻하며 넉넉하고 헐렁한 것을 입어야 한다. 평상시에 입는 옷은 청결해야 하며 습기가 없어야 한다. 겨울에는 넓고 부드러운 베로 만든 따뜻한 옷을 입어야 하며 추위가 피부에 스며들지 않게 해야 한다. 여름에는 허리와 배에 냉기가 닫지 않게 한다. 또한 허리띠를 꽉 조여 매지 않아야 한다.


嬰兒의 衣服은 마땅히 輕暖하고 踈하되 綿布와 法蘭絨等類가 最宜하고 夏日에는 麻布도 또한 可하리니 다만 白色을 用하여 其汚垢를 易顯케 할 것이오 綢類는 小兒에게 가장 不適하니 此는 澣하기 難하고 汚하기 易하고 또 兒童으로 하여금 奢侈의 弊에 染케하기 易함이라 故로 富貴한 家라도 또한 兒童으로 하여금 淸潔한 綿布衣服을 衣케 할 것이오.32)嬰兒의 衣服은 寬博함을 貴히 여기나니 故로 身을 覆하는 幅이 宜廣하고 袖筒은 宜濶하고 帶는 堅結함이 不宜하니 此는 四肢의 運動을 妨함이오 冬衣는 綿을 裝하기 宜薄하고 夏日은 다만 兜肚과 或半臂衣類를 着하여 四股를 露出하여 運動에 便케 할 것이오.33)


임부의 음식물은 양분이 많고 소화가 잘되는 것을 선택해서 조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식사하고 싶은 생각이 없으면 강제로 먹게 하지 말라. 이는 과식하는 것이다. 또한 공복이 되게 하는 것을 피하고 제 때에 먹는 것이 마땅하다.


小兒의 植物을 熟煮하여 消化하기 易케 하되 味가 甘鹹의 過度함을 忌하고 辛香을 尤忌하며 또 每日種類를 改換하거나 或一物이라도 製造法을 易케 한則 兒가 食하기를 不厭하여 食量이 自增할지라 然이나 用意하기 過篤하면 嗜欲의 心이 滋長하여 常品을 厭하여珍味만 貪求하리니 故로 斟酌을 適宜케 하여 衛生과 德育二者로 하여금 兩全케 할 것이오.34)


임부가 방에 있을 때는 남쪽이나 또는 동남쪽을 향하여 햇빛을 쬐어야 한다. 공기의 유통이 잘되는 곳을 가려야 한다. 여러 가지 꽃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정원이나 녹음이 우거지거나 또는 산천과 넓은 들이 바라보이는 곳이 있으면 가장 적당하고 좋다는 것이다.

만일 여의치 못하면 반드시 땅이 높고 습하지 않으며 밝은 곳을 선택해야 하며 또 수시로 창문을 열어 공기를 신선하게 해야 실내가 항상 밝고 맑아서 정신이 상쾌할 것이다. 이러한 행위들은 모두 건강하고 참되고 훌륭한 아이를 생산하기 위한 행위이다.


小兒의 居하는 室은 南東南 혹 西南에 面하여 日光이 充足히 映射하고 空氣가 流通하기 易케 하고 또 匍匐과 步行하는 初에는 危驗이 極多하나니 所居를 斷崖와  沼池等과 隣치 말게 하고 만일 池沼가 有하거든 반듯이 高欄을 設하여 墜落을 預防하고 寢室에 至하여도 가히 母氏와 共爲하되 同衾함이 不可하니라.35)居室과 寢室은 淸潔케 하여 汚穢와 惡臭를 發하는 物을 置치 말고 室內의 器具를 一一이 整飾하여 亂雜치 않게 할지니 大槪 幼兒時애 秩序의 整齊함을 習見하면 長하여 能히 規矩를 遵守할 것이오.36)


임부는 항상 신체 운동을 적당히 하고 수시로 교외와 바닷가 혹은 넓고 밝으며 아주 넓은 땅 혹은 정원․과수밭 사이를 거닐어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심신을 유쾌하게 해야 한다. 높고 낮은 험한 산길을 가거나 험한 산비탈을 오르며 가마를 타며 발을 구르며 좋아하는 춤추는 무도를 하면 몸이 무거워서 힘을 쓸 수가 없다. 낮에 운동을 적당히 하면 밤에는 잠이 쉽게 들고 잠이 충분하면 태아를 기르는데 유익하다. 산기가 가까우면 더욱 정신을 가다듬고 몸은 청결하게 하고 운동은 마음의 여유가 있게 하고 잠을 충분히 잔 후에 산실의 모든 기구를 정돈하고 산기를 서서히 기다려야 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수태하여 분만하기까지는 280일이니 40주가 되며, 음력으로는 10개월이다.


4. 양육


양육이란 출산 후 갓난아이를 기르는 것이다. 포육(哺育)은 젖을 먹여 기르는 것을 의미한다. 영아를 젖 먹여 기르는 데는 생모의 젖과 유모의 젖과 짐승의 젖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서 모유의 젖이 제일 좋다. 하늘은 사람을 낳음에 있어 성질이 유순하고 인자한 부인에게 부탁하며, 좋은 식품을 주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것은 하늘이 내린 직분이다. 이 직분을 다하는 사람은 그 신체가 강건하고 반면 직분을 다하지 못한 사람은 신체가 반드시 약한 것이다. 또한 산후는 어머니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 젖이 새어 난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20여 일이 되면 그칠 것이다.


嬰兒를 哺育하되 乳母를 雇하는 者도 有하고 獸乳를 用하는 者도 有하나 그러한 모든 母乳의 住함만 같이 못하니 元來 天이 人을 生하매 其甘味의 食料가 임의 溫良하고 慈惠한 毅身에 隨生하는지라. 故로 母의 兒를 哺함은 實로 天賦한 職으로 此職을 盡3하는 者는 女兒의 肢體가 强健하고 否한則 嬴弱하나니 則産後에 乳液을 洩漏하여 哺한지 不過 三四星期에 切하고 否한則 六星期或八星期에 至하여 止함이니 어찌 可恐할 바 아니리오. 또 産母食糧의 增長과 血液循環과 如한 者는 其利害가 또한 自乳與否에 大關하거늘 世人이 或云하되 産母가 自乳한則 姿色이 衰하기 易함으로 他人에게 委한다 하니 噫謬哉라. 斯言이여 婦를 娶함은 佳兒를 育코자함이니 容顔의 美를 何取하리오. 然이나 方今 文明이 歐美와 如한 處에도 오히려 此卑陋한 習俗을 未免하니 可歎할 바오. 또한 自乳치 아니 하는 者는 母子의 親愛하는 情이 반드시 厚하기 不能하여 將來 敎育에 欠失이 殊多하리니 凡世의 人母된 者 삼가 天賦한 職을 毋棄할지어다.37)

  

아이를 젖먹이지 아니하면 50~60일에 젖은 나오지 않고 멈춘다. 젖은 음식을 먹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혈색의 순화는 어린아이에게 젖먹이지 않으면 반듯이 해(害)가 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속설에 의하면 미혹하여 말하기를 아이를 젖먹이면 부인의 얼굴이 쉬 늙는다 하여 유모에게 맡기고 돌보지 아니 하며 자칭 문명인이라 하는 사람들은 서양에 제일 많으니 우스운 일이다. 또, 아이를 스스로 젖을 먹여 기르지 아니 하면 애정이 얇아지고 덕육에 방해가 된다.

어머니는 하늘이 명한 직책과 의무에 뜻을 두어야 하고 이를 버리지 말아야 한다. 어머니의 젖이 아이에게 적당하다, 어머니의 젖은 소젖(牛乳)이나 개젖(𤟟乳)과 같이 젖임에는 다를 수 없다. 어머니의 젖에는 좋은 물질이 포함되어 있으며 따뜻하고 효험이 있다. 같은 젖이지만 모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반면 우유(소젖)나 암유(개젖)를 사용할 때 지켜야 할 일들을 비롯하여 젖먹일 때의 알아야 할 사항들을 소상히 밝고 있다.

생모의 젖은 버터(牛酪)와 유담(乳淡) 및 수분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배합이 잘되어 있다. 산후의 젖은 나옴이 심이 느려서 쓰임의 묘함은 실로 그 다양성을 이룬다고 생각하기가 어렵다. 이제까지 습관이 쌓여서 영아가 출생한 후에 로고약(鸕鴣藥)38)을 복용하여 태독(胎毒)을 없애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을 경계(조심)해야 한다39)는 것이다. 어머니는 출산 이후는 유아에 대한 위생은 물론 영양의 섭취와 금기 음식에 대하여는 산전과 다름이 없이 더욱 조심하여야 한다.


生母의 乳汁은 牛酪과 乾絡質乳糖, 水分等을 含하니 其配合의 均勻함이 如此하고 또 産後의 乳汁은 其下함이 甚緩하여 妙用은 實로 思量하기 不可할지라. 向來積習이 嬰兒 生한 後에 鸕鴣藥을 服하여 胎毒을 除함은 자못 危險하니 마땅히 切戎할 바오. 婦人이 産後의 衛養에 留意하기 姙娠時오. 不異하니 酒를 飮함을 最忌하는 바오. 또 食物은 마땅히 滋養이 多하여 消化하기 易한者를 用할 것이오. 初産한 婦가 哺乳에 未慣하니 반드시 困難함을 稍覺할지라. 然이나 數日을 經하면 漸次慣熟하고 또 其時에 乳汁이 不多하여 母가 每樣懸慮하는 바이로되 嬰兒가 發育함에 及하여는 乳汁이 自然이 漸增하고 또 少婦가 就寢하면 每樣子女로 하여금 乳를 含하고 睡케 하다가 熟珉한 後에 往往 壓死케 하는 獘가 有하니 此는 不可不愼重할 바오.40)

 

부인이 산후의 위생과 영양에 유의하는 것은 임신 때와 다름이 없다. 술을 마시는 것은 꼭 피하고 음식은 마땅히 영양분이 많고 소화하기 쉬운 것을 사용해야 한다. 초산(初産)한 부인이 젖먹이는 것에 익숙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으나 차차 깨달을 것이다. 며칠이 지나면 점차 젖먹이는 습관에 익숙하다. 젖이 많이 나오지 않아 어머니가 항상 그 모양일가 보아 염려를 놓지 않을 것이다. 영아가 발육하면 젖은 자연이 조금씩 더 나오고 또 젊은 부인이 잠을 자면 항상 자녀로 하여금 젖을 먹고 잠에 들게 하다가 깊은 잠이 든 후에 종종 깔아 죽이게(壓死) 하는 폐가 있으니 조심하여야 한다.

우리의 옛 유아교육 사상과 개화기의 유아교육 사상을 고찰하였다. 당시 서양 문물의 수용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것은 학회지였다. 개화기는 서양식 유아교육의 수용 과정에서 우리의 고유한 전통적 유아교육 사상은 퇴화의 과정을 걸었다. 즉, 유아교육의 본질적인 문제는 사람됨을 추구하는 교육보다 가시적인 성과 위주의 방법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되었다.


4. 유아교육


개화기 외국의 유아교육이 유입될 당시는 우리의 전통적 유아교육사상과 서양의 새로운 유아교육사상이 교차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어릴 때 위생에 힘쓰지 않으면 일평생 한이 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나무 심고 꽃을 가꾸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 것은 프뢰벨의 유아교육 사상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우리의 고유한 유아교육 사상에 수용된『소학』의 유아교육 사상은 그 모습이 신교육이란 이름의 지적인 교육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아직은 완전히 변모되지는 않았지만 일부나마 남아 있다. 즉 우리 교육사상의 근간인 유아의 인격존중사상은 당시의 철학이기도 하다.

우리의 옛 유아교육 역시 자연성에 따라야 하며, 어머니의 영향이 지대함을 말하고 있다. 유아교육은 영아기 즉, 일찍부터 교육을 하는 것이 성장 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상은 서양의 유아 교육관의 영향을 받고 변모하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사상을 기저로 한 우리 민족의 고유한 유아교육관을 표출인 것이다.41)


嬰兒의 思想은 극히 狹淺하야 加內든지 門外에 出하여 遊戱 活動을 할 時라도 善惡과 眞僞와 美醜와 危險 等을 一切未別하나니 時時로 父母가 遂行하여 看察하되 兒가 혹 危險과 暴行을 犯하거든 順言으로써 堯喩하고 壓迫悖言은 勿用함이 可하여 혹 範圍 以外에 나가거든 此를 禁止함이 可하도다.

 

영아의 생각은 좁고 얕아서 집안에 있든 밖으로 나가든 유희 활동을 하든 영아는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더러움 즉, 추함과 위험함 등을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부모의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이유와 함께 부모의 자녀 교육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개화기 외래의 유아교육이 수용되면서 우리의 고유한 유아교육사상에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다. 상호(尙灝)는 일본 유학생으로서 가정이 빈곤함에도 독학의 의지를 불 살린 우리나라 유학생으로서 일본 제국 대학 본과를 졸업한 최초의 공학사이다. 그는 유아교육과 관련하여 영아교육은 전적으로 가정에서 하여야 하며, 영아 교육이 교육의 기초로서 가장 중요하다42)고 보았다.

고등․중등․초등교육은 학교에서 가르치며, 영아 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영아교육은 교육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교육 가운데에서도 가장 긴요하고 중요할 뿐만 아니라 교육을 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정운복(鄭雲復)은 유아교육에 있어서 완구와 놀이의 교육적 의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였다.43) 유아들은 놀이감을 갖고 즐겁게 놀이를 함으로써 가지런히 일을 맡아서 처리하는 재주를 기른다. 즉, 유아들은 놀이 활동을 통하여 유아 스스로 정리 정돈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는 것이다.

김명준(金明俊)이 ‘유아지법(幼兒之法)은 원정의 재식화본(栽植花本)과 같다’44)고 한 것은 유아의 교육 방법은 꽃과 나무를 심고 기르는 방법과 같이 어렵고 힘들며 중요하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유동작(柳東作)은 ‘3, 4세경에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이 그 아이의 일생의 행과 불행의 기로가 결정되는 때라 하여45) 이 시기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유아교육은 유아기의 교육은 물론 태교 때부터 시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유아기의 교육은 가정에서 어머니의 강건한 정신 교육과 건강한 신체의 소유를 요구하고 있다. 이기(李沂)는 교육을 가정․학교․사회 교육 영역으로 구분하고, 그 첫 번째를 가정에서의 유아교육이 가장 용이하다고 하였다. 이는 신체가 아직 성장하지 않았고, 지적으로나 생각이 성숙하지 않았으며, 가정은 부형-모제(父兄-母弟)가 있기 때문에 이들의 교육 방법은 다르므로 반듯이 유아기 때부터 시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김낙영(金洛泳)은 ‘해 기르는 법’을 세 가지 들고 있다.46) 첫째는 몸을 건강하게 기를 것, 둘째는 마음과 의기를 발달시켜 줄 것, 셋째는 성장 후에는 자립하여 생활할 수 있는 준비를 할 것 등이다.

아이들은 자라는 도수가 심히 빨라 정신과 몸이 항상 활동하는 고로 조그마한 거리낌이 있을 지라도 아픈 줄 알지 못하고 자주 뛰어 놀기를 좋아하고 무슨 물건이든지 손으로 움직이기와 입으로 끌어넣으려 한다고 아이들의 특징을 들어가면서 교육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Ⅵ. 결어

 

이상에서 우리나라에 옛날부터 내려오는『소학』을 비롯하여 『여범』,『여훈』,『태교신기』,『계녀서』등을 비롯한 문집 또는 서한문과 조선시대 후기 말 개화기 새로운 서양식 문물의 수용과 접목에 크게 기여하였던 많은 「학회지」를 중심으로 유아교육과 관련된 내용들을 추출․분석하였다.

우리 옛 사람들은 오랜 세월『소학』에 담긴 사상을 우리의 교육의 근본 사상으로 삼아 왔고, 이의 실천에 주력해 왔다. 오늘날과는 사회 변동의 모습이 다르겠지만, 옛날에도 사회변동은 있었을 것이다. 당시 유아교육은 오랜 기간 동안 그 시대 나름의 상당한 사회 변동을 겪었을 것이다. 이 때 우리 교육의 중요한 역할을 해온 『소학』은 개혁이나 개정이 거의 없이 전래되어 오고 있었다. 실로 엄청난 오랜 기간이었다.

변화가 없었던『소학』의 교육 사상에 변화의 조짐이 일기 시작한 것은 개화기 서양식 신문물의 수용 과정에서 불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동의 바람은 더욱 세차게 진행되었다. 독립 정부 수립 이후는 그 도가 더해 갔다. 유아교육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유치원 교육에 많은 변화를 거듭해 왔다. 이러한 변화는 유아교육에 많은 문제를 야기했고, 또 제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부수되어 제기되는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많은 연구들이 있었고 또 진행되고 있다. 바로 유아교육의 방향 설정에 중추적 기능을 하고 있는 유치원 교육과정의 제정 및 개정 활동을 들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 유아교육의 근간이 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수월성을 확보하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1969년 최초로 유치원 교육과정이 제정되었으며, 제정된 이후 32년 사이에 일곱 번의 개정 작업이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급격한 사회 문화의 변동에 따른 대처를 위한 당연한 귀결이며, 다가 올 새로운 사회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교육의 일환으로서 불가피한 일이다.

개화기 이전에 수용된『소학』의 교육 사상을 우리의 옛 사람들은 금과옥조처럼 여겨 왔으며, 오래 동안 그 나름의 사회 문화의 변동 속에서도 변화 없이 유아교육의 방향과 지침이 되어 왔다.『소학』의 교육 사상은 우리의 교육 사상에 수용된 후 오랜 기간 토착화됨으로써 개화기 이후 외래 유아교육사상의 수용에 있어서 주체적 역할을 하여 왔다. 이들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으며, 우리 유아교육 사상의 정립에 미리 암시하여  알려 주는바가 있다.

첫째, 태교를 중요시하였다. 청․탁․미․오와 지․우․현․불초는 태아기에 어머니의 감동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다. 이는 오늘날 유아교육계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감성교육에서 다루어야 할 원초적인 것이다. 유아교육계에서 청․탁․미․오와 지․우․현․불초를 감성교육의 대상으로 연구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심층 깊은 연구가 요구되고 있다. 왜냐하면 청․탁․미․오와 지․우․현․불초의 감화는 임신부의 정신적 강건과 신체적 건강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 중의 행동거지 즉, 자고 앉고 먹고 보고 듣는 것이 청․탁․미․오의 근원이고 지․우․현․불초의 출발점으로 여겼기 때문에 누구든 이를 스스로 엄격히 절제하였다. 출생 후의 교육도 이를 출발점으로 영아 및 유아기의 교육에 기준이 되었기 때문에『소학』에 담긴 사상을 일상생활 그 자체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유아교육이었다. 지는 지혜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지혜롭기 위해 옛날부터 수행을 해 왔다. 수행은 곧 오늘날의  교육 행위와 같은 것이다. 공자나 석가나 예수와 같은 성인을 일러 선지자라고 할 때 이 ‘선지’의 선은 ‘먼저’ 또는 ‘앞서’를 의미하고 있으며, ‘지’는 곧 지혜를 뜻하고 있어 옛날부터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인간상이 ‘선지자’였기 때문에 지혜를 얻는 길이 곧 선지자가 되는 길이니 이는 곧 교육의 길이기도 하다.

둘째, 교육을 처음 시작하는 시기이다. 교육을 언제부터로 할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하다.『소학』은 교육을 처음 시작하는 시기를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스스로 밥을 머금고 말을 할 줄 아는 시기로 잡고 있다. 우리 옛 유아의 교육은 이에 따랐다. 어떻게 보면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생각이다. 왜냐하면 교육이란 인간이 자기의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요건 중의 하나가 먹는 것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유아교육을 하는 시기로 정한 것은 인간이란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창출한 산물이기 때문이다.

셋째, 교육의 목적을 근저라 하여 지․우․현․불초를 설정하였다. 사람의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지혜를 얻는 일이요, 다음은 어질게 사는 일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인간상은 지혜롭고 어진 사람이다. 지․우․현․불초를 근저라 하여 교육의 근본인 목적으로 보았다.

넷째, 교육 내용을 기괄이라 하여 청․탁․미․오를 선정하였다. 교육을 가려서 실천해야 할 내용이다. 기괄은 근저를 실현하는 수단이다. 근저와 기괄은 모두 각각의 상대적 개념으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려서 선정하도록 하였다e. 즉 목적과 내용의 관계는 상호 관련성을 갖도록 설정되었다. 지혜의 지는 청, 어리석은 것의 우는 탁, 어진 것의 현은 미, 못난 것, 불초는 오로 관련지었다, 근저나 기괄 모두 임신 초기에 감화된다는 것이다. 성품은 자고 앉고 먹고 보고 듣는 것 등의 행동에서 감화된다는 것은 감성교육의 본질적인 요소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섯째, 교육 방법은 실천을 위주였다. 바로󰡐쇄소응대󰡑이다. 교육의 궁극적 목적을󰡐지혜󰡑에, 교육 내용을󰡐청렴󰡑에 두었다. 사람이 지혜로우려면 깨끗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 어진 것이다. 어진 사람이 되려면 아름다움을 알고 아름답게 사는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조화를 뜻하니 결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이 곧 응낙하고 답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깨끗하여야 하며, 깨끗하려면 자기 자신이 청결해야 한다. 그러니 깨끗하기 위하여 자기 스스로 물 뿌리고 쓸고 닦아야 한다. 이는 유학의 근본 사상인 수기(修己)와도 일맥상통하는 실천교육이다. 또한 어진 사람이 되려면 사람을 맞이하고 나가고 물러나는 이에 상응하는 언어적 예절이 필수적이라 하겠다. 이것이 곧 응대이다, 따라서 ‘소학’의 방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쇄소응대’이며, 교육의 근본이요 첫걸음으로 보았다. 쇄소응대가 이루어진 후에 부모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되 이에 어긋남이 없고 여력이 있으면 시를 읊고 노래와 춤을 추며 글을 읽으라는 것이다. 이는 인간 교육이 된 연후에 문학, 예술, 학문에 입문하여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 사상은 오랜 세월 동안 이를 흩트리지 않고 지키고 실천해 왔다.

교육 방법은 유아 스스로 자신의 실제적인 경험을 통하여 유아 자신이 당면한 문제를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기능을 길러 주는 것이었다. 결국 이는 부모를 비롯한 가르치는 사람들의 삶의 능력과 지혜를 유아들이 익히도록 세심한 배려와 도움을 주는 교육이었다. 유아들의 삶의 필요성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섯째, 개화기의 서양식 유아교육을 수용함에 있어서 우리의 것을 버리고 무조건 서양의 형식적인 유아교육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의 터에 옛적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유아교육을 그루터기로 하여 서양의 것을 접목시켰다는 점이다. 이럴 때 서양식 유아교육은 토착화가 가능한 것이다. 아무리 좋은 서양의 것이라도 접목이 안 되면 사라지게 되고, 이식을 하게 되면 겉돌게 마련이다.

끝으로『소학』과 개화기의 학회지에 나타난 유아교육 사상과 현대의 유아교육과의 비교 분석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의 것을 탐구하여 복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전래되어 왔던『소학』의 유아교육 사상은 개화라는 일대의 변혁을 겪으면서도 개화기까지 연계되어 왔다. 이러한 개화기의 유아교육 사상은 신교육을 건설하려는 오늘에 있어서도 전통과의 조화를 어떻게 시킬 것인가에 대하여 커다란 시사를 주고 있다.

유아교육 사상의 변천과정에 관한 연구를 통해 전통과의 조화를 이룬 우리의 유아교육 사상을 새롭게 정립하여야 한다. 우리는『소학』과 개화기의 유아교육 사상 중에서 지금 실천되고 있는 것과 실천되고 있지 않은 것을 밝힐 수 있을 때, 우리의 것으로 토착화 할 것과 아니 할 것이 구별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러한 후속 연구가 이루어져서 단절되었던 전통적인 유아교육 사상과 현대적인 유아교육 사상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각주>


1) J. Dewey(1897), "My pedagogic creed", J. A. Boydston(ed), Early Works of John Dewey, Vol. 5, Carbondale and Edwardsville. ; 오천석 역(1984), 「나의 교육신조」, 서울:박영사, 139쪽.

2) 김인회(1985), 「교육사 교육철학신강」, 서울:문음사, 11~40쪽.

3) 최한수(2002), John Dewey의 유아교육방법론,「교육학의 탐색」, 청담정건영교수정년기념논총간행위원회 4) 이충구(1986), 「소학집주」(상․하), 서울:단국대학출판부, 1쪽.

5) 이황(조남국, 1999), 「성학십도」, 서울:교육출판사.

6)이충구(1986),『소학집주』(상․하), 서울:단국대학출판부, 45~46쪽.

   李氏曰 人之有生 以天命之性 言之純粹至善 本無有異 以氣質之性言之 則不能無淸濁美惡之殊 淸乃智 而濁乃愚 而惡乃不肖 姙娠之初 感化之際 一寢一坐一食一 視 一聽 實淸濁美惡之機栝 智愚賢不肖之根柢也 爲人親者 其可 忽慢 而敬畏哉.

7) 앞의 책, 이충구, 55쪽.

8) 이충구, 57쪽.

9) 이충구, 57~58쪽.

10) 이충구,  58쪽.

11) 이충구, 9쪽.

  小學 何爲而作也 古之人 生甫八歲 必受是書 卽三代敎人之法也.

12) 이충구, 24쪽.

13) 한관일(1992), “조선 전기의 「소학」교육 연구”, 중앙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5쪽.

14) 다른 것이 섞이지 아니 하고 있는 그대로의 순수함을 뜻한다.

15) 이충구, 25~31쪽.

16) 이충구, 24~27쪽.

17) 이충구, 10쪽.

   陸氏九淵曰 古者 敎子弟 自能言能食 卽敎有 以至灑掃應對之類皆有所習 故長大易言 今人自小 只敎做對 稍大   卽 作虛誕之文 皆壞其性質也.

18) 이충구,  10쪽.

    古者小學 敎人 以灑掃應對 進退之節 愛親敬長 隆師親友之道 皆所以爲 修身齊家 治國平天下之本. 

19) 정순우(1997), “퇴계 사상에 있어서의 ‘日常’의 의미와 그 교육적 해석”, 「제203차 교육철학연구회 월례발표회 자료집」, 교육철학연구회, 1쪽.

20) 이기(융희2년), 「호남학보」(영인본) 제1호, 호남학회, 서울 : 아세아문화사, 34~35쪽.

21) 이충구, 45~46쪽.

   李氏曰 人之有生 以天命之性 言之純粹至善 本無有異 以氣質之性言之 則不能無淸濁美惡之殊 淸乃智 而濁乃愚 而惡乃不肖 姙娠之初 感化之際 一寢一坐一食一 視 一聽 實淸濁美惡之機栝 智愚賢不肖之根柢也.

22) 일연(권상노역해, 1977), 「삼국유사」, 서울 : 동서문화사, 64쪽.

23) 일연 63쪽.

   大抵 古之聖人 方其禮樂興邦 仁義設敎. 則怪力亂神 在所不語 然而帝王之將與也 … 成大業也. 故河出圖 洛出 書而聖人作. 

24) 이충구, 44~45쪽.

25) 이충구, 45~46쪽.

   列女傳曰 古者 婦人姙子 寢不側 座不邊 立不蹕 不食邪味 割不正 不食 席不正不坐 目不視邪色 耳不聽淫聲 夜則令瞽誦詩 道正事 如此則生子 形容端正 才過人矣. 

26) 이충구, 44~45쪽.

   此言姙娠之時 當愼所感 感於善則善 感於惡則惡也 人之有生 而天命之性 言之純粹之善 本無有異 以氣質之性 言之則不能淸濁美惡之殊 淸乃智 而濁乃愚 美乃賢 以惡乃不肖 姙娠之初 感化之際 一寢一坐一食一視一聽 實淸濁 美惡之機栝 智愚賢不肖之根柢也 爲人親者 其可忍慢 而不敬畏哉.

27) 율곡선생기념사업회(1957), 「국역 율곡전서정선」, 14쪽.

28) 율곡선생기년사업회, 14~15쪽.

29) 율곡선생기년사업회, 19쪽.

    小學之方 灑掃應對 入孝出恭 動罔或悖 行有餘力 誦詩讀書 詠歌舞蹈 思罔或逾.

30) 유리부인(융희2년), 「기흥학회월보」 제1권 제2호, 2쪽.

31) 유리부인, 기흥학회월보 제1권 제2호, 3쪽.

32) 이기(융희2년), 「호남학보」 제2호, 18쪽.

33) 이기(융희2년), 「호남학보」 제3호, 19쪽.

34) 이기(융희2년), 앞의 책, 21쪽.

35) 유리부인, 위의 책, 23~24쪽.

36) 이기, 위의 책, 17쪽.

37) 이기(융희2년), 앞의 책, 20쪽.

38) 로고약(鸕鴣藥)의 로(鸕)는 가마우지로과에 속하는 물에 사는 새로서 일명 더펄새이며, 고(鴣)는   자고새이다. 이들은 모두 독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비방(秘方)에 쓰이는 새들이다. 천조(川鳥)   초조(草鳥) 부자(附子)처럼 독성이 있으며, 비방으로 쓰이기 때문에 이들로 만든 약을 로고약라   부르며 함부로 사용해서는 위험하다.

39) 이기, 앞 책, 13쪽.

40) 유리부인, 위의 책, 22~23쪽.

41) 장계택(광무 10년), “가정교육”, 「태극학보」 제2권, 태극학회, 12쪽.

42) 상호(광무 10년), “告我이천만동포”, 「태극학보」 제2권, 태극학회, 2~24쪽.

43) 정운복(광무11년), 「대한자강회월보」 제2호, 대한자강회, 11쪽.

44) 김명준(광무11년), 「서우」 제3호, 서우학회, 11쪽.

45) 유동작(광무11년), 「서우」 제4호, 서우학회, 11쪽

46) 김낙영(광무11년), “해 기르는 법”, 「태극학회」 제2호, 35~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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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어류」 권7.

「학일 소학 4」.


 

출처 : 영유아의 교육 이야기
글쓴이 : 최한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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