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스-스티걸 법안
글래스-스티걸법
1933년 글래스-스티걸 법으로 잘 알려진법은 은행을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으로 나누었고 , 1920년대와 30년대 의 대공황을 겪으면서 상당한 부분의 은행시스템이 붕괴 되었을 때 제정 통과 되었다.
글래스-스티걸 법의 의미와 역사, 1929년 증권시장은 붕괴 되었고 이듬해 대공황의 본질적인 서막이 되었다. 2008년 금융위기와 거의 흡사하며, 주가는 투기로 야기된 1929년 이전까지 최고가에 이르렀다.
글래스-스티걸 법은, 공황 이전에 상업활동과 투자행위를 겸하였고, 관리자들은 이런 행위로 야기되는 문제를 인식 했는데 대한 반응 이였다. 달리 말하면, 은행은 큰 수익을 내기 위하여 고객의 예약금으로 과도한 위험을 감수 하였다.
글래스-스티걸 법 시행 후 상업은행은 예금자의 예탁 받아 대출 해 주는 업무를 하게 되었고, 주식의 매매는 금지 되게 되었다. 위험이나 투기성 금융 채권의 거래를 할 수 없게 되었다.
투자은행(IB)은 주식의 인수과 매도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수신 및 여신 행위는 금지되었고. 시중의 이자율 지급도 금지 되었다.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구분 한 이유는, 1930대 초 대공황 동안의 법 제정자는 은행의 위험을 감수 하는 행위가 주식시장의 붕괴를 야기 시켜 대공황의 원인이라는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금자의 예금이 투기에 사용 되었고, 결국 손실로 이어 졌다. 두 민주당 의원 인 버지니아 주 카터 글래스 와 알라바마주 헨리 스키걸은 1933년 글래스-스티걸이라 알려진 법안을 제출 하게 되었다.
법안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권한을 분리시켜 예금자의 예금을 보호하는것이 였고, 1999년'그람-리치-블라일리 법에 의해 대치 폐지 되었다. 그람-리치-블라일리 법은 상원에서 공화당에 의해 투표 통과 되었고, 증권사에 시장을 빼앗겨 온, 1980년 대 부터 꾸준히 로비를 해온 산업은행의 결과이다. 시장을 빼앗긴 이유 외에 또 다른 이유는 은행의 증권 업무는 그들의 고유업무 특성상 위엄 요소가 낮고, 다양 한 업무를 추구 할 수 있기 때문이였다. 당시에는 위험요소가 있는 CDS(신용부도스왑) 같은 것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연방예금 보험공사의 창설, (FIDC)
글래스-스티걸 법안의 규정에 따라 연방예금 보험공사가 창설 되었고(FDIC), 예금자의 예금을 은행당 250,000달러 까지 보호 하게 되었다.
FDIC는 은행의 안전성과 건전성을 관장하며 파산은행을 관리 한다. 글래스 스티걸 법안 과 일치하여, FDIC는 대공황을 벗어 났다. 당시 예금에 대한 보호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대공황이 발생 하였을때 예금자는 예금을 인출 하기 위하여 은행으로 몰려 들었다. 이것이 대공황을 더욱 상황을 악화 시겼다.
2008년 대 경기후퇴가 왔을때, FDIC는 예금보호액을 구좌당 100,000달러에서 250,000달러로 상향 하고, 비밀보장도 강화 하였다, 이는 2013년 까지 유효 하며 이후는 100,000달러도 되돌리기로 하였다.
글래스-스키걸 재 탄생 할것인가? 2008-2009년의 대 경기후퇴에 기인 하여, 예금자의 예금을 위험요소가 높은곳에 사용한 Wall-Street투자은행에 대하여 오바마 대통령은 글래스-스티걸법의 일부의 재 적용을 고려 하고 있다. 글래스-스티걸 법안으 옹호자인 전 연방은행의장인 Paul Volcker의 이름을 딴 Volker 법안을 고려 하고 있다.
Volker 법안은 오바마의 초기고안에 따라 은행이 시장에서 고객의 돈으로 헤지펀드 사모투자 등에 참여 하는것을 금지 하는 것이다. 더우기 대형 은행간의 합병을 금지 하는것이 Volker 법안의 기저이며 어쩌거나 “대형 파산은 더이상 없고 은행을 정리 하여 또다른 금융 위기를 막는것이 목적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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