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유가심인 정본수능엄경 환해산보기(註譯 瑜伽心印 正本首楞嚴經 環解 刪補記)
발췌1. 正本首楞嚴經刊行序
관찰(觀察)해보면, 이 경(經)은 진속(眞俗)을 융합(融合)하고 생⋅사(生死)를 초월(超越)하여 곧바로 피안(彼岸)에 이르는
지극히 현묘(玄妙)한 신해수증(信解修證)의 보전(寶典)이다.
어떤 것을 「신해수증」이라고 하는가 하면 �유가록(瑜伽錄)�에 이르기를,
「반야(般若)를 아깝게 여겨서 계율(戒律)을 굳게 지키는 것을 「신(信)」이라 하고,
반야를 널리 물어서 절조(節條)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을 「해(解)」라고 하는데,
「신」만 있고 「해」가 없으면 (無名)이 더해가고, 해만 있고 신이 없으면 사견(邪見)만 더해진다.
이는 공부에 큰 병이니, 「신」과 「해」가 구족(具足)해야만 바야흐로 수행(修行)의 기본(基本)이 된다.
그리고서 반야를 관조(觀照)하여 시후(時候)를 잃지 않는 것을 「수(修)」라고 하는데,
무위(無爲)를 당해서는 무위를 하고 유위(有爲)를 당해서는 유위를 해야만, 이것이 참다운 수행(修行)이다.
그리고서 반야를 배양(培養)해서 마니(摩尼)를 결성(結成)하는 것을 「증(證)」이라고 하는데, 증과(證果)를 구하는 자는 먼저 참되고 변함없는 현묘(玄妙)한 마음을 보리(菩提)의 인(因)으로 삼아, 때때로 수련(修煉)해서 혼침(昏沈)하고 산란(散亂)한 데에 떨어지지 아니하여 적적(寂寂)하고 성성(惺惺)하게 되거든 곧 반관내조(返觀內照)에서 법대로 수련하여 증득(證得)할.」고 하였으니, 우리들은 정성껏 가슴에 새겨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경(經)에 이르기를, 「마음은 가다듬음이 계(戒)⋅정(定)⋅혜(慧) 세 가지가 고루 통달함을 알아야 묘과(妙果)를 원만(圓滿)하게 이룰 수 있는데, 이것이 제불(諸佛)과 보살(菩薩)이고금(古今)을 통하여 동일(同一)하고 둘이 아닌 큰 도(道)이다.
수릉엄경(首楞嚴經)에 들어가는 이치는 이러하다. 그러나 아무쪼록 진사(眞師)를 찾아가서 공부해야한다. 그래야 자칫 정도(正道)를 잃고 방황하는 실수가 없을 것이다.
세존(世尊) 응화(應化) 二千九百九十九년 임자(壬子) 월 일 환산당납(歡山堂衲) 고암(古岩)은 삼가 서(序)함.
발췌2. 開雲堂拔記
삼마지(三摩地)와 삼마바리(三摩바里)와 삼매(三昧)에 대한 변석(辯析)의 확론(確論).
�유가록(瑜伽錄)�에 이르기를, [[
어떤 중이 묻기를, 「바라밀체(波羅密諦)가 번역한 뜻과, 혹 다른 대사(大師)가 번역한 내용에는 대략 한 가지 뜻으로 해석하였는데, 지금 화상(和尙)이 셋으로 나누어 해석한 것은 혹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하니,
불공(不空)이 대답하기를, 「훌륭하고나, 그 물음이여! 지금 모든 말법(末法)<29>에 참다운 수행인(修行人)으로 하여금 헛된 길에 떨어지지 않게 함은 너의 공덕(功德)이다.
「삼마지는 정정(正定)<30>의 터를 말함이니, 불도(佛道)를 닦는 도량(道揚)이다.
만약 이 구멍(竅)을 알지 못하면 법해(法海)<31>가 망망(茫茫)한데, 어느 곳에서 착수할 것인가?
진사(眞師)가 아니면 그것을 알 수 없느니라.」
삼마바리는 환관(幻觀)을 말함이고 「삼매(三昧)」는 선정(禪定)<32>하는 중에 받은 바른 효험(效驗)인데, 이름은 비록 같은 것 같으나 세 가지는 사실 같지 아니하니, 현명한 지식(知識)을 깊이 믿으라. 정
정(正定)의 구멍은 진공묘유(眞空妙有)<33>이니,
그 큼은 밖이 없고 그 적음은 안도 없는데,
중생(衆生)의 불성(佛性)이 그 한 구멍에 있으니,
이 구멍을 알지 못하고 수련(修煉)하는 자는 편성외도(偏性外道)이다.」라고 했다 ]] 하였다.
【譯註】
<29> 말법(末法):불타(佛陀)의 시대가 멀어져서 교법(敎法)이 점점 쇠퇴된 시기를 뜻하는 말.
<30> 정정(正定):올바른 정(定)이란 말로, 정(定)은 산란한 마음이 완전히 없어지고 참으로 안정된 것을 이름.
<31> 법해(法海):헤아릴 수 없이 광대(廣大)한 불법(佛法)을 바다에 비유하여 일컬은 말.
<32> 선정(禪定):마음을 조용히 가라 앉히고 진리(眞理)를 탐구하여 직관(直觀)하는 일.
<33> 진공 묘유(眞空妙有):무생(無生)⋅무멸(無滅)의 진리(眞理)를 즉 일체의 정견(情見)에서 벗어난 실성(實性)의 묘리(妙理)를 「진공(眞空)」이라고 하고 그 진공은 생멸변화(生滅變化)가 없이 영구하게 존재하는 실재이므로 「묘유(妙有)」라고 한 것임.
第一券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발췌3.
당(唐)나라 서천축(西天竺) 사문(沙門) 바라밀체(波羅密諦) 초역(初譯).
당나라 서천축 사문 삼장 불공(三藏不空) 재역(再譯).
개원(開元) 배구(比丘) 온릉 계환 (溫陵戒環) 주해(註解).
해동(海東)비구 한암보환(閑庵普幻) 산보(刪補)
해동 비구 개운 대성(開雲大星) 합편(合編).
유가경(瑜伽經)에 이르기를,
「이 경(經)의 주법(主法)은 상주(常住)하는 불성(佛性)이 불생(不生)⋅불멸(不滅)함이니,
어떤 물건이 하늘보다 높은가? 하늘을 낳은 자가 그것이다.
어떤 물건이 땅보다 두터운가? 땅을 육성한 자가 그것이다.
어떤 물건이 허공보다 넓은가? 허공을 싸고 있는 자가 그것이다.
어떤 물건이 불타(佛陀)와 조사(祖師)보다 초월(超越)했는가? 불타와 조사를 심은 자가 그것이다.
그것을 대력 백우(大力白牛)라고 비유하며, 또한 금강 반야(金剛般若)라고 비유한다.」 하였으니
한산(寒山)의, 「귀중한 천연물(天然物)이 하나의 반려(伴侶)도 없네.」라고 한 것과
육조(六祖)의, 「내가 갖고 있는 한 물건이 위로는 하늘을 받치고 아래로는 땅을 받친다.」고 한 것과
운봉(雲峰)의, 「하늘과 땅을 움켜쥐고 왔는데, 기장 쌀 크기만하였다.」고 한 것과
부대사(傅大士)의, 「하늘과 땅보다 먼저 있던 물건인데, 이름도 없고 본래 적요(寂寥)한 것이다. 그리고 만상(萬象)의 주재(主宰)가 되어서 사시(四時)에 따라 시들지 않네.」라고 한 것과
원오(圓悟)의, 「자타(自他)가 동일(同一)한 큰 종자(種子)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공부하는 자는 알아야 한다. 유위(有爲)<1>가 비록 거짓이라고 하더라도 그렇다고 그것을 버리면 현묘(玄妙)한 공부를 이루지 못할 것이고, 무위(無爲)<2).가 비록 참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쫓아가보면 성과(聖果)를 증득(證得)하기가 어려우니, 이렇게 신(信)⋅해(解)해야 만 이 대승(大乘)의 법문(法門)에서 도과(道果)를 닦아 증득할 것이다.
목우자(牧牛子)가 이르기를, 「지난날에 대승요의(大乘了義)의 여러 경(經)을 열람해보니, 어느 한 법도 삼학(三學)<3>의 문(門)에 돌아가지 않음이 없고 어느 한 불타(佛陀)도 삼학을 바탕으로 해서 성도(成道)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들도 계(戒)⋅정(定)⋅혜(慧)<4>의 문에서 돈오(頓悟)⋅漸修)해야만 묘과(妙果)<5>에 이를 것이며 「돈오」라는 것은 범부(凡夫)가 혼미(昏迷)했을 적에는 사대(四大)로 몸을 삼고, 망상(妄想)으로 마음을 삼아 자성(自性)이 참 법신(法身)<6>임을 알지 못하고 마음 밖에서 불타를 찾으며, 물결따라 헤매다가 홀연히 진사(眞師)가 지시해 주는 올바른 길을 만나 일념(一念)으로 회광(廻光)<7>해서 스스로의 본성(本性)을 보게 되면, 이 본성의 바탕에는 본래 번뇌(煩惱)가 없고 온갖 덕(德)이 다 갖추어져서 곧 제불(諸佛)과 호리(毫釐)의 차이도 없다. 그래서 「돈오」라고 한 것이다. 「점수」라는 것은 비록 본성이 불타와 다름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많은 겁(劫)에 습관이 된 기질을 갑자기 다 제거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점차로 훈도(薰陶)되는 공부가 이루어진 다음에 도태(道胎)<8>를 길러서 오래 되면 성인(聖人)으로 화(化)한다. 그래서 「점수」라고 한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에 낳았을 때에는 모든 근기(根氣)는 비록 갖추어졌으나 그 힘이 충만하지 못하므로, 많은 세월이 지내야 바야흐로 성인(成人)이 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목우십도(牧牛十圖)를 그려 시종(始終)의 공부를 밝힌다.」하였다.
【譯註】
<1> 유위(有爲):인연(因緣)으로 인하여 생기는 사물(事物)의 현상.
<2> 무위(無爲):진리(眞理)의 이명(異名). 위(爲)는 조작(造作)의 뜻으로, 인연에 의한 조작이 없는 영구하게 변하지 않는 진리(眞理).
<3> 삼학(三學):계율학(戒律學)⋅선정한(禪定學)⋅지혜학(智慧學).
<4> 계(戒)⋅정(定)⋅혜(慧):계(戒)는 계율(戒律)을 지키며 몸의 사악(邪惡)을 막는 것. 정(定)은 선정(禪定)을 닦아 마음의 산란(散亂)힘을 안정시키는 것. 혜(慧)는 지혜(智慧)를 밝혀 의혹을 버리고 진리를 깨닫는 것을 뜻함.
<5> 묘과(妙果):오묘하게 얻어진 특수한 결과. 즉 보리(菩提)⋅열반(涅盤)을 이름.
<6> 법신(法身):불타(佛陀)의 진신(眞身).
<7> 회광(廻光):언어(言語)나 문자(文字)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를 반성(反省)함을 이름.
<8> 도태(道胎):신기(神氣)를 수련(修煉)하여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결성체(結成體)를 말함.
발췌4. 三 列名
그 이름은 대지사리불(大智舍利弗)과 마하목건련(摩詞目建蓮)과 마하구치라(摩詞拘치羅)와 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와 수보리(須菩提)와 우바니사타(優波尼沙陀) 등인데, 이 분들은 상수(上首)가 되시며,
原註 四=사리불(舍利弗)은 지혜(智慧)가 무쌍(無雙)하여 결정하고 마무리지음이 제일이고,
대목련(大目連)은 고루 밝고 통달해서 신통(神通)함이 제일이고,
구치라(拘치羅)는 근성(根性)이 총민(聰敏)하여 박학(博學)함이 제일이고,
부루나(富樓那)는 큰 변재(辯才)를 갖추어져 설법(說法)함이 제일이다.
수보리(修菩提)는 오랜 겁(劫)<40>으로부터 내려온 공성(空性)<41>을 증득(證得)<42>하고,
우바니(優波尼)는 육진(六塵)<43> 중에서 색성(色性)<44>을 깨달았는데, 一千二百의 무리 가운데에서 특히 六명(名)만 열거한 것은 법문(法門)에 들어가는 대지(大旨)를 밝히 넋이다. 무릇 일체의 일에 있어서 마침내 견고(堅固)하게 되려고 한다면 반드시 지(智)로써 선도(先導)를 삼아 제법(諸法)을 결정하고 마무리지어서 고루 밝아 통달하게 하고, 도 널리 배워서 관통하며 분변하여 이를 설명해 밝혀서 공성과 색성을 완전히 깨달아 막힘이 없이 고루 통하여 자재(自在)하게 되면 수릉엄왕(首楞嚴王)의 최초의 방편(方便)<45>은 이같을 뿐이다.
【譯註】
<40> 겁(劫):일반적인 연(年)⋅월(月)⋅일(日)로는 계산할 수 없는 무한한 세월을 뜻하는 말.
<41> 공성(空性):진여(眞如)의 이명(異名)으로서, 진여의 실체(實體)는 공법(空法)에 의하여 실성(實性)이 나타나므로, 「공성(空性)」이라고 한 것임.
<42> 증득(證得):올바른 지혜로서 만법(萬法)의 진리(眞理)를 지로 체득하며 깨달음을 이름.
<43> 육진(六塵):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 이것이 몸과 마음을 더럽히므로 「진(塵)」이라고 한 것임.
<44> 색성(色性):형질(形質)은 볼수 없으나 지각(知覺)의 묘용(妙用)이 있음을 일컫는 말.
<45> 방편(方便):중생(衆生)을 교화(敎化)하기 위하여 형편에 따라 쓰여지는 편법(便法). 여기에서는 임기응변의 수단과 진실을 바탕으로 한 묘법(妙法)을 뜻하기도 함.
발췌5. 原註十二 中下
대개 반야(般若)<78> 이후에는 혜학(慧學)<79>이 바야흐로 성행(盛行)하여서 자신을 모르는 무리들은 한결같이 만히 듣는 것으로만 향하고 정정(正定)<80>을 닦지 않아, 외물(外物)에 끌리어 간사한 데 물드는 경우를 쉽게 당하여 거기에 굴러 떨어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불타의 법장을 어떻게 보호해 지킬 수가 없다. 그래서 많이 들은 사람이 간사한 데 물든 일을 가지고 교훈(敎訓)을 일으켜서 수릉엄(首楞嚴)의 정정(正定)으로 반야의 큰 지혜를 돕게 하였으니, 즉 망령됨을 소멸시킬 수 있으며 미묘하게 밝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외물에 끌려가지 않고 외물을 변화시킬 수 있음이 마치 여래(如來)와 같을 것이다. 이는 아난이 진실된 자비의 방편으로 말세(末世)의 학자를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다음의 자취는 책려(策蠣)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더할 수 없는 큰 은혜를 잊기가 어렵다.
【譯註】
<78> 반야(般若):망상(妄想)에서 벗어난 거리낌이 없는 최상의 지혜.
<79> 혜학(慧學):진리(眞理)를 환하게 관찰함을 혜(慧)라고 하는데, 그 혜를 발하여 정진(精進)⋅수행(修行)함을 이르는 말.
<80> 정정(正定):올바른 정(定). 즉 마음이 참으로 안정되어 사심(邪心)과 잡념(雜念)이 완전히 없어짐을 이름.
발췌6. 六 阿難反省
아난이 불타를 뵙고 정례(頂禮)하며 슬피 울면서 무시(無始)<86> 이후로 한결같이 많이 듣는 것만 위주로 하였고 아직 도력(道力)이 온전하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송점=무명송(無名頌)에 이르기를,
「혼미하였을 때에는 마치 나비가 불에 띄어들듯하더니,
깨닫고서는 마치 학이 둥지에서 뛰쳐 나오는 듯 활기차네.
망허됨을 버리고 진실한데로 돌아와 묘법(妙法)을 구하여서,
말학(末學)을 깨우치려고 영구히 유통(流通)시켰네.」하였다.
原註 十五=많이 듣기만 한 지혜는 반드시 정정(正定)을 얻어야만 도력(道力)이 온전하게 되어서 간사한데에 말려들지 않게 된다.
<86> 무시(無始):일체 세상의 중생(衆生)이나 법(法)은 모두 시초가 없었다. 이는 마치 금생(今生)은 전생(前生)의 인연(因緣)으로 있는 것이고, 그 전생은 또한 그 이전의 전생에 의해서 있는 것인데, 이렇게 추구(推求)해 올라가면 그 원시(元始)를 찾아낼 수 없으므로 「무시(無始)」라고 한 것임.
발췌7. 七 因求妙法
시방(十方) 여래(如來)께서 보리(菩提)를 성취(成就하신 미묘한 사마타(奢摩他)와 삼마발리(三摩鉢리)는 환관(幻觀)인데, 정정(正定)을 따라 행(行)을 발하는 것이니, 이는 외물(外物)에 응하는 것이다. 선나(禪那)는 적관(寂觀)인데, 모든 생각의 일어남과 없어짐을 다 잊는 것이니, 이는 자취를 없게 함이다. 이 세 가지를 함께 운용(運用)하여 셋도 아니고 하나도 아니므로 미묘하다고 일컬은 것인데, 이는 곧 수릉엄(首楞嚴)의 정정(正定)한 입문(入門)으로서 시방(十方) 여래(如來)가 보리(菩提)<87>를 성취(成就)하심이 여기에서 비롯한 것이다. 선(禪)은 마음을 융화(融和)시키고 나(那)는 숨(息)을 조절(調節)하는 것이다.
【譯註】
<87> 보리(菩提):보리는 정각(正覺)의 진지(眞智). 즉 불도(佛道) 최고의 지혜(智慧).
발췌8. 二 正宗分六
一. 總法門
그 때에 세존(世尊)이 대중(大衆) 가운데에 금색(金色)의 팔을 펴서 아난(阿難)의 정문(頂門)을 만지시며 아난과 여러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삼마지(三摩地)가 있는데 이름이 대불정수엄왕(大佛頂首楞嚴王)이며 만행(萬行)이 구족(具足)하다. 시방(十方)의 여래(如來)가 한 문(門)으로 초출(初出)하신, 미묘하게 장엄(莊嚴)<88>한 길이니, 너는 명심하고 들으라.」하였다.
송점=유가송(瑜伽頌)에 이르기를,
「아무 것도 없고 텅빈 삼마지(三摩地)에,
사성(四聖)과 육범(六凡)<89>이 여기에서 놀았네.
그 가운데 현묘(玄妙)한 구멍을 통하고자 하거든.
경안(輕安)<90> 관조(觀照)<91>함이 바로 그 공부이네. (이것은 불법(佛法)의 극히 비밀스러운 것이며 가장 요긴한 곳이니 학자(學者)는 큰 안목(眼目)으로 보아야 한다.」
송점=수애송(壽崖頌)에 이르기를,
「총지문(總持門)<92>이 열리는 그 미묘함은 다하기 어려우니,
불타(佛陀)가 도(道)를 서로 전함을 이 가운데로 했다네.
여래(如來)의 진실한 뜻은 알지도 못하고,
공연히 쇠신만 닳게 하면서 동⋅서로 분주 하게다니네.」
【譯註】
<88> 장엄(莊嚴):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꾸미고 장식한 것을 일컫는 말로, 즉 번뇌(煩惱)가 없는 정토(淨土)를 뜻하는 말.
<89> 사성(四聖)과 육범(六凡):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수라(修羅)⋅인간(人間)⋅천상(天上)⋅성문(聲聞)⋅연각(緣覺)⋅보살(菩薩)⋅불타(佛陀)의 십법계(十法界)를 범부(凡夫)와 성자(聖者)로 구분할 적에 성문⋅연각⋅보살⋅불타를 사성(四聖)이라 하고 나머지는 육범(六凡)이라고 하였음.
<90> 경안(輕安):착한 마음으로 이를 잘 감당하여 몸이 편안하게 되는 작용을 이름.
<91> 관조(觀照):지혜로써 사리(事理)를 환하게 비추어 보는 것을 이름.
<92> 총지문(總持門):총지(總持)하는 법문(法門). 즉 밀교(密敎)의 총체(總體를 일컫는 말.
발췌9.
原註 十七=삼마지(三摩地)의 삼(三)은 정(正), 마(摩)는 정(定), 지(地)는 규(竅), 또는 기(基)의 뜻인데, 삼마지는 즉 사성(四聖)과 육범(六凡)의 더할 수 없이 큰 하나의 총규(總竅)이다. 여러 경(經)에 나타난 것으로서는, 「법보리도량(法菩提道揚.場)⋅「부동도량(不動道揚)⋅「신통대광명장(神通大光明藏)」⋅「여래장(如來藏)」⋅「법계장(法界藏)」⋅「무진장(無盡藏)」⋅「비밀장(秘密藏)」⋅무량의처(無量義處)」⋅「정토(淨土)」⋅현관(玄關)」⋅총지문(總持門)」⋅「불이법문(不二法文)」⋅「밀엄국(密嚴國)」이라고 하여 다 기술(記述)할 수가 없을 정도이나, 모두 이 총규를 가리키지 않음이 없다. 불도(佛道)를 닦는 학자가 이 총규를 밝히지 못하고 수련(修煉)을 하면 만에 하나도 성공할 수 없고 다만 후세(後世)의 법연(法緣)<97>만 맺게 될 뿐이다. 그래서 화엄경(華嚴經)에 이르기를, 「여래(如來)」의 큰 선도(仙道)는 미묘해서 알리가 어렵다. 이 묘법(妙法)을 구하지 아니하면 마침내 보리(菩提)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하고, ������미륵경(彌勒經)������에 이르기를, 「그대를 천만겁(千萬劫)이나 배불리 먹인다 하더라도 마침내 공망(空亡) 한데 떨어질 것이다.」하였다. 이 총규를 모르고 수련하는 것을 소경이나 애꾸눈의 수련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일생(一生)을 헛되게 지낼 뿐이다. 이 총규는 설교(說敎) 외에 별도로 전수(傳授)하는 것을 말함이며 불법(佛法)에서 듣기 어려움을 이름인데, 참으로 수련하겠다는 뜻이 있는 자는 지성(至誠)과 지덕(知德)을 다하면 반드시 명사(明師)가 가르쳐 불 것이다. 수릉엄(首楞嚴) 삼마지(三摩地)는 제불(諸佛)과 보살이 함께 말미암기 때문에 「한 문(門)」이라고 하였고, 오묘한 장엄해(莊嚴海)에는 이로 말미암아서 이르므로 「길」이라고 한 것이다. 고금(古今)을 통하여 비록 영리하고 큰 재주가 잇다 하더라도 연구(硏究)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아니고 반드시 들어야만 거의 알 수가 있는 것인데, 불타께서 「세간(世間)에서는 듣기 어렵다.」고 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상을 총법문(總法門)의 마지막이다.������
【譯註】
<97> 법연(法緣):부모(父母)나 처자(妻子)의 친속 관계를 떠나 일체의 법(法)과 인연(因緣)따라 나는 것을 일컫는 말.
발췌10.
송점=무심송(無心頌)에 이르기를,
「망상(妄想)이 일어나게 되면 본성(本性)이 변천하고,
본성이 변천하게 되면 육적(六賊)<102>이 마음을 어지럽히리라.
마음이 흔들리면 몸에 주인이 없게 되어,
죽고 사는 윤회(輪廻)가 눈 앞에 닥치리라. (이는 공부하는 사람에게 권하여 마땅히 망상(妄想)부터 항복받고 그 다음에 진수(眞修)를 행하게 한 것이다.)하였다.
【譯註】
<102> 육적(六賊):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육식(六識)을 이름인데, 이것이 번뇌를 일으키게 하므로 도적에 비유한 것임.
송점=무구공(無垢頌)에 이르기를,
「도(道)를 배움에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곧게 하라.
곧은 마음 곧은 곳을 가장 찾기 어렵다네.
만약 돌아가서 찾을 수 없는 곳을 찾아낸다면,
바야흐로 범부(凡夫)의 마음이 곧 불타의 마음임을 깨달으리라. 「(큰 도(道)를 닦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먼저 성의(誠意)⋅정심(正心)을 한 다음 공부에 착수해야 한다. 마음이 곧지 못하면 비록 정도(正道)를 닦는다고 하더라도 정법(正法)이 모두 사악한 데로 돌아가서 반드시 마군(魔軍)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참다운 수학(修學)을 하는 사람은 시시 각각 스스로 반성하고 스스로 경책해서 곧고 올바름을 지키고 닦느니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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