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차제정이란 색계사선(色界四禪)과 사무색정(四無色定)과 상수멸정(想受滅定)을 포함한 아홉 단계의 수행 계위를 말한다. 차제정(次第定)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순차적인 단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수행의 단계는 기계적인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건너뛸 수도 있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구차제정의 경우, 명시적인 언급은 없다. 이 점이 단번에 여래의 지위에 뛰어 오름[一超直入如來地]을 강조하는 후기 선불교와의 차이점이다.
초선: 수행자는 감각적 욕망과 부적절한 정신 상태로부터 벗어나 초선에 들어가 머문다. 초선은 은둔[閑居]에서 얻어지는, 즐거움(joy)과 행복감(happiness)이 충만한 상태로서 분석적[반성적, vitarka, 尋]이고 탐색적[vicara, 伺]인 사유과정이 함께 한다. 앞서 가졌던 욕구는 사라진다. 즐거움과 행복감에 대한 미묘하고도 확실한 자각이 동반된다.
제2선: 수행자는 분석적이고 탐색적인 사유과정을 벗어나 제2선에 들어가 머문다. 제2선은 마음의 집중에서 얻어지는, 즐거움과 행복감이 충만한 상태로서, 내적인 평정심과 마음을 한 지점에 집중함으로써 얻어진다. 초선의 한거(閑居)로부터 얻은 즐거움과 행복감에 대한 섬세하고도 확실한 자각은 사라지고, 마음의 집중으로부터 얻은 즐거움과 행복감에 대한 섬세하고도 확실한 자각이 일어난다.
제3선: 수행자는 즐거움의 느낌으로부터 떠나 마음의 중립에 있다. 그는 자각적이고[마음챙김, mindful] 주의력 깊은 상태에서 몸 속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여래가 묘사하듯이, "중립적이고, 자각적인 상태에서 행복감에 노닌다." 이렇게 수행자는 제3선에 들어가 머문다. 앞의 집중으로부터 얻은 즐거움과 행복감에 대한 섬세하고도 확실한 자각은 사라지고, 평정심에서 오는 행복감에 대한 섬세하고도 확실한 자각이 생겨난다.
제4선: 수행자는 기쁘다거나 불쾌한 느낌으로부터 떠난다. 전에 가졌던 편안함과 고뇌에 대한 느낌은 사라진다. 그는 제4선에 들어가 머문다. 제4선은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는, 평정과 자각[마음챙김]의 순수 상태이다. 앞의 평정심에서 오는 행복감에 대한 섬세하고도 확실한 자각은 사라지고, 괴로움과 즐거움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섬세하고도 확실한 자각이 생겨난다.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 수행자는 색에 대한 생각[想]을 초월한다. 감각적 반응에 의존한 생각은 사라진다. 다양성에 대한 생각은 더 이상 인지되지 않고, 이렇게 생각한다: "공간은 무한하다." 이렇게 그는 공무변처정의 단계에 진입해서 머문다(DN I, 183).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 수행자는 공무변처의 차원을 초월하고, 이렇게 생각한다: "의식은 끝이 없다." 이렇게 그는 식무변처정에 진입해서 머문다.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수행자는 식무변처의 차원을 초월하고, 이렇게 생각한다: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무소유처정에 들어가 머문다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과 상수멸정(想受滅定): 그 후 나는 비상비비상처의 차원을 초월해서 생각과 감수(感受)가 없는 선정[想受滅定]에 들어가 머물렀다. 그리고 이해를 통한 통찰을 얻었을 때 번뇌는 사라졌다. 그러나 내가 이러한 아홉단계의 선정[九次第定]의 성취에 들고 또 그로부터 벗어났을 때, 나는 내가 최고의 통찰[지혜]을 얻었음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최고의 지혜]은 어떤 신이나 인간 중에서도 능가할 자가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와 통찰이 생겨났다: "내 마음의 해방은 흔들림이 없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삶이다. 다시는 돌아오는 일이 없을 것이다."
무색계 4선정
ⓐ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색계 4선정에서 벗어나 집중한 대상을 향하여 ‘끝없는 허공, 끝없는 허공’ 하면서 물질을 대상으로 한 수행에서 벗어난다.
ⓑ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무색계 초선정의 고요하지 못함의 허물을 보아 무색계 2선정에 마음을 기울인다. 끝없는 허공에 따른 의식에 마음을 집중한다. 끝없는 허공이라는 선정의 대상을 벗어나서 끝과 한계의 구분이 없는 의식작용이라고 생각하여 ‘끝없는 의식작용’의 선정에서 지낸다.
ⓒ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식무변처정보다 더 고요한 상태로 나아가기 위한 선정이다. 공무변처정의 끝없는 허공을 관하는 인식작용을 생각하지 않고, ‘없음, 없음’이라고 하거나 ‘조용함, 조용함’이라고 거듭거듭 생각한다.
ⓓ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무소유처정에서 더욱더 정묘로운 상태로 나아가기 위한 선정이다. ‘생각은 병이다. 생각은 종기와 같다. 생각은 박혀 있는 가시와 같다. 거친 생각은 없으며, 섬세하고 미세한 생각이 없지 아니한 무색계 4선정은 조용하고 높다.’ 이렇게 무소유처정에 탐착하던 것을 다하게 하여 ‘조용하구나, 조용하구나’ 하고 거듭거듭 생각하며 마음집중을 한다. 무소유처정의 대상과 영상을 거듭거듭 의지하여 반복하면 사라짐이라는 명칭, 없다는 명칭에 비상비비상처정이 생긴다.
《능엄경》에 의하면 공무변처정은 몸이 장애됨을 깨달아 장애를 소멸하고 공(空)에 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장애가 소멸하고 장애가 없어졌다는 것까지 멸하면 그 가운데는 오직 아뢰야식과 말라식의 미세한 반분만 남게 되는데 이를 식무변처정이라 한다. 공과 색(色)이 모두 없어지고 식심(識心)까지 멸하여 시방(十方)이 적연하여 훤칠하게 갈 데가 없으면 무소유처정이라 한다.
이는 말라식과 아뢰야식이 잠복된 상태이다. 아뢰야식의 종자인 식성(識性)이 동(動)하지 않는 가운데 다함이 없는 데서 다한다는 성품을 발명하여 있는 듯하면서 있는 것이 아니고, 다한 것 같으면서 다한 것이 아닌 상태가 비상비비상처정의 상태이다.
이 역시 제8식 아뢰야식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부처님이 처음 만났던 알라라 칼라마는 무소유처정에 있었고 웃타카 라마풋타는 비상비비상처정의 경지에 있었다. 부처님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참으로 부처님은 진솔하게 “내가 정말 생사를 해탈하였는가. 위없는 깨달음은 얻었는가.”라고 자신을 되돌아보고 보리수 아래로 가서 12연기로 위없는 깨달음을 얻으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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