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래빠의 스승(Guru)들
○ 띨로빠(Tilopa):
A.D.9~10세기 경의 인도인으로 까귀빠(Kargyutpa) 宗의 가르침을 천상의 불타인 도제창(持金剛佛:skt Vajra-Dhara)으로부터 전해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마하무드라의 가르침은 나로빠에게 전해지고 이어 마르빠와 미라래빠에게로 전수되었다.
띨로빠는 인도의 서부 쏘마뿌리 사원에서 자신의 발을 쇠사슬에 묶게 한 뒤 12년 간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은 한편 현상계를 초월하여 지배하는 능력인 싯디(Siddhi)를 얻었다. (쇠사슬은 번뇌의 쇠사슬을 상징함. 12년 간 번뇌의 쇠사슬에 묶여 수행하였다는 뜻임)
그는 싯디를 얻은 것을 인정받지 못하자 허공에서 한 마리의 물고기를 만들어 내는 기적을 행하였다. (띨로빠의 초상화에는 한 손에 물고기를 잡고 있는 모습이 있음)
띨로빠는 그 후 초막에 살며 요가 수행을 하는 마탕기를 찾아가서 비밀집회경궤(guhyasamaja)의 은밀한 입문식을 받고 구전되는 가르침을 받았다. 마탕기의 지시에 따라 벵갈의 사호르 지방에 있는 하리킬라라는 도시는 많은 하인과 추종자를 거느린 다리마란 창녀가 살고 있었다.
띨로빠는 그녀를 섬기면서 마하무드라의 최상의 가르침을 실천의 도로 행하였다. 매춘부를 섬기며 밤에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일을 하고 낮에는 참깨를 빻는 일을 하였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마침내 마하무드라의 가르침을 체득하였다.
이때 그 도시의 사람들은 여러 가지 환영으로 띨로빠를 보았다.
어떤 이들은 열네 개의 램프에 둘러싸인 채 타오르는 모닥불로 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빛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하는 수행자는 모습으로 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꽃다발을 장식한 명상 수행자의 주위를 많은 소녀들이 꿇어 엎드려 예배드리는 광경으로 보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다리마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다리마 또한 띨로빠가 허공에서 밝은 빛 속에 둘러싸여 왕처럼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띨로빠는 오른손으로 잡고 있던 참깨 찧던 절굿공이를 갑자기 떨어뜨렸다. 이때부터 다리마의 가슴은 후회로 찢어지는 듯하였다. 그녀는 띨로빠 앞에 나아가 꿇어 엎드려 절하였다. 띨로빠의 주위를 돌고 나서 만다라를 바쳤다. 다리마는 띨로빠의 발을 들어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려 놓고는 참회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오, 스승이시여 ! 성자이신 당신을 몰라뵙고 지금까지 당신께 저지른 사악한 행위를 용서하소서.
이제부터는 저를 당신의 제자로 받아 주소서 !]
이에 띨로빠는 대답하였다.
[그대가 나를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행하였으므로 거기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네.
더구나 나는 그와 같은 방법으로 道를 체득하여 진리의 모든 본질이 내 안에 드러나게 하였다네.
이 진리의 축복은 그대의 가슴속으로도 흘러들어가리라.]
띨로빠는 그녀의 정수리에 한 송이의 꽃을 얹었다.
그녀는 즉시 모든 번뇌의 쇠사슬에서 해방되어 축복의 기쁨에 젖었다.
다리마는 그 뒤 훌륭한 요기니(Yogini:여자 요가 명상 수행자)가 되었다.
왕이 이 얘기를 듣고 코끼리를 타고 많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하리킬라로 찾아왔다. 왕이 당도하자 시장 네거지 한가운데 앉아 있던 띨로빠와 다리마는 마나나 나무의 일곱 개 높이만큼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세계를 진동하는 하늘 신들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다음과 같은 바즈라도하(VajraDoha :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깨달음의 노래)가 들려왔다.
참기름은 본질이니,
어리석은 이들은 참깨 속에 참기름이 있음을 알아도,
참기름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만드는 법은 알지 못해
본질인 참기름을 뽑아낼 수 없다네.
본래부터 있는, 느닷없이 깨달아지는 직관의 지혜는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항상 있건만
스승께서 보여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모르리.
참깨 속에 참기름이 들어 있어도 드러나지 않듯이.
참깨를 빻아 껍질을 제거하면
본질인 참기름이 드러나듯이
스승께서는 따타따(Tathara,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드러내시나니
삼라만상은 한결 같은 본질로서 나눌 수 없는 것.
오! 잡아도 잡을 수 없고, 생각해도 생각할 수 없는 <이것>이
바로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나니
오묘하고도 신비롭다네.
이 음성을 알아들은 자들은 그 자리에서 <이것>을 깨닫고 번뇌의 쇠사슬에서 풀려나 천상 세계의 싯디를 성취하였다.
띨로빠는 열반할 때가 되자 聖職服을 벗어버리고 누더기 옷으로 갈아 입었다.
띨로빠는 [나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유언을 남기고 한밤중에 영원의 세계로 돌아갔다. (역자 정리)
○ 나로빠(Naropa):
A.D.10~11세기 경의 인도인으로 [大學者 나로빠]로 불린다.
싸만따바드라(Samantabhadra: 나로빠의 兒名)는 인도의 벵갈 지방에서 태어났다. 벵갈의 샨띠바르만(Shanti-Varman) 왕은 한 명의 공주를 낳은 후 뒤늦게 왕자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바로 부처님의 相好를 지닌 나로빠이다.
싸만따바드라는 여덟 살이 되자 이미 세상살이의 덧없음을 느끼고 인생의 본질을 추구하는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불교가 창성하던 카쉬미르 지방으로 진리를 배우러 떠나서 열한 살 되던 해에 인도의 북서부에 위치한 카쉬미르에 도착하였다. 거기서 3년 동안 공부하고 이 학자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왕은 학자들을 돌려보낸 뒤 싸만따바드라에게 왕위를 계승토록 하려고 결혼할 것을 강요했다.
그러나 왕자 싸만따바드라는 끝내 거절하다가 부왕의 뜻에 못이겨 결국 승락하고 힌두교의 아름답고 정숙한 여자 비말라디삐(Vimaladapi)라는 16세 소녀와 결혼하였다. 이때 싸만따바드라의 나이는 열입곱 살이었다. 왕자 싸만따바드라는 결혼한 지 8년 만인 25세 되던 해에 세속을 떠나고 싶은 열망이 한층 간절해졌다.
이리하여 비말라디삐와 부왕의 허락을 얻어 이혼한 뒤 왕궁을 떠났다. 그 후 아난다라마(Anandarama) 수도원으로 가서 3년 동안 수행 및 경전 공부를 한 뒤 28세에 카쉬미르로 가서 승려가 되었다. 거기서 다시 3년 동안 수행 및 경전 공부를 한 뒤 풀라하리(Phullahari)로 가서 가르침을 펴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서른 한살이었다. 이 후 6년 동안 그곳에 머무르면서 가르침을 전파하다가 가르침을 전파하다가 37세에 나란다(Nalanda) 대학으로 갔다.
당시 나란다 대학은 500명의 학자들이 常住하는 불교의 중심지였다. 그는 北門을 담당하는 主任 학자로 추대되었다. 나란다 대학에는 동 · 서 · 남 · 북의 문을 담당하는 주임 학자가 한 명씩 있었는데, 새로운 학자가 선임될 때마다 큰 論爭會를 개최하는 관습이 있었다. 나로빠가 학자로 선임될 때에도 큰 논쟁회가 있었다.
대학(나란다)의 중앙 넓은 뜰에는 龍床이 마련되고 여기에는 임금이 자리잡고 앉았다. 그 좌우에는 불교와 힌두교 학자들이 갈라서 자리잡고 논쟁을 벌였다. 먼저 불교 학자들이 나로빠와 논쟁을 시작하였는데 15일 동안 계속된 논쟁에서 아무도 나로빠를 당하지 못했다. 이어서 힌두교 학자들이 14일 동안이나 나로빠와 논쟁을 벌였으나 역시 아무도 당하지 못하였다. 이를 지켜본 힌두교 학자들 700명이 불교도인 나로빠의 지혜에 감복하여 불교도로 전향하였다. 이로 인하여 싸만따바드라는 [大學者 나로빠]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나로빠는 나란다 대학의 수도원장(총장)이 되었다. 온갖 명성을 한몸에 지닌 채 8년 동안 나란다 대학에 머물다가 45세 되던 해에 나로빠는 기묘한 환영을 보았다.
대학자 나로빠가 태양을 등지고 경전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지긋지긋하게 흉칙한 그림자가 책 위에 나타났다. 뒤를 돌아보니 서른 일곱 가지의 추악한 모습을 한 노파 마녀가 웅크린 채 노려보고 있었다. 보기에 이루 형언할 수 없이 흉칙하게 생긴 노파는 입을 실룩거리며 물었다.
[그대는 글자를 아는 것이요, 경전의 뜻을 아는 것이요?]
나로빠가 글자를 안다고 하자 마녀는 기뻐하며 지팡이를 허공에 내저으며 춤을 추었다. 이때 글자에 담긴 의미도 이해한다고 하자 마녀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지팡이를 허공으로 내던졌다. 나로빠가 그 이유를 묻자 노파는 대답하였다.
[그대가 진실을 말할 때 나는 춤을 추고 그대가 거짓을 말할 때 나는 우는 것이오.]
그러자 나로빠가 노파에게 경전의 뜻을 알고 있는 자가 있느냐고 묻자 자기의 형제가 그것을 안다고 하였다. 그에게로 안내해 달라고 하자 [그대 스스로 찾아 보시오. 그래야만 그분을 만날 것이오.] 하고는 하늘의 무지개처럼 사라져 버렸다.
망연자실한 나로빠는 지금까지 쌓아 온 지식과 명예를 버리고 경전의 말씀을 참으로 체득한 참스승을 찾아 떠났다.
나로빠의 간절한 마음에 응하여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非二元의 깨달음의 化身인 띨로빠가 동쪽에 살고 있나니
그대는 붇다(Buddha)인 스승 띨로빠를 찾아가거라.
이리하여 온갖 고생끝에 나로빠는 마침내 스승 띨로빠를 만났다. 띨로빠는 마르빠에게 12년에 걸쳐(57·8세가 될 때까지) 일 년에 한 가지씩 자아(我相:ego)를 消滅시키는 행을 실천하게 하였다.
띨로빠는 일 년 내내 不動의 자세로 앉아 침묵하다가 가르침을 줄 때만 입을 열었다. (不動의 자세는 眞我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상징함)
자아소멸행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일 년에 한 가지씩 행한 순서임)
①여의보주행(如意寶珠行):수도원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게 하고 고쳐주기
②일여부동행(一如不動行):불 속에 뛰어들게 하고 고쳐주기
③무애자재행(無碍自在行):두 번 걸식하다가 음식을 주지 않으니 물을 음식에 끼얹고 매질당하게 한 뒤 고쳐주기
④내열발생행(內熱發生行):거머리가 우글거리는 웅덩이에 교량을 놓게하여 피를 빨린 뒤 추위로 거의 얼어죽게 한 뒤 고쳐주기
⑤만물환상행(萬物幻像行):갈대 끝을 뾰족하게 하여 돼지기름을 발라 불에 태운 뒤 몸에 찌르고 나서 고쳐주기
⑥일체몽환행(一切夢幻行):넓은 들에서 환영의 사람을 쫓게 하여 기진맥진케 한 후 고쳐주기
⑦청정광명행(淸淨光明行):코끼리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新婦를 끌어 내리게 하여 사람들에게 매질당한 뒤 고쳐주기
⑧감성명정행(感性明淨行):행차하는 왕후를 넘어뜨리게 하여 수행원들에게 맞아 실신케 한 후 살려주기
⑨재생불멸행(再生不滅行):왕자를 마차에서 끌어내려 집어던지게 한 후 군병들에게 짓밟히고 맞아 실신케 한 뒤 살려주기
⑩무상영락행(無上永樂行):여자와 동거하게 한 뒤 세상樂의 덧없음을 깨닫게 하여 본질의 기쁨을 영원히 누리도록 해주기
⑪마하무드라行:동거하던 여인을 스승이 달라고 하니 여인이 나로빠를 연연하여 띨로빠에게 등을 돌리거늘 여인을 매질하여도 나로빠의 信心은 불변하기
⑫중음세계행(中陰世界行):사막에서 피와 머리와 팔다리로 만달라를 만들어 스승 띨로빠에게 바치기(진리의 化身인 스승에게 몸과 마음을 완전히 바침을 상징함)
다음은 자아소멸행(아상소멸행) ⑩번의 내용에서 옮겨본다.
[나로빠의 질문:
스승이시여, 저는 二元의 현상세계에서 자아의 끊임없는 분별심으로 괴롭습니다. 어떻게 하면 편안합니까?
띨로빠 응답 송(頌):
나로빠여,/
윤회의 현상계와 열반의 세계가 하나임을 알아라./
그대 마음의 거울을 보아라./
영원한 기쁨은 거기에 있고/
다끼니(Dakini) 女神의 고향이니라.]
나로빠는 이 밖에도 열두 가지의 작은 고행들을 겪었다.
이와 같이 제자의 에고(我相)를 소멸시키기 위한 스승 띨로빠의 무자비한 慈悲의 가르침으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나로빠는 드디어 스승과 하나가 되었다. 그 후 참다운 가르침을 펴다가 85세에 영원한 진리의 세계로 사라졌다. (역주)
○ 마르빠(Marpa):
A.D.1012년에 티벳의 로작(Lhobrak)에서 태어난 티벳인으로 [譯經師 마르빠]로 불린다.
마르빠는 어릴 때부터 고집이 매우 세고 저돌적이었다. 아버지는 아이의 성격을 보고 [이 애가 장차 악의 길을 걸으면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에게도 큰 파멸을 가져 올 것이요, 선의 길을 걸으면 자신 및 뭇 사람들에게 큰 이로움을 주리라] 하고는 아들을 영적인 길로 인도하려고 하였다.
마르빠가 12살이 되자 아버지는 인도에서 돌아온 교사에게 인도말과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게 하였다. 그 후 마르빠는 3년 동안 그 교사에게 배웠다.
15살이 되자 마르빠는 진리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인도로 가기로 결심하였다. 인도로 향하면 중 네팔에서 나로빠의 두 제자들을 만났다. 이들에게 3년 동안 가르침을 받으며 인도의 무더운 날씨에 적응하도록 준비하였다.
18살에 인도에 도착하여 나로빠를 만났다.
마르빠는 나로빠로부터 Hevajra-Tantra, Guhyasamaja, Mahanaya 등의 父性 및 母性 딴뜨라의 가르침을 전수받고 入門하였다. 그 후 나로빠의 소개로 각각의 행법에 달통한 스승들을 차례로 만나 口傳되는 비법을 전수받고 수행의 깊이를 더하였다. 꾹꾸리빠 (Kukkuripa)를 찾아가서는 Mahanaya의 비법을 전수받고 마이뜨리빠(Maittipa)를 찾아가서는 마하무드라의 본질을 전수받았다. 이 첫번째 여행에서는 9년 동안 인도에 머물렀다.
27 살에 티벳으로 돌아온 마르빠는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에 다메마(Damema)와 결혼하였다. (42세에 결혼하였다는 설도 있음) 한편, 두 번째 인도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재물을 모았다. 마르빠는 이전의 여러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이 지금까지 수행한 행법들을 檢證하였다. 많은 경전들을 모아 일부는 번역하고 口傳되는 가르침들을 정리하였다. 나로빠 스승은 마르빠에게 한번 더 찾아오도록 요구하였다. 이 때는 6년 동안 인도에 머물렀다.
티벳으로 돌아오자 그의 명성은 더욱 널리 알려졌다. 이 당시에 제자 미라래빠를 만났다. 그는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펴는 한편 꾸준히 황금을 모아 세번째 인도 여행을 준비하였다.
54세 된 마르빠가 인도 여행을 떠나려 하자 아내와 자녀들 및 제자들은 여행의 피로와 혹독한 날씨 및 건강을 염려하여 떠나지 못하도록 간곡히 만류하였다. 그러나 마르빠에게는 스승 나로빠와의 마지막 만남(진리 체득)을 위해 이 여행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다. 마르빠는 온갖 만류를 뿌리치고 혼자 인도로 향했다. 이때 스승 나로빠는 현상적인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인도에 도착한 마르빠는 갖은 고생과 좌절과 번민 끝에 드디어 스승을 만났다. 잠재적인 업장까지 녹여 버린 이 만남은 스승과의 至高한 相逢이었다. 이 세번째 여행에서 마르빠는 스승 나로빠로부터 意識轉移法(三昧상태에 들어가 자기의 육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이나 동물의 갓죽은 몸으로 들어가 再生하는 行法)의 마지막 단계인 종죽(Drong-jug:에고[我相]가 진아 자체에 완전히 轉移되는 행법으로 에고가 소멸됨)을 전수받았다. 이 때는 3년간 인도에 머물러 있었다.
이 당시 미라래빠(퇴빠가)에 대한 스승 나로빠의 예언을 옮겨본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
암흑의 나라 티벳의 눈덮인 산봉우리에서 솟아나는 태양(太陽)처럼 빛나는 존재가 태어나다니......]
이어 나로빠는 두 손을 포개어 마르빠의 머리 위에 올려 놓고 게송을 읊었다.
漆黑처럼 어두운 북쪽 땅에서
태양처럼 빛나는 喜消息이 있으니
그 이름 퇴빠가(Thopaga), 나도 고개숙이네.
나로빠는 눈을 감고 북쪽을 향하여 세 번 고개숙였다. 이때 인도의 모든 산들과 초목들도 北向하여 세 번 禮拜하였다고 한다. 그 후 마르빠는 티벳으로 돌아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베풀고 88세에 웃디야나(Uddhiyana)의 本體世界)로 돌아갔다.
[마르빠는 21년 간 인도에서 머물렀고 그 중 16년 7개월 간은 나로빠 밑에서 수행하였다. 나로빠를 비롯한 마르빠의 스승은 13명이었다. 까담빠 宗을 창시한 아띠샤(Atisha)도 마르빠의 스승이었다.]
출처 : http://kr.blog.yahoo.com/vkfdlfdh/94 사오정마르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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