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심각한 상황에 처할 경우 두 가지가 매우 유용하다는 사실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것은 상식적인 접근과 유머 감각이다.
유머 감각은 분위기를 밝혀주는 놀라운 기능을 하는데,
죽어가는 과정을 참되고 보편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지나친 엄숙함과 상황의 격렬함을 누그러뜨린다.
그럴 때에는 되도록 능숙하게 또 부드럽게 유머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또 내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죽어가는 당사자에게 너무 개인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편이 좋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 죽어가는 사람은
당신을 온갖 분노와 질책의 과녁으로 삼을 수 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가 말하는 것처럼,
분노와 질책의 대상은 어떤 방향으로든지 옮겨질 수 있고
또한 주변에 거의 제멋대로 투사(投射)될 수 있다.
이런 분노가 실제로 당신을 겨냥한다고 생각할 것은 없다.
어떤 두려움과 비탄을 드러내더라도,
그와 당신의 인간 관계가 상처받을 수도 있는 그런 방식으로 반응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우리는 종종 죽어가는 사람에게 설교하거나 신앙 고백을 하려는 충동을 느낄 수도 있다.
죽어가는 사람이 그것을 원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될 때,
이런 충동에서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신앙에 힙입어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의 임무는 그를 개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힘, 확신, 신념, 영성에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물론 그가 영적인 문제에 대해 진정으로 마음이 열려 있고,
우리가 그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참으로 알고자 한다면 굳이 피할 필요는 없다.
당신 자신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지 말아라.
우리의 도움에 힙입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놀라운 일이나
<구원>이 일어나리라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런 기대를 한다면,
결국 실망하고 말 것이다.
누구나 그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대로 죽게 마련이다.
진솔한 의사 소통의 길을 마련하기 위해서,
그의 삶,
성격,
생활 환경,
삶의 이력(履歷)이라는 관점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바라보고
그를 아무런 거리낌없이 받아들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 우리가 도움을 주고자 노력해도 거의 아무 효과가 없는 듯하고
죽어가는 사람이 아무 반응이 없다고 해서 쾌념할 것은 없다.
우리의 보살핌이 심층적 단계에서 어떤 효과를 나타낼지 우리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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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유머 감각은 분위기를 밝혀주는 기능을 한다|작성자 ramado